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과정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강한 정신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많은 고된 일을 하시며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함과 너그러운 성격의 소유자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저는 위로는 두 분의 형님들과 누님을 모시고 네 명의 아우들과 함께 성장하며, 서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배우고 부모님에게서 근면함과 검소함을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늘 교육을 중히 여기시며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과 함께 절대 남에게 피해주고 상처 주는 일들은 해서는 안되며, 남을 돕고 나누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나눔을 강조하시는 어머니의 교훈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창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님의 권유로 웅변을 시작하였으며, 전교어린이회장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교내체육대회에서 마라톤에 출전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학업에 충실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던 중 담임교사의 권유로 교내웅변대회에 출전해 1등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영광군 대표 연사로 선발되어 도내웅변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었지만 체계적인 지도와 노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탁월한 웅변 실력을 안타깝게 여긴 문용호선생님의 권유로 웅변 특기생을 선발하는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부터 어머님의 병환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누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내던 중 특별활동 시간에 문예창작부와 웅변부를 오가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교내 1등은 물론 전라남도 대표로 선발되어 반공연맹주최 웅변대회 이승복추모 웅변대회 등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교시절 최고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취업으로 진로를 바꿀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도 학업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해 인가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당시 5년제)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산악회와 문예부 활동을 하며 6년 만에 대학졸업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후 장애인들과 함께 사회활동을 하던 중 장애인을 위한 신협을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와 장애인을 위한 신협을 만들면서 복지에 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포부로 동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사회복지사 1급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또한 정치에 입문하면서 정치외교에 관한 체계적인 수학을 하고자 조선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수학 중에 있습니다.
인생관 및 직관
김동리 소설 등신불에 나오는 주인공이 일제말기 태평양 전쟁시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도 치밀한 준비를 통해 희망을 잃지 않고 불교학자로서 대정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간 진기수씨를 찾아가 손가락을 깨물어 `願免殺生 歸依佛恩(원면살생 귀의불은)`이라 혈서로써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의지나 품성에 관계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려오는 숙명적인 고통과 번뇌는 감내하기 힘들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영원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저 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저의 직업관은 무등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진성문화출판사를 경영하며 신협운동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고 느낀 것이 있다면,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행동하고 봉사하는 길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지름길이며, 훌륭한 봉사를 위해서는 실천하는 행동과 품성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보자 지원 동기
김대중대통령 후보 연설원을 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으나 정치환경과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출사표를 던지지 못하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오던 중, 선거법이 바뀌고 정치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이제는 출사표를 던질 시기가 왔음을 직감하던 중 선후배님들의 권유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을 선호하게 된 동기는 2002년 9월 14일 전국어린이집연합회장 시절 한강고수부지에서 노무현대통령후보님을 모시고 전국보육인대회를 개최하고 동년 11월 22일 노무현대통령후보 초청 보육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후보님의 모습을 보고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2년 11월 22일은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와병 중에 계신 아버님께서 임종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남자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제가 돌아올 때가지 기다리시겠다고 하시더니 토론회 도중 임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끝날 때까지 가족들이 알리지 않고 끝난 후에야 알렸을 때 함께했던 어린이집연합회 임원들은 물론이요, 당직자들이 공항까지 배웅하며 문상을 해주셨던 기억을 저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인연을 저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자 저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포부
저의 미천한 이력으로 제 능력을 다 보장 받지 못할지언정 열린우리당 광역시의원 후보로 나서게 될 경우 구의원 후보는 물론 구청장 후보 광역시장후보와 함께 열린우리당의 필승을 위해 그 동안 몸담았던 어린이집연합회 회원들은 물론이요. 23년 동안 운암동에 거주하며 운영했던 사회사업(어린이집,학원)을 하면서 알게 된 수천명의 제자와 학부형, 광주재활신용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알고 지내던 조합원들을 결집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열린우리당의 보배로써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열정을 다할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