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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 - road[4-1] 또! 출발.
2003년 8월 26일, 화. 기차 이동 = 칭다오[靑島]-지난濟南]-타이안[泰安].
"실크로드[Silk road : 絲綢之路]" 여행"
** 칭하이성의 씨닝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내가 중국 국기를 들어 주면... 그런데 태극기는 어디로 갔지?? - 칭다오 조보[靑島早報] 보도사진. Silk road 전 과정을 보도 하였다. **
♣ 출발
현재시각 20시 25분.
칭다오[靑島]발 씨닝[西寧]행 기차는 정확하게 18시에 출발하여 방금 전에 웨이팡[濰坊]을 지나서 어둠을 가르면서 시속 110km(?)의 속도로 힘차게 지난[濟南]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기차가 떠나고 나서 각자의 짐이 선반과 침대 밑에 정리되고 침대위치가 정해지자 40여 시간을 기차여행 할 준비는 끝이 났다.
이번의 4차 기행의 목적을 굳이 나열하자면 ...
고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여행하고자 하는 실크로드에 대한 동경으로 나도 가서 느끼고 싶음이 하나 있고,... 늘 그랬듯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찾는 수도승 같은 여행이고자 했으며.... 거국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중국간의 우호증진과 2008년에 있을 베이징 올림픽을 알리자는데 목적을 두었다.
** 우리를 싣고 씨닝으로 간 17? 열차 - 가는 표에는 K-172 열차라고 써있고, 오는 표에는 K-173... 열차에는 K174/171이라고 써있으니... **
♣ 여행계획은 우선 일정을 보자면 2003년 8월 26일(화)부터 9월 24일까지 30일간으로 하고, 참가 인원으로는 자전거를 탈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과 현지인을 각각 3명으로 하려고, 여러 매체를 통하여 지원자를 찾았으나 이번에도 시기적으로나 너무 긴 기간 등등으로 인하여 고국에서의 지원자가 없었다. 결국은 신문을 보고 찾아 온 현지인 5명이 결정되었다.
이번 기행에 있어서 의미가 더 큰 것은 칭다오 조보 기자 2명이 우리 뒤를 따라 가면서 우리들의 자전거 타는 전 과정을 보도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고국으로 제 3차 기행을 갔을 때, 칭다오에서 따라 간 칭다오 조보 한광량[韓光亮]기자는 우리가 서울에 도착한 7월 1일(13일 차)에 칭다오로 돌아 왔었는데... 그렇게 기자가 중간에 돌아옴으로 해서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이번에는 전 과정을 보도함으로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됨은 물론이고, 싼뚱지역에 거주하는 6만 한국인들에게도 한국인의 긍지를 심어주는데 있어 매우 고무적이 될 것이다.
♣ 루트를 짤 때에 중국전역을 돌아보는 것으로 정했는데, 이미 현지에서 두 차례 중 한 번(2차)은 실크로드의 일부(란저우-씨안)를 지났다. 그리하여 가장 큰 호수가 있는 칭하이성의 씨닝에서 출발을 하여 치렌 산맥을 넘어서 실크로드로 들어가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그래서 이번 기행 계획로는 싼뚱 칭다오에서 기차[火車]로 40여 시간에 걸쳐 칭하이[靑海]성 씨닝[西寧]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치렌[祈連-기련]산맥(최고봉은 해발 5,547 m )을 넘어서 깐쑤[甘肅]성의 짱예[張掖]로 갈 때는 해발3,800m의 따빤[大坂]산 (기련산맥에 있는 산)을 넘어, 지아위꽌[嘉峪關]을 거칠 것이다.
계속 서쪽으로 달려, 불교문화를 꽃 피운 뚠황[敦煌]을 유람하고, 웨이우얼의 투루판[吐魯番], 우루무치[烏魯木齊]로 건너 갈 때는 1,600여km에 이르는 타클라 마칸[Takla Makan-塔克拉瑪乾] 사막과 고비[Gobi-戈壁]사막의 중간지대를 가로지르는 기행으로, 이 길은 쌍하이에서 출발하여 난징, 허페이[合肥], 씨안, 란저우[蘭州]를 거쳐서 오는 312선[線]국도로 신강 웨이우얼 자치구로 들어가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많고, 연간 강우량은 38mm정도의 사막지역이다. 자전거 예상 이동 거리는 약 2008km이며, 총 이동 거리는 9,000여 km정도 될 것으로 파악되었다.
