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 저자 - 장 베르쿠테(Jean Vercoutter) 著 / 송숙자 譯
· 가격 - 6,000원
· 분량 - 215page
· 출판일 - 1995년 4월(초판 2쇄)
· 출판사 - (주)시공사
· 평가 - ★★★★★
· 批評
이 책은 이집트 고대사를 밝히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고대 이집트의 유산이 어떤 식으로 사라지고,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남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집트 고대사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문화유산이 오늘날 남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특히 고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어떤 식으로 세계 열강들에게 수탈되고 훼손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역시 유럽 열강들과 일제에게 수없이 많이 수탈되었기 때문에 이집트 문화유산의 수탈 과정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책은 첫장부터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한다.
4세기 이후 비잔틴 제국에서는 카톨릭이 지배적이었다.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이교도 신전 모두 폐쇄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 무렵 이집트에는 전통적인 신(神)이나 여신을 신봉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신전의 폐쇄는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까지 그곳 사이에 쓰이던 상형문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며,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한 나라의 수천년 역사가 어둠 속으로 파묻혀 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고대사를 말살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집트인들의 문화적 전통을 소멸시키려고 계획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이집트인들은 그들 선조의 종교적 · 문화적 소산을 상실한 상태였고, 전혀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던 정책의 실행으로 인해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문화재 얘기를 할때면 으례 근대 서구 열강이 약탈해간 문화재들과 일제강점기때 약탈당한 문화재들(지금 반환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수없이 외치고 있는)에 대해 거론하며 비분강개한다. 물론 필자 역시 마찬가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우리 문화유산을 상실할만한 바탕을 마련한 적은 없었을까? 예를 들어 오늘날 기독교 단체에서 단군상을 부수고, 문화재로 지정된 불교건축물의 정당성을 따지고 드는 것처럼 우리 역시 종교적 · 문화적인 기준이 바뀜에 따라 우리 스스로 우리 선조의 문화를 외면하고 잃어버린 적은 없었을까? 당연히 없었다고 얘기하지 못 할 것이다. 유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잡으면서 우리는 수천년 불교문화를 상실했고, 그 유교문화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고 바뀌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다. 이후 찾아온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그런 문화재의 상실을 더욱 더 가중시켰고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게끔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집트에 저만큼의 문화유산이 남아 다행인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문화유산을 이제는 지켜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 장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집트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차례의 사건때문에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집트 고유 종교가 사라지면서 신을 숭배하는데 읋었던 문자가 사라졌고, 그 후손들마저 그 문자를 아는 이가 없게 되었다. 이후 카이사르의 알렉산드리아 침공으로 인해 70만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관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화재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450년 무렵에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 중 상당수가 사라졌고, 고대 이집트 문헌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남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날 한국 고대사를 공부할때『삼국사기』나『삼국유사』(그 시대부터 상당히 후대에 만들어진)를 갖고 연구하는 것처럼 이집트 역시 그런 전처를 밟게 된 것이다. 우리가 몇몇 단편적인 금석문을 애지중지하면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처럼 이집트 역시 로제타스톤과 같은 몇몇 중요한 금석문을 토대로 그 역사적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으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동질감이랄까,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다. 또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 중국 문헌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이집트 고대사에 있어서는 헤로도토스, 디오도루스, 스트라본, 플루타르크와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장가들이 남긴 여행기가 중요한 자료로 남게 되었다. 제3자의 시각으로 쓰여진 기록이지만 그나마 이집트에 대한 단편적인 역사는 그렇게라도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집트하면 벨조니를 가장 처음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이미 17세기 초 테브노와 같은 선교사들이 이집트를 방문해 미라, 문화, 풍습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19세기에는 프랑스 총영사 브노이 드 마예와 같은 악명높은 유물 약탈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집트에 대해 포괄적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으며(거기에는 1735년 케옵스의 피라미드 단면도를 정확한 측량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도 포함된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물들을 약탈하여 본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클로드 시카르 신부는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면서 최초로 이집트 지도를 완성하기도 했으며, 비방 드농은 이집트학의 탄생에 크게 기여할 정도로 학문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방 드농의 연구성과는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위원회는 2년 간의 준비 작업을 거친 후 기념비적 저술이라 할 수 있는『이집트지(誌)』를 남겼다고 한다. 이집트의 초창기 학문적 성과는 로제타스톤이 그 시초인 줄 알았는데 이미 18세기 말에 이러한 학문적 성과가 이뤄졌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자국의 역사가 아닌, 안개 속에 가려진 타국의 고대사를 말이다. 이 책의 번역판이 나와있는지 한번 찾아보고 싶을 뿐이다.
