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군(延白郡)은 황해도의 옛 행정 구역이다.
자연 [편집]
황해도의 동남 경기만에 면하고, 북부는 구릉성 수양산맥이 동서로 뻗어 목단산(牧丹山)·운두봉(雲頭峯)·황의산(黃衣山, 479m) 등이 있으며, 그 지맥이 남쪽 해안 쪽으로 뻗어 중앙에 해성반도를 돌출시켜, 해안의 단조(單調)를 깨뜨려 서쪽에 용도만, 동쪽에 호남만으로 분리시켰다. 군의 남반부는 광활한 해안 평야로 동서의 군계를 이루는 예성강·화양강의 2대 강과 옥산강(玉山江)·나진포천(羅津浦川)·풍천(楓川) 등 하천의 퇴적 작용과 해저 융기로 이루어지고, 해안은 넓은 간석지가 있어 대규모의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안 도서로는 역구(驛鷗)·신·구 증산 등 7개 도서가 있다.
역사 [편집]
1914년 연안(延安郡)·배천(白川郡) 양군을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연안은 본래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시염성(鼓?城)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 해고군(海皐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초 염주(鹽州)로 개칭하였다. 이어서 영응(永膺)·석주(碩州)로 고치고, 충렬왕 때 온주목(溫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충선왕 때 연안부(延安府)로 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 도호부로 되어 경기도로부터 황해도에 이관되어, 1895년 다시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 배천군과 평산군의 괘궁(掛弓)·목단(牧丹) 2면을 합하여 연백군으로 개칭했다. 1935년 연안면이 읍(邑)으로 승격했다. 1945년 해방 후 북위 38선으로 남북 분계로 삼음에 따라 잠정조치로 벽성군의 추화·내성·일신·청룡의 4면을 합한데 반하여, 38선 이북의 운산·금산·목단의 3면 전역과 은천·화성·괘궁의 북반부를 잃었다가 한국 전쟁 이후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영역이 되었다.
배천은 고구려의 도납현(刀臘縣) 치악성(雉岳城)으로 신라 때는 구택으로 고치고, 해고군(海皐郡)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고려 초부터는 배천으로 고치고 조선 태종 13년(1413) 군으로 되어 내려오다가, 1914년 연안군에 합했다.
1952년 운산면·화성면·금산면·은천면·석산면·도촌면 등지와 해월면의 전역, 호동면 일부 지역이 합쳐서 배천군을 이루고, 용도면·괘궁면·호남면·봉서면·해성면·송봉면의 전역과 목단면·호동면·봉북면·해룡면·연안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연안군을 신설하는 등의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여 연백군을 폐하였다.
하기지도는 연백군이 연안과 배천으로 나누어진 상태로 배천군 좌측상단에 공안부윤공파 터전인 금산면(선암리),그밑으로 화성면(화장리), 그우측하단으로 은천면(구암리)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