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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울호
허세욱 수필론(추모 기획)
성채와 풀잎 사이
-허세욱의 수사(修辭)와 흥취(興趣)
박 장 원
1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한다.
내 파이프 자욱이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남 저음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 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중국 시인 기현(紀弦)의 「배」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다.
감상적이지 않고 지성적 이미지에 근거한 삶의 긍정적인 나직한 뱃고동에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자욱한 파이프 연기 속에 인생의 분진이 명멸한다.
번역은 허세욱.
1934년 전북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에서 출생한다.
1956년 자유문학사가 주최한 제1회 전국대학생 시콩쿠르에서 「레일의 대화」가 당선, 1961년 「이름〔名字〕」과 「바람(願)」이라는 시로 대만 『현대문학(現代文學)』에 등단, 같은 해 수필 「한 그루의 나무(一顆樹)」와 「피난(避難)」을 『작품(作品)』에 발표, 1969년 처녀 시집 『청막(靑幕)』을 출간한다.
미당 서정주가 『청막(靑幕)』의 서문을 쓴다.
시인 허세욱 씨의 이름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유중국 시단에서는 이미 알려진 중국 시단 정예의 한 분이다. 40명쯤으로 된 중국시선에는 그의 작품도 끼어 그 독특한 광휘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1964년에는 『한국시선』을, 1967년에는 『춘향전』을 중국에 전한다.
미당을 시업(詩業)의 스승이라 한다.
어느 날, 중국에서 제일가는 문학 월간지가 우리의 『춘향전』을 중역(中譯) 연재할 수 없느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그걸 덥석 낚아챘다. 앞뒤도 가리지 않은 것은 우리의 명작을 중국에 처음 수출한다는 사명감 외에도 그 당시 무언가에 싸움을 걸고 싶었던 의욕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다.
―「탈출과 돌파」 중에서
한국 문학의 최고봉이요 남도 문학의 절정인『춘향전』을 중국어로 옮긴다. 완벽한 주석본도 없고, 고문체의 한국 고전소설을 현대문체의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 기술상의 장벽이 있다며, 스스로 이 싸움을 자폭의 위기라 한다.
서정주는 저돌적인 허세욱을 좋아한다.
그리고 번역은 계속된다.
미당의 『徐廷柱詩選』과 박목월의 『過客』과 정지용의 『鄕愁』가 이어진다.
1972년 김승우가 창간한 『수필문학』의 필진이 된다. 「중국 수필의 전통」을 연재하고, 대폭 증보하여 1981년 을유문화사에서 『중국수필소사(中國隨筆小史)』로 꾸며지고, 중문학도와 수필가의 필독서가 된다.
이제 수필로 발길을 돌린다.
시의 계절이 가고 산문의 계절이 왔는가.
나는 이토록 꽃동네에 살면서 아름다운 시 한 편 써 보았으면 했다. 그런데 쓰여지지 않았다. 그것이 쓰여지지 않는 대신 산문의 충동이 일었다. 뛰쳐나가 산과 바다를 소요할지언정 턱에다 팔을 괴고 침통한 눈망울로 답답한 천장을 보기가 싫었다. 그만큼 산과 바다는 지척에 있었다. 버클리 머리너머면 어떻고 아사벨 포인트면 어떠랴? 문 열면 파도 소린데.
―「시의 계절과 산문의 계절」 중에서
문(文)이 문학(文學)과 문장(文章)으로 나뉘어지고, 문장(文章)에서 문(文)과 필(筆)로, 다시 문(文)은 시(詩)로 필(筆)은 산문(散文)으로 세분화되는 것이 중국 문학의 커다란 갈래이다. 결국 시와 산문은 동기요, 시인의 마음과 산문가의 자세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좇으면 족하다고 한다.
김치수가 허세욱의 두 번째 시집 『땅 밑으로 흐르는 강』의 작품 세계를 쓴다.
이 시인의 시는 대부분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는 반면에 정적인 고요를 주조음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시인 자신을 만났을 때 시인의 모습에서 풍기는, 느리면서도 확실하고, 점잖으면서도 단호한 기질을 그의 시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고요한 시인의 빛남, 느리면서도 확실하고 점잖으면서도 단호한 시심, 그런 기질은 산문에서도 은은하다. 그 산문은 시로 쓴 이야기요, 그림 같은 수필이다.
