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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의 달인
구효서
라즈니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볼 수 있다면 잠깐만이라도 볼 생각이었다.
라즈니쉬는 횡성 둔내에 산다고 했다. 횡성으로 떠나기 전 중학 동창회장에게 전화했다.
둔내 어디랬지?
건양 둔내.
수첩에 건양 둔내라 적을 뻔했다. 둔내 건양이라면 몰라도 건양 둔내라니. 다시 물으려다 그는 낙서하듯 적었다. 그냥 둔내.
부산에서 서울로 온 지 20년도 넘었는데 발뒤꿈치의 사투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건양 둔내. 둔내까지만 알고 그 이상은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냥 둔내. 전화가 절로 끊기듯 끊겼다. 발뒤꿈치다운 대답이고 반응이었다.
발뒤꿈치. 라즈니쉬가 지은 별명이었다. 발뒤꿈치 뿐 아니라 별명이란 별명은 모조리 라즈니쉬 작품이었다. 라즈니쉬라는 본인 별명만 빼고 그랬다. 그것들이 작품인 까닭은 아직도 멀쩡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라즈니쉬가 아니라, 실은 라즈니시였다. 입술을 오므렸다 펴는 작은 수고마저 덜기 위해 친구들은 쉬를 버리고 시를 택했다. 별명이란 그런 거였다.
라즈니시도 원래는 라즈니시가 아니었다. 이즈라니였다. 이즈라니 이전에는 이스라니였다. 이스라니가 이즈라니로 된 데도 별다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is를 이스로도 이즈로도 발음하는 정도의 이유? 그러니까 이스라니에서 이즈라니로, 이즈라니에서 라즈니시로 변한 거였는데, 이즈라니에서 엉뚱하게 라즈니시로 건너뛰었던 건 당시 라즈니쉬 열풍이 중학교 교실까지 휘저었었다는 사실과, 네 글자 중 세 글자가 같다는 사정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보였다.
구절판이라 불리던 친구는 라즈니시가 되게 된 까닭을 그럴 듯하게 풀었다. 이즈라니가 자꾸,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라는 노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거라는 것. 데뷔 25주년을 기념한 나훈아 신곡 ‘영영’이 아닌게 아니라 1990년(라즈니쉬 사망년도와 묘하게 겹친다), 그들이 중학교 2학년 때 발표됐었으니까. 라즈니시 인상이, 세대적으로 그다지 좋아할 수 없었던 나훈아와는 영판 다를 뿐 아니라, 외려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모양새가 차라리 라즈니쉬에 가까웠기 때문에 별명이 그리 굳어버린 거라고, 구절판은 말했다.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 아차리아 라즈니쉬, 브하그완 슈리 라즈니쉬 등 복잡한 이름 변천사를 겪은 것까지 오쇼 라즈니쉬를 닮았다며.
구절판이라는 별명도 라즈니시가 지은 거였다. 풀 네임은 구절판 개고기. 말솜씨가 실로 화려하고 맛깔스럽긴 하나 엉뚱해서 망쳐버린다는 뜻, 이라고 라즈니시가 설명한 적은 없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이해했을 뿐이다. 긴 별명은 실용적으로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개고기가 생략된 채 불렸다. 그러나 생략된 게 은근히 더 음미되고 강조되는 경우가 있었다. 구절판이 그랬다. 별명은 그렇게, 억압된 음해욕구를 일깨우고 자극하는 면이 있어야 잊히지 않고 별명답게 애용되는 거였다. 구절판이라 부르며 다들 개고기를 떠올렸다. 라즈니시는 명명의 달인이었다.
라즈니시 애초의 별명 이스라니.
그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발뒤꿈치 식으로 말하자면 건양 생긴 별명이었다. 다른 모든 별명의 작명자는 확고하게 라즈니시였으나, 라즈니시라는 별명의 기원인 이스라니의 작명자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이스라니로 불렸고, 라즈니시로 변해갔다. 출처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성경이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 3절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설교 전담 교목은 그 구절을 그렇게 자주 인용했다. 마이크를 사용하면서도 교목은 스피커가 찢어져라 고함을 질렀다. 특히 ‘있으라’를 크고 길게 끄는 대신 ‘하니’를 짧게 줄였다. ‘있으라-니’를 교목의 발성 대로 흉내내면 ‘이스라-니’가 되었다.