♣ 참가자 =
이쯤에서 참가자의 면면을 소개를 하자면.... 칭다오에서 기차를 탄 사람은 모두 8명이다.
첫 번째는 최고령의 조대승[趙大勝 - 차오따썽]으로, 올해 57세의 로터얼[老頭兒-노인]로서, 지난해 봄에 혼자 칭하이성 씨닝까지 2,500여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여행을 한 경력이 있으며, 이번에는 씨닝에서 우루무치까지를 연결함으로, 칭다오에서 우루무치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 최초(?)의 칭다오 사람이 될 대단한 아저씨로 이미 퇴직하여 연금으로 생활을 하며, 여든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산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그녀는 자칭 "나의 영원한 자전거 기행 퉁즈[同志]"로서 첫 번째 베이징 가는 기행에 참가를 하여 성공을 한 7명 가운데 한 사람인 윤 상 미[尹相美 - 인샹메이]여사로, 57년 생의 아줌마이며,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예쁜 딸이 있고, 늘 수영과 달리기로 몸을 단련하는 대단한 여성동지로 언제나 웃음이 앞서는 낙관주의자이다.
세 번째는 황개[黃凱 - 황카이]로, 실크로드로 자전거 기행을 떠난다는 칭다오 조보 기사를 보고, 뒤늦은 참가 확정으로 출발 바로 전날 오후 늦게 나타나서 불야불야 자전거를 맞추어 참가를 한, 1963년 칭다오 산의 몸무게가 만만치 않은 아저씨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고 하는 자영업자이며, 붓글씨에도 조예가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푹 빠져 즐기는 중으로, 가는 중간에 자신의 이름을 온 라인 상의 이름인 서월[西越,씨위에-서쪽으로 여행을 가기에 지은 이름]로 불러 달라고 주문을 하기도 하였다.
네 번째는 송충루[宋忠壘 - 쏭쫑레이]로 금년39세이며, 키가 1미터80센티미터가 넘는 건장한 청년으로 6살의 귀여운 딸과 자그마한 아내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으로 한족이며, 이미 티벳의 라싸에도 가 보았으며, 웨이우얼의 우루무치도 가 본 모험을 좋아 한다고 한다. 그 큰 덩치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말하는 태도나 하는 행동을 보면 '곰'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다섯 번째는 자칭(?) 총각으로, 이름은 총의[叢毅 - 총이]이고, 68년 칭다오 산이며, 해보지 않은 직업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종에 종사를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운전사, 지우바[酒 -술집]운영, 레져 스포츠 지도원, 화장품 배달원등이 있는데... 나와는 그가 바(Bar)를 운영 할 때인 2년 전에 만난 중국인으로 한족이며, 칭다오와 씨닝에는 맞는 안전모가 없을 정도로 머리통이 크며, 턱은 사각이다. 이번 기행에서 외국인인 내가 한계가 있으므로 나를 많이 도와 달라고 하면서 단장[團長]질을 맞아 달라고 했는데....
끝으로 이 여행기를 쓰는 본인은 김 광 옥[金光玉]으로 단기 4292년 4월 15일생이고, 사전 읽는 것이 취미이며, 어느 사이 중국생활 5년을 넘겼고, 김치찌게를 좋아하며, 본 기행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번 기행에서 유일한 대~한국인이다.
이렇게 6명의 자전거 탈 사람 외에도 칭다오 조보에서 우리가 자전거로 도전[挑戰]하는 실크로드의 전 과정을 독점보도하기 위하여 따라 가는 두 명의 남녀 기자가 있으니... 섭향봉[聶(nie)向鋒-니에향펑]주임과 그의 뚜이썅[對相-애인]인 민여[閔妤 -민위]기자이다.
둘은 뜨겁게 열애 중이며, 자전거를 타는 중에 이들 때문에 '샘'이 많이 날 것이고... 많은 차취[揷曲, 逸話-Episode]가 쏟아질 것이며, 그래서 여행기를 쓰는데 있어서 기대도 많다. 이외에도 씨닝에 닿아서 기자(섭향봉과 민여) 2명을 태우고, 우리의 짐을 싣고 갈 차를 구하면, 차량을 몰고 갈 운전사가 한 명 더 추가 될 것이다.
이렇게 8명이 문이 없고, 6개로 이루어진 침대칸인 잉워[硬臥-딱딱하고 싼 침대칸 - 중간 침대가 287위엔]에 자리를 잡았다. 표는 겨우 7개의 침대표만 구하여, 8명이 기차에 오른 것이다. 1장의 표는 오르고 나서 해결을 하기로 하고....
