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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이스라엘 역사 1
A 이스라엘 역사를 위한 전이해
1. 이스라엘의 지정학적인 의미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전개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경제적 상관성이라는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왔다. 근동의 비옥한 반달형 지역 남서단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당시대의 양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량적인 역할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인 여건은 지중해와 사막 사이의 좁은 해안을 따라 형성된 육상통로이다. 이 통로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도로이었다. 그러므로 이 도로를 ‘해안길(Via Maris)’이라 하였다. 이 해안길은 애굽의 고센지역에서 시작하여 시나이 반도의 해안지역을 따라 가사까지 이른다. 계속하여 이 길은 아스글론, 아스돗, 게젤, 룻다, 아벡, 므깃도에 이른다.
(므깃도에서 해안길은 뵈니게지방으로 가는 북상길과 사마리아로 내려오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또한 므깃도에서 이즈라엘 평야를 가로질러가는 해안길에서 동쪽으로 구부러져 벳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길보아산 계곡을 거쳐 벳산에 이른다. 이 길은 계속해서 요단계곡을 건너 요단동편 고원지대를 지나 요르단의 왕의 대로와 만난다. 이와같이 해안길의 많은 지선길이 므깃도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국제통로였던 해안길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므깃도를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한다. 성경에서는 세계 마지막 전쟁이 이 곳 므깃도-아마겟돈에서 일어날 것을 요한계시록16:16에 예언하고 있다).
므깃도에서 이스라엘 평야, 와디 아르벨, 갈릴리 막달라 평지, 하솔, 단, 다메섹을 거쳐 바벨론에 이른다. 약 200km에 이르는 해안길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두 대륙을 잇는 중요한 국제도로이며, 이스라엘이 양대문명과 양대대륙을 사이에 위치한 중간 통로이다. 해안길은 국제간의 무역과 군사전략적인 면에서 국제적인 도로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도로를 이용하여 외국의 사절단들과 국제무역 상인들이 오고 갔다. 또한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오트만 터어키 등 세계 열강들은 힘이 강해질 때마다 이 길을 따라 세계 정복의 야심을 펼쳤다. 이러한 관계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해안길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
1) 출애굽기13:17 -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2) 이사야9:1 -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참조-왕의 대로:요단 동편 고원지대를 남북으로 지나가는 대로이다. 다메섹에서 시작하여 바산, 길르앗산지, 암몬, 모압, 에돔, 에일랏에 이른다. 이 길은 에돔의 보스라와 아카바만의 에일랏에서 시나이 사막으로 갈라져 애굽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이 길은 가데스바데아를 거쳐 가는 길인데, 민수기에서 이 길을 ‘홍해길’(“아말렉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민수기14:25-정탐군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이라 말한다. 왕의 대로는 대략 BC3,000-2,000년 초엽으로 본다. 이 길은 일차적으로 아라비아 지역의 특산품인 향료를 수출하는 중요 무역로였다. 성경에서는 모세가 에돔왕에게 조용히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 그러나 에돔왕이 이를 거절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다른 길로 돌아간다(민수기20:17).
2. 이스라엘의 명칭들
1) 가나안 땅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이 땅에 정착하기 이전까지 불리어지던 명칭이다. 민수기에는 가나안 땅을 동으로는 사해, 서로는 지중해 대해, 남으로는 엘아리시인 애굽시내, 북으로는 레바론 베카 골짜기에 속하는 하맛어귀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민수기34:2-12).
가나안이라는 단어는 ‘붉은 자주색’(reddih purple)을 의미하는 직조업의 전문용어에 관련된다. 또한 가나안의 다른 이름으로 ‘약속의 땅’(창12:7; 15:18-20)이 있다. 이 명칭은 실제 성경에서 사용된 말은 아니고 후대에 와서 성경에 내포되어 있는 말을 명칭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출3:8)의 명칭은 40년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가진 땅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다. 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이스라엘의 언약의 땅이며(창 12:1-2, 17:1-9, 시 105:1-11), 다윗을 통해 확인하신 이스라엘의 땅(삼하 7:1-16, 시 89편)이며, 예수님을 통해 완성하신 언약의 땅이다
(눅 1:32-33, 히 1:8, 사 9:6-7).
2) 에레츠 이스라엘 에레츠 이스라엘(The Land of Israel)은 가나안 정착 이후 오늘까지 사용하는 명칭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삼상13:19-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대상22:2-다윗에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대하2:17-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이라고 하였고 때론 ‘이스라엘 자손의 땅’(수11:22-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이라 불리운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이름(창23:28, 35:10)이다. 그 후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로 인한 12지파로서의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솔로몬 이후 10지파로 형성된 북이스라엘로 호칭된다. 그리고 지금의 이스라엘은 1948년 새로운 나라가 탄생될 당시까지 나라명은 거의 ‘유다’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이스라엘’로 결정된(이사야11:13)이다. 에레츠 이스라엘과 더불어 ‘거룩한 땅’(슥2:12), ‘영화로운 땅’(단8:9, 11:16, 41), ‘아름다운 땅’(겔20:6, 15)등이다.
3)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숙적이었던 ‘블레셋’에서 기원된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남서 해안지방을 의미하는 명칭이다(창21:34- 아브라함이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블레셋은 에게해의 한 민족이었던 ‘펠라스기안’(Pelasgian)과 관련된다. 팔레스타인은 BC 5세기에 헤로도터스에 의해 이스라엘이 포함되는 수리아 남부 지역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된다. 그 후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팔레스타인으로 불렀고, 중세기 십자군에 의해서도 사용된 이 명칭은 1922년 영국정부는 요단강 서쪽지역에 대한 공식 명칭으로 ‘팔레스타인’을 채택한다. 헬라시대 이후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이 땅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지 않게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표현하는 명칭이 되었다.
3. 이스라엘의 지형
성서역사와 신앙적 의미의 중대성에 비하여 이스라엘 땅은 비교적 작은 땅이다. 남북의 길이는 약 320km이고, 동서의 폭은 56km로 좁은 지역과 여리고 근처에서는 약 88km, 사해 남단의 약 136km이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삿20:1)의 길이는 약 240km이다.
1) 해안평야(Coastal Plain)
이스라엘의 해안 평야는 지중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띠모양으로 형성된 모래와 충적토의 지역이다. 이 해안평야는
(1) 악고평야(아셀평야, 스불론평야),
(2) 돌해안(갈멜산 지역)
(3) 샤론평야(가이사랴-욥바),
(4)블레셋평야 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낮고, 비옥하고, 개방적이다.
2) 중앙산지(Central Hill Country)
중앙산지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네게브까지 남-북으로 형성된 것이다.