수필집은 1976년 『움직이는 고향』으로 시작하여 『태양제(太陽祭)』․『달이 뜨면 꽃이 피고』․『인간 속의 흔적』․『돌을 만나면 비켜 가는 물처럼』․『임대 마차』․『송정다리』에 400여 편이 하늘의 별자리처럼 반짝거리고, 기행집은『중국문학기행』․『실크로드 문명기행』․『중국인, 중국문화에세이』․『중국문학 기행』․『연암 따라 3천700리』가 누런 강줄기처럼 펼쳐진다. 수필선집으로 『임실촌 사람의 절실한 얘기』․『먼 산이 가까워질 때』․『지팡이 소리』․『서적굴 디딜방아』가 푸른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명치끝을 아리게 하는 따스한 정감이 「움직이는 고향」․「지팡이 소리」․「吳晩回 선생님」․「春望」․「재를 넘는 무명치마」․「장대 위로 솟는 달」․「감나무 면회기」․「임대 마차」․「침등(枕燈)」․「소나무야, 소나무야」․「커피포트 하나」 등에서 넘친다.
2
언어를 응집시키면 시가 되고 언어를 확산시키면 소설이 되기에, 언어의 적자인 수필을 누누이 문학의 원심(圓心)이요, 로터리라 한다.
그리고 소동파의 행운유수(行雲流水)를 자주 거론한다. 구름은 스스로 알아서 떠다니고, 물은 스스로 알아서 흘러간다. 공연히 떠다니고 괜스레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담담하게 구름과 물줄기가 닿는 곳, 그 원심의 종점은 인간의 회복과 고향의 연민이다.
내 수필의 제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회복이요, 고향의 연민이었다. 그 원점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은 문학으로 꽃 피운다.
수필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이론은 奧(심오함)․明(분명함)․通(유창함)․節(절제)․淸(맑음)․重(무거움)이다. 심오하되 난해하지 않고 선명하며, 유창하되 수다스럽지 않게 절제하며, 청신하되 품위를 위해 중후하면서 이 여섯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수필이 된다는 당나라 유종원(柳宗元).
수필의 본질은 무형식의 형식이다. 먼저 형식에 준한 성문(成文)은 불가하며, 내용에 따른 알맞은 형식을 생성시켜야 한다. 이는 바로 정체(定體), 즉 형식은 없을지라도 대체(大體), 즉 풍격은 지녀야 한다는 금나라 왕약허(王若虛).
수필의 문장이 만유의 변태를 다함에는 이(理)․사(事)․정(情), 즉 설리적이거나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세 가지 본질을 벗어나지 못하듯, 수필 또한 어느 때 어느 종파에게도 그 세 가지를 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은 살이고, 사는 뼈고, 이는 힘줄이니, 이 세 가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지언정 적당하게 삼각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이 세 가지의 균형이 수필의 성공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점이 하나 있는데, 범문학적이 되어 수필의 전문성을 잃기 쉽다는 청나라 엽섭(葉燮).
수필의 소재는 거대한 우주의 변화로부터 미세한 파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범주에 든다는 중화민국의 임어당(林語堂).
『중국수필소사(中國隨筆小史)』에서의 발췌이다.
중국을 사랑한다.
5천 년의 역사와 15억의 사람들, 오랜 세월 그들이 일구어 온 문화를 보듬는다. 그리고 저들의 붓 가는 대로의 산문을 존중하면서, 유종원과 왕약허 그리고 엽섭과 임어당 등의 당부를 바투 잡는다.
연민의 고향과 인정스런 사람이 사는 현대 속 자연으로의 귀향, 당연한 귀결이다.
문장이 뒤틀리고 표현이 거칠더라도 그 서정이 맑고 간결하면 박수를 친다. 서사가 허약하고 의미가 경박한 데다 혹여 야유가 깔려 있다면 늦가을 서릿발처럼 싸늘해진다. 사유가 깊고 말이 쉽다면 죽마고우를 만난 듯 뜨거운 포옹을 한다.
고향의 연민이 감성이라면, 인간의 회복은 지성이다.
