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전남 등산학교「알프스 3대 북벽 원정대」등반기
글 : 이 현 조
1973년 2월 4일생
전남대학교 산악회
1999년 마칼루 원정
2000년 초오유 등정
마칼루 등정
브로드 피크 등정
K2 원정
프랑스 월드컵 경기여운이 가시지 않은 샤모니에 도착한지 여러날이 지났건만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에 간간히 비가 내려 고소적응차 오르려는 몽블랑행 발걸음을 자꾸 붙잡는다.
매번 시내에 나갈 때마다 장비점에 들리지만 갈 때마다 장비점의 규모와 다양함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7월20일 문종국대장(조대 이공대OB), 진상건(순천대94), 함경준(전남대95), 박상훈(순천제일대97),류승현(조대이공대97) 그리고 필자등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고소 적응차 몽블랑 등반을 시작했다. 3842M의 에귀디미디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급히 고도를 높여서 인지 두통을 호소하는 대원도 있다. 꼴뒤미디를 거쳐 몽블랑 뒤 따꿀봉 아래 도착했을 땐 강풍과 눈보라가 심해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어 눈을 파내고 다져 텐트를 치고 바람이 자길 기다렸으나 밤새도록 텐트밖을 나갈 수 없을 만큼 몰아 쳤다. 알프스의 첫인사를 혹독하게 받고 하산결정. 서로 자일에 의지하고 앞사람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속을 나침반을 보며 내려와 코스믹 산장 아래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내려왔다. 다음날 가이드 회관에서 새벽과 오전엔 맑고 오후에 흐린 날씨가 삼일 정도 반복된다는 날씨를 확인하고 7월23일 그랑드 조라스로 출발했다.
몽땅베르까진 등산열차로 가고 거기서부턴 걸어서 약 네시간이 걸리는 빙하지대가 이어진다. 렛쇼산장 아래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동안 필자와 상건이는 북벽아래까지 정찰을 다녀왔다. 아직 기온이 올라가지 않아 크레바스가 많이 벌어지지 않았다. 새벽 별빛에 보이는 북벽을 목표로 출발, 히말라야 마지막 캠프를 출발할 때 처럼 손발 시리지 않아서, 숨 헐떡거림이 없어서 행복하다. 종국형 지시로 여섯명의 대원들 순서가 정해지고 등반을 시작했다.
현지가이드들이나 등반온 다른 원정대들도 여섯명이 같이 등반한다면 다들 한번씩 더 우리를 쳐다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벽 등반에 여섯은 무리 인지 첫피치부터 속도가 더디다.
서서히 벽에 해가 들고 레뷰파크랙 가는길은 낙빙이 폭포를 만들어 떨어져, 루트에서 벗어나 직등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 선등을 섰던 종국형을 포함해서 모두 흠뻑 젖었고 하늘은 컴컴, 번개까지 쳐서 하산을 결정했다. 여섯시간의 하강후 산장아래 도착하니 저녁 12시다. 다음날 샤모니까지 내려왔다. 쉬면서 각자 수영장으로 암장으로 다니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며 다음 등반을 준비했다. 가이앙 암장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와 등반을 하고 온가족이 바위를 오르는걸 보며 산을 즐긴다는 것과 프랑스 산악계 저력의 바탕을 실감할수 있었다. 7월31일 2차시도 , 지난번 등반때와 달리 산장아래에는 여러팀이 북벽을 바라보며 등반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전 경험을 살려 최대한 빨리, 낙빙이 떨어지기 전에 레뷰파크랙을 돌파했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비박지엔 이미 한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75m디에드로가 끝난 지점에 배낭고리가 떨어져 장비를 잃은 상훈이에게 각자 옷을 나눠 주고 바위에 엉덩이만 걸친채 침낭커버에 몸을 구겨넣고 비박을 했다. 막 눈을 감을 찰라 꿍하는 소리와 함께 낙석이 우리를 덮쳤다. 세명의 중앙으로 떨어지는 바위 덩어리를 보며 눈감는 일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행이 돌출부위에 충돌하면서 깨져 우리를 피해갔다.