♣ 출발 전에
기차[火車]를 타기 전까지의 풍경을 엮어 보자.
어제 말하기를 내일 오후 3시에 미장원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이유는 그 곳에서 근사하게 폼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자전거로 칭다오 조보[靑島早報]로 이동을 하여, 그 곳에서 간단히 출발식을 하고자 했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관계로 각자 차를 타고 칭다오 조보로 모이라고 통발을 띄웠다.
각자가 이렇게 저렇게 칭다오 조보로 모였고, 그곳에서 칭다오 조보 사장일행을 기다리는 한편으로, 나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칭다오1TV의 뉴스 앵커 웅위[熊偉:웅웨이]가 달려 와서는 뉴스를 찍고 하느라고 시간이 꽤나 흘렀다.
모든 일정이 끝이 났을 때는 기차 출발 시각이 임박한 때였고, 허둥지둥 기차역으로 이동을 하였으나,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오늘은 자전거를 보낼 수가 없다" 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어서 자전거는 수화물로 붙이고, 역까지 따라 나온 열렬한 후원자인 아내와 귀여운 두 딸, 그리고 변함없는 지원자인 이은영 여사의 환송을 받는 둥 마는 둥.... 이틀간 기차에서 먹을 라면과 과자가 잔뜩 들어 있는 부식상자를 양손에 들고는 뛰어서 플랫 홈으로 이동을 하여 겨우 씨닝행 기차에 오를 수가 있었다.
♣ 우리만 먼저...
그렇게 자전거를 남겨 두고 가는 마음은 걱정이 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기차에 오르면서도, 한편으로 자전거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는 "이 것도 현지의 문화 체험이다. 자전거가 제 때에 안전하게 오는가? 도 보고 싶다." 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고 떠났지만, 내가 걱정이 더 많이 앞선다.
혹시라도 취급을 잘 못하여 바퀴라도 뒤틀리는 날에는 씨닝에서 손을 보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고, 혹시 처리를 잘못하여 다른 역으로 간다. 든지? 아니면 칭다오에 그대로 보관을 하고 있으면 어쩌나하는 등등의 .... 걱정들.... 이 글을 정리하고는 총의에게 물어 재차 확인을 하여야겠다.
잠시 기록을 멈추고 물어 보니... 섭 주임이 신문사로 전화를 했으며, 내일 역으로 재차 전화를 하여 처리를 할 것이니 안심하란다.
♣ 기차안의 풍경
잠시 기차 안의 풍경을 살펴보면.... 이미 우리 일행은 칭다오에서 떠나기 전에, 아내와 함께 초대형 창고형 매장에 가서 싼 가격으로 풍성하게 준비한, 맛있는 한국식 컵 라면과 훠투이[火腿 - Ham], 과일 등으로 저녁을 맛있고 충분하게 해결하였다.
무거운 일반 자전거를 가지고 있던 총의는 자전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빌려 주었더니, 이번에는 사정이 많아서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 우해초[于海超 - 위하이쵸]의 자전거를 떠나기 바로 전에 빌렸다.
그는 지금 해초에게 빌려온 장갑이 오래되어 여기저기 터졌기에, 맨 꼭대기 3층의 침대에 엎드려서 준비해 온 실과 바늘을 꺼내어 열심히 꿰매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 아래 2층에는 1차 기행에도 참가를 하여 베이징까지 2,400여 킬로미터를 무난히 성공했던 윤 여사가 누워 잠을 청하고 있으며, 맨 아래 제일 비싼 1층 침대에는 예비부부(?)인 섭 주임과 민 기자가 말없이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조 영감님은 라면을 먹기 전에 이미 군용 수통에 담아 온 40도짜리 백주[白酒]를 혼자 여러 잔을 마셨고, 취기가 오른 듯 창가의 의자에 비슷한 연배의 다른 여행객과 마주 앉아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이 되었는데.... 우리가 이전에는 자전거를 어떻게 탔고, 지금은 왜? 이렇게 어디로 가고 있다고 하면서, 말끝마다 "한궈 펑여우[韓國朋友 - 한국친구]와 쩐더[眞的-정말]를 넣어 가면서 한국과 나를 침을 튀겨 가면서 열심히 상대에게 설명을 한다. - 쎄쎄 따꺼[謝謝大哥! - 고맙습니다 형님!]