지성이 결여된 감성은 감상(感傷)이다. 그것을 혐오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려 냉정하게 파고든다. 자잘한 움직임도 간과하지 않는 신중한 몸가짐이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았다면 애오라지 가슴앓이를 겪고서야 상상을 보탠다. 이(理)․사(事)․정(情)의 긴밀한 감응은 산문가의 바람이다. 그래서 서사가 있는 서정, 서정이 있는 명상, 명상이 있는 상상을 구현하려 한다. 그리고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수필의 실험적인 체제를 추구하면서 적절한 품격을 유지한다.
간혹 정감으로 물컹거릴지라도, 서사는 선명하고 탄력적이다. 게다가 여성의 유연성과 고향의 향토성이 가독성(可讀性)을 돋운다. 미네랄을 듬뿍 머금은 골격을 윤기 있는 피부가 꽃처럼 감싸니 망망한 서정(boundless lyrics)은 아스라하고, 서사와 이치가 엉겨 붙어 뿜어지는 뒷맛은 개운하다.
어쩌다가 나는 그 보퉁이의 내역이 궁금해서 어머니 몰래 가방을 풀어 보았다. 치마 저고리 한두 벌에 속옷 몇 벌, 그리고 언젠가 내가 구해 드린 강위산(强胃酸) 약병, 눈에 익은 귤과 사과, 부스러기 된 과자, 껌, 사탕, 땟국이 절반쯤 밴 수건에 빗과 손거울이 한쪽으로 구겨져 있었다. 젊은이 같으면 큰 자개장에다 걸어 둘 옷이 여기에 뭉쳐 있고, 울긋불긋 경대에 즐비할 세면도구가 여기에 끼어 있고, 분합에나 넣어야 할 상용 약들이 여기서 구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간식으로 드린 과일과 과자를 여기에 모아 두신 것을 보았을 때 갑자기 축축해지는 눈언저리가 무겁다.
그리고 가장자리 주머니엔 언젠가 해 드린 금비녀가 헝겊 조각에 말리어 있고, 새 며느리가 지어 드렸을 새 버선이 셀로판 종이에 싼 채로 있고, 똘똘 말아 둔 몇 장의 지폐도 보였다. 말하자면 옷장도 경대도 분합도 모두 여기 다목적 가방에 담겨 있는 셈이다. 어쩌면 어머님의 동산(動産) 전부가 아닐까?
―「움직이는 고향」중에서
중국의 주자청이 기차 역 플랫폼까지 따라 나와 자기를 배웅하는 아버지를 흘깃거리며 바라본다면, 한국의 허세욱은 남도 칠백 리 막둥이네로 떠나려고 채비를 마친 어머니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자그마한 비닐, 그것도 겨우 몇 천 원짜리 거무죽죽한 가방을 몰래 쓰다듬는다. 그 보퉁이를 들고 떠나는 어머니는 가물가물 움직이는 고향이다. 안개처럼 몽롱하게 떠나는 어머니를 아프도록 시리게 부여안는다.
빤히 보이는 언덕. 높아야 6~7m 정도 되겠다 생각하니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다. 술래잡기하듯 종횡으로 뛰었다. 필자가 내딛는 그 어드메쯤에선가 2,300년 전 굴원의 발자국과 포개질 것만 같아서였다.
―「초사의 미인(美人) 형주(荊州)」 중에서
중국 문학의 양대 산맥은 북방의 『시경(詩經)』과 남방의 『초사(楚辭)』이다.
그 중심축의 하나인 『초사』는 굴원의 설움과 눈물의 결정이다. 지금의 형주인 초나라 옛 수도 성터에서 굴원의 발자취를 어루만진다. 슬픈 시인의 흔적이 어디쯤 있겠지, 펑퍼짐한 구릉에서 그와 함께 술래잡기를 한다.
굴원 선생, 어디 있수. 내가 여기 왔다우.
이백의 고향 청련 고을 시장통을 지나 명현사를 찾아가는 골목에서 나는 꾀죄죄한 목로술집을 기웃거리며 연방 입맛을 다셨다. 이 고을 명주인 시선각(詩仙閣) 한 병에 고추볶음 한 접시 생각이 난 것이다.
―「이백(李白)의 고향 청련(靑蓮)」 중에서
이태백을 흠모한다.
