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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양지 생자음지(死者陽地 生者陰地)’. 죽은자는 양지에, 산자는 음지에 있다는 의미의 이 말은 필자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학자가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내린 진단이다.
나 역시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 위해 고향을 다녀오면서 도로변 산야를 둘러보았다. 어쩌면 중국인 학자의 말이 그토록 정확한지…. 그저 관성적으로 지나쳐 왔던 이 산 저 산의 양지쪽은 한결같이 분묘가 자리를 잡고, 상당수 가옥들은 골짜기의 음습한 곳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다. 가난해서 땅 한뙈기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이 어렵사리 산비탈에 집을 붙이고 산 결과일 것이다. 생자의 집은 야산에 처량하기 그지없는데 사자들이 누워 있는 분묘들은 따뜻한 햇볕을 받아 죽어서도 충만한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모습을 중국인도 이상야릇하게 보았을 것은 당연하다.
전국적으로 묘지가 매년 여의도만한 땅을 잠식하고 있고, 국토의 몇%가 묘지라고도 하는데 이런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농촌마을 주변은 벌써 묘지들이 마을을 감시하듯 에워싸고 있는데. 현재와 같은 장묘 관행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무덤 전시장이 되리라. 이런 문제들에 대해 누구나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는 양상이다. 가문의 영광을 현시하듯 묘소는 호화롭게 장식되고 비석도 요란하다. 이는 농촌에 갈수록 더하다.
우리의 장묘 문화는 유교에 뿌리를 둔 조상 숭배와 효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호화묘를 써도 비난 받기보다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 가면 좀처럼 분묘를 구경할 수가 없다. 유교의 본산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니 아이러니하다. 이는 마오쩌둥이 내린 지시 때문이라고 한다. 1949년 마오쩌둥이 국부군을 격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맨 먼저 내린 교시가 “전국의 무덤을 없애라. 그리고 더 이상 무덤을 써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산하를 보면 묘지를 보기 힘들다. 덩샤오핑도 홍콩 앞바다에 유골의 재가 뿌려졌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 장묘 문화는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자, 권력자 등 기득권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필자는 고향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9대조 이후의 조상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3월 중 합동묘를 세우기로 했다.
돈 있다고 왕릉처럼 무덤을 만드는 세태는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여론을 유도해야 한다. 비바람에 돈 날리는 것도 허무맹랑한 일이다. 경직성 비용, 즉 생산성이 없는 호화묘와 묘비는 국부를 축낼 뿐이다. 무연고 무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무연고 분묘가 40%에 이른다고 한다. 묘지 관리란 후대에 의해 이뤄지는데 40%의 후손이 조상을 방치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묘지는 환경 차원에서도 다뤄야 한다. 산하의 미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뿐만 아니라 환경부도 나서서 기준을 새롭게 정비해 더 이상 사자(死者)들이 생자(生者)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상 묘에 따라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어설픈 추상 놀음인가.
이계홍 저널리스트·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출처-‘사자양지 생자음지(死者陽地 生者陰地)’. 죽은자는 양지에, 산자는 음지에 있다는 의미의 이 말은 필자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학자가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내린 진단이다.
나 역시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 위해 고향을 다녀오면서 도로변 산야를 둘러보았다. 어쩌면 중국인 학자의 말이 그토록 정확한지…. 그저 관성적으로 지나쳐 왔던 이 산 저 산의 양지쪽은 한결같이 분묘가 자리를 잡고, 상당수 가옥들은 골짜기의 음습한 곳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다. 가난해서 땅 한뙈기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이 어렵사리 산비탈에 집을 붙이고 산 결과일 것이다. 생자의 집은 야산에 처량하기 그지없는데 사자들이 누워 있는 분묘들은 따뜻한 햇볕을 받아 죽어서도 충만한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모습을 중국인도 이상야릇하게 보았을 것은 당연하다.
전국적으로 묘지가 매년 여의도만한 땅을 잠식하고 있고, 국토의 몇%가 묘지라고도 하는데 이런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농촌마을 주변은 벌써 묘지들이 마을을 감시하듯 에워싸고 있는데. 현재와 같은 장묘 관행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무덤 전시장이 되리라. 이런 문제들에 대해 누구나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는 양상이다. 가문의 영광을 현시하듯 묘소는 호화롭게 장식되고 비석도 요란하다. 이는 농촌에 갈수록 더하다.
우리의 장묘 문화는 유교에 뿌리를 둔 조상 숭배와 효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호화묘를 써도 비난 받기보다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 가면 좀처럼 분묘를 구경할 수가 없다. 유교의 본산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니 아이러니하다. 이는 마오쩌둥이 내린 지시 때문이라고 한다. 1949년 마오쩌둥이 국부군을 격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맨 먼저 내린 교시가 “전국의 무덤을 없애라. 그리고 더 이상 무덤을 써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산하를 보면 묘지를 보기 힘들다. 덩샤오핑도 홍콩 앞바다에 유골의 재가 뿌려졌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 장묘 문화는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자, 권력자 등 기득권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필자는 고향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9대조 이후의 조상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3월 중 합동묘를 세우기로 했다.
돈 있다고 왕릉처럼 무덤을 만드는 세태는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여론을 유도해야 한다. 비바람에 돈 날리는 것도 허무맹랑한 일이다. 경직성 비용, 즉 생산성이 없는 호화묘와 묘비는 국부를 축낼 뿐이다. 무연고 무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무연고 분묘가 40%에 이른다고 한다. 묘지 관리란 후대에 의해 이뤄지는데 40%의 후손이 조상을 방치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묘지는 환경 차원에서도 다뤄야 한다. 산하의 미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뿐만 아니라 환경부도 나서서 기준을 새롭게 정비해 더 이상 사자(死者)들이 생자(生者)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상 묘에 따라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어설픈 추상 놀음인가.
이계홍 저널리스트·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출처- 한국장례신문 http://www.kfn1004.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