(1) 상부 갈릴리 산지,
(2) 하부 갈릴리 산지,
(3) 이즈리엘 골짜기,
(4) 베냐민 산지,
(5) 에브라임(사마리아) 산지,
(6) 유다 산지이다. 이 지역은 높고, 폐쇄적이고, 비교적 덜 생산적인 지역이다.
3) 중앙계곡(요단계곡)
중앙계곡은 이스라엘의 전체 지형을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형성되게 하였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중앙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깊고, 넓은 단층 지구대로 알려져 있는 시리아-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이 지역은
(1) 훌레계곡(하솔, 단),
(2) 갈릴리 바다,
(3) 요단강 계곡,
(4) 사해,
(5) 아라바 계곡이다.
4) 트랜스 요르단 지역(요단 동편 지역) 이 지역은 거대한 지구대인 중앙계곡과 시리아-아라비아 사막 사이의 모든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헬몬산에서 홍해에 이르는 남북이 긴 산지이다.
B. 이스라엘의 역사 개요
1. 석기시대(BC 3,200년경까지)
이스라엘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유골은 대략 BC 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태는 여리고 성읍인데 약 BC8,000년 경으로 추정한다. 그 후 BC 4,000년에서 3,200년경 까지의 동석기 시대에 이스라엘을 비롯한 근동지역에는 도시 문명이 크게 발전하는 새로운 전환기가 시작된다.
2. 청동기시대(BC 3,200-2,100)
청동기 시대는 근동지역에서 처음으로 역사의 기록을 가지는 시대이다. 나일강이나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강의 거대한 강 근처에서는 문화의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강력한 왕조가 형성된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가나안인들의 도시국가 형태를 가진다.
3. 중기 청동기(BC 2100 - 1540)
이스라엘 족장들의 시대로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온 시기이다. 갈대아는 바벨론의 동의어이다. 우르는 바벨론과 페르시아만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고대 수메르의 수도이며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우르는 중요한 종교의 중심지로, 이 도시의 수호신은 월신이였던 난나(Nanna)이다. 또한 우르는 BC2050년으로 추정되는 우르-남무 법전이 만드어졌으며 이것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정도 앞선 것이다.메소포타문명이 가장 발달한 우르에서 데라는 아브라함과 가족을 이끌고 하란으로 이주한다.
그후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창세기12:1-5)에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한다. 아브라함은 벧엘에 장막을 치고 단을 쌓아 하나님을 섬긴다(창 12:8). 그는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간다(창 12:10-20). 그리고 부자가 되어 올라온다. 아브라함은 시날왕들에게 끌려가던 가족과 롯을 구출하여 오던 중 살렘(예루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한다(창 14:18-20).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비로서 믿음의 조상이 된다(창 22:1-19, 히 11:17-19). 이 때 하나님께서 준비한 이삭을 위해 주어야 할 어린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브엘세바와 헤브론에서 살다 죽어 헤브론 막벨라 굴(헷족속-히타이타족-에게 산 굴) 장사된다(창 25:7-11).
이삭은 브엘세바와 네게브지역에서 생활하다. 이삭은 모리아 사건과 삶을 통해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야곱은 브엘세바와 하란에서 살았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한다(창 28:10-22). 야곱은 하란에서 20년동안 삼촌 라반의 종으로 살면서 부자가 된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생명을 건 기도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하나님이 져 주셨다, 창 32:28)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야곱과 자손들은 애굽으로 이주하여(창세기 46장) 약 430년을 살았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준비된 삶을 살았다(창 45:5).
4. 후기 청동기시대(BC 1540 - 1200)
야웨(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출3:14)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물에서 건져 냄-구원받음)를 지명하여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는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종된 애굽에서 가나안 곧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출1-14장).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을 걸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와 정착하는 시기이다.
출애굽은 애굽에서 유월절(출 12:39-41)을 지키고 나와 시내산까지 이른다(출19:1,2).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출20:1-23:33) 하나님의 언약의 민족으로 계약을 맺는다(출24:1-8).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신광야)에 이르러 정탐군을 보낸다(민13:1-33). 그러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렘의 신앙적인 보고보다 부정적인 보고에 마음을 같이 하여 불신앙을 가진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훈련을 시작한다(민14:20-35). 똑같은 상황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신앙으로 해석하느냐는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광야훈련을 통해 순종과 불순종이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보여 주신다.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민21:4-9).
모세는 므리바사건(민20:10-13)으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세는 그의 시종 여호수아를 새 시대의 지도자로 세운다. 모세는 요단동쪽 느보산에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120살에 무덤도 없이 먼지로 사라진다. 이때 그는 눈이 흐리지 않고 기운이 쇠하지 않았다(신34:1-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모세는 진정한 지도자이다. 혈기왕성하여 살인하였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된다(민12:3, 지도자의 성품).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아는 사람이다(출32:30-35, 지도자의 책임). 하나님을 잘 알고 백성도 잘아는 사람이다(출32:11-14, 지도자의 통찰력과 중재).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다(민27:12-23, 지도자의 능력). 물러날 때를 알고 깨끗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사람이다(신34:1-7, 지도자의 인격) 이러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산다. 메르넵타 통치시대(BC 1236-1223)의 한 비문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성경 이외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언급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5. 초기 철기시대(BC 1200 - 1040)
초기 철기시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시대이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다(여호수아13-19장). 12지파에게 땅 분배(가나안과 요단동편 암몬, 모압, 에돔 땅)를 마친 후 도피성을 세운다.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이 성은 부지중 사고를 저지른 살인자에게 충분한 변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신19:23, 민35:15, 25-27).
6개의 도피성이 있는 지명과 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카데스 - 거룩한 장소, 신성한 곳, 구별된 곳(납달리지역).
2) 세겜 - 어깨, 어깨에 메다, 진지하게 하다(에브라힘 지역).
3) 헤브론 - 결합, 일치, 교제, 함께하다, 교제를 나누다(유다지역-가나안).
4) 바산의 골란 - 기쁨, 환희, 기뻐 날뛰다(므낫세 반지파 지역).
5) 길르앗 라못 - 높은 장소, 오르다, 일어나다, 영화롭게 되다(므낫세 반지파 지역).
6) 베셀 - 요새지, 포도농원, 적을 막다, 안전지대(르우벤 지역-요르단 지역).
이 시대의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가 계속된다. 그리고 해양민족(Sea People)이었던 블레셋이 등장하여 가나안의 남부 지중해 해안지역을 연합하여 나라를 형성한다.
6. 왕국시대(BC 1040 - 586)
이 시대는 사울의 왕정시대를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이다. 사울은( BC1050-1002년)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기브아를 수도로 삼는다. 그는 믿음과 겸손의 사람으로 시작하였으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좋은 가축과 아간왕을 살려두므로(삼상15장)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싸우던 중 죽어 벧산 성벽에 매달린다(삼상31:8-10).
