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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제1화
노인과 개
- 은유시인 -
1.
그의 나이 아직은 50대 중반이니 노인이라 부르기엔 좀 이른 나이일까? 하지만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면 겉보기론 누가 봐도 칠순을 훨씬 넘긴 노인의 행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가 무너져가는 육신에 체념하고, 더 이상 세상에 대한 애착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니 누가 노인이라 부른다 한들 개의치 않았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병색마저 완연한 그의 몰골은 실제 나이보다 열 댓 살 이상은 더 겉늙어 뵈게 하고, 오랜 기간 깎거나 다듬지 못한 머리털과 턱수염은 회색 털 뭉치가 한데 엉켜있는 듯 볼썽사납기까지 했다. 움푹 패어 들어가 퀭하니 보이는 두 눈은 이미 초점이 흐려있고, 두 다리조차 성치 않아 걸음새마저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를 눈이 삐지 않은 이상 아직 오십대라 하여 믿을 이는 없을 것이다.
노인은 거리로 나서길 심히 두려워했는데,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신에게서 똥물이라도 묻을까 몸을 사리는 듯하고,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 자신을 혐오스레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심으론 ‘사람들이 하필 나 같은 인간에게 관심을 갖기라도 하겠냐만…’이라며 애써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봐도 실상 남의 시선에서 오는 부담으로부턴 좀처럼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왼쪽 발이 당뇨로 썩어 문드러져 은근히 죽여주는 그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걸음새마저 남들 시선 앞에선 괜한 주눅이 들어선지 더욱 주체할 수 없이 뒤뚱거리며 허우적거리는 품새로 걷게 되는 것이 그 스스로에게도 영 마땅찮은 것이다. 그 때문에 근래 들어 그의 바깥나들이는 좀처럼 드문 일이 되었다.
노인은 꼴에 유별나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사람이란 늙고 병들고, 또 가난하기까지 하여 굶주림과 병마의 고통에 찌들수록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한 가닥의 체면마저 놓는다했다. 그런데 그는 솜털 같은 자존심을 끝내 놓지 못하고, 그 결과 더욱 혹독한 굶주림과 고통 속으로 자신을 채근해가는 것이다. 사나흘 굶어 아무리 허기진 배를 움켜쥘지언정 비럭질은 절대 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되풀이되는 창자가 뒤틀리거나 사지가 찢겨나가는 고통 중에도 그 고통을 누구에게 호소하여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굶주림과 신체적 고통도 내성이 생겨 웬만한 것쯤은 그냥 일과로 받아 들일만 했다. ‘내 자신의 능력으로도 어찌 안 되는 것은 오로지 참고, 참고, 또 참는 것뿐이다.’라는 것이 그 자신에게 있어서 더 이상 남들로 인해 구차해지지 않는 마지막 자존심의 보루요, 그 고통을 잠시라도 삭일 수 있는 자기최면인 것이다.
노인이 갑자기 쇠약해진 것은 최근 이년 여 사이의 일이다. 물론 그 몇 해 전부터 심한 무력증에 빠져 칩거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몸의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렇다 할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다. 원래 건강한 체질이라 병원이나 약국 같은 데는 발걸음을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이었고, 낙천적 성격이라 여태까지의 삶을 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노인은 몸이 안 좋다 싶으면 잠을 충분히 잠으로써 잘 극복해 내었고, 그런 나름의 자가요법은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과 두려움, 좌절까지도 물리치게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활용되어왔다. 아플 때는 물론, 아무리 고단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되더라도 잠을 푹 자고나면 거짓말처럼 그 모든 것들이 말짱하게 걷히고 해결되는 것이다.
노인은 이년 전쯤 지역의료보험조합에서 실시하는 무료건강검진결과 ‘당뇨와 고지혈증’이란 판정을 받은바 있다. 그러나 이미 3년여 넘게 의료보험료가 밀린 탓에 보험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을뿐더러, 얼마라도 부담해야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원래 다부진 체격이었던 터라 여태껏 잔병치레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만큼 은연중 건강에 대한 확신이란 게 깔려있기에 계속 방치해왔다.
처음엔 당뇨나 고지혈증은 귀족병이라 하여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들에게만 걸리는 병으로 알고 있었고, 자신처럼 ‘하루 두 끼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에게 가당키나 한 병인가.’라는 의구심마저 가졌다.
그런 병원진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몸이 훌쩍 여위어가는 것을 느꼈다. 복부는 오히려 팽배해져 임산부의 배처럼 불거져 나오는 반면, 그 외 가슴이나 어깨, 목덜미, 허벅지 등의 살들은 녹아내리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가뜩이나 고도근시였던 시력도 점차 침침해지더니 글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관절도 부실해졌는지 좀 걷거나 무리하면 해당관절들이 시큰거리고, 특히 잠을 잘 땐 온몸의 뼈마디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 몸을 뒤척이기조차 어렵고, 속모를 깊은 통증으로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두 발 모두가 썩어가고 있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엔 발이 저리고 묵직하게 여긴 정도로 시작된 것이 점차 감각이 둔해지더니 물집이 생기고 여간 가려운 게 아니었다. 자꾸 긁다보니 상처부위는 점점 커지면서 붉은 색을 띠고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당뇨나 고지혈증에 관한 약간의 상식이 있어 은근히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취할 방법이 없어 약국에서 요오드팅크, 가재, 연고 등을 사다가 자가치료하는 정도로 만족해야했다. 상처부위는 지속적으로 가려웠는데, 가려운 건 도무지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가려운 상처부위를 긁다보니 나중엔 그 짓이 마치 유일한 소일거리처럼 되었는데, 긁는 것 자체로 묘한 쾌감을 얻게 되고 또 은연중에 즐기게끔 된 것이다.
소싯적 발가락에 심한 무좀을 앓았을 때, 그 긁는 쾌감으로 보다 쉽게 완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무좀을 지녀왔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려워도 어르듯 살살 살펴가며 긁어야지 괜히 박박 긁을 수는 없는 것이, 자그마한 자극에도 가려움증은 이내 칼로 도려내는 듯한 지독한 통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손톱 대신에 넓은 아크릴조각으로 상처부위를 넓게 긁는 요령까지 터득한 것이다.
2.
노인이 과거 20여 년간 운영해오던 인쇄지기공장을 처분하여 상당한 빚을 정리하고, 부산 변두리에 속하는 감천 쪽에 겨우 허름한 하꼬방 같은 열여덟 평짜리 임대사무실을 얻어 사무실 겸 주거공간으로 사용해온지도 벌써 6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그 사무실을 장만했을 때만 해도 갓 50을 넘긴 나이라 비록 낡고 비좁은 사무실이긴 해도 새 출발을 다짐하는 나름대로의 계획과 포부가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오랜 기간 거래해왔던 과거의 거래처들로부터 소소한 일거리를 맡아 그런대로 쪼들리지 않고 지낼 만했으나, 그 거래처들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어느덧 끼니거리를 걱정해야하리만큼 생활이 곤궁해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뒤늦게 철든 아이처럼 비로소 세상의 큰 흐름을 깨달았다. 세상의 인심이란 것은 내가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나 후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지금처럼 남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엔 차디찬 빙벽처럼 냉정한 것이다. 친지들은 물론 일가친척들마저 그가 찾아가기라도 하면 도움이라도 청할까 싶어 미리 설레발을 치는 것이다. 그러니 애써 찾아가봐야 실제 별 도움도 얻을 수 없을 바엔 굳이 찾아가야할 이유마저 없다싶어 그들과 담을 쌓은 지 오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신용이요, 돈이 곧 인격이다.’란 금권만능의 정서가 팽배해있다. 같은 사람을 놓고도 돈을 많이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에 따라 귀히 보이게 하거나 하찮이 보이게 하거나하여, 그 사람의 인물 됨됨이나 내재된 능력보다 우선하여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노인에게는 그런 사회정서 외에도 ‘돈은 곧 생명이다.’란 실감이 보다 앞섰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고 병들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돈은 곧 생명 이상의 가치를 지닌 지고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와 건강상태도 사람의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젊고 건강한 육체를 지녔을 땐 가난이란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없으나, 특히 늙고 병들었을 땐 가난이란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가 있으며, 그로인한 자괴감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더해가는 경제적 궁핍은 대외활동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그를 크게 위축시켜, 점차 사람들을 멀리하게 하더니 어느새 병적으로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무실에 사용하지 않고 처박아놨던 컴퓨터를 가까이하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후부턴가 채팅에 재미를 붙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달렸다.
처음엔 채팅 대화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내용을 들여다보며 ‘별 유치한 짓거리들이라니….’라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했으나, 대화창에 신기한 그림들이 올라오고, 또 신청곡을 부탁하면 누군가가 그 음악을 들려주고, 그들의 대화를 눈여겨보게 되면서 참 별난 세상이 모니터 너머 존재하고 있음에 마냥 신기하고 어느덧 그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채팅사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20대나 30대로, 40대도 더러 있지만 50대 이상은 거의 없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의 나이가 55세란 것은 현실세계와는 달리 사이버세계에서는 ‘지극히 연세가 든 노인’으로 취급되기 십상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그를 ‘어르신’으로, ‘큰형님’으로, ‘오라버니’로 부르기 예사요, 어떤 이들은 한 술 더 떠 ‘노인장’이니 ‘할배’라고까지 부르길 주저함이 없었다.
