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 목천 흙집 연구소.ⓒ2003 최연종
우리의 전통주택으로 사랑을 받아온 흙집.
1970년대만 해도 시골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게 흙집이었다.
흙과 나무와 물로 만든 흙집은 경제적이면서도 과학적이다.
재료를 생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체 리듬과 잘 어우러져 자고나면 상쾌한 느낌을 받는 것이 흙집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지금은 시멘트 길에 밀려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먼 옛날 얘기가 돼버렸지만 우리의 전통 흙집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 안채 바깥 모습. 나무를 깎아 만든 목어며 기둥이 이채롭다. - 화순군 남면 원리에 있는 목천 흙집 연구소. 사평중학교에서 한천면 방향으로 500여m쯤 가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다시 같은 거리만큼 가면 산 중턱 외딴 곳에 흙집 연구소가 있다. 연구소라는 말이 왠지 낯설게 여겨졌지만 금세 생각을 고쳤다.
50여평의 안채를 중심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흙집 5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마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 입구에 있는 장승이며 너와 지붕, 바위 등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흙집이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풍기고 있는 것이다.
▲ 황토와 육송을 이용한 안채 벽체모습.
같은 황토로 만들면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황토 집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벽체는 육송을 통으로 잘라 황토 흙과 함께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 기존 흙집의 단조로움을 보완해 마치 공예작품을 연상케 한다. 벽체 두께도 45cm이상 시공하기 때문에 튼튼하다.
▲ 거실 천정 모습. 창호를 투과한 불빛이 은은하게 빛난다.
5채 모두 원형으로 지어졌다. 안으로 들어서면 확 트인 거실과 천정에 눈길이 간다. 방사선 모양의 천정에 육송을 배치한 뒤 그 밑에 창호 문짝 4개를 달았는데 창호를 투과한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면서 마치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안채는 큰 거실을 중심으로 서재, 침실, 부엌, 욕실 등 5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다. 침실과 주요 바닥은 새끼로 만든 멍석을 깔았고 참숯과 소금을 이용해 바닥처리를 하기 때문에 습기를 없애는 것은 물론 탈취효과를 내 쾌적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욕실 바닥은 깨진 항아리와 흙을 버무려 마감했다.
▲ 안채 내부 모습.
전구에는 새끼를 꼬아 갓을 씌웠다. 부엌 바닥에는 쌀독과 김칫독을 묻고 뚜껑을 덮어 두어 필요할 때 곧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 주인의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목천 흙집은 따로 인테리어가 필요 없다. 흙에서 풍기는 색감과 질감, 그리고 육송의 원형미와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이테가 훌륭한 인테리어가 되기 때문. 특히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흙과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제적인데 시공법을 배워 부부가 함께 지을 경우 평당 100만원 내외면 지을 수 있다.
▲ 흙집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는 목천 조영길 원장.
목천 흙집의 주인은 목천(木川) 조영길 원장(50)과 신영자 부부. 두 사람 모두 충남 논산과 부산이 각각 고향으로 화순은 지난해 말 남도 여행 중 우연히 들렀다가 이곳이 눈에 띄어 둥지를 틀었다.
조 원장은 육송과 황토를 이용한 건축법을 직접 개발했다.
성균관대 미대를 졸업한 조 원장은 평소 꿈꾸어 왔던 이상향의 집을 묵화로 옮기던 중 이것을 현실에 적용해 보고 싶어 흙집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뒤 경기도 용인에서 8년 전부터 흙집 시공법을 보급한 이래 현재 30기 수강생들이 이론과 실기를 겸한 교육을 받고 있다. 2001년 강원도 횡성에서 목천 흙집연구소를 열었다가 연구소를 화순으로 옮기고 횡성 연구소는 펜션으로 운영중이다.
▲ 안채 바깥 모습.
화순 목천 흙집연구소는 올 봄에 지었다. "수천 년 동안 안방문화가 우리 생활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가 거실문화로 바뀐 지는 불과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이제는 바깥문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지요. 바깥문화는 정원 등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데 목천 연구소는 꽃을 심어 벌과 나비 그리고 새들을 불러들이는 등 먹이사슬을 이용한 생태학 조경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조 원장의 생태 주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 입구에 있는 장승이 눈길을 끈다.
목천 흙집은 주변 경치가 빼어나거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지 않다. 연구소 가는 길도 울퉁불퉁한데다 깊은 산속에 와있는 느낌이다. 더군다나 집안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조차 없다. “불편함이 건강에는 좋다”는 조 원장의 평소 생각 때문이다. 관계 기관에서 도로 포장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마다할 정도로 콘크리트를 싫어하는데 도로가 덜컹대야 시골에 온 맛이 난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흙집을 둥글게 짓는다. 원은 여성의 모태요, 우리, 자연, 곧 우주로서 자연의 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흙집에서 자면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적게 자고도 상쾌하다는 것.
▲ 안채는 거실, 서재, 부엌 등 5개로 이뤄졌다.
4000여평의 부지에 생태주택 박물관과 체험관 등 40여채의 흙집을 더 지어 오는 2006년 초에 문을 연다는 큰 꿈도 갖고 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하룻밤 묵어가며 생택주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환하게 웃는 미소를 뒤로 하며 산길을 내려올 때는 벌써 땅거미가 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