하지만 그때부터 온밤을 자지못하고 별만 헤아렸다. 다음날 다시 등반을 개시, 간밤의 추위로 바위가 차가워 선등자가 애를 먹는다. 피치 끝내고 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다음 사람이 올라 올때까지 비비는 일을 반복하며 검정슬랩을 통과할 즈음 부턴 기온이 올라가 등반이 쉬워 졌다. 주위의 산들이 발아래로 보이고 멀리 마터호른이 보이는 지점에선 낙수가 재법 심해 자켓을 입고 신발도 다시 이중화로 갈아신고 올랐다.
회색암탑을 오르고 부터는 낙석의 공포에서 벗어났는데 정상 여섯피치 전 지점부턴 다시 돌들이 부서지고 어떤 바위도 믿을수가 없어 몇 번을 확인하면서 잡고 딛어야 했다. 마지막 세 피치는 믹스 클라이밍을 해야했다. 정상에 서니 새벽 두시 달과 별빛에 보이는 이탈리아 마을들이 아름답다. 일행중 한사람의 아이젠 없는 하산길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절감하며 아홉시간걸려 죠라스 산장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안심할수 있었다.
그랑드 죠라스 등반후 진해에서 작년 몽블랑 등반시 조난당한 분의 사체를 찾기위해 온 등반대와 그리고 이번 원정을 꾸려주신 류재선단장님 이하 고향분들이 격려차 들러 등정을 자축했다
8월4일 째르마트로 이동 야영장에 짐을 풀고 북벽을 찾았으나 구름에 숨이 보이지 않는다. 8월5일 훼른리 산장으로 이동 필자와 경준이가 마터호른 북벽 슈미트 루트의 등반초입까지 정찰을 다녀왔다. 오후 했살을 받아 스노우볼이 생겼으나 내일 아침이면 걷기 좋은 상태이리라. 8월6일 새벽 이번에는 세명씩 2개조로 편성 30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눈 상태가 등반하기 아주 좋다. 세명이 연등하니 일곱시에 설벽을 돌파 하고 앞조와 합류했다. 암빙설이 혼합된 구간이 나오니 정체되어 두 개조가 함께 운행하여 그랑드 죠라스 등반과 같이 되었다.
원정을 자주 다닌 사람은 육감이 발달하나 보다. 종국형이 무전으로 산장에 있는 미애를 자주 찾아 날씨를 물어보는 것이 하산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등을 섰던 상훈의 비명 같은 "낙석"이라는 외침과 함께 중간에 대기하던 형과 상건 위로 '모든게 끝이구나 '생각 들게하는 큰 바위가 떨어졌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신음소리 (여지껏 살아오며 신음소리가 반가왔던 경우는 처음) "살아 있구나" 모든 것에 앞서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수 없었다. 구조헬기가 상건이를 싣고 간 자리엔 온통 붉은 핏자국만 남았다. 내려오며 종국형은 등반을 그만하자고 말했고 난 아이거를 보기라도 하고 가자 말씀 드렸다. 형은 내려가는대로 짐을 꾸려 병원에 가자고 지시를 내렸는데 야영장에 도착하니 상건이가 자고 있었다. 신속한 후송 덕에 입술 봉합 만으로 치료가 끝났다는 것이다.
새로이 힘을 얻은 우리는 구름에 싸여 비를 뿌리는 마터호른을 두 번 보지 않고 아이거로
향했다. 아이거를 오르고 싶은 욕심과 낙석에 대한 두려움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거, 아이거, 아이거
알프스와 동일어로 내게 각인된 산이다. 개인적으론 93년 학교 원정때 교통사고로 못가서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산 .
8월7일 그린델발트에서 바라보는 아이거는 잔뜩 구름을 이고 있다.