대화방에서 사용하는 대화명도 가지가지로 어떤 대화명은 그 사용자의 이미지를 미화시키기에 충분한 것도 많았다. 여성의 경우, ‘클레오파트라’, ‘밤이슬’, ‘별빛초롱’, ‘별빛처럼영롱한비단’, ‘유츠프라카치’, ‘꿈꾸는오선지’, ‘붉은장미’, ‘달가르기’, ‘사랑한줌’ 등 실제 상대의 모습이나 성격, 환경 등이 어떻든 간에 일단 상대에 대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거나 환상적인 상상을 부추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속의 이미지를 지닌 그녀들에게 접근을 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현실에서의 어려움은 깡그리 잊게 되고, 그 자신도 상대에게는 노련한 사업가요, 재산가요, 사회적명망가로 둔갑되어 맘껏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이 채팅에 재미를 붙이고 대화방을 들락거리며 많은 여성들과 일팅(1:1대화)을 하다 보니,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실제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상상속의 여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망감을 애써 감추고 상대를 대했지만, 그를 본 대부분 상대여성 또한 그의 형편없는 추한 몰골과 남루한 행색에 적잖이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기껏 차 한 잔이나 식사 한 끼 마주하고는 곧바로 헤어지기 일쑤였다.
채팅에 어느 정도 이골이 날 무렵, 그는 여기저기 사이트를 섭렵하다가 여러 군데의 문학사이트를 알게 되어 그들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고 또 재미삼아 글을 하나둘 써서 올리기 시작했는데, 글 쓰는 재미가 너무나 새삼스럽고 놀라워 그런 즐거움을 왜 진작부터 몰랐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다. 원래 글을 좋아하고 따라서 책에 남달리 욕심이 많았기에 글을 쓰는 데에도 쉽게 적응하였다.
간단한 신변잡기부터 쓰기 시작한 그는, 시며 수필이며 소설이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내키는 대로 써나갔다. 잠자는 시간과 생리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짧은 시간 외에는 눈 뜬 시간 대부분을 글을 쓰는데 소비했으며, 그만큼 글쓰기에 재미와 열의를 갖게 된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당장 코앞에 들이닥친 모든 고통과 시름을 잊을 수가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도 그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의 생각을 글 속에서 자유롭게 그려낼 수 있어 좋았다. 잠재되어 있던 분노와 욕구, 잊혀가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젊은이의 감성처럼 펄펄 살아 꿈틀거림을 느꼈다.
현재 노인에게 있어 유일한 수입이라고는 동사무소에서 매달 그의 통장으로 입금시켜주는 월 26만 원 남짓의 영세민생활안정지원금이 전부로, 그 돈도 오랜 행정사무와의 힘겨운 겨룸 끝에 1년여 전부터 지급받기 시작했다. 사무실 임대료 월 12만 원과 매달 이삼만 원씩 나오는 전기료, 3만 원 남짓의 인터넷사용료를 제외하면, 실제론 끼니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적은 금액이었다.
따라서 만만히 밀리는 게 사무실임대료라 집주인과의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여러 문예공모 등에 응모하여 약간씩의 상금을 타기도 했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원고를 기고하여 얼마씩 주어지는 고료도 있었으나,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지고, 또 급히 돈을 쓸 일이 있어 얼마 전에 컴퓨터를 처분한 이래, 그나마 소소하게 벌어들이던 수입도 뚝 끊겼다.
그의 일상은 시계추처럼 늘 변함없는 하루하루가 되풀이 되었는데, 글을 쓰거나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된 이래로 시간의 흐름이 더욱 더뎌진 듯했고, 자연히 느는 건 잠밖에 없었다. 잠자리 역시 편치는 않았으나, 앉아 있기조차 불편해진 그로서는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그는 사무실 안쪽에 별도로 장만된 살림방에 진종일 처박혀 지내다가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어스름한 어둠을 틈타, 동네어귀로 무거운 다리를 끌고 어기적거리며 산책길에 나서고는 했다. 야밤의 산책길은 그나마 세상을 대할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칠 개월 전쯤이던가, 그때의 산책길에서 우연찮게 동네 후미진 곳의 쓰레기통을 헤집고 있던 작고 추레한 암캐 한 마리가 눈에 띄었는데, 지어미 뱃구레에서 나온 지 서너 달쯤으로 보이는 잡견으로, 제대로 못 먹어서 비쩍 곯은데다 온몸에 번진 피부병으로 군데군데 털마저 흉흉하니 빠져있었다.
노인이 다가서자 고놈은 도망갈 생각은 않고 꼬리를 사타구니에 박은 채, 연신 흘끗거리며 쓰레기통 속의 내용물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것인데, 다름 아닌 일회용기저귀 속의 배설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제를 까맣게 잊고는 ‘웬 떡인가.’ 싶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이 앞서, 앞뒤 가릴 것 없이 개를 덥석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쯔쯔쯔…. 니 신세나 내 신세나 어쩜 그리 똑 같냐? 먹는 것에 매달리기조차 고달프니 말이여.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것지만….”
잔뜩 겁먹은 개의 눈망울을 바라보니, 왠지 서글픈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지금쯤 장가를 가야하고 시집을 가야할 나이가 되었음직한 아들 ‘규만’이와 딸 ‘애련’이 생각에 한동안 울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했다. 그는 개를 씻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면서 계속 지껄여댔다.
“에구, 이렇게 비쩍 꼴았으니 개장수라도 널 데려가지 않았을 끼구먼. 널 끓여봐야 한입거리는커녕 이빨사이에 낄 것도 없을 테니 말이여. 참, 내가 별 주착 바가지 같은 소릴 다하고 있네 그려. 그렇다고 기분 나쁘겐 생각 마러. 그냥 해본 소리니께.”
“그라고 넌 누가 뭐래도 이제부턴 내 새끼여, 알간? 내 새끼여…, 내 새끼….”
‘새끼’라는 소리를 몇 번 주억거리다보니 곁에 식구가 하나 늘었다는 실감과 함께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명붙이가 그리 고맙고도 소중한 것이려니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10년 넘게 혼자 살아왔음을 헤아렸다.
개는 그가 몸을 씻기고 닦는 동안, 부들부들 떨어대면서도 연신 그의 손가락이며 손등을 열심히 핥아댔다.
“이렇게 깨끗하게 씻기고 보니, 니도 인물난다야. 하이고, 요 녀석 눈깔하난 디게 이쁘구먼, 어디보자, 요 주둥이도 깜찍하고…”
개는 흰털바탕에 검은 털로 얼룩진 바둑이로, 얼굴은 전체가 검고 뾰족한 주둥이 부분만 유난히 하얗다. 오랫동안 굶주리고 쫓겼던 탓인지 꼬리는 여전히 사타구니 사이에 박힌 채, 머리는 축 늘어뜨리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려대는 것이다. 그리고 눈치는 빤하여 눈길만 줘도 부들부들 떨어댔다.
노인은 양은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일 채비를 했다.
“오늘은 내 널 위해 특별식을 준비하는 기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얼라 똥 보담은 안 낫것나. 헤헤…”
그는 계란 한 알을 개 코에다 바싹 들이댔다. 개는 계란을 열심히 핥다가 별 맛을 못 느꼈던지 코를 벌름거리다간 그의 손가락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그는 라면 하나를 끓이다가 다 끓을 즈음 계란 한 알을 터뜨려 넣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노인과 개는 구수한 라면냄새에 함께 침을 흘렸다.
개는 이제 그에 대한 경계를 풀었는지 꼬리까지 살랑거리며 ‘콩콩’ 짖어댔다.
“그래 콩콩이…. 니 짖는 소리 들으니께 콩콩이가 적격이여, 콩콩이가 어뗘? 니도 맘에 드냐? 니 눈알도 깜장 콩알 같고, 또 니 짖는 소리도 콩 튀는 소리 같으니께, 이제부텀 니를 콩콩이라 불러줄 끼다. 알긋냐?”
3.
2005년 10월 24일은 노인이 58번째 맞는 생일날로,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다듬어왔던 노인은, 그날이야말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해야할 적시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거룩한 제례의식을 치루 듯 엄숙한 마음으로 죽음의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어떤 자그마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고, 세상의 모든 인연과도 말끔히 정리된 듯 여겨졌다. 자신의 죽음이 그 어느 누구도 슬프게 할 까닭이 없듯이, 자신의 죽음을 놓고 입방아를 찧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근래 들어 집주인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여러 달씩 월세가 밀리면서부터 일주일이 멀다하고 뻔질나게 드나들며 득달하더니, 문도 잘 열어주지 않자 밀린 월세 받기를 진작 포기했는지, 아니면 두고 보자며 벼르고 있는 건지 한동안 나타나지도 않았다. 처음엔 사무실 비우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오고 명도소송을 낸다고 겁박도 하더니만, 몇 년간 살아온 정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성이 그리 박절하지 않은 탓인지 어물어물 넘어갔다.