천재 시인을 만나러 촉나라 수학여행 길에 오른다. 하늘로 오르기보다 어렵다는 길을 따라 천보산 아래로 펼쳐지는 청련 고을을 더듬는다. 신선처럼 시를 지은 시선(詩仙)의 고향 고샅을 기웃거리며, 알알한 시선각 한 병과 알싸한 고추볶음 한 접시로 청련거사 이백의 시정(詩情)을 전한다.
나는 커피포트에 달렸던 거름종이 비슷한 양철 종지에 큼직큼직 애호박을 잘랐다. 뚜껑 사이로 부연 밥물이 피식 피식 새어 나왔다. 양철 종지를 그 위에 올렸다. 또 3,4 분이 지나자 냄새가 좋았다. 고소한 밥 냄새에 파릇한 호박 냄새가 범벅 되었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다. 벽장에서 김을 서너 장 꺼내곤 그걸 손바닥 절반 크기로 조심조심 찢었다. 아직도 뜸을 들이려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중략)
다시 전기를 꽂았다. 거기서 피리 소리가 울릴 때까지 나에겐 따로 잔일이 있었다. 양철 종지를 깨끗이 씻고 오이절임은 마개를 꼭 틀었다. 선 채로 숭늉을 마시고 누룽지 한 알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물을 붓고 설거지의 대미를 장식했다. 스위치를 뽑고 커피포트를 거꾸로 들고 사래질을 치다가 세면대 위에 얌전히 엎어 두었다. 성당에서 신부가 미사를 마치고 성찬을 나누고 그 제기를 씻고 닦아 제단을 치우듯 말이다.
―「커피포트 하나」 중에서
이제 햄버거를 먹는 데도 웬만큼 도가 텄다. 우선 양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집게발을 짓고 그걸 여덟팔자로 잡은 뒤 입을 활짝 벌려 그 한쪽부터 베어 먹는데 무엇보다 그 안에 여물처럼 쟁여진 양배추 살이나 토마토 조각들을 떨어뜨리지 않고 먹게 되었다.
―「잃어버린 얼굴」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좀 곰살궂은 재미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빨래였다. 밤중에 살금살금 일어나서 세면대에 헌옷을 담갔다가 그걸 세숫비누로 조물조물 문질러서 그걸 다시 맑은 물이 나오도록 헹구어 샤워 꼭지에다 살짝궁 널어놓는 일이었다.
―「하숙집」 중에서
「커피포트 하나」와 「잃어버린 얼굴」과 「하숙집」.
선명한 포커스이다.
고소한 밥 냄새에 파릇한 호박 냄새가 범벅 되었다. 커피포트를 거꾸로 들고 사래질을 치다와 입을 활짝 벌려 그 한쪽부터 베어 먹는데 무엇보다 그 안에 여물처럼 쟁여진 그리고 맑은 물이 나오도록 헹구어 샤워 꼭지에다 살짝궁 널어놓는 등의 곰살맞은 수사(修辭)는 멋들어진 맵시이며, 그 자체로 심심한 흥취(興趣)를 풍긴다.
이윽고 머슴은 반죽한 찹쌀가루 한 주걱을 뜨거운 번철에 철푸덕 올리자 미리 덥힌 들기름에 지지러지면서 쏴아 하는 작열의 소리가 골짜기를 갑자기 달구었다. 그리고 그 위에 진달래꽃 서너 잎을 올리곤 뒷등으로 살며시 눌렀다 잦혀 놓았는데 그 솜씨가 아낙네에 못지않았다.
―「서동(書童)시절」중에서
분홍빛 화전놀이.
철푸덕과 쏴아 같은 추임새가 달궈진 번철에 자지러진다. 지리산 골짜기에서의 화전놀이가 휘모리장단처럼 이글이글 타오른다. 수줍은 진달래가 달님처럼 하얀 찹쌀 전에 산뜻한 웃고명이 된다.
나는 디딜방아의 역사를 좋아했다. 본래 숫기가 없던 탓으로 안일 돕기를 좋아했다. 어머니 옆에서 부엌에 솔잎 지피기나 여름날 대청 안반에다가 국수 밀기, 가을날 이른 아침 대청에서 홑이불을 다림질할 때 그 한쪽 귀퉁이를 잡아당기는 일 같은 잔챙이 일을 좋아했다.