의자도 없는 강당 마루바닥에 앉아 교목의 설교를 듣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엉덩이에 박히는 딱딱한 맨바닥 때문만도, 흐르지 않는 채플 시간 때문만도 아니었다. 유난히 짧고 유난히 굵은 목에서 터져나오는 교목의 외침이 스피커 보다 귀청을 먼저 찢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교목은 선상의 해적이야.
그렇게 툭 말하고 ‘이스라-니’ 흉내를 냈던 게 바로 라즈니시였다.
교목이 해군 함대에 실제 근무했던 군목 출신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을 때 친구들은 라즈니시의 직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목의 별명은 해적이 되었고, 이스라니라는 라즈니시의 원(元)별명이 탄생했다. 누구 보다 ‘이스라-니’ 흉내를 잘 냈기 때문이라는 설과, 하나님 같은 권위의 별명 창조자로서 ‘있으라 하니’라는 뜻의 간판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어쨌거나 원별명 이스라니는 뜻도 어감도 인상도 그다지 명확치 않아 곧 잊혀질 수 있었다. 몇 번의 변전 끝에 라즈니시라 굳어 오래 전하는 걸 보면 별명에도 나름 곡절과 운명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언젠가 구절판이 탄성을 발했던 일도 그는 기억했다. 지은 자 없이 절로 생겨 스스로 생명을 갖게 된 이름 라즈니시, 예사롭지 않도다!
그가 둔내에 가려 했던 건 당초 라즈니시 때문이 아니었다. 묵거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묵거사. 묵언수행을 한다하여 그리 불린다는데 도토리묵을 좋아해 붙은 이름이라는 말도 있었다. 입을 열지 않는 수행을 한다니 누구도 이름의 사연을 직접 물어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 사람을 취재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니 수화나 눈빛 같은, 말의 보조수단도 일절 사용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나 그는 취재를 자청했다. 데스크에 앉은 지 2년만이었다. 종종 인물 인터뷰는 했지만 서울 시내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취재를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건축 및 인테리어에 국한했다. 노래하는 개나 눈물 흘리는 돌미륵을 찾아나서는 일은 일선 기자들의 몫이었다.
그는 창간 12년 된 잡지 <L&S>의 수석 데스크였다. 라이프 앤 소울. 맛있고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 테마 여행, 연극 영화 등 공연물, 문화 역사 탐방, 연예, 패션, 하우징, 재테크, 쇼핑, 자녀교육, 세상의 온갖 재밌고 신기하고 호기심 자극하는 가십들……. 그렇고 그런 잡지들에 비해 차별성 있는 내용들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그럭저럭 일정한 판매부수를 유지했다.
말을 끊은 산속 거사가 도술을 부린다. 제 몸 공중부양은 기본이고 남의 몸까지 허공에 띄운다. 개와 고양이를 맘대로 천장에 붙였다 뗐다 한다. 손 대지 않고 찻잔을 이쪽 테이블에서 저쪽 테이블로 척척 옮긴다…….
이런 정도의 기사라면 수습딱지 막 뗀 1년차 기자로도 충분했다. 그가 직접 둔내에 다녀오겠다고 나서자 아래 기자들이 수군거렸다. 둔내에 땅 사 뒀나?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났던 것이다. 라즈니시가 둔내에 내려가 산다는 얘기. 라즈니시는 1년 가까이 동창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실하게 참석하는 편은 결코 아니었으나 어느 날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둔내에 내려가 산다더라는 얘기도 그다지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았다.
라즈니시가 시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한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일시적 충격과 실의를 추스르려고 당분간 낙향한 것이라는 추측이 대세였다. 그래서 와신상담이니 권토중래니 하는 말들을 술잔 삼아 주고받던 중 둔내라는 구체적 지명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개발길질이라는 친구의 입에서였던가.
기억이 거기까지였다면 굳이 시답잖은 취재를 위해 둔내에 갈 생각 같은 건 안 했을 것이다.
와이프 없이 혼자 갔다지.