다윗은( BC1002-962년) 헤브론에서 왕이된다(7년동안 통치). 다윗은 난공불락이었던 여부스족의 성을 기혼샘의 수로(WARREN'S SHAFT-발굴자)를 통해 함락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다윗성을 건축한다(삼하5:1-25). 예루살렘은 12지파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다윗은 길르앗여라임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 예루살렘 다윗성장막에 안치한다(삼하6:1-15). 이것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킨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으며, 회개(삼하12:5-7, 삼하24:10, 시51편)와 기도(시편57편), 그리고 찬양(삼하22장)의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겸손과 말씀에 순종하여 살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행하는 사람이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약속위에 세워진 나라였다(삼하7장). 그리고 다윗왕조의 영속성은 메시아론적인 종말사상의 원천이 되었다(사9:1-7, 11:1-16, 미가5:1).
솔로몬(BC962-927)이 왕위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대왕국으로 성장한다. 그는 유프라테스 이편에서 가자, 에일랏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솔로몬은 겸손한 왕으로 시작한다(삼상2:12-46, 왕상3:7-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왕상3:9-지혜로운 마음으로 주의 백성을 다스리게 하소서). 그는 BC 960년경에 제 1성전(7년 동안, 궁전은 13년 동안)을 건축한다. 솔로몬은 나라의 방어를 위해 게젤, 므깃도, 하졸 요새를 만든다. 이 일로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을 백성에게 부과한다. 그는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왕상11:4), 사치와 향락(부인-700명, 후처-300명), 그리고 이방신전을 지어(왕하23:13-예루살렘 동쪽산 오른편의 멸망산) 섬기므로 이방종교와 혼합종교로 여호와 유일신앙을 버렸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분열을 맞이한다.
# 예루살렘 성전(Mount Moriah, The Temple Mount)
예루살렘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한 모리아산(창22장)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양을 주시고 잡게 한다. 그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요1:29). 다윗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로 결심한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다윗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언약을 세우신다(삼하7장). 다윗은 하나님이 원치않는 인구조사를 하므로 7년의 기근, 3개월의 전쟁으로 도망, 3일간의 온역 중 3일간의 온역을 선택하는 징계를 받는다. 이 징계로 7만명이 죽고 계속되는 징계를 위해 예루살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서있는 천사를 본다. 다윗은 하나님께 백성에게는 죄가 없으니 나와 나의 가족에게 벌을 내리시라고 회개한다. 하나님이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신다. 다윗은 아라우나(의좋은 농부형제 이야기-볏단 더주기)의 타작마당을 은 50세겔에 사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다(삼하24장).
솔로몬이 이곳에 제 1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한다(왕상5-6장).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토라를 발견한다(왕하22:8).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이 BC 587년 이루어진다. 이 성전은 스룹바벨에 의하여 제 2성전으로 성전이 파괴된 지 70년 후인 BC 516년에 재건된다(에스라4:24-6장). 헤롯대왕에 의하여 성전은 오랜 세월 미화되고 확장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중 삼대명절인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에 성전을 향해 올라 온다. 이때 그들이 부르던 노래가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이다. 아무리 먼 곳에 있던 사람들도 일년에 한번은 성전에 올라온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맥추절(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오순절의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경험한다(행 2:1-13). 지금도 유대인은 죽어서도 성전 가까이 묻히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드려 감람산 유대인 묘지에 묻히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눈물교회(감람산 중턱)에도 2성전시대의 유대인 납골당(뼈만 담아둔 관)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열두살 되던 해 유월절 절기를 따라 나자렛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 오신다(눅 2:41-52). 예수께서 금식후 사단에게 성전꼭대기에서 시험을 받으신다(눅4:9-12). 그리고 예수는 구약의 예언대로(시118:24-29) 베다니에서 오사 벳바게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며 성전으로 들어오시던 중 감람산 중턱에서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신다(눅19:41-44). 그리고 Lion Gate를 통해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신다(눅19:28-48). AD 70년에 성전은 로마의 디토장군에 의해 파괴된다. 하나님께서 왜 성전의 파괴를 허락하시고 회복시키지 아니 하시는가?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성전을 회복하여 제사를 드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사 다시는 제사가 필요치 않으며(히브리서10:1-39), 완전한 죄사함의 은총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몸이 성전이며(요2:19-21),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새예루살렘이 되셨다.
691년에 압드 알 말리크에 의하여 성전 자리에 모스크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오늘날의 성전이 같는 의미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세계 전회교인들과의 양보할 수 없는 종교 문제이므로 전쟁의 빌미가 될 것이다. ***
BC 925년경에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국분열이 일어난다. 여로보함은 10지파를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건설한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경에 신흥 앗수르에게 멸망한다. 앗수르는 혼혈정책을 펼쳐 유대인의 혈통을 말살하는 정책을 사용한다. 이 정책으로 유다사람들은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의 수도)인들과 상종하지 않는다(에스라 4:3,10, 요 4:9).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10지파의 행적을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남유다는 르호보함이 왕으로 시작한다. 히스기야(BC715-687)는 종교개혁을 통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다(왕하18:5-6). 그리고 앗수르가 침공하였을 때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히스기야 터널을 판다(왕하20:20, 대하32:30). 여호아만 의지하지 아니하던 남유다(이사야8:5-6)는 BC 586년경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한다. 이때 1성전은 파괴된다(대하7:16-22). 유대인들은 성전의 파괴를 슬퍼하며 금식한다(슥 7:3, 8:19). 유대인들은 성전파괴를 잊지말자고 지금도 결혼식에 유리컵을 신랑, 신부가 깨뜨리며 기억한다. 이 시기에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각처로 흩어진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바벨론 포로시에 회당이 생긴다.
이 시대는 위대한 선지자들의 시대이다. BC 9세기경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를 시작으로 위대한 정치가며 설교가였던 이사야의 활동에서 그 전성기를 맞는다. 그리고 성전 파괴를 예언했던 예레미야와 바벨론 포로 중에 있던 에스겔은 예언자 시대의 종말을 보았던 선지자이다. 선지자들은 사회정의를 외쳤고,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반면에 일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7. 페르시아시대(BC 586 - 336)
바벨론 제 1차 포로귀환이 BC 539년경에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샤의 고레스왕에 의하여 BC 537년경에 이루어진다(사44:28-45:1). 스룹바벨에 의하여 BC 516년경에 제 2성전이 봉헌된다(렘29:10-14 말씀의 성취, 에스라6장). 그리고 2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들어온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 BC 445년 경에 예루살렘 성곽이 재건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잊지 아니하신다(시편137편). 이 시기의 선지자는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등이다.