(중략)
방아가 머리에 공이를 달고 괴밀대에 서 있는 모습은 가을날 논두렁을 뛰는 여치 같았다. 더구나 기다란 몸통 끝에 두 개의 가랑이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서적굴 디딜방아」 중에서
덕유산 노령산맥 줄기 노산 회문리의 서적굴 디딜방아.
문중유화(文中有畵)이다.
사실적 묘사와 토속적 심미감 그리고 섬세한 관찰력에서 우러난 사생(寫生)이다.
진흙을 발라 바닥을 편편히 닦은 뒤 저 안창에다 구덩이를 파고 돌확을 묻고서, 확 옆으로 괴밀대를 세우고 그 위에 4, 5미터의 참나무 방아의 원목을 걸치곤 그 방아대의 안쪽에는 공이를 박고 그 바깥은 디딜대로 삼았는데, 디딜대는 양다리였다는 읊조림도 좋지만, 방아가 머리에 공이를 달고 괴밀대에 서 있는 모습이 가을날 논두렁을 뛰는 여치 같다는 크로키도 날렵하다.
앞쪽의 뜨락으로 눈을 돌렸다. 오동나무엔 푸른 안개 같은 게 번지고 있었다. 달빛이 오동나무 짙푸른 잎새에 도사리고 있는데 거기에 무엇이 안개를 빚고 있는 걸까? 나는 가만히 등짝을 긁다가 다시 누웠다. 무엇이 내 가슴 저 안쪽에서 움찔거렸다. 작은 벌레처럼 조금씩 꼼지락거리더니 그것은 점차 굵어졌고 덩달아 가슴이 뛰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바로 서너 자쯤 왼쪽에 그 여맹의 허연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저고리가 또르르 말린 채 등짝 절반이 허옇게 드러난 것이었다. 의당 갈퀴 같은 뼈들이 보일 법한데 통통한 살결, 좁아진 허리에 넓적한 엉덩이, 그 곡선이 처음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똥그란 눈으로 그 허리를 열심히 훔쳐보았다.
새벽쯤 비몽사몽간에 내게는 철교를 폭파하는 B29의 굉음이 들렸고, 하얀 허리가 자꾸만 보였다.
―「달빛 재실」 중에서
계간수필 추천작가들과의 남도 문학기행.
담양 식영정(息影亭) 우물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건너편 별뫼[星山] 쪽을 바라본다. 문득 「달빛 재실」이 떠오른다.
선생님, 달빛 재실이 생각나세요.
응.
지리산 기슭에서 우울한 봄날을 보낸다. 무서운 전쟁이다. 피붙이는 일거무소식으로 흩어지고, 고향의 어머니는 깡마른 주먹으로 연방 가슴을 친다. 소년은 난리에 휩싸여 달 밝은 산마루 재실에서 뜬눈으로 지새운다. 여인의 물오른 등짝과 잘쏙한 허리는 아롱지는데, 폭탄을 투하하는 비행기의 굉음이 비몽사몽간에 들리는 사춘기는 몽롱한 달빛 아래 여지없이 흘러간다.
그때도 나는 소갈머리 없이 그만 울어 버렸다. 사내 나이로 지천명이 내 발등에 떨어졌는데, 이름 좋은 불혹(不惑)이 지난 것도 훨씬 옛날이었는데, 대장부 지금쯤이면 성채(城砦)처럼 견고한 마음에 집안도 거느리고 나라도 다스릴 나이인데.
(중략)
인도양 물결은 세차지 않았다. 그 잔잔한 물결이 부서지느라 훌쩍이는 여운 속에서 나는 차마 귀를 막고 돌아누울 수 없었다. 나는 한없이 연약한 풀잎. 바람의 향방에 따라 서럽게 숨을 죽이는 풀잎. 내 왼통 뿌리째 뽑아 버린다 해도 내게는 못나디못난 풀씨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채와 풀잎 사이」 중에서
김열규는 허세욱의 찬란한 심미 의식을 아낀다.
