태풍 속에 띄운 편지 / 여해 김태원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의 모습을 보며 과거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이 미래의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 한다. 1년 후에 받아보는 느린 우체통이나 타임캡슐을 이용해 미래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느린 우체통이 있다고 했다. 말씀인 즉 그동안 살아오셨던 진주를 떠나기 전에 편지를 한 통 써 부치고 싶다고, 그러니까 그 느린 우체통에 당신에게로의 편지를 부쳐 1년 후에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년 후에도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지, 아니면 그게 수신자 없는 편지가 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열여덟 해를 사시던 진주에서 부산 해운대로의 이사를 앞두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들었던 정을 놓아두어야 하는 것을 그 느린 편지를 핑계로 추억의 한 귀퉁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머니가 이사를 앞두고 신경 쓰는 일이 많은 탓에 몸까지 안 좋으신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불현듯 간절곶의 소망 우체통이 떠올라 그 이야기를 하며 이사 오시면 모시고 가겠다고 했더니 ‘이사 가기 전에 여기서 보내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랬음에도 결국에는 이사에 대한 신경도 많이 쓰시고 건강이 나빠져서 원하시던 평사리는 가지 못한 채 이사를 하게 되었다.
느린 우체통은 2009년 5월 영종대교기념관에 처음 생긴 후 전국적으로 50여 개가 있고 한해 이용자가 무려 1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바쁜 일상에서 가끔은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것 또한 느림의 미학이 아니겠는가. 해서 현대인들의 각박한 삶에서 조금은 느림으로 인해 편안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내 마음의 정화와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런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내가 사는 곳이 부산이 아닌가. 그러니까 어머니는 자식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신 셈이다. 때문에 나는 주말이면 어머니 집을 찾아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짐정리도 해 드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이사한 지도 한 달쯤 지난 아침에 문득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느린 우체통 생각이 났다. 짐정리도 얼추 마무리된 듯 하여 어머니께 바쁜 일 없으시면 같이 밖에 나가자고 했더니 말씀은 그냥 집에서 쉬자고 하시면서도 따라 나서셨다. 태풍 찬홈이 온다고 하였지만 아직 비는 뿌리지 않았고 그만하면 날씨도 괜찮을 듯 싶었다.
어디를 가느냐는 물음에 깜짝 선물을 해 드리려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않고 먼저 어머니가 찾던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앞으로 자주 이용하려는지 도서관 내부를 살피고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도서관을 나서니 들어갈 때는 괜찮았었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빗속을 뚫고서 나는 집으로 가는 양하면서 바로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하자 빗발은 더 굵어지고 해안에는 파도가 바람에 춤을 추는 게 아닌가. 태풍 찬홈 소식이더니 날씨가 급격히 변했다. 바다 물결은 생각 이상으로 거셌다. 그동안 잔잔한 파도만 보아왔던 어머니는 산더미 같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곤 차에서 내려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런 다음에 그곳을 빠져나와 차는 울산 간절곶을 목적지로 두고 달렸다. 그렇게 1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간절곶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날 좋을 때 오지 어찌 말도 않고 왔느냐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셨다. 차에서 내리자 비바람은 우리 둘을 맞이하는 것처럼 더 거세게 몰아쳤다.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긴 간짓대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간절곶. 그 바닷가 앞쪽에 우리가 찾던 5m 정도의 커다란 초록색 우체통이 서 있었다. 우편엽서는 거기서 200m쯤 떨어진 커피숍에서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커피숍을 찾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서 어머니는 우편엽서를 가져다가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다.
“너도 한 장 적어라. 보낼 사람 없으면 너에게…….”
그 말에 나도 용기를 내어 나에게 엽서를 쓰려다가 어머니 앞으로 썼다. 이사를 하셨으니 새집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볼펜으로 꼭꼭 눌러 내 마음을 담은 손 편지.
그렇게 쓴 우편엽서를 들고서 다시 우체통을 향하는데 비바람은 더욱 더 거세게 몰아쳤다. 그럼에도 그것을 부치려고 5m나 되는 그 큰 우체통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부치면서 사진까지 찍었다. 그 모습은 나이 든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그저 천진스런 아이들이었다. 1년 후 그 엽서를 받으면 ‘어느 태풍 불어 좋았던 날’을 기억하며 어머니와 아들은 한바탕 웃게 되겠지 하는 생각 속에서.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로 하시는 말씀은,
“막내야! 그게 뭐 그래? 1년 후에 올 줄 알았더니 벌써 그 엽서가 왔더라. 뭐 그래? 에구 재미없어.”
그 이야기에 나도 좀 어이가 없었다.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간절곶의 소망우체통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엽서를 거둬가고 늦을 때는 10일 정도 걸린다는 것이 아닌가.
그 소망 우체통은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느린 우체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머니와 막내아들 둘만의 추억으로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운을 빕니다
머물러 좋은 말씀 남겨주시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