#. 예루살렘(JERUSALEM)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 뜻을 가진다. 이 성은 고대 살렘성(창 14:18-살렘왕 멜기세덱)이었으며, 가나안 정복시는 예루살렘(수 10:1-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으로 불리어졌으며 그 성이 견고하므로 정복하지 못하였다. 이 지역은 유다지파의 북쪽 경계이다(수15:8). 다윗은 난공불락이었던 여부스족의 성(시온산성)을 기혼샘의 수로를 통해 함락하여 예루살렘을 정치, 종교의 수도로 삼고 다윗성을 건축한다(삼하5:1-25). 예루살렘은 12지파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다윗은 길르앗여라임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 예루살렘 다윗성장막에 안치한다(삼하6:1-15). 이것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킨다.
예루살렘은 BC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다(왕하 25장).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하여 재건된다(느 3장). 그 후 헤롯에 의해 확장되나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눅 21:20) AD 70년에 디토장군에 의해 파괴된다. 이사야는 새예루살렘에 대한 비젼을 선포한다(사 54:11-17, 62장). 지금의 예루살렘 성은 AD 1538년 오토만 터어키의 슐레이만 대제에 의하여 시온성이 제외된 채 건축된다. 이렇게 예루살렘성은 17번 파괴되고 18번 재건된다. 예루살렘성은 거룩한 성(느 11:1, 사 48:1-2), 터가 높고 아름다운 성(시 48편), 조밀하게 건설된 성(시 122편), 산들에 둘린 성(시 125편),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성(시 132편), 여호와께서 복 주시는 성(시 134편), 하나님이 절대로 잊지 아니하시는 성(시 137편)이다.
예루살렘은 수도로서의 조건을 갖춘 도시가 아니다. 첫째, 강이나 항구가 없으며, 교통 중심이나 상업지가 아니다. 둘째,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곡식 재배 지역이 없다. 좋은 조건을 지닌 세겜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격리되고 황폐한 지역에 선지자들의 의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의에 근거한 영원한 기초,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위에 세워진 성이다(히 11:10, 12:22).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길때는 예루살렘성에 풍요로움이 있었으나 하나님을 떠나면 예루살렘성에 파괴와 고통이 찾아오듯(마 23:37-39) 황폐해진 자신을 보라고 교훈하는것 같다. ***
8. 헬라시대(BC 332 -166)
BC 332년경에 마게도니아(헬라지역)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 당한다. 그러나 BC 323년 알렉산더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헬라제국은 사등분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프톨레미왕조에 의해 통치된다. 프롤레미 2세 필라델푸스(BC283-246)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석학 70인을 청해 알렉산드리아 앞 파라오 섬에서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히브리 구약성경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게 한다. BC 200년경에는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하여 지배되며, BC 175 -166년경에는 안티오쿠스 4세의 헬라주의 문화주입 정책에 의하여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섬기게 한다.
9. 하스모니안시대(BC 166 - 63)
BC 164년경에 마카비 혁명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탈환된다. 그리고 성전이 재봉헌된다. 따라서 마카비의 가문인 하스모니안 왕가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왕가의 분열로 인하여 BC 63년경에 로마의 폼페이에 의하여 로마의 종속국이 된다.
10. 로마시대(BC 63 - AD 324)
BC 40 - 4년경까지 이두메(에돔) 출신인 헤롯이 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위를 얻어 이스라엘을 통치한다. 이때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랜 세월을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고 미화한다. 예수님은 BC 3년 - AD 30년경까지 활동하신다. 유대인들은 AD 66-70년경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디토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눅 13:31-35, 눅 19:41-44) 파괴된다. 디토장군은 실바장군(로마 10군단)으로 하여금 열심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마사다를 공격하게 한다. 3년동안의 포위하고 인공축대를 쌓아 마사다 정상으로 들어 가서 그들이 본 것은 960여명의 시체였다. 그것은 마지막인 것을 안 지도자 엘리아젤 벤 야일의 제안에 따라 로마의 노예가 되기 보다 스스로의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사다는 AD 73년경에 함락된다(요세푸스의 교회사). 그 후 티베리아에서 210년경에 토라의 해설집인 미쉬나가 최종 완성된다.
미쉬나의 13개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신앙한다.
2)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일성의 신앙 3) 하나님의 무형성의 신앙
4) 하나님의 영원성의 신앙 5)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예배의 의무
6) 예언이 성취된다는 신앙 7) 모세의 예언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신앙
8) 율법의 불변성에 대한 신앙 9) 토라를 모세에게 수여했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신앙 10)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신앙
11)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 응보하신다는 신앙 12) 메시야 강림의 신앙
13) 사자부활의 신앙 세계 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가혹한 박해와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율법과 토라(미쉬나),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11. 비잔틴시대(AD 324-640)
서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틴은 수도를 비잔틴(지금의 이스탄불)으로 옮기고, 주후 330년에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꾼다. 그는 주후 325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다. 그리고 그는 주후 326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그의 모친인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성지를 직접 방문하여 그리스도와 관련된 유적지를 성역화 한다. 헬레나가 세운 교회는 예수님 성묘교회, 주기도문교회, 베들레헴교회이다. 주후 390년에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된다.
탈무드는 박해와 고난중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토라의 교훈으로 해석한 삶의 지혜를 갖게하는 책이라고 이해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유전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다(마 15:1-9). 유대인들은 토라 곧 모세오경을 율법책으로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 대신 선지서는 그들에 대한 책망때문인지 소홀히 하는 것 같다(마 23:29-36). 이스라엘의 현재와 미래가 선지서에 기록된 것을 깨달아 사람의 교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한다.
12. 초기 아랍시대(AD 640-1099)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주후 622년은 곧 이슬람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우마야드왕조(661-807), 아바시드 왕조-천일야화가 칼립 하룬 알 라쉬드 왕때를 배경(807-969), 파티미드 왕조(969-1091)에 의하여 통치된다.
AD 691년에 압드 알 말리크에 의하여 성전 자리에 모스크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랍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들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모슬렘들에게 있어 이 사원은 3대 메카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모하메드 알리가 승천했다는 곳이며, 이 곳에서의 기도는 다른 곳의 7000번의 기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13. 십자군시대(AD 1099-1291)
주후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성지 해방을 위한 십자군을 창설한다. 우르반은 “거룩한 무덤으로 가는 대열에 서라. 성스러운 땅을 사악한 족속의 손아귀에서 뺏어내라. 그자들로 하여금 너희들 앞에 무릎을 끓게 하라.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 고귀한 도시는 너희들이 와서 도와주기를 갈망한다. 너희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열렬하게 이 원정의 대열에 참여하라. 그러면 하늘에서 영원 무궁한 영광의 상을 반드시 받을 것이다”라는 연설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한다.