파토스와 로고스의 교전(交戰), 저 서정과 명상의 교전에서 비롯된 파토스와 로고스의 교전은 필경 절정과 심저, 유와 무의 교전에 다다라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세욱 교수는 아름다움 앞에서 경건을, 찬란한 심미 의식(審美意識)으로 엄숙함을 따지며 그의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그 가다듬음의 확인으로 글을 쓴 것이다.
로고스는 성채이고, 파토스는 풀잎이다.
인간의 회복과 고향의 연민. 그 원점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살아 있는 에세이(living essay)이다. 로고스는 존재의 근원이요, 파토스는 삶의 자세이다.
성채화된 풀잎.
성채는 가당찮다고 한다. 실바람 한 오라기에도 가슴이 설레고, 소쩍새 한 가락에도 목이 메는 청승꾸러기라 한다.
절정의 성채일까, 심저의 풀잎일까.
이도 맞는 것 같고, 저도 맞는 것 같다.
빛나는 미의식으로 벙글어지는 수사와 흥취에 빠져 어리벙벙하다가, 성채에 가려진 가녀린 풀잎을 아니면 풀잎에 파묻힌 우뚝한 성채를 못 본 것일까.
1987년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한다.
정진권이 허세욱을 축하한다.
취한 우리는 서로 어깨를 부여안고 종로를 걸었다. 출렁이는 인파의 거리, 사람이 부딪혀서 발도 제대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그가 한 구절 즉흥으로 읊어 왈, 비틀거리며 걸어갈, 논두렁길 하나 있었으면…… 했다.
종로에서 논두렁길을 찾는 사람. 그가 허세욱이다.
(중략)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그대로, 그는 앞으로도 계속 고향을 못 잊은 촌놈일 것이다. 철저하고 엄격한 선비일 것이다. 그리고 활화산 같은 정열을 잃지 않는 청년일 것이다.
3
2003년 중국산문학회와 중국현대문학관은 이례적으로 외국인 생존 작가를 초청한다. 더구나 한국 작가의 작품 세계 마당은 처음이다.
바로 북경에서의 허세욱 중문 수필 세미나이다.
움직이는 고향은 국경이 없다.
문자의 초월성과 돌파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정서가 가슴으로 통해야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며 그 감회를 밝힌다.
나는 요즘 선잠을 깬 밤중이면 그것들을 종류별로 모으거나 키별로 정리하는 장난을 즐긴다.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밤중에 책 옮기기란 어찌 보면 병신 짓임에 틀림없었다. 그들 얄팍하고 작달만막 좀생이를 여기서 뽑아다가 저기다 꽂고 저기서 뽑아다가 여기로 옮겨서 그들 행과 오를 가지런히 손질하는 일이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누런 낙진이 부스스 떨어지거나 책갈피가 통째로 피그르르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언젠가 우리가 헤어질 때」 중에서
언젠가는 헤어진다.
분신처럼 아끼는 장서들이 촘촘한 서재, 한밤중에 꼼꼼하게 책을 다시 정리한다. 만남과 이별이다. 제자리를 잘 찾아 곱게도 있지만, 여기서 뽑아다가 저기다 꽂고 저기서 뽑아다가 여기로 옮기며 그들과의 사연을 곱씹으며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눈다.
조만간 헤어질 그들과의 어루만짐은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다.
누런 낙진과 책갈피가 춤춘다.
장백일의 『임대 마차』 서평이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론가 가는 인생의 임대 마차다.
이승서 저승 가는 임대 마차요, 이승에서 출발해서 이승에 멎는 임대 마차요, 흙에서 흙으로 가는 임대 마차다. 그래서 세상은 역려(逆旅)요, 사람은 거기서 지새는 나그네다.
사람은 태어나 죽는다. 이는 인류 공통의 역사다. 몸뚱이는 바위틈의 풀잎이다. 목숨은 풀잎에 엉긴 이슬이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성채를 휘돌아 가는 바람처럼,
사랑한 수필.
유려한 수사와 핍진한 흥취.
성채 같은 지성과 풀잎 같은 서정.
1998년 『시문학』에 발표한 「바람아 바람아」이다.
바람아 바람아
이젠 돌아가
신 벗고 숟가락 챙기자꾸나
해가 저무는데.
첫댓글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필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확실한 정립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수필은 정작 어떤 걸 말해야 하는지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