“이봐여, 서 사장, 지금 몇 달치 밀렸는지 알고 있기나 한 거요? 몇 달이 뭐야? 몇 년 치라 할 수 있지. 이러다간 보증금을 다 파먹고 말지. 이제 고만 애먹이고 집 좀 비워주소. 일거리도 없는 양반이 뭐 하러 이리 넓은 델 차지하고 있능교? 좀 허름한 단칸방을 얻으면 월세라도 반쯤은 절약 안 되겠능교?”
“박 사장님, 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씨부리지 마요. 단칸방에 어찌 이 짐이 다 들어가요? 쪼매만 더 기다리면 돈 구해서 얼마라도 갚아줄 테니…. 아님, 보증금이 남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속 편히 있을 수 있게 해주소. 그리고 머잖아 비워줄 때 되면 비워줄 테니….”
“이 양반은 맨 날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네. 맨 날 문만 걸어 잠구고 일도 안하는 거 같더구먼.”
“그래도 글이란 걸 열씨미 쓰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돈이 되것지요.”
집주인으로부터 밀린 월세 때문에 사무실을 비우라는 메스꺼운 소리를 귀에 따가리 앉도록 들어왔지만, 실제 남아있는 전세금이라야 기십만 원에 불과할 테니, 그 돈으로야 어디 마땅히 얻어 나갈 장소도 없었고, 또한 엉뚱한 곳으로 이사한다하여 그곳에 적응할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치 않은 몸으로 더 이상의 곤궁한 세월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로서도 더 이상 밀린 월세를 빌미로 사정하거나 굽히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 주인입장에서 볼 땐 그야말로 ‘배 째라.’는 식으로 막무가내 버텨온 것이다.
노인은 그의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이 밀린 월세로 다 파 먹히기 전까지는 반드시 죽어 없어지리란 결심을 하였다. 따라서 전세금의 잔여금이 줄어드는 것이 마치 죽음을 재촉하는 카운트다운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실소를 머금기도 했다.
‘이 사무실로 이사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햇수로 6년이 넘었네. 400만원 걸어놓고 참 엔간히도 버텼다. 내가 달팽이라면 이 사무실은 내가 힘겹게 짊어지고 다닌 껍질일 테지. 유일한 안식처이면서도 호된 짐짝 같은….’
얼마 남지 않은 세간과 비품들을 처분할 수 있는 대로 처분하여 몇 군데 깔려있던 외상값도 말끔히 정리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한테 단 한 푼의 빚도 남아있지 않음을 그나마 다행스레 여겼다. 언젠가 문득 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가 생전에 자신의 돈을 떼어먹고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기가 싫었던 것이다.
물론 이혼한 전처나 두 자식을 생각하면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최소한의 의무마저 다하지 못했음이, 유산이라곤 땡전 한 푼 남겨놓지 못하고 죽어야한다는 것이 못내 서글프고 민망한 노릇이겠지만, 그들이 언제 자기한테서 남편 덕을 아비 덕을 기대했을까 싶은 생각에 죄책감을 애써 덮어두려했다. 오히려 서운한 감정으로 치면 그 자신의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더 클 것이다. 합의이혼 후, 애들은 몇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상판대기를 비추기는커녕 전화 한 통 걸어오지 않았으니까. 노인은 울컥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려, 다 내 잘못이니께…. 허지만, 건강하게나마 살아다고. 그리고 무슨 일을 겪게 되더라도 절대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용기만은 잃지 말아다고. 사후에 저승과 영혼이란 게 있다면, 내 반드시 이승을 떠돌며 너거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어주꾸마.’
노인은 최근 몇 년간 쭉 자살을 생각해왔다. 아프고 불편한 몸으로 구차하게 살 바엔 미련 없이 세상을 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나 철도건널목 등에서 달려오는 기관차에 몸을 던질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죽는 마당에 사지가 절단되어 피가 낭자한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쥐약 등 독극물을 마시고 죽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런 방법도 왠지 내키지 않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생각도 해봤다. 바위에 부딪혀 으깨지고 찢겨진 자신의 사체가 그려졌다.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강물이나 바닷물에 빠져 죽는 생각도 해봤다. 물에 퉁퉁 불어 허옇게 부풀어 오르고 게다가 물고기 등에 반쯤 파 먹혀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자신의 사체가 그려졌기에 그 방법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그런 불유쾌한 형상으론 죽을 수 없었다.
‘가스를 켜놓고 질식해서 죽는다?’, ‘수면제를 잔뜩 먹고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깨어나지 않는다?’, 그 방법들도 썩 내키지 않는 것이, 누군가가 자신의 사체를 혐오나 연민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볼 것이라는데 섬뜩함을 느꼈다.
‘깨끗하고 감쪽같은 죽음은 어떤 것일까?’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그러면서 덜 고통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흔적 없이 사라질만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만족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엔 자살사이트란 것이 있어 자살하겠다는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긴 하더라만, 자신에겐 별 도움이 안 될 듯싶었다.
노인은 콩콩이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만족스런 죽음을 생각해낸 것이다. 죽을 때와 그 방법을 결정하고 나니 마냥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한때는 가족들 품속에서 죽는 늙은이야말로 복 받은 사람일 것이란 부러움과 죽음을 맞아 입고 갈 수의라도 장만한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앞섰다. 그러나 이제 노인은 다른 이들의 죽음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자신은 죽음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만큼 그 누구보다 더한 축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가족의 품속이 아니더라도 준비해놓은 수의마저 없다손 치더라도 왕후장상의 묘와 맞먹는 거창한 묘역에 묻힌 재벌의 죽음도 부럽지 않았고, 만조창생의 비통 속에 치러진 영웅호걸의 죽음도 부럽지 않았다.
노인은 모처럼 낮 시간을 이용하여 콩콩이를 대동하고 장을 보러 다녔다. 콩콩이도 제법 자라 성견 티가 부쩍 났다. 녀석은 어찌나 신이 났던지 온갖 것을 다 간섭하려 들었고, 중구난방 설쳐대는 바람에 목줄을 놓치지 않으려 움켜쥔 손에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양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노인은 허덕거리며 콩콩이를 따라잡기에 바빴다.
“허이고 먼 놈이 그리도 방정 맞냐? 디게 신이 났구먼. 하긴 근래 통 데리고 나온 적이 없었으니 좋긴 좋나 보구나.”
노인은 수중에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두 끼니에 충분히 먹어 치울 수 있는 양만큼의 쌀과 두루치기용 돼지고기와 양념들을 샀고, 특별히 포도주 한 병과 약간의 과일을 샀다. 하얀색 러닝셔츠와 팬티, 그리고 양말도 하나씩 샀다. 그리고 색색의 굵은 양초와 양초 받침으로 쓰기 위해 일회용 작은 접시를 각각 자신의 나이와 같은 수량인 58개씩 샀다. 생일케이크에도 생일을 맞는 사람의 나이와 같은 수만큼의 양초를 켠다던데 하물며 죽음의 의식에 치러질 제물인 것이다.
노인은 거의 3년 만에 사무실과 방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였으며, 자신은 물론 콩콩이까지 물을 덥혀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몇 달짼지 내버려둔 턱수염도 깨끗이 밀어버렸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다. 그 일만해도 노인에겐 여간 중노동이 아니었기에 이미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졌고 뼈마디마다 새부리로 쪼이는 듯 쑤시고 아팠지만, 마음만은 훨훨 날아갈듯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치 새집을 얻어 새 단장하고 새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음식을 만들 땐 너무 흥에 겨워 옛날 고교 때 목청껏 부르던 가곡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아마 누가 곁에라도 있었다면 ‘미친 늙은이’로 봤을 것이다.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아침 이슬 빛나는 찬란한 못가에~ 사랑스런 안니 로리 그대 만나리라…”
한번 터진 봇물은 둑을 무너뜨리고 격렬한 풍랑을 이루어 노도같이 쏟아진다.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몬 살겠네…”
“루루루루~ 루루루루~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에 마지막 밤을…”
가곡뿐만 아니라 뽕짝, 가요까지 왜 그리 구성지게 흘러나오는지, 콩콩이의 숨 넘어 갈듯 짖어대는 소리와 어우러져 반향 되어 되돌아오는 음향의 현란함이 자신의 귀로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언제 이렇듯 신나게 노래를 불러봤던가?
4.
노인의 생애로선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파티가 한바탕 끝나고 포도주 한 병을 병째 벌컥 들이킨 노인은 마냥 흥겨운 기분에 잠겨 있었다. 콩콩이도 난생 처음 돼지불고기로 포식을 했던 터라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쉴 새 없이 콩콩이를 향해 주절거렸다. 녀석이 꼭 자식 같기도 했고, 또 연인 같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친구처럼 여겨졌다.
“이젠 흡족하냐? 세상 부러울 게 없제? 아이고 요놈의 배때기 좀 보그레이. 짜구 나것네.”
노인은 눈부실 정도로 희디 흰 속옷으로 갈아입고, 그간 아껴 온 유일한 외출복이라 할 수 있는 남루한 양복을 걸쳐 입었다. 그 양복은 이십 년 전쯤 국제시장의 국제양복점에서 자그마치 30만원을 주고 맞춰 입은 양복이다. 그 양복을 맞춰 입을 당시만 해도 노인은 한창 잘 나갈 때였다. 매사 의욕이 넘쳐나고 무슨 일이든 자신감에 충만해있었다.