그때 누군가 말했고(아마 시방새였을 것이다),
곧 올라올 모양인 게지.
다른 누군가 말했다(고르비였을 것이다).
갈라선 거래, 아주.
이 말. 그러니까 그의 귀에 박혔던 건 둔내라는 지명 보다는 ‘갈라선 거래, 아주.’였다.
그도 또한 아주는 아니더라도 거의 갈라선 상태였으므로.
아내가 말했다.
당신하곤 더 이상 살 수 없어.
머?
그가 되물었다.
아내가 소리 질렀다.
또 그 머. 머! 머! 머! 머!
그게 끝이었다. 그의 아내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껏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잖았느냐는 게 설명을 달지 않는 이유랬다.
그의 아내는 오피스텔을 얻어 나갔다. 아이가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인 건지 아닌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이혼절차 같은 것도 없었다. 법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부부였으나 그들에게 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남으로 살았으므로 남남이었다. 아내가 돈을 더 잘 벌었다. 갈라서는 데 경제 문제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의 벌이에 그토록 전투적이었던 까닭을 그는 별거 뒤에야 제대로 알았다.
당신은 제대로 아는 게 없어.
늘 아내가 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아내의 그 말을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관계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한국 남자의 평균치를 약간 상회했다. 신장, 아이큐, 학력, 수입, 진급, 그리고 운동신경, 인간관계, 금융신용도, 주식투자 수익률까지. 출판계에선 꽤나 이름난 전문 편집인이었다.
뭘 모른다는 건지, 그는 아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머! 머! 머! 머! 4연발 속사로 쏘아붙이고 집을 나간 뒤에도 그랬다. 몰랐다.
어째서 아내는 나와 살 수 없다는 걸까.
무엇 때문일까. 이유가 뭘까.
집에 친척이 와도, 여행을 가도, 자정 전에는 반드시 잠들어야 하는 습벽 때문일까. 안전운행을 위해 출발 전 차량의 전후좌우와 네 바퀴를 꼬박꼬박 점검하고 고개를 숙여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버릇 때문일까. 피크닉이나 산책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남 앞에 성급히 털어놓을 고민도 아니다 싶어 그는 혼자 궁리했다. 무엇일까. 왤까. 어째서 아내는 나와 살 수 없다는 걸까.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정말 문득, 궁금한 쪽이 달라졌다. 아내가 나와 살 수 없는 이유 쪽 말고, 삶이라는 것, 대체 그게 뭐길래 아내는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까가 궁금해졌다. 자신이 이해하는 삶과 아내가 이해하는 삶이 다른 거라고, 간신히 숨통 트일 명분을 찾았다. 물론 여전히 삶은 모를 거였다.
실은, 그의 별명이 ‘머이’였다. 뭔가에 골몰하다 누가 부르면 놀라 머?라고 되물었다. 머?하고 깨어날 때 아주 잠깐, 차원을 달리한 두 세상이 빠르게 겹쳤다. 찰라였으나 그 사이에 분명 한 세상이 닫히고 한 세상이 열렸다. 세상이 열리면 닫힌 세상에 대한 기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열린 이승은 잠시 낯설었다. 머?라고 되묻는 그의 표정은 몽롱했다. 자주 그랬다. 닫히고 열리는 세상의 틈에서 몽롱해지는 짬이 싫지 않았다. 거기엔 일종의, 옅은 수음의 쾌락마저 있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놀렸고, 라즈니시는 별명을 지었다. 머이였다.
그냥 ‘머’가 아니고 ‘머이’인 까닭은, 별명도 이름이라 호칭에 필요한 안정된 명사형 어미를 붙인 거라 했다.
라즈니시가 지어준 별명이 필살의 탄환이 되어 탕! 탕! 탕! 탕! 아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일방적이고 가차없고 막무가내인 격발이었으나, 탄환이 뚫고 지나간 몸구멍에는 묘하게도, 매우 아프면서도 후련한 공기의 흔적이 남았다.