이 십자군은 1099년 6월 15일에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슬렘과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예루살렘 회당에 숨어있던 유대인들을 불을 질러 죽인다. 지금 그 회당자리는 아치만이 남아 그 때의 비극을 아벨의 피처럼 호소한다.
그리스도의 살해자라는 명분으로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있던 300,000명의 유대인 중 299,900여명의 유대인을 학살한다. 이 일로 인해 모슬렘과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하신(눅 23:34)
그들을 십자군은 예수의 이름으로 학살한다. 신앙의 편견(마 27:24-25 - 그 피를 그 자손들에게 돌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이 가져온 무지의 죄악이다.
우리는 유대인보다 성결한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죄인은 죄인을 정죄할 수 없다. “죄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돌아가 새 삶을 살라”(요 8:11)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을 사랑의 눈으로 보자(눅 6:27-36).
1036년에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이 10만명정도 사형되고 국외로 추방된다. 1218년에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마긴 다비드
(다윗의 별)를 유대인에게 뺏지로 구별하여 부착시킨다. 1235-1298년 사이에 독일, 영국, 프랑스, 헝가리,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는다. 십자군은 7회 원정을 가지나 그 끝은 실패로 돌아 간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 마멜루크시대(AD 1291-1517)
1260년에 애굽의 마멜루크에게 점령당한다. 그 후 260년간 예루살렘은 가장 황폐화 된다. 마멜루크는 중앙 아시아 지역에 살던 터키족 출신들이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동유럽에서는 1348-50년 사이에 페스트(흑사병)가 발병한다. 유대인들의 절반 가량이 이 병으로 죽자 유대인들의 복수를 두려워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이 수원에 독을 뿌려 발생했다고 소문을 퍼트린다. 이 일로 100만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도처에서 학살 당한다. 1492년에 스페인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쫒겨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온다. 15.
오트만 터어키시대(AD 1517-1918)
오토만의 모하메드 2세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꾼다. 포대를 갖춘 막강 화력의 오토만 터어키군은 1516년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리고 슐레이만 대제는 1538년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루터는 예수는 유대인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대로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자 그는 “유대인들은 가장 혹독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회당과 집은 무너뜨려 집시처럼 텐트생활을 하도록 내어 쫒아야 한다. 종교서적을 갖지 못하게 하고 랍비들은 율법을 가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떤 직업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가장 힘든 일과 지저분한 일만 시켜야 한다. 돈많은 유대인들에게서 재산을 뺏아 개종하는 유대인들을 돕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효과를 못 거둘 경우 그들을 쫒아 내야 한다(Baar, p. 21-데릭 프란스의 글에서 인용)”고 유대인을 비난한다. 이 글이 반유대주의 선전 문구로 사용되리라고 마틴 루터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볼 수 있도록 성경이 번역된 것은 새로운 신앙의 변혁을 가져왔다. 성경의 보급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말씀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성경을 올바르게 보기 시작하면서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고 이일을 위한 헌신자들이 생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순종의 사람을 세워 일하신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카톨릭에 대한 반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직접 보고,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터는 말년에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돌이킨다. 그 후 1555년에는 로마 교황 바울 4세가 유대인을 케토(Getto)에 격리시킨다.
1) 1776년 영국에서 유대인 법적 평등권이 부여된다. 2)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유대인에게 평등권을 부여 받는다. 3) 1799년 나폴레옹이 성지를 탈환하여 유대인에게 주기 위해 왔으나 악고에 패하여 돌아간다. 4) 1860년 예루살렘성 남쪽에 처음으로 유대인 마을 예민 모세가 건설된다. 5) 1875년 예루살렘성 밖에 하시딤 마을(메아 쉐아림)이 건설된다. 6) 1897. 8. 29-31일에 스위스 바젤에서 204인의 유대인 대표들이 소집되어 제 1차 시온주의 회의를 개최한다.
1902년에 ‘데오도르헤르츨’이 시온이즘을 정립한다. 그는 “만약 너희가 그것을 할 의무가 있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예레미야 16:14-15)을 기억하거나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7) 1880-1903년 사이에 첫번째로 러시아에서 유대인 이민자가 들어온다. 8) 1904-9년에 두번째로 동부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9)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난다.
16. 영국통치시대(AD 1917-1948)
영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통치한다. 이 시기에 유대인 이민자들이 동부 유럽과 독일에서 들어 온다.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유대인들을 불러 독립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 고난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회복될 수 있을까?
1) 1917년에 있은 발포아선언으로 영국이 유대인에게 독립을 약속한다.
2) 1919-23년에는 세번째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3) 1924-32년에는 네번째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이때 이스라엘내에 키부츠(아인 하롯)와 모샤브(나할랄)가 이스라엘 계곡에 설립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발전의 모티브이며 지금도 각각 250여개의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1925년에 히브리대학이 설립된다. 히브리어가 공식어가 된다.
4) 1933-39년에는 다섯번째로 주로 나찌 독일에서 난민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5) 193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이 때 히틀러에 의해 폴란드 아우스비치에서 600만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다.
이 역사를 잊지않기 위해 이스라엘은 야드 바쉠에 홀로코스트(기념관)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후손들에게 이렇게 교훈한다. “망각은 망국에 이르며 기억은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는 자는 자신을 지킬 수 없고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이 홀로코스트로 인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아랍연합국가와의 수십번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은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지면 자신들은 살 곳을 잃고 제 2의 홀로코스트의 역사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결의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역사를 지으기 위해 총독부 건물을 헐어 역사의 교훈을 묻어버리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된다. 역사의식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6) 1947. 11. 29일 UN은 영국의 신탁통치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계와 아랍계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했다. 아랍계는 유대계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선언했다.
C.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역사
1. 1947년 11월 이후 영국은 이스라엘의 독립에 여러가지 형태의 방해작전을 은밀히 진행한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기초해서 반드시 이스라엘이 세워지도록 노력한다. 1917년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을 위해 쉐입츠 버리경이나 발포르 경이 행동을 개시하며 발표한 것이 발포르선언이다. 그러나 영국은 국가 설립이 가까워 오자 정치적인 이유 곧 아랍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아랍국가들을 지원한다. 그 후 영국은 지는 해로 변한다.
2. 1948. 5. 14 -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선포했으며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철저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계획속에 이루어진 땅(육적)의 회복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이다.
1) 이사야 11:10-14 - 땅 사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성취.
2) 이사야 43:1-7 - 사랑하는 백성을 동서남북 세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3) 이사야 48:10 - 고난의 불로 시험하였다.
4) 이사야 44:24-26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5) 이사야 46:9-10 - 하나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
6) 예레미야 16:14-15 - 제 2의 출애굽은 유월절 출애굽과 다르다.
