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전력량계를 잘못 결선해 아파트에 전기요금이 과소 부과됐어도 전기계량기 검침이나 전기요금 징수업무를 대행하는 자에 불과한 입주자대표회의는 미납된 전기요금까지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공사가 “전력량계와 변류기가 잘못 결선돼 지난 2005년 9월부터 지난 2008년 8월까지 1천92만여원의 전기요금을 적게 납부했으므로 이를 지급하라.”며 경남 양산시 H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사용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한전이 패소한 2심을 인정,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전은 지난 2004년 3월 이 아파트 각 세대의 전기소비량을 측정하는 계기인 전자식 전력량계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잘못 결선했다. 이로 인해 제대로 연결된 부분은 정상작동을 했지만, 잘못 결선된 나머지 부분은 오작동을 일으켜 계량의 충돌, 상쇄현상으로 전기사용량의 2/3 가량만 검침됐다. 이후 한전은 지난 2008년 8월경 이 아파트 전력량계에 대한 자체점검을 통해 전력량계가 잘못 결선된 것을 확인하고, 같은 해 9월 정상적으로 결선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한전은 “전력량계와 변류기 사이에 결선이 잘못됐는데 이는 전기공급약관에 규정된 ‘전기계기 및 부속장치의 이상, 고장 등으로 사용전력량이 정확하게 계량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대표회의가 정상적인 요금보다 1천92만여원을 적게 납부했으므로 이를 지급하라.”며 이 아파트 대표회의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 대표회의는 “대표회의는 이 아파트 관리주체로서 한전이 각 구분소유자 내지 입주자 등에 대한 매월 전기사용량을 검침해 고지하면 이를 징수해 줄 뿐이므로 미납된 전기요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며 한전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한전은 이 아파트 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3월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본지 제793호 2009년 11월 2일자 2면 보도).
이어 한전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2심 재판부인 울산지방법원 제1민사부는 지난해 10월 “원고 한전은 이 아파트 입주민과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그에 따라 원고 한전이 전기를 공급하고, 입주민이 자신들이 사용한 전기요금(공동전기료 포함)을 납부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같이 할 경우 각 세대별로 다수의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용부분 전기요금에 대해서도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전기계량기 검침이나 전기요금 징수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게 돼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자원낭비가 유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주체가 일반관리비 등을 세대로부터 매월 징수하면서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과 같은 사용료도 관리비와 함께 징수·부과하면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 피고 대표회의가 입주민을 대표해 원고 한전과 사이에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그에 따라 피고 대표회의는 전기계량기 검침이나 전기요금 징수업무를 대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고 대표회의가 원고 한전에 부담하는 의무는 매월 이 아파트 각 세대가 사용하는 전기사용량 등을 통보해 주고, 이를 기초로 원고 한전이 세대별 전기요금을 산출·통보하면, 전기요금을 입주민으로부터 징수해 원고 한전에 납부할 의무 등이 있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 대표회의는 전기공급계약에 기해 전기를 공급받아 사용한 주체인 입주민을 대신해 미납된 전기요금을 납부할 의무까지는 없으므로 원고 한전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한전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이같은 판결을 인정해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