라즈니시라면 아내의 비명같고 체념같던 외침의 뜻을 누구 보다 잘 알 것 같았다. 그는 찾아가 묻고 싶었다. 22년 전 머이라는 별명을 지을 때 이미 자신을 제대로 파악했을 라즈니시니까. 그리고 아주 갈라선 라즈니시라면 거의 갈라선 자신에게 뭔가 해줄 말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하지 않는 도인과의 인터뷰는 곤란하겠지만 취재 자체가 불가능할 건 없었다. 노래하는 개와 눈물 흘리는 돌미륵을 취재하듯, 묵거사를, 보고, 쓰면 될 것이었다.
나어린 순경 혼자 둔내 파출소를 지키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저 식당 저거, 환풍기 방향 쫌 돌려 달래도 아 참 거, 안 돌리네요.
고기 냄새 가득한 게 자기 탓인 양 순경은 머리를 긁적였다. 짧은 머리카락 안으로 흰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딘가 아직 굳지 않은 듯한 작은 머리통이었다.
그는 신분을 밝히고, 사람 찾는다는 용건을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순경은 공연히 손바닥을 비볐다. 멀지 않다고 했다.
차로 5분이면 가요. 내려서 한 8분쯤 걸어야 하지만. 쉬워요.
순경은 관내도 앞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도로를 따라 그렸다. 너무 쉽게 그리는 바람에 그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말없이 서 있자 순경이 다시 천천히 그렸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아시겠어요?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는 물으려 했다.
저어 혹시 라즈…….
말을 멈추고 급히 휴대전화 폴더를 열어 버튼을 눌렀다.
걔 본명이 뭐였지? 글쎄 이름을 까먹었다니까.
조금 뒤 그가 다시 순경에게 물었다.
오윤석이라는 사람이 관내에 살고 있는지…….
오윤…….
순경이 머리를 긁었다.
석.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한 1년 됐을까? 키는 저 보다 좀 작고……서울 시의원에 출마했었죠. 개량한복 같은 걸 즐겨 입을 거예요, 눈이 가늘고……. 외지에서 전입한 사람들은 금방 파악되지 않나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요.
혹시 라즈니시……라고 불릴지도 모르는데.
라지…….
역시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라즈니시라고 불릴 턱이 없었다. 그는 혼자 실소를 머금었다.
근처에 묵 파는 데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묵, 이요?
순경의 작은 머리통이 그는 왠지 자꾸 안쓰럽게 느껴졌다.
도토리묵이요. 그걸 잘 먹어서 묵거사라면서요.
말을 안 해서 묵거사죠. 그 사람은 먹지도 않아요.
먹지 않는다뇨?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요.
그럴 리가?
하여튼 그래요. 얼마 전 먹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방송돼 화제가 된 적 있었다. 이른바 독립영양인간. 6년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는 러시아 여성을 비롯해, 전세계에 3천여 명에 이르는 독립영양인간이 있다고 소개됐다. 만일 묵거사가 그렇다면 그는 국내 최초로 독립영양인간을 취재하게 되는 셈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먹나요?
정말이냐고요?
순경의 되물음에 뭐라 다시 물을 수 없었다. 그는 파출소 밖 도로로 나서며 순경에게 물었다.
어느……방향이죠?
저어 쪽이요.
순경이 턱짓을 했다. 두 손을 제복 바지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은 채여서 어깨가 구부정했다. 빈약한 턱을 다시 한 번 들어 가리켰다. 저기 저어 쪽.
순경은 슬리퍼 차림이었다.
도술인인데다 독립영양인간일지도 모를 묵거사.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묵거사와의 만남이 어렵지 않은 일이 돼버리자 라즈니시 쪽이 더 아쉬워졌다. 간절해졌다. 라즈니시가 아니었다면 둔내에 올 그가 아니었다. 파출소 고참들이라면 라즈니시를 알지 않을까. 취재 마치는 대로 파출소에 한 번 더 확인해봐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동창 모임에서 라즈니시를 만났다. 2년쯤 전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였다.
그는 동창회가 첫모임을 가졌던 5년 전부터 꾸준히 참석했다. 제법 성황을 이루던 모임은 시나브로 참석률이 떨어졌다. 인원이 열다섯 명 안팎으로 고정돼 갔다. 모임의 성격을 상조회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가던 즈음 라즈니시가 나타났다.
그건 안돼.