실제 비방 드농의『이집트 나일강 상류와 하류 여행기』, 동방원정대 과학 · 예술위원회의『이집트지』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집트 열기가 유행처럼 번져 나갔고, 1802년부터 1830년 사이에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등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이집트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학문적 성과는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왔으니 바로 유물 약탈이 이전보다 더욱더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도굴 안내서까지 나왔을 정도니 말 다했다. 특히 오스만투르크 황제가 임명한 이집트 총독 모하메드 알리가 이집트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유물 약탈을 조장했으며, 드로베티나 헨리 솔트, 벨조니 등 유명한 약탈자(?)들이 루브르, 대영박물관의 수장고를 꽉꽉 채워주기 시작했다. 카이로 항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범선에 실려 지중해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떠났던 것처럼 부산항에서도 수많은 유물들이 증기선에 실려 현해탄을 가로질러 일본으로 떠났을 것이다. 지금은 정창원 곳곳에 쳐박혀 있거나 어딘지도 모른채 숨겨져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후 샹폴리옹이 로제타스톤을 해석함으로써 고대 이집트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고, 마리에트, 가스통 마스페로, 하워드 카터, 피에르 몽테 등 수많은 이집트 유적들이 학문적으로 발굴 조사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야기는 일단 여기에서 끝을 맺는다. 투탄카멘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벌어진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전하면서 말이다. 아마 하워드 카터가 그 앞에서 느꼈을 전율은 김원룡 선생님이 무령왕릉 앞에서 느꼈을 전율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 투탄카멘의 무덤 역시 다른 무덤을 조사하기 위해 쌓아놓은 흙더미 때문에 나중에 발견된 것처럼 무령왕릉 역시 다른 무덤때문에 가려져 도굴(도굴적 발굴조사든 뭐든)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필자 역시 평생에 그러한 대단한 발굴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데, 언제 기회가 올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집트 사막 어딘가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대단한 유적들이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도 파면 무조건 유적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한 책의 뒷부분에는 아부심벨 구조작업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책에서도 보고 다큐멘터리로도 봤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완댐 공사로 인해 거대한 석조구조물을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다니. 우리 나라에서도 수많은 댐공사가 벌어지고 그로 인한 구제발굴이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물론 그 안에서 아부심벨 신전과 같은 거대한 시각적 효과를 가진(이건 그만큼 돈벌이가 될만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적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러한 보존작업은 행해지지 않겠지만, 무조건 유적을 조사하고 덮어버리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밖에 이 책의 저자인 장 베르쿠테의 하루를 소개한 '고고학자의 하루'라는 1장짜리 챕터 역시 볼만하다. 뭐 오늘날 고고학자의 삶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이렇게 일기 형식으로 매일매일을 기록해두면 나중에 그 스스로에게 굉장히 좋은 기록자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고학자라면 누구나 현장에서 야장이라고 하는 작은 수첩에 그날그날의 일들을 기록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매일의 작업 진행상황을 알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훗날 보고서 작업을 할때 도움을 얻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유적을 조사할때 그 진행과정을 자세히 남김으로써 자료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걸 보면 필자 역시 외국에 나가서 이런 발굴조사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매일매일 남기면 필자 또한 훗날 이처럼 책을 쓸때 서먹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책은 전체적으로 많은 삽화와 도판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읽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책 가장 뒷편에는 이집트 왕조의 연표를 서술해 놨는데 이집트사를 개략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한국 고대사의 현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다른 독자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