옆 칸에는, 어제 늦게 참가를 하겠다고 의사를 밝혀, 밤 늦게 까지 자전거를 맞추느라고 고생한 서월[西越]선생이 온통 어려운 고문체로 된 중국의 4대 명저중의 하나인 홍루몽[紅樓夢]을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그는 200근[斤:한 근은 500g으로 중국은 모든 무게단위를 근으로 말한다.]은 능히 넘을 덩치에 어울리게 저녁상(?)을 차렸을 때에 보니, 모두 하나씩 먹고 만족 해 하는 컵 라면을 2개를 먹고도 30커[g]짜리 훠투이 3개, 본인이 별도로 준비한 오이하나 등등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먹는다. 하기는 그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내일은 그의 몸무게가 몇 근이나 나가는지 슬쩍 물어 보아야겠다.
방금 윤 여사가 내게 무엇을 하냐고 묻기에 현재 열차 안의 상황을 정리한다고 하면서 당신은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고 기록에 남겼다고 전해 주었다.
조 영감님의 약 2시간에 걸친, 지난 1,2,3차 올림픽 홍보 기행단 활동 사항의 열띤 강의도 막을 내렸다. 나는 또 하나 남은 맨 꼭대기의 침대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무 덥다고 하니, 송충루가 바꾸어 주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 준비
21시20분. 노[魯]나라의 수도였다는 도자기로 유명한 쯔보어[淄博-치박]를 지나갔다.
밖을 내다보니, 노란 불빛이 유리창에 금을 긋고 연이어 지나간다. 그렇게 스치고 지나가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이번 기행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빠르게 뇌리를 스친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기행의 경비문제였다.
이번에도 백방으로 뛰었지만 겨우 지난 번에 고국에 같이 들어갔던 한 광 량 기자의 소개로 지금 기차에 같이 앉아 있는 섭향봉 기자를 만났고, 그가 어렵게 잡은 스폰서는 복리채표[福利彩票]라는 복권회사로 서녕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는 자동차의 임대료가 될 만큼의 자금이 찬조되어, 이번의 실크로도 기행단이 만들어 졌고, 참가자를 찾는다고 칭다오 조보에 보도가 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연결이 되었지만, 일반 노동자 3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참가 경비를 내야 한다고 하자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들었었다.
♣ 마무리
이번 여행의 출발 전에는 거의 연습을 못했다.
나 혼자 칭다오의 명산으로 도교사원인 태청궁[太靑宮]이 있는 로산[山+勞山]을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지난 7월 고국에서 돌아온 후에 지금까지 자전거를 탄 거리는 586.96킬로미터이고, 재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탄 총 거리는 14,932킬로미터이다.
이번의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1만7천 킬로미터에 육박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기행을 마치고 나면 속도계의 띠엔츠[電池-battery]를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살 때 직원의 이야기가, 제작사는 3년 보장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2년을 확실히 보장을 하겠다고 하였었는데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아뭏튼, 고국에서 돌아 온지 한 달...
주변의 여건도 얽히고 설켰고, 모든 준비가 어설픈 가운데서 나는 서둘러 꽁지가 빠져라하고는 씨닝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또, 출발을 하였다. 결국은 네 번째 기행에 오른 것이다. 열차가 빠르게 달리는 만큼 밤도 많이 깊었으니, 나도 이만 줄이고 기차의 쇠 바퀴가 만들어 내는 덜커덩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야겠다.
정리 : 2003년 10월 22일. 칭다오에서. 2004년 3월 24일 정리해서 옮김. 2004/07/05 또.... 04/08/16 마무리. 13년 7월 24일 옮김.
= 이전 기행[騎行]은 =
++ 타이안에서 태산을 배경으로... ++
먼저, 이번 자전거 여행기를 쓰기 위하여, 지난 1,2,3차 여행을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1차 기행은 지난해(2002년) 5월 9일부터 6월 1일까지, 총 24일간에 거쳐,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함께 중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하고,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축하하기 위한 기행으로, 중국 싼뚱의 칭다오를 출발하여 아래로 샹하이[上海], 난징[南京], 쉬저우[徐州]와 중간의 지난[濟南], 티엔진[天津]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베이징[北京]까지 2,397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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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1편읽고 오늘 2편봤습니다...상상도 할수없는 키로수를 달리시네요...
앞으로도 잘읽어 보겠습니다...멋지십니다~~
짐 싣지 않고 빈 자전거이고.... 평지 갘은 곳이면. 문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