“요즘이사 기성양복이 오만 원이나 기껏 십만 원이면 떡을 치지만…, 그땐 맞춤 한 벌에 몇 십만 원씩 하는 양복도 한꺼번에 몇 벌씩 맞춰 입었었지. 그땐 뭔 돈이 그리 흔했는지 몰라.”
노인은 콩콩이에게 큰 소리로 양복 맞춰 입은 자랑을 했다.
“니가 그때만 나를 만났더라면 제법 호강했을 낀데…. 하긴 그땐 너 같은 똥개를 키우려하지도 않았겠지? 안 그래? 요 놈의 똥깨야~!”
콩콩이도 신이 났는지 노인의 손가락을 물고 입을 핥고 난리를 쳤다.
노인은 방 한 가운데 요를 펴고 그간 사용을 안 한 새 홑청을 그 위에 깔았다. 콩콩이가 홑청을 자꾸 물어뜯고 헤집는 바람에 몇 번씩 다시 고쳐 펴야했다.
“아이고 이 노마야, 이게 뭔 지랄이고? 뗏찌! 한쪽에 가만있어!”
어쩔 수 없이 노인은 콩콩이의 머리통을 제법 아프게끔 주먹으로 내리쳤고, 그제야 주인 눈밖에 안 나려는지 콩콩이는 다소곳해졌다. 그리고선 아예 활핀으로 박음질하듯 요와 홑청을 함께 꿰매었다. 그리고 얇은 홑이불을 그 위에 펼쳤다.
“꼭 신혼 초에 깔고 자는 원앙금침 같네, 그랴.”
노인은 이불 주위로 돌아가며 제법 촘촘히 접시를 늘어놓고, 다시 접시마다 촛농을 떨어뜨려 제법 굵은 양초 하나 하나를 흔들리지 않게 세워놓았다.
“니 임마, 이거 건딜면 맞아죽을 각오해! 건딜기만 하면 아주 쎄게 뗏찌해줄 끼다.”
그러면서 콩콩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보였다. 콩콩이도 알아들었는지 몸을 바닥에 납작하니 붙이고는 꼬리만 흔들어댔다.
58개의 양초마다 모두 불을 붙이고 나서 창문의 커튼을 빈틈없이 쳤다. 방안은 대낮처럼 훤히 밝혀졌으며, 이불을 사이에 두고 색색의 양초들마다 화사한 불꽃들이 너울거렸다.
“우와! 진짜 분위기 난다. 영락없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네.”
어느새 취기가 올라 어지럼증이 왔다. 평소 술을 한 방울도 하지 않던 노인은, 포도주 한 병에 얼굴이 불콰해지고 심장이 벌거덕 거렸으며, 무엇보다 졸음이 와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노인은 삥 돌아가며 수많은 촛불로 둘러싸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콩콩이도 잽싸게 노인을 따라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 눈을 감으면 그대로 저 세상으로 훨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콩콩이를 누구한테든 맡기려 했으나 똥오줌도 못 가리고 제멋대로 자란 개라 누구라도 키우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혼자 내버려두면 길거리를 헤매다가 결국엔 굶어 죽거나 차에 치여 죽을 것이란 생각과, 어쩌면 누군가에게 잡혀 멍멍탕 신세를 못 면하리란 불길한 생각에 차라리 자신의 죽음 길에 동반자로 데려가리라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래도 철딱서니 없는 개일망정 콩콩이가 곁에서 자신의 죽음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편안한 죽음, 그래 편안한 죽음을 맞고 있구나.’
노인의 입가엔 웃음이 번졌다. 신기하게 온몸을 들고 쑤셔대는 듯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부위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져보면 몇 겹의 피부허물이 상처로부터 배어나온 진물에 절어 꾸둑꾸둑한 갑피 같은 감각도 느껴지고, 조금이라도 압박하듯 눌러보면 뜨끔거리는 것이 분명 상처도 살아있음에랴. 고통이란 놈도 인정머리는 있어 행여 마지막 길이라고 봐주는 듯했다.
이불속에 드러누우니 잠은 저만큼 달아나 버리는 대신, 지나간 날들이 파노라마로 재생되어 화려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노인은 경남 밀양 일대에선 몇 만석지기로 제법 떵떵거리던 한 토호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일곱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여리고 귀가 얇았던 그의 부친이 멋모르고 뛰어들었던 양곡과 시멘트사업에서 연거푸 친구의 꾐에 빠져 조상대대로 물려온 그 많던 가산을 일거에 사기당하고 끝내 패가망신한 것이다.
부친은 그때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얼마 후 인근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모친은 그 일이 있고부터 실성한 듯하더니 이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그를 버리고 떠났는데, 훗날 우연찮게 들린 소문에 의하면 과거에 부리던 훨씬 연하의 젊은 하인과 배가 맞아 도망쳤다고 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조부가 사망하자 조모는 그를 데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하였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조모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하여 그해 10월에 새로 설립된 부산은행 1기사원으로 취직할 수 있게 되었다.
자그마한 키에 땅땅한 몸집의 조모는 그를 키우기까지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억척같은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조모는 그가 부산상고 2학년에 올라갈 즈음 자갈치시장 입구에서 생선노점상하여 모은 돈으로 보수동 검정다리 쪽에 방 세 개짜리 왜식주택을 손자 명의로 장만해두었는데, 손바닥만 한 대문 한쪽 기둥에는 ‘徐正一’이라고 손자 이름을 한자로 새긴 문패까지 걸어놓고, 아침저녁 살펴보는 것도 일종의 낙이었다.
그가 부산은행에 입사하고 얼마 후부터 조모는 그에게 장가가기를 종용했다. 그때 이미 조모의 나이는 일흔을 넘기고 있었다.
“니도 이젠 장가갈 준비를 해야 긋제? 핵교도 졸업했고, 또 좋은 직장에도 들어갔고, 더 바랄게 머가 있갔니?”
“할매요. 남살스럽게 뭔 장가요. 요새 스물에 장가가는 놈이 어딧소? 그런 얘기는 끄내 덜 마소.”
“아이고 이 노마야. 니 먼 소릴 해쌌노? 남자가 나이 스물이면 장가갈 나이도 됐제. 그라고 니가 남과 어찌 같단 말이고? 니가 애비가 있나 에미가 있나? 그렇다고 형아가 있나 누부가 있나?”
“할매가 먼 소리하던 나는 서른 전엔 절대로 장가 안가요.”
“아이고 저런 썩을 놈을 봤나?”
조모는 그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일주일이 멀다며 선보라고 종용했고, 여자들 사진도 수시로 그의 코앞에 들이대었다. 그렇게 해서 마지못해 선을 여러 번 봤는데, 하나같이 덩치가 크거나 인물이 볼품없어 거절하기 바빴다.
“니, 머가 그리 몬 마땅하노? 다들 이쁘기만 하더만.”
“할매요. 다들 이쁘요. 단지 아직 장가갈 맴이 엄써 그렇지.”
“이 노마야, 집안에 식구들이 들끓어야 사람 사는 거 같제, 또 니도 젊은 샥시가 끓여주는 밥을 묵어야 힘 쓸 거 아녀?”
결국 조모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손자며느리도 못 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 때문에 한동안 식욕을 잃을 정도로 깊은 후회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모는 죽을 때 그에게 집 한 채 외에도 1억 2천만 원이나 되는 큰 금액을 통장으로 남겨주었다. 그 돈이면 부산시내 대로변에 위치한 번듯한 2층짜리 건물도 살 수 있을 만큼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거액이었다.
학교 다닐 땐 조모로부터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빠듯한 용돈으로 만족해야했고, 은행에 취직하고부터는 월급을 또박또박 갖다 바쳐도 용돈만큼은 정해진 금액 외에 더 기대하기를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조모랑 티격태격 다투는 일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억척스럽기만 한 조모와는 도저히 싸워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조모는 수중에 돈이 있는 내색을 좀처럼 하지 않고, 가끔은 ‘우리 손자 놈한테 5백만 원이라도 냄기고 죽어얄 낀데…’란 말로 자신의 수중에 기껏해야 몇 백 만원도 없음을 밝히곤 하여, 그도 자신의 조모가 그리 큰돈을 남기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오히려 허구한 날, ‘치약 애껴 써라, 화장지 애껴 써라, 물 한 방울이라도 애껴 써라.’는 등 그 ‘애껴 쓰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야말로 지겹도록 들려주는가 하면, 밥을 먹을 때에도 밥 한 톨 남기면 안 되고 생선을 먹어도 가시에 살점 하나 붙어있으면 불호령이었다. 그래선지 근검절약이 그에게도 자연스레 배게 되었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던 1976년 6월경이었다. 그는 9년 가까이 근무해 왔던 부산은행을 그만두었다. 당시 그는 본점 자재구매과에 근무하면서 주로 인쇄물과 관련된 구매를 맡아왔는데, 그때 통장을 납품해오던 유신인쇄 ‘김덕배’ 사장과 가까이 알게 되면서 인쇄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산은 아직 인쇄 불모지라요. 인쇄물량은 늘어 가는데 인쇄업체는 모두 영세해서 시설투자를 제대로 몬하고 있어요. 시설만 제대로 갖추면 돈 버는 건 우습죠. 눈 먼 돈이 그리 많다니까요.”