지금 이스라엘은 유월절 출애굽을 기념한 장막절을 지킨다.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2,500년전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건국은 출애굽과 다른 온 세계에서 박해받던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에서 불러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7) 예레미야 18:1-6 - 이스라엘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손 안에 있다. 8) 예레미야 30:1-7 -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9) 예레미야 31:13-34 -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 10) 예레미야 33:23-26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적이 없다. 11) 예레미야 50:4-5 -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새언약 12) 에스겔 36:22-28 -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 13) 호세아 1:10 -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14) 아모스 9:14-15 - 이스라엘을 원상태로 회복하고 다시는 뽑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15) 시편 24:1 - 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나라에 주신다.
세계 역사는 이것이 내 땅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교훈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의 땅에 대한 분활문제는 휴머니즘의 관점이 아니라 성경안에서 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다시는 이 땅에서 쫒겨나가는 역사는 없을 것이다.
16) 요엘 3:2 - 심판하시는 하나님 17) 창세기 17:7-8 - 하나님이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이다. 18) 마태복음 24:4-13 - 예수님의 예언. 이제 이스라엘에게 남은 것은 영적인 회복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땅으로 인한 3차대전(사견)과 구원, 마지막인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다.
3. 1948-1949년에 독립전쟁을 치룬다.
5월 15일 주변 아랍국가들(이집트, 트랜스요르단,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 전쟁으로 60만명의 아랍인들이 난민으로 도망한다. 그리고 70만명의 유대인이 아랍국가에서 도피한다.
1949. 1. 7일 독립전쟁은 휴전했다.(1949년 7월 휴전협정은 조인됐으나 아랍연맹은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이스라엘과의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다.)
1) 49. 1. 25일 이스라엘은 처음 정식 선거를 실시했다.
2) 2. 17일 첫 국회가 예루살렘에서 열렸고 차임 웨이즈만을 첫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데이빗 벤구리온(1917년 영국군 상병으로 이스라엘로 온다)을 첫 수상으로 임명하고 첫 정부를 구성하도록 요청했다. 임시정부는 해산됐다.
3) 5. 11일 이스라엘이 UN에 가입했다.
4. 1948-51년 사이 유대인들의 집단 이주기간 중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이다. 1) 이스라엘 국회는 “귀환법”을
제정하였다. 그 법의 취지는 ‘모든 유대인은 이 나라에 이주해 올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2) 인구가 684,000명의 새로 온 사람들은 유럽에서 온 대학살의 생존자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회교극들에서 온 난민들, 예멘(43,000)과 이라크(113,000)에서 모두 함께 비행기로 옮겨온 유대인들이었다. 3) 이주해 온 다른 민족들 - 유럽의 아쉬케나지족과 동양의 세파르디족, 다양한 문화, 습관, 전통을 가지고 있음. 4) 이 새 나라의 당장 시급한 문제 - 주택, 식량, 일자리 5) 이스라엘은 삼 년 동안 78,000채의 집을 짓고 345개의 마을을 세웠다.(과거 70년 동안 293개의 마을을 세웠음.) 6) 서양의 유대인들은 큰 금액의 돈을 기부도 하고 대출도 해 주었으나 이 기간에 이주해 온 사람은 적었다.
5. 1951년 세계 시온주의 대회가 예루살렘에서 처음 열렸음.
6. 1952년 서독은 나치하에서 유대인들의 물질적인 손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에 7억 1천 5백만불과 개인들 에게 1억불을 지불하기로 하는 배상협정에 서명했다.
7. 1952년-56년 사이에 아랍인들의 적대행위가 계속되었다.
1) 아랍 게릴라에 의한 끈질긴 공격으로 400명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고 9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음.
2) 아랍군과 이스라엘군 사이에 3천회의 무력충돌이 있었음.
3) 이집트의 자폭 전투기들이 이스라엘 영토 깊숙히 반복해서 침투하였음.
4) UN은 이스라엘의 보복행위를 비난하였다.
5) 이집트는 1949년 이스라엘 선박의 스웨즈 운하 통과를 봉쇄했다. 그 뒤 어느나라 선박이든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상품은 통과를 봉쇄했고 스웨즈 운하에 관한 UN의 결정을 무시했음.
6) 1951년 이집트는 남쪽 에일랏 항구로 향하는 이스라엘 선박, 특별히 석유를 실은 선박들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7) 1955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군사협정을 맺었고 요르단(트랜스 요르단은 1950년 웨스트 뱅크를 점령하면서 요르단으로 이름은 바꾸었음)도 함께 서명하였다.
8. 1956. 10월 영국과 프랑스(이 두 나라도 스웨즈 운하 봉쇄를 염려했음)의 지원을 받아 아랍국가들의
전쟁 위협에 이스라엘은 선제공격 “시나이 작전”을 개시했다.
9. 1957. 3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로부터 철수한다. UN은 1967년까지 에집트로 하여금 더이상
게릴라 활동을 못하게 하였다.
10. 1958년 이스라엘이 탄생하고 10년이 지났다. 다음과 같은 분야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1) 새로 이주해온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구사하고 일자리를 잡았다.
2) 동양계 유대인들(세파르디)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대부분 자립하게 되었다.
3) 농업의 자급자족이 관개시설을 한 지역이 400% 늘어났으며 많은 지역에 나무를 심었다.
4) 인구가 1백 80만으로 늘어났고 실업율은 1.4%였다. 15만 채의 집을 지었음.
5) 2세들의 100%가 학교에 다녔고 학생 수는 13만명에서 55만명으로 늘었다. 대학교는 4개였고 대학생 수는 만명, 1948년의 대학생 수는 1,500명이었다.
6) 유대인의 문화와 영적인 유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면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세계 성경 대회를 개최했 다.
7) 아랍인과 두루우즈족이 사는 지역이 많이 발전됨 - 농업 생산성 600%향상, 각종의 무료혜택 - 초등교육, 보헙사회 복지, 병원, 도로, 수도, 전기, 위생시설, 관개시절, 선거에 참여하며 국회도 대표를 보내고 있음.
11. 1958-59년 중의 이스라엘과 후진국들과의 관계
1) 이스라엘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후진국들에게 과학기술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농업분야와 그 나라들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
2) 이에 대한 응답으로 많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대사관계를 수립했고 UN에서 그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 1965년 로마교황 요한 23세는 “유대인에 대한 교회의 잘못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대전 중 론칼리 대주교로 있으면서 많은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힘썼다. “우리는 오늘날 깨닫고 있습니다. 수백세기 동안 우리의 무지가 우리의 눈을 가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인의 흔적이 우리의 손에 남아 잇는 것을. 수백세기동안 우리의 형제 아벨은 우리가 뿌린 피밭에 누워 있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 버림으로 아벨은 우리가 자아낸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들을 유대인이라 부르며 저주했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그들의 육신 가운데 있는 당신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 박았던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주여,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몰랐습다.” (1965. 5. 15일자 토론토 데일리 스타에 개제됨)
12. 1965-66년 이스라엘에서는 다음과 같은 분야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 농산물 수출 총계는 8,600만불에 달했다. 주로 감귤류의 수출이었다
2) 대수로(大水路)가 완성되어 요르단강 상유에서 남쪽의 네게브사막에 물을 끌어 들였다.