마을에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가이드 사무실에서는 이번주 등반은 사실상 불가 란다. 마터호른 사고를 떠올리는 농담으로 그래도 우리가 등반하러 가면 자기들이 헬기를 가지고 따라 온다나. 구름사이로 망원경을 통해보는 북벽은 그들 말대로 눈이 깊고 물이 많이 흘러 내린다. 몽블랑부터 시작된 날씨와 우리의 맞지않는 궁합을 탓하며 산에 다니는 사람이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대로 '기다렸다' 하지만 조바심에 그린델발트에 있지못하고 클라이넥 샤이데로 올라가 목초지에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 간간히 구름 사이로 북벽이 보이면 망원경을 드리대며 기다렸다. 장비점에서 나흘치 날씨를 알아온 형이 내일 출발하는게 어떠냐고 의중을 물어와 하루만 더 날씨를 지켜보며 눈 녹는 것을 기다리자 했더니 형이 OK. 최초 출발하기로 한날 하늘은 화창하고 구름한점없다. 만약 마지막날 날씨가 나빠져 하산이 어렵게 되면 오늘하루 그냥 보낸 것이 천추의 한이 되리라. 그리고 난 '죽일 놈'이 되고.
드디어 8월12일 북벽을 보며 맥주 한잔을 마시며 전의를 불태우고 융프라후에 오르는 막차에 올랐다. 아이거 봔트역에 내리려 하니 승무원들이 난리다 . 우리도 그곳에서는 5분동안 만 정차하여 창 너머로 경치를 보는 곳이란걸 잘 알지만 버티고 사정해서 겨우 기관사의 허락을 구했다. 짐을 풀고 가져온 밥을 먹고 내일의 편리를 위해 해지기전 길을 찾아 줄을 설치하기로 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막차라 여겨지는 열차를 내려보내고 컴컴한 동굴을 따라 내려갔다.(혹시 열차가 올라 오거나 내려 와 깔려 죽으면 어쩌나 하는 큰불안감을 안고) 갱도의 문을 열고 시원한 북벽의 바람을 맞으며 3동의 자일을 설치하고 내려 오며, 여섯명이 오를땐 초입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이 등정의 관건임을 두번의 경험을 통해 얻었기에 등정 예감이 들었다. 새벽 04시 따뜻한 곳에서 편한 잠을 자고 등반을 시작해서 인지 감이 아주 좋다. 어제 설치한 자일 덕에 속도도 빠르다. 거기다 두명씩 한조로 해서 쉬운 구간은 같이 등반을 하니 등반 시간이 줄었다. 길 찾는 어려움이 이전 등반 보다 적어 죽음의 비박지에 일찍 도착했으나 오후 햇살을 받은 북벽은 람페 초입을 온통 폭포와 낙빙구간으로 만들어 더 이상 등반을 불가능하게 했다. 비박지가 넓어 푹 쉬고 북벽이 얼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등반을 시작했는데 선등자와 2등 사이의 로프가 걸려 한시가 반을 소비하고 나니 벌써 날이 밝아와 정상 리스 부위에 쏟아질 폭포수를 생각하며 마음만 조급해진다.
엑시트 크랙부터 쏟아지는 물로 옷이 젖었었는데, 역시 그 위의 리스는 시도도 못하게 큰 폭포를 이루고 있다. 등반루트를 오른쪽으로 틀어 물을 피하는 방법으로 올라가니 낡았지만 하켄이 있어 누군가는 갔다는, 그래서 '여기도 길이다' 라는 확신에 안도감을 느끼며 엑시트 설원 아래 테리스에 옷을 말리며 비박 자리를 잡았다. 다음날 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별 어려움 없이 일곱시에 정상에 섰다. 여섯명이 몰려다니니 어디서나 시선 집중과 감탄사를 받는다. 가이드들을 따라 두명씩 미델레기릉을 통해 오른 산악인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하산. 이제 푹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