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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산 가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碧圓 윤달석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요마는 지는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화담 서경덕.(1489~1546). 관기로 활동하던 황진이는 짐을 싸들고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하던 당대의 최고학자인 서경덕의 처소인 개성 동문밖 화담의 초막을 찿아간다. 3개월간의 수학 기간동안 황진이는 서경덕의 인품과 학문에마음을 빼앗겨 흠모 하게된다. 30년 벽면수도의 지족선사도 파계하게 하고 뭇남성들로부터 총애를 받아오던 황진이는 화담도 보통 남자라고 생각하고 서화담을 유혹 한다. 학문 밖에 몰랐던 서화담도 황진이의 여성적 매력에는 마음이 흔들렸나보다.화담도 목석이 아난 바에야 그럴법한 일이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황진이의 유혹에 빠져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화담도 인간인지라 황진이가 떠나간후 요즘처럼 가랑잎이 굴러가는 소리에도 황진이가 자기한테 오는 발자욱 소리처럼 들렸나보다. 이시에 황진이는 이렇게 답을 한다.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요 명월 황진이. 황이라는 진사와 진금현 이라는 처자의 사이에 서자로 태어난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명기로 화담과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불린다.절세의 미모와 뛰어난 재질로 시문에 능하여 많은 한시와 구슬같은 시조를 남기었다.노래와 서화에도 능하여 많은 문인과 석학들을 매혹시킨 개성의 명기였다.황진이는 진이나이 27세때 만난 명창 이사종을 포함한 8명과 계약결혼에 들어간다. 그래도 진이의 마음 속에는 화담에 대한 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비록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이성으로서의 애정을 은근히 느끼게 된것은 진이나 화담이나 다를바 없었을것이다. 그래서 이런 노래들이 오간것 아니겠는가.다만 그것을 순수한 애정으로 승화 시킨데에 화담의 고매한 덕성과 진이의 반짝이는 총명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는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하는 화담의 은근한 연정을 넌지시 받아서“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인데 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구절은 체념 하는듯 하면서 속으로는 더욱 간절한 애정을 담고 있다. 박연폭포. 개성시내 북쪽 16km 떨어진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높이 37m 폭 1.5m 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이다.폭포가 떨어지는 밑에는 고모담 이라는 폭 40m 의 못이 있고 그 고모담에 용바위가 있는데 바위에는 황진이가 머리칼을 풀어서 물에 적셔 썼다는 초서체의 멋진 글이 새겨져 있다. 개성에서 평양까지의 4차선 고속도로는 남측의 시골길 보다도 로면이 좋지 않았다. 11시에 박연폭포에 도착 하였다. 북한의 어느지역 보다 나무가 많았다. 아마도 박연폭포를 관광지로 가꾸기 위해서 나무를베지 못하게 하였나보다. 단풍도 곱게 물들고 낙엽도 뒹굴고 화담이 느꼈을 낙엽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 박연폭포를 관람 하고 나서 개성시내로 들어왔다. 너무나도 초라한 개성시내.. 호화 스러운것은 딱 한가지 김일성 동상과 공산당의 선전문구 탑 이었다. 그럴돈이 있으면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이나 먹이지....씁쓸한 기분이었다. 12시40분에 통일각 이라는 식당에서 13가지 반찬이 나오는 한정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여자 직원들의 서비스가 아주 좋았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만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는게 영 마음에 걸렸다 .식사와 별도로 냉면을 2달러, 녹두부침을 1달러에 판매하고 있었다. 언제쯤에나 이북의 인민들도 이밥에 고깃국을 맘대로 먹울수 있을런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면 국경을 가보면 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의 국경, 남북한의 국경,등을 가보면 선 하나로 갈리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들을 확연하게 느낄수 있다. 같은 물 같은 공기 인데도 제도와 사상 때문에 그렇게 달라진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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