김 씨의 그런 꼬드김 때문만이 아니라 더 이상 은행에 있기가 싫어졌다. 대학 졸업한 후배들이 오히려 그보다도 더 높은 직책에 앉기 시작한 이래로 왠지 은행에 더 오래 눌러 있어봐야 더 이상의 발전도 없을 듯싶은 것이다. 물론 당시엔 은행원의 신분이 어느 직장보다 더 보장되어 있고 대우도 좋아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대로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 씨의 안내로 인쇄소들을 견학도 해보고 나름대로 인쇄분야에 대해 분석도 해봤다.
그가 둘러본 인쇄소들의 환경이나 시설은 상당히 열악했다. 일하는 직공들도 너덜거리고 기름때에 절어있는 작업복에 몰골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가 지켜본 인쇄 공정들은 한결같이 신기할 뿐이었다. 납 활자 하나하나를 조합하여 문서 틀을 짜고 그것을 인쇄기에 걸어 한장 한장 철거덕거리며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어느 시커멓고 거대한 기계에서는 종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옆에 사람 하나가 서서 종이 한 장씩 기계적으로 밀어 넣는 것을 지켜봤다. 기계 롤러가 한번 휘돌아갈 때마다 종이 한 장을 밀어 넣고, 반대편 쪽에선 인쇄된 종이가 한 장씩 쌓이는 것이었다.
“이 기계가요, 이래 뵈도 30년 된 기계라요. 박스 찍는 덴 이만한 기계도 없지요. 그렇지만 정밀한 인쇄는 하이델이나 로랜드라야 해요.”
김 씨는 공정 하나하나를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이델 플라톤 하나만 있어도 돈 버는 건 우수불 낀데…. 어찌나 정밀한지 핀트 하난 기막히게 맞나 보데요.”
그렇게 해서 그는 김 씨와 동업을 맺기로 하고, 그가 줄기차게 권하던 독일제 4절 단색기인 하이델 플라톤 인쇄기계를 1천8백만 원에 구입했다. 용두산공원입구에 있는 합동인쇄소에서 6년인가 사용해왔으며, 네임플레이트를 보니 1956년도에 제작된 것으로 이미 20년 넘게 사용된 낡은 기계였다.
인쇄소상호를 ‘동인인쇄사’로 짓고 그가 사장을, 김 씨가 전무를 맡았으며, 모든 권리와 이익에 있어 동등하게 행사하고 나누는 동업조건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김 씨와의 동업관계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깨어졌다. 그가 인쇄물정을 모른다하여 김 씨는 수금한 돈을 입금하지 않고 제멋대로 썼으며, 인쇄기계도 걸핏하면 고장이나 그때마다 적잖은 수리비를 감당해야했다. 결국 그는 인쇄소의 경영부실로 인쇄기계도 날리고 인쇄소운영비다 하여 대책 없이 쏟아 부은 돈도 2천만 원이 넘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엔 일제 모리자와 사진식자기 두 대를 대당 1천 6백여 만 원씩 주고 수입해왔다. 오프셋인쇄기들이 늘어나면서 종래의 활판인쇄방식에서 사진판인쇄방식으로 변화되고 있어, 활자편집도 납 활자에서 사진식자로 바뀌기 때문에 사업성이 좋을 것이란 일성출판사 ‘조상현’ 부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납 활자란 낱말 하나하나를 일일이 주조하고 조합하여 그 문서 틀을 보관하는 데에도 엄청난 공간을 필요로 하고, 관리하는 데에도 문제점이 많아 보인 반면에, 사진식자기는 책상만한 공간만 차지하고 그 문자 틀이란 것 또한 손바닥만 한 것 몇 십 장만 보관하면 되기에 관리하기도 편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활자의 인쇄 선명도도 납 활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좋아보였다.
그렇게 해서 ‘광명사진식자사’란 상호를 내걸고 본격적인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엔 조 씨를 사장으로 영입하여 ‘비룡출판사’를 차렸다.
사진식자업이란 인쇄관련 업소들의 하청이 위주였으며, 대부분 인쇄업체들이 영세하여 제대로 수금이 될 리 없었다. 특히 도안을 위주로 하는 기획실들과의 거래가 많았는데, 그 기획실이란 것들은 조그만 사무실에 책상만 몇 개 갖다 놓고 하는 형편이라, 몇 개월씩 외상을 달아 놓고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아버려 걸핏하면 미수금을 떼어먹히기 일쑤였던 것이다.
부산지역엔 호황을 누리던 신발공장들이 많았다. 마침 부산은행본점 기업자금대출심사역을 맡고 있던 ‘허성기’ 과장과는 입사동기로 친분이 두터웠던 터라, 규모가 큰 신발공장 몇 군데 일을 봐주겠다는 언질도 있고 해서 본격적으로 인쇄업에 뛰어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태껏 살아왔던 보수동 집과 그 옆집까지 구입해서 헐어내고, 대지 82평에 연건평 146평의 2층 슬래브 건물을 지었다. 서울 광명인쇄소에서 사용했던 롤랜드 대국전 2색기와 중고 2절 가젤 톰슨기 한대, 그리고 대구중공업에서 제작된 대국전 톰슨기 한대를 들여왔다. 그때 상호를 ‘광명지기종합인쇄사’로 지었으며, 사업은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인쇄물량도 점차 증가했고 자금도 원활하게 잘 돌았다.
1979년 9월 어느 날인가, 이른 저녁에 부산은행에 근무하던 허 과장이 젊은 여자 하나를 데리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안 바쁘면 술이나 한 잔 사지, 그려?”
첫눈에도 그녀가 꽤나 늘씬하고 미모 또한 눈부시다는 걸 느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발기할 정도로 짜릿한 긴장을 느꼈으나, 짐짓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생경하게 책상위의 서류들만 들척였다.
“바쁘기야 무쟈게 바쁘지….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자네한테까지 바쁘다 말할 수야 있겠나, 내가 아무리 바쁘다한들 자넨 도무지 믿으려들지 않을 테니까.”
“맞아, 자넨 늘 바쁜 척 했지. 참, 서로 인사들 나누지? 이 친구는 나랑 부산은행 입사 동기지. 지금은 재벌 부럽잖은 큰 사업가지만….”
“재벌은 뭔…, 그런데 돈이 어찌나 잘 벌리는지 어쩜 곧 재벌이 될 것 같은 예감도 드네. 히힛! 이건 농담이고…, 저 서정일이라 합니다. 잘 봐주세요.”
“예, 전 유진주라 합니다.”
“유진주 씬, 본점에서 나랑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라, 어때? 대단한 미모시지?”
“예, 진짜 대단한 미모십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괜히 사람 앞에 놓고 놀리지 마세요.”
일식집에서 저녁식사 겸 간단히 술 한 잔 나누는 동안, 그녀는 그와 마주한 허 과장 곁에 다소곳이 앉아 그들이 나누는 사업 얘기만 경청했기에 그녀와는 몇 마디 주고받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탤런트나 모델을 뺨칠만한 미모였고, 간혹 가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은 그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기에 충분했다.
다음날은 그녀에 대한 궁금증으로 몇 번인가 허 과장에게 전화를 걸려했으나, 속을 뻔히 드러내는 일이라 여기고 들었던 수화기를 번번이 내려놓아야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했던바 저녁 무렵 허 과장이 다시 찾아왔다. 허 과장이 그때만큼 반갑기론 처음인 듯했다.
“아니, 이 사람아! 오면 온다고 미리 전화나 하지 그래.”
“전화는 뭐 하러해. 도망 가봐야 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자네가 부처님이고, 그럼 내가 자네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란 말이지?”
“자넨 영원히 내 손바닥에서 헤어 나오긴 어려울걸?”
“그래 난 자네의 영원한 손오공이라 치고…. 뭔 일로 또 행차하셨어?”
“어때? 어제 그 아가씨 말야.”
“괜찮던데.”
“얌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침 흘릴만하지 않아? 엉뚱한 놈이 낚아 채가기 전에 푸딱 챙기그라.”
“정말 침흘릴만한 미인이더구먼.”
“그래, 그 미인이 네게 관심이 있나 보더라. 그 아가씨 맘에 들면 이참에 장가 가그라.”
허 과장은 편지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그녀의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 복사본이 한 장씩 들어있었다.
“우리 부산은행 여직원 가운데서는 제일 돋보이는 인물일 끼다. 집은 진주인데 혼자 부산에서 자취하는 갑더라. 그리고 부산대학 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러고 보니 가방 끈은 니 보담 더 기네? 나머진 이 서류를 보면 대충 알 수는 있을 끼고…, 참! 아버지가 냉동공장인가 해서 집도 제법 잘사는 갑더라.”
“고마워, 잘 성사되면 양복 한 벌 맞춰 주지.”
