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작
그 옛날 1970년 3월 어느 봄날.
산촌의 법물학교 교정엔 노란 개나리가 만발하고 이제 막 시작되는 봄 기운이 화사하게 내려앉은 교실은 새학년의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가득찬 설레임의 분위기다.
첫 부임지를 산골 오지로 발령받음에 항의하여 일주일이나 눈물로 부임을 거부한 당돌하고 순진한 단발머리 처녀 선생님이 계셨다.
덕분에 3-2반 우리는 옆 반 선생님의 겸임 수업으로 방치(?)되어 우리만의 꿀맛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처음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의 환한 모습에 촌뜨기 우리들은 일순간 고요였다.
늘씬하고 세련된 옷차림,단정하고 홍조띤 화사한 얼굴이 과일에 비유하자면...영락없는 복숭아다.
그 날부터 우리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선생님의 교직생활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든게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강압에 의한 열정이 아닌 온화한 사랑의 열정이었다.
그 사랑의 열정을 우리는 짖굿은 장난과 말 안 듣기로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표하고 관심을 받고 싶어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교육 트랜드가 고전읽기 대회였던가 보다.
학업수준이 절반은 뜨듬뜨듬 교과책을 읽거나 못하고, 구구단 외우기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인 우린 방과 후 남아서 주어진 구구단을 외워야 했다.
고전읽기 대표로 선발된 일부는 열심히 박씨부인전, 전우치전 등 이런 아동문학을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시대적 배경이 병자호란이었을 박씨부인전은 하늘의 선녀가 벌을 받아 박색의 모습으로 인간세계에 내려와 온갖 도술로 용골대 형제를 물리치고 다시 원래의 얼굴을 되찾고 백년해로 하였다는.....그 신출귀몰한 도술과 스토리 전개의 긴장감은 이후 나의 문학적 관심과 정서함양의 기초가 되고도 남았다.
전기불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교실 창문의 으스름한 달빛에 책을 비추어보며 읽었던 기억,
초겨울 30리길을 원지까지 걸어서 우리를 인솔하여 고전읽기 대회장에 갔었지만 정작 촌뜨기(나)는 얼이 빠져 시험문항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문제의 논지가 뭔지도 몰라 시험을 망쳐 버렸던 기억,
학교 주변 청산에 거주하시는 선생님의 자취방에 친구와 같이 때국물 가득한 손발로 하룻밤 묵었던 기억,
이런 것들은 너무도 선명히 각인되어 지금도 가슴 꽁닥이는 설레임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우리들 가슴에 제 각각 아름다운 추억 하나씩 남겨 주신 선생님.....
2.마무리
42년의 무수한 세월이 흐른 2012년 8월 어느 토요일.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현관을 나서며 혹시나 시간이 늦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선다.
늘 그렇지만 오늘따라 체증이 더한 동서고가를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접어들 즈음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쯤 오고 있냐고.....
부지런히 악셀을 밟아 약속한 마산 석전초등학교 앞에 도착하니 다행이 늦진 않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양손에 무엇인가 들고 오시는 선생님의 모습과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얼른 달려가 부끄럽고 경황없이 인사드리고 차로 모시니 마음이 둥실거린다.
처음이다......선생님과 가까이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진주까지 행하는 승용차 안에서 나누는 지난날들의 추억담이 너무도 정겹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쉬움으로 교차되어 기분이 묘하다. 이날따라 진주길이 너무도 짧다.
점심약속 장소인 진주 한식점에 도착하니 50대 초반의 중늙은이 소년소녀 열 명이 저마다의 가슴에 담긴 아름다운 추억을 펼치며 이제 정년을 맞으신 선생님과 반갑게 해후한다.
제자들의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잊고 있던 초등시절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상기시켜 주시는 자상함, 그 시절의 교편생활의 애환들....
이런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동 시대를 살아가는 끈끈한 삶을 반추하는 기분이다.
그 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고 선생님이나 제자나 열심히 살아온 결과인 것이다.
무거운 짐 내려놓는 축하(?)의 꽃다발을 받으시고 선생님 하시는 말씀 왈,
“42년 전 첫 부임지의 그 시작이 첫 학생들인 여러분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하는 그 마지막도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우리를 잠시 숙연하게 한다....’
“선생님 행복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헤어짐이 아쉬워 우린 진양호 주변을 드라이브하며 전망 좋은 언덕에 올라 사진도 찍고,
내친 김에 성철스님 생가 겁외사에 들러 인생이 무엇인지 부처님 전에 물어도 보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스님의 그 말씀 뜻 되새김도 해보았다.
아둔한 내 생각엔 “인생은 그냥 그런 것이다” 이렇게 말씀 하는 것 같다.
분위기 좋은 향토방 찻집에서 커피와 팥빙수로 여운을 달래고 진주 친구들의 배웅속에 선생님을 모시고 마산으로 내달린다.
맘이 계속 웅웅거려 속도위반으로 스티커 날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마산 아드님 거주지에 고구마 한 통 들고 내리시는 선생님 모습에서 영락없는 일상의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 날 우리집 늦은 저녁 반찬은 선생님이 선물하신 정성 가득한 남해산 잔멸치 볶음이었다.
외람되지만 제자와 스승님이 좋은 인연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늙어가고 싶다.
그 분의 성함은 민금옥 은사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