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에 신경을 쓰다보면 종종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그런 일이 있지요? 문제는 너무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지고 심각할 정도라서 제 건망증은 치매수준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할 때도 있답니다.
얼마전 서울에서 늦은 밤 강릉행 버스표를 끊어놓고 주린 배를 채우러 우동집에 들렀답니다. 그리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맛있게 먹고 버스시간까지 제법 시간이 남길래 할 일 없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미리 화장실에도 들러고...
이윽고 버스가 왔길래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맙소사! 내 책들과 아티클들이 없지 뭡니까! 차는 떠날 시간이 다 되어가고, 급한 마음에 운전기사 아저씨께 급히 돌아오겠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는데 그곳엔 없고 다시 우동집에 들렀는데 내가 앉았던 자리에도 보이질 않는게 아닙니까! 울상이 되어 두리번거리다가 돌아서는데, 종업원 아가씨가 부르더군요. 잃어버린 것 같아서 챙겨두었다며...
아슬아슬하게 떠나기 직전의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왔답니다. 뭐 이 정도야 애교로 봐 줄 수도 있겠지만, 나의 건망증전적을 살펴보면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답니다.
건망증 사건 중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는데 일명 '꽃무늬 팬티 사건'입니다.
유학을 가기 직전, 필요한 물건도 사고 그동안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들께 드릴 커피세트도 샀습니다. 각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충고 말씀도 듣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짐을 꾸리다가 새로 산 꽃무늬 팬티를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곰곰히 생각 해 보다가 갑자기 머리를 스쳐 가는 짤막한 기억 한 토막이 있었으니...
쇼핑을 하다가 큰 봉투 작은 봉투가 너무 여럿이길래 팬티가 들어있는 작은 봉투를 큰 봉투속에 집어넣었는데 그걸 그대로 교수님께 갖다드린 것입니다.
쌍방울이었는지 비비안이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졸지애 여자팬티를 선물 받고 황당해 할 30대 초반의 남자 선생님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답니다. 그렇다고 뒤늦게 '그 팬티는 내 팬티'라며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후에도 문득문득 그 교수님만 생각하면 꽃무늬 팬티사건이 자꾸 걸려서 무안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그래서 귀국 후에도 다녀왔다는 인사조차 할 수 없었는데 어디서 제 전화번호를 알아 내셨는지 지난 여름방학 때 전화를 주셨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전화로 인사 드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찜찜한지, 원!
결국 그 교수님 홈페이지에 10년만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그 사건을 올렸는데 다음날 교수님의 응답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제목은 '쇼핑백 사건' 으로...
그 선물(?)을 받고나서 너무나 황당했는데 아무래도 실수였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래서 전화를 하려다 그만 두었다는... 그런데 제일 끝 구절이 나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 팬티를 받은 것 까지는 확실한데, 그리고 황당했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 팬티를 어떻게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라고 쓰셨더군요. 누가 입었을까 내 꽃무늬 팬티...
그 글들은 그 교수님 게시판 개시이래 조회율 최고를 기록했답니다.
애구~! 그래도 그 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정말 아찔한 사건이 있었으니 컨피덴셜 문서 분실 사건입니다.
파리에 있을때 종종 번역이나 통역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한번은 기밀 문서의 번역을 맡았답니다. 열심히 번역해서 갖다주려고 버스를 탔었는데,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서류들을 전부 두고 내렸지 뭡니까! 아찔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버스 회사에 연락을 해서 운전기사 아저씨가 돌아 올 때 챙겨서 오긴 했는데 문제가 그걸로 끝나지 않았어요. 서류앞면에 찍혀있었던 빨간색 컨피덴셜 도장 때문에 저에게 돌려줄 수 없다지 뭡니까!
결국 프랑스 경찰이랑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오고서야 다시 돌려 받을 수 있었어요.
행여 여러분의 이름을 제대로 외지 못하거나, 심지어 두사람의 이름을 합성해서 부르거나 아니면 바꿔 불러서 불만이 있으세요?
나... 이런사람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걸 아세요? 비록 이름이 가물거리긴 해도, 수업 시간에 어떤 표정으로 어떤 버릇을 가졌으며 어떤 옷을 즐겨입었는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아주 오래전 졸업생일때에도 말입니다.
얘들아~! 그래, 수업 시간에 몰래 손거울 꺼내놓고 뾰루지 들여다 본 너두...참 예뻐 보인단다.
.... 왜냐하면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