“어쭈? 짜슥, 쩨쩨하게 스리 기껏 양복 한 벌? 양복 한 벌론 택도 엄따. 하와이 관광이나 함 시켜주라. 참, 니네 신혼여행 갈 때 우리 부부도 함께 하와이로 가면 쓰것네. 돈은 니가 다 부담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세상일이란 참 묘한 것이다. 특히 남녀 간의 애정문제는 더욱 그러했다. 당장은 결혼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던 그도, 유진주를 보는 순간부터 첫눈에 반해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동안 거래처에 근무하던 여자들 가운데에서, 혹은 데리고 있던 여직원들 가운데에서 관심을 갖게 하거나 괜찮다 싶은 느낌을 갖게 한 여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했던 여자는 없었다. 어쨌든 그녀에게 마음을 모두 뺐긴 그와 그녀와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만난 지 불과 3개월만인 1979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 날, 해운대 조선비치호텔 중국관에서 약혼식이 치러졌고, 다시 2개월 후인 1980년 2월 22일엔 진주 대동관광호텔에서 결혼식이 치러졌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엔 아들 ‘규만’이가, 1982년 3월엔 딸 ‘애련’이가 태어났다. 사업도 날로 번창하여 한동안은 세상이 온통 자기편인 것으로 착각될 지경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인쇄기계수입이 전면 자유화되었다. 일제 미쯔비시, 아키야마, 고모리 등과 독일제 하이델, 롤랜드, 이탈리아계 네비오르 등의 인쇄기판매상들이 그의 사무실을 줄곧 드나들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1991년 2월경에 미쯔비시 대국전 4색기와 대국전 양면 2색기를 동시에 8억4천여 만 원에 들여왔다. 그로써 부산권에서는 첫손에 꼽힐만한 첨단시설을 갖춘 셈이었다. 그리고 스웨덴제 오롤라 대국전 전자동 톰슨기 1대를 2억3천여 만 원에 도입했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때부터 부산권의 주종산업인 신발산업에 극심한 불황이 불어 닥쳤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세계적 유명브랜드의 오더가 저임금의 중국으로 대거 이탈됨으로써 부산의 신발공장들이 줄줄이 도산되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자금압박을 받게 된 그는 처가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게 되었고, 급기야 그의 손아래 동서 ‘최기정’이란 자가 자청하여 그의 사업을 돕겠다고 나섰으며, 아무 의심 없이 그를 사업파트너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1992년 9월경, 최기정은 자금과 관련한 권한 일체를 자신에게 위임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해와, 그는 처가에서 최기정을 통해 도움을 주려했던 것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최기정을 믿고 그에게 당좌와 인감 등을 맡겼는데, 이후 최기정은 그를 만만하고 어리석게 봐선지 끝내 그를 회사 밖으로 쫓아내더니, 결국 2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고 불과 10개월도 못가 1993년 7월말 고의적으로 부도를 낸 것이다.
최기정이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고 떠나버린 뒤, 그는 최기정이 미처 손대지 못한 남은 재산과 채권 등을 정리하여 부도를 수습하고 남은 채무를 변제하기까지는 6년여의 세월을 뼈 빠지게 고생하고 나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위자료나 애들 양육비도 필요 없으니 이혼만 해달라는 유진주와의 합의이혼도 사업적으로 한창 어려울 때 이뤄졌다.
아마 최기정을 사기, 횡령, 절도 등으로 고발하고, 이후 처남의 위증을 고발한데 대한 처가집의 냉담과 자신이 처갓집을 멀리하고 찾지 않는 데서 오는 미움 때문에 처가집의 회유로 이혼을 요구하였으리라 추측되었다.
‘그래, 인생이란 다 지나보면 주마등같은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쫓아다니고 쫓겨 다니고 결국 지나보면 그 모든 것이 메아리조차 남지 않는 독백 같은 것이다. 대단타 여겨지는 것들조차 알고 보면 쓰잘 데 없는 것들뿐이니, 다람쥐가 제 아무리 열심히 뛰어봐야 결국 지켜보는 이의 눈에는 쳇바퀴 도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노인은 자신을 떠나간 아내와 두 아이들을 떠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가슴이 저려왔다.
‘그래, 내가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해준 게 없다만, 부디 나를 원망하지는 말아다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 누가 이런 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겠지만 참 기막히게 맞는 말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청춘에 짓밟힌 애 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데로 가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이부자리 속에 단정하게 드러누운 노인의 양 눈가엔 언제부터인지 촉촉한 눈물이 계속 번져 내리고 있었다.
5.
그렇게 하루 밤이 지났다. 노인은 지난밤을 미동도 않고 반듯하게 누워 흘려보냈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을 분명 감은 눈으로 지새웠음직한 데 머릿속은 온통 하얀색 일색이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영상들이 어지럽게 혼합되고 색색의 파편들이 더욱 잘게 파쇄 되어 검은색이 흰색으로 도치되는 현상이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얼굴이며 입이며 마구 핥아대던 콩콩이가 짖기도 하고 귀를 깨물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먹을 것을 달라 보채는 듯했다. 그래도 노인은 여전히 죽은 듯이 누워 꼼짝도 않았다. 실내가 너무 건조한지 콧속이 말라붙었음을 느꼈지만 촛불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감긴 눈꺼풀을 통해 빛이 느껴졌다. 아마 아직까지 촛불이 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콩콩이도 간헐적으로 먹을 것을 달라고 칭얼댔지만, 죽은 듯 미동 않고 누워있는 그를 쉽게 단념하고는 제 풀에 지쳐 이불속에 파고들어 잠을 청하는 눈치였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노인은 여전히 누워있었고 콩콩이도 가끔은 낑낑대다가 방안구석을 이리저리 뒤지거나 갉아대는 소리를 내며 부산을 떨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흔히들 당뇨를 앓고 있는 사람은 유난히 갈증을 느껴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따라서 소변양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 노인은 반대로 물은 적게 먹히고 소변양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느 땐 이틀에 한번 소변을 볼 때도 있었는데 그때 소변은 한약 엑기스처럼 걸쭉하며 색깔 또한 진갈색을 띠는 것이다. 그리고 간혹 핏빛을 띠며 뿌연 이물질이 섞여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소변 할 것 없이 용을 써서 쥐어짜듯 억지로라도 봤기에 삼사일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란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고 또 참았다. 이대로 꼼짝 않고 누운 채로 잠자듯이 죽어야한다는 다짐 때문에 끝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더부룩하게 부풀어 오른 복부가 방광을 더욱 압박해서인지 묵직한 통증이 지속되었다. 진통을 느끼고 막 출산하려하는 여인네의 생리적 현상도 이러할까? 허벅지 아래로는 도무지 감각이 없고 등짝에서 허리를 거쳐 꼬리뼈에 이르는 부분은 척추 마디마다 맞물린 제 고리를 이탈하여 제각기 수평으로 주저앉은 듯 무겁기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빛도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촛불이 모두 꺼진 것 같았다. 제법 굵은 양초였다. 양초가 다 탈 때까지 몇 시간이 걸릴까? 열 시간? 열 시간은 더 버틸 것 같다. 그렇다면 열다섯 시간? 똑같은 굵기와 똑같은 길이의 양초라도 다 탈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같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지가 꼿꼿하게 잘 박힌 놈하고 삐딱하게 박힌 놈하고 분명 타는 속도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양초는 모두 꺼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광이 터질 듯한 팽만감과 쩌릿한 통증도 점점 심해졌다. 잠자듯이 죽을 팔자가 아니란 불안감이 생겼다. 일어나서 시원한 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또 시원스레 오줌을 깔기고 다시 누워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갈증은 참을 만하니 계속 참기로 하고 그냥 누운 채 이불속에다 오줌만 싸버릴 것인가?’ 온갖 궁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노인은 낭패스러웠다. 그런 사소한 일들로 차질을 빗게 되리라곤 예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갈증을 참을 수 없다면? 소변이나 대변을 참을 수가 없다면?, 그러다간 배고픔도 못 참고 일어나야 될 판이니 결국 이런 구실 저런 구실로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나야 된다면? 애초의 계획이 무산되는 결과밖에 더 남겠는가.
노인은 자신의 나약함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노인은 누운 채로 오줌을 쌌다. 그깟 일로 죽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줌줄기가 마치 칼날을 그어대듯 요도를 훑고 지나갔다. 오줌은 한참동안 사타구니를 뜨겁게 달구며 엉덩이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콩콩이의 쩝쩝거리며 오줌을 핥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시원스레 배설을 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아이얏!’
노인은 하마터면 큰소리를 지를 뻔했다. 콩콩이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물어뜯는 바람에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깬 것이다.
‘아이고 제기랄!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죽겠노?’
콩콩이는 연신 노인의 손가락이든 얼굴이든 가리지 않고 핥거나 깨물며 낑낑댔다.
‘엄청 배가 고픈가 보다, 불쌍한 놈 같으니…. 주인 잘못 만나 니가 먼 고생이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근데… 이젠 네게 줄게 아무 것도 없으니 어쩜 좋지?’
노인은 더 이상 미동도 않고 계속 누워 지냈다. 밤낮의 구분도 없어지고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냥 쏟아지는 졸음에 마냥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콩콩이는 더 이상 굶주림을 참을 수 없었던지 처음엔 썩어 들어간 살점들을 뜯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아무런 감각이 없었으나 아직 감각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처부위를 물어뜯을 땐 까무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몇 번인가 개를 쫓아내려했으나, 굶주림과 한번 인육을 맛본 개라 좀처럼 물러서려하지 않았다.
