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고대시대 : 기원전 15세기 ~ 서기 6세기.
'발칸반도'는 이탈리아와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서 지중해 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세계지리 상의 구분'을 실시할 경우, 이 지역은 '유럽의 동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가장 남쪽에는 그 찬란한 문명과 깊은 내용의 철학 덕에 잘 알려져 있는 '그리스'가 있으며, 그 바로 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도 하에 한때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마케도니아'가, 그리고, 그 동쪽에는 자신들이야말로 '발칸의 진정한 주인'임을 주장해오지만, 실은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마치 '몰락한 양반의 종갓집'과도 같은 '알바니아'가, 그리고, 서쪽에는 '스파르타쿠스'라는 '로마제국을 크게 떨게 하였던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로마제국의 후예인 '비잔틴 제국'을 또한 수 백년 동안 떨게 하였던 '불가리아'가 있다. 그 세 개 국가들 사이에 남쪽 지역의 땅이 마치 '레고 블록'처럼 딱~ 맞물려 있는 국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었다.
그런데, 이 땅에 과연 언제서부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인가!
아직까지도, 마땅한 '정설'은 없지만, 일단, 공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은 '기원전 15세기에 일리리아 인들과 트라키아 인들이 살고 있었다.'라는 내용의 그리스인들의 문서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을 기초로 한 연구의 결과, 학자들은 '트라키아 인들이 먼저 발칸반도에 들어왔고, 그 후에 일리리아 인들이 들어왔다.'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또 하나의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일리리아 인들은 발칸지역 북부-즉, 그리스를 제외한 지역-에 대한 최초의 정복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리아 인들이 트라키아 인들을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일리리아 인들은 단지 아드리아해와 접하는 지역만을 점령하여 이 지역에 '일리리아'라는 나라를 건설한 뒤, 그 세력을 더 이상 확대하려 하지 않았었고, 일리리아 인들에 의하여 밀려난 트라키아 인들은 반도의 동쪽으로 피난하여 '트라키아'라는 그들의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발칸반도에서의 세력균형은 '일리리아 세력', '트라키아 세력', 그리고, '마케도니아-그리스 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채로 수 백년을 보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종지부를 찍을 때는 오고야 말았다.
'제1차 포에니전쟁'(BC265~BC241)으로 인하여 이탈리아반도에서 벗어나 멀리 '바다'를 내다보게 된 로마인들이 본격적으로 해양에서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드리아 동해안의 해안선이 움푹 들어가 있는 천연의 항구들을 거점으로 하여 활약하던 일리리아계 해적들이 로마인들의 '골칫거리'로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일단 일리리아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해적들을 통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일리리아의 왕은 그 사신을 죽였다고 한다. 그 결과, 로마인들은 그것을 이유로 일리리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기원전 229년, 보병 2만 명과 기병 2천기로 구성된 로마군은 200척의 군함에 나누어 타고서, 오늘날의 이탈리아 서남부에 있는 항구도시인 '브린디시'를 출발하였다. (부연하지만, 이로부터 2228년 후인 1999년에는 바로 이 도시에서 '발칸의 국가'를 또다시 치기 위한 대규모 항공대가 출격하게 된다.)
당연히, 강력한 로마군대는 간단하게 일리리아군대를 제압하였고, 그 결과, 일리리아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즉, 이로서 '로마제국의 발칸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진출'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로마가 일리리아를 정복하였다는 것만으로 발칸지역에 대한 정복이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즉, 일각에서는 '로마는 정복하고 싶어서 정복을 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덤벼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복해버렸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기원 후 1세기까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그리고 트라키아를 포함한 발칸반도 전역이 '일리리아에 대한 로마인들의 정복'과 같은 이유로 로마인들의 정복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이야말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전 세계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믿고 있었던 로마인들에게도 몰락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제국 국경선의 안정'을 위한다는 구실로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졌던 로마인들의 정복전쟁은, 결국 '로마제국'이라는 국가를 '자신의 체중을 유지할 힘이 남아 있지 않는 거인'으로 만들었다. 그 예로, 제국 전체의 국경선을 유지하고, 식민지 내부의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규모'의 대량의 병력이 요구되어졌으며, 또한 제국 전역으로부터 로마 중앙으로의 통신망의 유지를 위한 '로마가도의 건설'이 요구되어졌고, 그 결과 막대한 세금이 원활하게 거두어질 필요가 있었으며, 그것은 또한 '수많은 행정요원들의 필요성'을 낳았다.