3) 생필품(냉장고, 라디오)산업이 발전하였다.
4) 다른 한편 이주민의 숫자가 줄어 들어 (1965년에는 3만명, 1966년에는 1만 6천명) 건설업과 관련사업이 침체하기 시작했다.
13. 1967년 6일 전쟁 바로 앞에 있었던 사건들
1)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알. 파타가 사보타지를 위해 훈련된 테러분자들을 이스라엘에 침투시킴.
2) 시리아는 갈릴리에 있는 키부트 마을을 폭격하였다.
3) 5월 16일 낫세르는 시나이에서 UN 평화유지군을 추방했다.
4) 5월 24일 낫세르는 아카바 만과 에일랏 항구의 입구인 타이란 해협을 봉쇄했다.
5) 5월 26일 낫세르는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를 준비가 완료됐다.”고 선포했다.
6) 5월 30일 후세인왕은 요르단의 군대를 낫세르 지휘로 넘겨주었다.
7) 6월 4일 이라크도 요르단의 뒤를 따랐다.
14. 1967년 6월 5일에서 10일까지의 6일 전쟁
6일 전쟁은 예루살렘과 약속의 땅을 회복(단 8:13-14, 사 65:17- 66장,눅 21:24)하는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육적인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영적인 회복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했고 곧 바로 그곳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한다. 유대인은 결코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키이다.
1) 6월 4일 이스라엘 방위군 소집, 노인, 부인, 어린이들이 직장을 지키고 추수를 하고 수출품을 실어냈다.
2)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비행장을 폭격하여 3시간만에 452대의 비행기를 파괴하였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시나이에 있는 이집트군을 향하여 네개지점에서 진격하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후세인 왕에게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였으나 요르단군은 전 휴전선에 공격을 개시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UN본부를 점령하였 다.
3) 6월 6일 이스라엘은 반격을 해서 옛성을 제외한 예루살렘 모두를 차지했다.
4) 6월 7일 이스라엘은 AD70년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옛성을 차지했다.
5) 6월 9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요쇄화된 골란고원에서 시리아를 몰아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를 거쳐 스웨즈운하까지 밀고 들어가 가자지역을 점령했다. 해군은 홍해에 있는 샤롬엘 쉐이크를 점령함.
6) 6월 10일 모든 당사국들이 휴전에 동의함. 6일 전쟁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립전쟁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15. 1967년 6월에 이스라엘은 빼앗은 아랍 영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세웠다.
1) 세가지 종교의 성지의 자유로운 출입 보장.
2) 동서 예루살렘의 장벽 제거
3) 개방정책을 채택하였고 요르단의 센왕도 찬성했다. 유다 지역과 사마리아지역 그리고 가자지역 아랍인들은 아랍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요르단에서 물건을 사고 팔며 친척과 친구들이 마음대로 찾아올 수 있게 했다. 4) 전쟁중에 피난갔던 20만명의 아랍인들로 부터 귀향신청을 받겠다고 선포했다.(4만 4천명이 돌아왔다.)
16. 1968-73년 사이는 장기 소모 전쟁이 계속된다.
1) 이집트는 시나이 국경을 계속 괴롭힘.
2) 소련의 이집트와의 관계 증가, 소련 전투기와 소련 조종사 그리고 소련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공미사일 기지가 이집트에 많이 생겼다.
3) 시리아도 소련의 원조를 받았다. 소련제 케츄카 로켓트로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정기적으로 포격했다.
4)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이 레바논 국경을 통해서 북쪽으로부터 테러활동을 증가시켰다. 후세인 왕은 팔레스타인 테러 분자 캠프를 폭격해서 1970년 그들을 요르단에서 내쫓았다.
그들은 납부 레바논에 옮겨 살았고 그곳을 “파타지역”이라 불렀다. 5) 이스라엘 밖에서 아랍인들의 테러가 늘어남. 비행기 납치. 1971년 뮌휀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의 살해.
17. 1973년 10월 5일 욤 키퍼 전쟁 직전에 있었던 사건들
1)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는 휴전선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은 욤 키퍼(속죄 주일)의 전날 비군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골다 메이어 수상은 “공격이 임박한 확실한 조짐”을 통보 받고 공격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하기 위해 선제 공습공격을 지시했다.
2) 10월 6일 이스라엘 내각은 그 속죄 주일날 회의를 갖고 곧 메이어의 결정을 승인했다.
이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오후 2시에 아랍국들은 두 곳을 공격해 왔다. 남쪽에서는 이집트 전투기와 포병이 시나이에 있는 이스라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7만의 군대와 탱크 1천대가 스웨즈 운하를 건너 왔다. 북쪽에서는 1만의 군대와 탱크 8백대가 골란고원을 공격해 왔다.
3) 10월 7-25일 이스라엘은 2일만에 그 양쪽 공격을 막아냈으나 많은 회생을 치렀다. 소련제 대공 대전차 무기들이 이스라엘의 전투기와 탱크를 폭격했다. 이라크는 시리아 편으로 참전했다. 소련이 10월 10일 이집트와 시리아로 장비를 공수하기 시작하자 미국도 10월 14일 이스라엘에 탄약과 부속품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쪽의 휴전선 넘어로 12-15마일까지 밀고 들어갔다(다마스커스도 25마일 안으로 들어왔다.)
이스라엘 육군은 10월 16일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들어 갔고 이집트 육군이 구축한 전선 뒤에 있는 미사일 기지와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이스라엘 육군은 카이로에서 62마일지점까지 진격했다. 아랍국들이 전쟁에 지자 소련은 미국에 휴전을 제의했고 10월 23일 이스라엘은 이에 동의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계속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12시간동안 참다가 반격했다.
4) 10월 25일 소련군에 비상이 걸렸고 이집트에서 개입을 준비했다. 전세계 미군에도 비상이 걸렸다.
5) 10월 25일에서 11월 사이에 휴전이 성립된다.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협상에 의한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이 휴전으로 OPEC은 석유가격을 1973년 1월 배럴 당 $2.59에서 12월 $11.65로 올렸다.
18. 1975. 9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점령지역으로부터 철수하였고 51년 이후 처음으로 수에즈운하로
이스라엘 선박이 운항한다.
19. 1973-1979년 이스라엘안에서 1575회의 테러가 있었다.
이 시기에 PLO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곳에서 테러를 행한다.