“아이고, 나 죽네!”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자지러질 듯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까무러쳤다 깨어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미리 예상 못했던바 아니었지만, 그 고통이 너무 심하다보니 그때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해도 이미 사지가 뻣뻣하니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한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거짓말같이 말짱해졌다. 아프기는커녕 콩콩이가 물어뜯는 고통이 은근한 쾌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이 썩고 아무 짝에도 몬 쓸 고기라도 배불리 먹어봐라.’
점차 의식이 가물거렸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듯이…
노인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아주 홀가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6.
2006년 새해로 접어든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오후, 그의 사무실 문을 요란스레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에 아무도 없어요? 문 좀 열어 보이소.”
건물주인 박 씨의 목소리였다. 거칠게 두드리던 소란이 잠시 멎었다.
“며칠 전에도 열쇠집사람 불러 문을 따려 해도 이 문이 독일제 특수키라 딸 수가 없다 카더군요. 뭐 훔쳐갈 물건들이 그리 많다고 특수키까지 설치했을까? 문을 뜯어내야 될 낍니다.”
“그럼 뜯어냅시다, 그려.”
“그럼 열쇠집사람 다시 부를까요?”
“아무래도 그리해야 쓰것지요. 푸딱 불러 보이소. 그나저나 이 방에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해요? 괜히 문짝 뜯어냈다간 변상해주기 십상인 거 잘 알지요?”
“예, 벌써 석 달 가까이 기척이 없던데 혹 알아요? 이 안에서 죽어 있는지…”
한동안 절단기의 굉음이 진동했다. 독일제 특수 록으로 이중삼중 잠겨있는 두꺼운 철문은 절단하고서야 문을 열 수가 있었다. 건물주인과 함께 두 명의 정복경찰관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열 평 남짓 사무실공간은 비교적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유행이 지난 투박해 뵈는 낡은 6인용탁자가 가운데 놓여있고 벽 쪽에 붙어있는 두 개의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주인이 뭐하던 사람이래요?”
“전엔 무슨 출판산가를 했었다던데, 망하고 난 뒤로 무슨 글을 써서 먹고 산다 카데요.”
“그럼 글 쓰는 사람이구먼요.”
“그런 셈인가요?”
“아무도 없구먼요.”
주인은 안쪽에 나 있는 문을 가리켰다.
“저기, 저 문으로 들어가면 살림방이 나오거든요.”
건물 주인이 긴장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맞은편 벽 쪽에 작은 손잡이가 달린 작은 문이 보였다.
“그럼, 저 안에 또 방이 있습니까?”
안으로 통하는 방문 역시 잠겨있는 듯 삐거덕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젊은 순경이 침을 꼴깍 소리 내어 삼키고는 큰 호흡을 들이켰다.
“안에서 잠근 거로 봐, 안에 사람이 있나 보네요.”
문을 한참동안 덜거덕거리며 흔들어대더니, 귀를 바싹 문짝에 붙여대고 안쪽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구먼요.”
“보이소! 문 좀 열어 보이소!”
집주인이 문을 요란스레 두드리며 목청껏 불러도 역시 인기척이 없었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드는구먼.”
나이든 순경이 마른 침을 삼키며 내뱉듯 말했다.
“열쇠 쟁이 갔나?”
“좀 전에 철문 따고는 갔다 아입니까.”
“그럼 어찌 여노?”
“어쩌긴요?”
젊은 순경이 발을 번쩍 들어 문을 냅다 걷어찼다. 그 힘에 문짝의 고리가 빠져나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반쯤 벌어졌다.
“자, 들어가 보더라고….”
칸막이 안쪽의 좁은 공간은 내부를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리고 ‘톡’ 쏘는 듯 자극적이면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스쳤다. 겨우 전원스위치를 찾아 켰으나 전기는 이미 끊겨진 듯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양쪽 벽에 두껍게 드리워진 커튼을 걷어내자 그제야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는데, 온통 어지럽혀져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개가 싸질러 놓은 듯 말라비틀어진 똥 무더기들이 사방에 수북하게 쌓여있고, 갈기갈기 뜯겨져나간 천 조각과 종이조각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촛농 부스러기들과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씹히고 찢긴 일회용 플라스틱접시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쓰레기사이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과 굵은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바싹 여위어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납작하니 죽어있는 개의 사체도 있었다.
“사람은 간데없고 웬 뼈다귀들만? 개도 한 마리 죽어있네?”
젊은 순경이 발끝으로 뼈들을 한군데로 모으며 말했다.
“혹시, 이 뼈들이 이 방에 세 들어 살던 사람 꺼 아닐까요?”
나이든 순경이 개의 사체를 발끝으로 꾹꾹 밟아보며 중얼거렸다.
“개가 단단하게 굳은 걸로 봐선 죽은 지 오래일세.”
한동안의 정적 끝에 젊은 순경이 형사 콜롬보 흉내를 내듯 한마디 했다.
“글쎄, 사람이 먼저 죽고, 그리고 나선… 개가 죽고… 사람이 먼저 굶어죽고 나선… 살아남은 개가 배가 고프니깐 죽은 사람을… 그러니깐 먹을 게 없던 개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고… 그리고… 더 이상 먹을 게 없자 개마저 굶어죽었다는….”
그러면서 히쭉 웃었다. 박 씨도 그 말에 맞장구치듯 큰 소리로 거들었다.
“예, 제 추측도 그런데요.”
“어쭈, 양 순경, 제법이구먼. 맞어, 뼈들이 성치 않은 걸 보면 개가 갉아먹은 게 확실해.”
노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굵은 뼈다귀는 온전한 게 남아있지 않았을 정도로 심하게 갉혀있었다.
“그러기엔 이거 너무 비참한 거 아닙니까?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안 와봤다는 것이…, 그리고… 결국 이 사람이 죽은 뒤, 개가 그 시체를 파먹었다는 것인데….”
양 순경이 박 씨를 향해 신랄한 어투로 나무라자, 나이 든 순경도 울컥해진 목소리로 박 씨를 쳐다보며 나무랐다.
“아무리 그래도 한 건물에 살면서, 사람이 죽어 개밥이 되도록 그리 몰랐을까이?”
박 씨는 머쓱해진 표정을 짓다가 골을 부리듯 퉁명스레 되받아쳤다.
“누군 이 사람이 백골이 되어 나타날지 어찌 알았슴까? 만나기만 하면 지레 화부터 내지르는 사람을…, 나두 이 사람만 보면 괜히 울화가 치밀어서…,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둘 다 속이 편할 거 같아서…”
방안살림은 상당히 단출하였다. 속이 텅 빈 조그만 냉장고 하나와 낡고 투박해 뵈는 책상 높이의 제법 큰 나무장식장 하나가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위 쪽 벽에는 남루한 옷가지 몇 벌이 비닐커버에 씌워져 뽀얀 먼지를 덮어쓴 채 걸려있었다.
장식장 위에는 고장이 났는지 시간도 맞지 않는 자명종시계가 막 11시 37분을 가리킨 채 놓여있고, 반쯤 내용물이 들어있는 샴푸 통 하나와 라이터며 손톱깎이며 가위며 탈지면, 소독약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수북하게 담겨있는 바구니 하나가 놓여있었다.
냉장고 옆엔 휴대용가스렌지 하나와 일회용 빈 가스통 세 개, 속에 음식물찌끼가 얼룩으로 남아있는 양은냄비 두개, 프라이팬 한개, 스텐그릇 여섯 개와 짝이 맞지 않는 수저 여러 벌이 어지러이 놓여있었고, 양은 주전자 한 개도 뚜껑 따로 뒹굴고 있었는데 속은 말라있었다.
“이봐, 양 순경, 저 나무책상 속에 뭐가 들었나 살펴봐. 혹 무슨 유서라도 있는가.”
장식장 안에는 여러 벌의 낡고 헤어진 속옷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채로 들어있었고, 그 옷가지 사이에 일기장 몇 권과 사진 등속이 들어있는 종이박스가 감춰있었다.
“일기장이 있네요. 모두 네 권인데요. 어디보자…”
양 순경은 일기장 하나하나를 대충 흩어보았다.
“모두 옛날에 써 논 일기장 같은데요. 이건… 1962년 4월 12일부터 쓰기 시작해서… 1964년 11월 18일까지 쓴 거고…, 또 이건… 1966년 7월2일부터 쓰기 시작해서… 1967년 2월 27일까지 쓴 거고…, 또… 이건 1972년 6월2일부터… 1977년 5월2일까지 썼고…, 이건… 1985년 1월 14일부터… 89년 4월 21일까지 쓴 걸로…, 일기는 아무 도움도 안 되겠구먼요.”
종이박스 속에 들어있던 사진들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펼쳐 보였다. 가족사진과 아이들 사진, 그리고 여행가서 찍은 듯한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양반이 맞아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승용차 운전대를 잡고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표시해 보이는 사진으로, 제법 인상이 선하고도 지적으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예, 이 사람 맞긴 한데…, 사진이 실물보담 훨씬 낫네요.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이라 그런가?”
“글쎄, 유언장이라도 나타나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있을 게 아니야.”
“문을 따고서야 겨우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이 안에서 죽은 사람이 타살이란 게 말이 되야죠.”