그것은 결국, 일종의 '행정-세입-토목-군사상으로 연결되어지는 악순환'을 창출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5현제'(五賢帝)들 중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아들 '코모두스'(180~192)의 잘못된 정치는 그의 암살과 함께 로마제국의 정치적 혼란을 가져와서, 각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부대들의 병사들이 자신들의 부대장을 '황제'로 옹립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세베루스'(193~211)에 의하여 정리되어졌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몸무게를 주체 못하는 거인이 된 로마제국에 부흥의 시기를 가져오기 위하여, '군인황제시대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였으며, 또한 달마티아 식민지 (오늘날의 '크로아티아 공화국' 지역) 출신의 군인이기도 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는 로마제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그가 황제로 등극하였던 서기 284년에 있었던 일이다.
"제국의 모든 신민(臣民)들은 들으라! 지금의 우리의 제국이 광활하여 서쪽으로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랄타)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러서 페르시아와 마주 대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광활한 사막과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에 이르르며, 북쪽으로는 라인강과 다뉴브강을 오랑캐들과의 국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광활함이 결국 우리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예로, 북쪽에서는 브리타니아족과 게르마니아족, 그리고, 사르마티아족과 야지게스족, 록솔라니족이 우리의 신민들의 생산물을 노리고 노략질을 하기 위하여 수시로 침공해오고 있으며, 페르시아인들의 기병대 또한 언제 유프라테스강을 넘어와서 우리를 공격할는지 모른다. 사막의 베드윈들 또한 우리 제국의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더욱이, 제국 내에서는 짐의 뜻을 어기려는 자들에 의하여 국내가 소란스러워, 신민들이 마음 편히 자신들의 행복을 누리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게다가, 그로 인하여 세금이 제대로 고르게 거두어지지가 않아, 제국의 가도(街道)는 파괴되어 수레가 다니기 힘이 들고, 수도교는 수리가 되지 않아 정화된 물을 제대로 나를 수가 없어서, 백성들이 병에 걸리기 일쑤이니, 신민들의 삶이 실로 고단하며, 제국의 운영에는 많은 애로가 있다.
이에 짐은 우리의 제국을 수호하시는 위대하신 신들의 지혜를 빌어 새로운 정책을 생각해 내었노라!
지금부터 제국을 4구역으로 나눈다! 그중 두 구역에는 짐의 다음가는 지휘인 부(副)황제를 배속시킬 것이며, 또한 나머지 한 구역에는 짐과 함께 동등한 지휘에서 일을 할 또 하나의 황제로서 군대에서의 나의 동료였던 '막시미아누스'(286~305)를 앉히겠노라!"
그래서, 이때 이후로 유럽은 '두 명의 황제들이 다스리는 두 구역들 :동로마제국-서로마제국'을 기준으로 하여 '동유럽-서유럽' 또는 '동로마교회 :정교회-서로마교회 :카톨릭교회'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이 정책은 1707년 후에 있을 엄청난 사태의 시발점이 되게 된다. (그러나, 정책 자체만을 놓고서 본다면, 서로마제국은 곧 멸망했지만, 동로마제국은 이후 1169년을 더 버티다가 멸망을 하게 되었으니, 반쯤은 성공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 참고자료 -
(1) The Instruction From Crisis Of Kosovo (Anaism): 장웅진 개인의 '유고슬라비아8년전쟁' 연구노트.
(2) http://www.naver.com 백과사전.
(3) 한메파스칼 대백과사전.
(4) 로마인 이야기 2장 Page 17~85 : 시오노 나나미著. 한길사.
(5) 로마인 이야기 3장 Page 216~221 : 시오노 나나미著. 한길사.
(6) 바다의 도시 이야기 下권 : 시오노 나나미著. 한길사.
(7) 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著. 책세상.
(8) 발칸분쟁사 : 김성진著. 우리문학사.
(9) 제2차세계대전사 '빨치산과 게릴라' : Time-Life社.
(10) http://www.cncho.pe.kr/kric/kric/yugo-serbia.htm : 민족연구 제3호.
(11) http://www.agn.gr : The Aegean Map Of Greece.
(12) 국제관계학 종합노트 (雄進秘記): 장웅진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