20. 1975년 레바론에서는 기독교레바론인과 PLO간의 내전이 발생한다.
이 일로 2만명의 기독교인이 죽는다. 이들을 도와준 나라는 이스라엘뿐 이었다. 이스라엘은 국경을 열어 2,500명의 환자를 의료 지원해준다
21. 1977년 11월 이집트 안워드 사다트대통령이 베긴 수상의 초청으로예루살렘에 방문하여 평화협상을
시작 한다.
22.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상에 조인한다. 이 조인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한다.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의 비행장과 자체 개발한 원전이 있었다. 이 원전을 포기함으로 원전국가에서 비산유국가가 되고 이집트는 산유국가가 된다. 대신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석유를 정상가격에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23. 1993년 이스라엘과 PLO가 평화조약을 맺는다.
24. 1994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여리고, 가자지구)을 인정한다.
25. 1995년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이스라엘과 한국이 비자면제협정을 맺었다.
26. 1995년 라빈수상이 암살당한다. 그리고 그는 헤르츨 국립묘지에 묻힌다.
#. 이스라엘 국가:하티크바 - 희망 공동체 가슴속에 우리 유대인의 희망이 진리로 고동치고 있는 한 저 멀리 동편(예루살렘)을 응시하고 우리의 눈이 시온(다윗성)을 지켜보고 있노라 2천년동안 간직해 온 우리의 희망 그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땅 우리의 나라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백성이 될 것이다.
D. 성경으로 본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는 교훈 1. 이스라엘의 역사는 철저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로 잊지 아니하신다(시편 137:5-6).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사 역사가도 정치가도 그리고 유대인들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건국(1948. 5. 14)을 허락하신다. 이 건국은 이스라엘의 땅의 회복(육적인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1967년 6월 5일에 시작된 6일 전쟁을 통해 2,000년간 이방인의 때가 찰때까지 이방인들(여러 나라들) 허락하신 예루살렘(눅 21:5-24)을 회복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고난의 역사는 아마겟돈(므깃도-계 16:16-21)의 전쟁일 것이다. 이 전쟁의 이유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분은 성경의 약속들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 성경의 약속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성취되고, 그리고 되어가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분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 뒤에 주시는 회복이다.
2.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모델로 세계를 다스리신다.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수치와 고난의 광야로 내 모신다(신 28장).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씀의 잣대로 재시는 하나님이 세계와 우리의 역사를 그분의 잣대로 재신다. 이스라엘을 성서의 눈으로 보아야만 바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대인을 보면 내가 보인다. 이스라엘을 보면 세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디에서 왔는가? 정치인의 잘못에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고 물질과 성공의 우상을 쫒아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듯이 우리가 지금 받는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성서안(삼상 15:23)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안에 해결의 키가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고난은 절망이 아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훈련방법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다(욥 1:13-10). 욥은 고난을 통해 비로서 하나님을 올바로 깨닫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회복하시고 배로 축복하신다(욥 42:10-17). 고난의 비밀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정금같게 하시듯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이사야 48:10-11). 이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 가서(철저한 회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 뿐이다(이사야 55:1-7).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지만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이스라엘을 대적한 나라는 고통의 댓가를 치른다(이사야 60:14-15, 이사야 62장. 스가랴 12:3). 세계 역사가 이를 교훈한다. (애굽, 앗수르, 에돔, 암몬, 모압,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헬라, 그리고 유럽 등 이스라엘을 박해하던 나라들은 역사에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고난을 받았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을 대할 때 어떤 유익을 바라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요 15:18-23). 주님이 아무 자격없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신것처럼 우리도 사랑함으로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의 친구가 된다(요 15:1-17). 유대인이 뛰어나고 지혜롭고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한 축복을 주시기 때문이다(시편 122:6-7). 또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용서하시고 부활하셨다. 유대인들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신앙관계에서 볼 때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벧전 2:1-10). 그러므로 유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마 5:43-48).
4. 기독교인들은 육적인 회복을 이룬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이다(이사야 2:1-4, 이사야 40:1-2, 스가랴 12:1, 10-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날이 올 것이다 ;14:8-9).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다. 최초의 기독교인은 유대인이었다. 또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도 유대인이었다. 주님은 유대인 선교사 바울을 통해 유대인이 넘어짐으로 돌아온 이방인의 복음에 대한 축복을 터어키, 그리스, 영국, 미국, 중국을 걸쳐 우상의 나라 우리에게까지 주셨다(로마서 11:9-11, 28-36). 주님도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낫다고 말하신다(요 4:22). 이것이 우리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위해 선교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무지와 교만으로 잃어 버린 예수를 찾아야 한다. 예수의 부모가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다 예수를 잃어 버린것처럼 우리도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찌른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고 회게하는 영적인 축복을 주실 것이다(슥 12:1-14). 그리고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추수를 위해 한국교회를 일군으로 사용(마 9:36-38)하시기를 원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새로운 복음이 아니라 주님이 전하신 회개의 복음(마 4:17)이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다(행 2:14-42, 3:11-26, 7장).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위로(이사야 40:1-2)하고 그리고 늘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이사야 62:6-7)할 사명이 있다. 주 안에서 참된 할례자 곧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유대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예루살렘과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행 1:8) 주님은 말씀하신다. 시작은 곧 끝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어디로 와야 끝일까?
5. 지금 멈추지 않는 역사의 시계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가올 역사에 대해 말씀(요엘 3:12-14, 이사야 60장, 스가랴 12-14장, 히 4:12-13, 살후 1:7, 10, 계22:12-17) 하신다. 지금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와 값없이, 돈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회복될 때이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때까지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회복(1967년 6일 전쟁)한 후에 일어날 역사는 무엇인가(눅 21:25-33, 사 34:14)? 하나님은 역사의 시계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눅 21:34-36, 계 16:15, 마 24:29-51)?
구약은 신약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신약은 구약의 성취를 깨닫게 하는 열쇠이다(요 15:25).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약만 즐기지 말고 구약을 통해 신약을 보고, 신약을 통해 약속의 성취를 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구약의 말씀대로 사셨고(요한 15:7-14), 약속의 말씀을 변질시킨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셨다(마태 23장). 구약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율법의 거울이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요 16:4-15). 예루살렘은 율법으로 정한 공의와 진리를 행한자가 하나도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렘 5:1).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 죄 없다하는 사람에게 예수는 어떤 분일까(눅 5:31-32)? 그러므로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엡 2:8-9). 이제 구원받은 자답게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엡 4장, 벧전 1:13-25, 레 12:44-4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안에서 율법은 올무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기는 힘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요한일서 5:1-5). 그것을 사랑으로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산소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사야 40:6-8) 뿐이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가 더디 오실지라도 날마다 기다리며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미리 맛보며 살겠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시록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