“이게 이 사람과의 임대차계약선데, 보증금 400에 오늘까지 월세만 31개월 치 밀려있네요. 월세만 매달 12만원인데…, 밀린 거 제하면 한 30만원 남으려나?”
“참 엔간하군요. 31개월씩이나 월세가 밀렸다면…, 근데 왜 여지껏 쫓아내지도 않았지요?”
“첨엔 몇 번인가 쫓아낼려고 했는데, 이 양반이 없이는 살아도 별반 악의는 없고…, 글재주는 진짜 좋드라고요. 써 논걸 몇 번 봐서 아는데 글은 진짜 재밌게 쓰던데 돈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혼자 힘겹게 사는 꼴이 넘 안됐고 넘 불쌍하더라고요. 어차피 전세금도 남아있는 한 어찌되겠지 싶은 생각에…”
나이 든 순경은 이제 생각이 난 듯 인상을 쓰며 코를 틀어막았다.
“거 냄새 하나 야리꼴리하네, 이 냄새가 송장 썩는 냄샌 맞나? 문이나 모두 활짝 열어 노소. 너무 역하다. 이봐 양 순경, 담배나 한대 줘.”
“흠~! 1948년 10월 24일생이라…, 58살이군요. 이름은 서정일이라…, 연고자는 없던가요?”
“글쎄요. 찾아오는 이도 전혀 없었고…, 보아하니 친인척이 있을 리 없지요.”
“이 사람,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요?”
“한 석 달 됐나? 몇 번이나 만나려 해도 만날 수가 없으니…”
“주인이란 사람이 어찌 세든 사람한테까지 그리 무심하오?”
“이 양반은 문을 걸어 잠구면 좀처럼 열어주려 하지 않아요. 그리고 가끔씩 개를 끌고 나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아서…, 나도 내 집에서 송장 치루 게 될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집을 비워요? 며칠씩이나?”
“그래요. 개를 끌고 나가는 걸 몇 번인가 봤거든요. 그리고 며칠씩 인기척이 없을 때가 많아요. 사무실 안에서 숨죽여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그나저나 저 백골이 이방 쥔 꺼 맞긴 맞는지 모르것네.”
“그렇다고 이양반이 쓰잘 데 없는 뼈다귀를 사무실로 들라놨을 리는 없고….”
“정확한 것은 뼈다귀랑 개의 사체를 부검해봐야 알겠지만 추측컨데 개는 아직 썩지 않은 걸로 또 바싹 말라비틀어진 걸로 봐선 한 달 전쯤 죽은 걸로 보이고, 사람은… 뼈다귀 상태로 보아 그보다 한 달여 더 이전에 죽은 걸로 보이네요.”
“어쭈, 자네 시체에 대해 꽤나 아는 눈칠세 그려.”
“친구 놈 하나가 국과수 해부학 실에 근무해서 만나면 하는 얘기가 그 얘기 아닙니까? 해서 풍월로 주워들은 게 좀 있습죠.”
“그려, 일단 강도가 들은 흔적도 엄꼬~ 해서 타살된 게 아닌 자살사로 봐야 할 거구먼, 어쨌든 증거는 그대로 보존하고 서에 들어가면 보고서나 작성해서 본서로 올리게.”
“넵! 알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바구니 밑에 요게 있네요. 편지 같기도 하고…”
“함 줘보게, 뭐라 적혀 있나. 아, 당신한테 쓴 편진가 보군. 함 읽어봐요. 큰 소리로…”
나이든 순경이 박 씨한테 조그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었다.
‘박영효 사장님.
정말 죽을죄를 짓고 떠나갑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베풀어 주신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떠납니다.
저 나름대로 마지막 길을 떠나기 앞서
사무실 청소를 깨끗이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사장님께서 보실 땐 엉망일지 싶습니다.
사무실보증금에서 밀린 임대료를 제하면
얼마라도 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모자라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혹 얼마라도 남는 금액이 있다면
제가 사용하던 사무실쓰레기 치우는 비용으로 사용해 주십시오.
사무실 물건은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저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떠나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끌어가시길 기원합니다.
2005년 10월 24일
그간의 애물단지 서정일 올림’
“봐요, 이 사람 자살한지 두 달하고… 오늘이 1월 12일이니까…, 두 달 반이 조금 지났나? 제 추측하고 비슷하지요?”
양 순경이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맞아, 자넨 대단한 탐구력을 지녔어. 탐구력? 아니지, 탐구력이 아니라 거 뭐라카지? 추리력? 그래 그런 걸 지녔구먼. 대단한 안목이야, 아예 탐정으로 나서지 그러나? 이제 유서란 게 발견됐으니 이번사건은 쉽게 매듭 되겠는 걸?”
박 씨도 골 아픈 일이 하나 해결된 듯 표정이 밝아졌다.
“에, 제가 오늘저녁에 두 분을 모실까 하는데…, 오늘 저녁시간 어때요?”
나이든 순경이 박 씨 어깨를 툭 치고는 헤벌쭉하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야 남아도는 게 시간 아니겠수? 좀 좋은데 가서 한턱 내시구랴. 보증금도 쪼매 남았다 카니….”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몇 가지 살림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구식소파와 책이 그득 꽂힌 책장 두 개, 그리고 여러 개의 시중은행통장들이 있었으나 모두 잔액이라곤 전혀 없거나 몇 백 원 남짓했다. 주인의 계산에 의하면 전세보증금에서 밀린 31개월분 월세와 넉 달 치 밀린 수도세 2만 원을 공제하면 24만 원이 그가 세상에 남긴 유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7.
노인의 것으로 보이는 뼈다귀들과 개의 사체가 실려 나가고, 며칠 뒤 한낮쯤 되어 두 명의 청소부가 사무실을 치우러 들어섰다. 30대 중반의 단단해 뵈는 체격의 젊은 청소부와 50대 중반의 호리호리하고 늙수그레한 청소부다.
“이게 뭔 냄새여? 쾌쾌묵은 곰팡내도 아니고…, 소독낸감? 좀 어둡네. 창문부터 활짝 열어놔.”
젊은이는 그 말엔 아랑곳 않고 책장속의 책들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책장과 책은 내가 집에 가져가도 되것지요? 괜찮아 뵈는 책이 몇 권 있어보여서…”
50대 중반의 늙수그레한 청소부가 창문을 열다말고 청년을 돌아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럴텨? 대신 한잔 쏠텡가?”
“하모 한잔 거하니 쏠께요.”
“대신 이 소파는 자네가 분해하게.”
“그러지요.”
“자네 수지맞았어.”
젊은 청소부가 책장속의 책들을 들어내어 끈으로 묶고 나서, 책장을 들어낼 때 책장위에 놓여있던 원고뭉치가 바닥에 쏟아졌다. 젊은 청소부는 바닥에 흩어진 원고 가운데 몇 장을 들어 올리며 유심히 살폈다.
“이게 뭐야? 무슨 시인가 소설인가 그런 거 쓴 건가 부네.”
그때 방안에서 늙은 청소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이봐, 여기 냉장고 하나 쓸 만한 게 있는데, 갖다 쓰지 않으려나?”
“냉장고는 필요 엄네요.”
“그려? 그럼 내가 갖다 쓸까?”
“그렇게 하슈.”
잠시 후, 젊은 청소부의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사무실에 크게 울려 퍼졌다.
미소의 뜰
거기엔
자그마한 둥근 연못이 있고
둘레엔 앙증맞은 흰빛의자들이 가지런하고
잘 다듬어 놓은 금빛정원엔
이름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고
그 꽃 주위엔 수많은 벌과 나비들이 화려한 군무를 추고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운 양지엔
비눗방울 터뜨리듯 자지러진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곳엔 무슨 좋은 일들이 그리 많을까?
세상이 눈부시다는 것을 알고 있음일까?
공기가 서늘하다
하늘이 청명하다
삼라만상이 웃고 있다
정겨운 얼굴들이 해맑아 보인다
사랑이 있기에
행복이 있기에
미소가 쉼 없이 솟구치나 보다.
그 작은 뜰에서도…
- 어떤 죽음 제1화 -
노인과 개
(200자 원고지 210매 분량)
- 끝 -
2004/02/15
(3일에 걸쳐서 쓰다)
‘노인과 개’를 쓰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닐뿐더러, 이왕 죽을 바엔 보다 깨끗하고 안락한 죽음을 염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이 글을 쓴 것이다.
자연의 은총이라 할 수도 있고, 반면에 재앙이라 할 수도 있는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차별하지 않고 가장 공평하게 적용되는 자연의 섭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태생의 환경과 주변 여건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하게 되는데, 첫 단추가 한번 잘못 꿰어짐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생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한 사내가 손아래 동서로부터 사기를 당하여 모든 재산을 송두리째 날렸을 뿐더러, 결국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된다. 이후 늙고 병든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음을 느낀 남자는 나름대로 편안한 죽음을 택하게 되는데, 이 죽음 역시 애초에 그가 기대했던 편안한 죽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죽어 갈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할까?
아마 임종을 맞은 사람들의 생각들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할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과 미련과 증오 등등…. 그런 감정들이 순간마다 교차되면서 살아온 생애에 대한 강한 집착을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남긴 것이 많을수록, 특히 그러한 집착은 더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오로지 죽음만이 잘나고 못난 사람이란 차별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 준 신의 선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