뒤늦게 처음 나타난 사람 의견 치고는 너무 단호했다. 다들 잠시 뜨악해졌다.
어째서?
비슷하게 단호할 친구라면 발뒤꿈치밖에 없었다.
상조회를 하면 기금이 많이 모여. 나중에 가입할 사람은 기금분의 사람 수 만큼 목돈을 내야 해. 동창회는 동창 모두에게 문호가 개방돼야 하는데 상조회가 되면 동창이라도 돈 때문에 가입 못하는 경우가 생겨. 반대의 이유야.
단호한 만큼 명쾌해서 라즈니시 말에 모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묘하게 이는 거부감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거북하기만한 거부감은 아니었다. 새로 합류한 동창에게서는 얼마간 반가움과 놀라움이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그랬지, 쟨 늘 어딘가 거부감이 들었었어. 안 변했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 사이에서는 뭐든 신기한 거였다. 세월에 침식당한 것이든, 불구하고 여전한 것이든 다.
뒤늦게 처음 나타나 좌중을 석권하는 것, 분위기를 다소 진지하게 이끄는 것 따위가 거부감의 이유였다. 예전의 거부감이 새삼 오롯하면서도 반갑게 상기되었던 것이다. 아니면 라즈니시에게 여전히 이끌려가는 자신들에 대한 거부감이었거나.
라즈니시는 반장을 하거나 표창을 받는 일이 없었다. 별명을 그럴싸하게 짓는 재주가 있었을 뿐이다. 예사롭지 않은 말솜씨에 비해 국어 점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평균성적도 하위권이었다. 키는 작았고 피부는 가무잡잡했고 눈은 가늘었다. 교복 바지단이 다른 아이들 보다 언제나 2센티쯤 짧았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라즈니시가 사는 동네(학교 주변이 다 비슷하긴 했지만) 집들은 모두 벽 아랫부분이 습기에 젖어 있거나 형광색 초록 이끼가 붙어 있곤 했다. 매우 좁은 맨땅 골목의, 대개는 낮은 단층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떼지어 교문을 빠져나와도 라즈니시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지는 방향만 있었을 뿐 사라지는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인도로 가는 걸 거야. 누군가 말했다. 라즈니시니까 그 아이가 가는 곳은 하여튼 인도일 거라고.
그런 라즈니시에게 늘 말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경청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말들을 모두 믿게 되는 반복적 상황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것. 그런 낭패가 되풀이되었으므로 그 아이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졸업 뒤 소식이 끊겼다. 모두 인근 고등학교들로 배정 받았으나 라즈니시의 모습은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었다. 멀리 이사를 갔다는 말도 있었고 아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라즈니시와 비교적 가깝다고 할 수 있었던 그에게도 그 아이의 자취를 추적할 만한 끈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2년 전 가을, 돌연 동창 모임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지리멸렬해지려던 모임이 일시적인 활기를 띠었다. 라즈니시에 대한 여전하고도 묘한 거부감이 활기에 한 몫 했다.
그간의 행적이 궁금하긴 했으나 라즈니시는 주요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다든가 부자였다든가 아니면 싸움을 잘 했다든가 하는, 이른바 잘 나가던 친구들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라즈니시가 다시 친구들의 관심권 안으로 일거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특유의 거부감 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래, 뭐하고 지내?
나무젓가락2가 물었을 때 라즈니시는 말했다.
말해도 잘 모를 거야.
이런 식의 대답이 거부감과 함께 견딜 수 없는 궁금증을 몰고 왔다. 여전했다.
글쎄, 뭐하고 지내냐니까?
나무젓가락2가 약간 짜증스럽게 다시 물었고 라즈니시가 대답했다.
진설사라고 들어봤어?
관심이 온통 라즈니시에게 쏠렸다. 주요관심 대상도 아닌 자가 관심을 끌게 되면, 공부 잘하고 부자고 싸움 잘했던 친구들은 살짝 비위가 상할 수밖에 없었다. 못 보고 살았던 동안 무슨 큰 변화가 생겨 지위의 역전현상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말하자면 일종의 코디네이터랄까?
아, 씨. 그러니까 뭐냐고?
싸움 잘 했던 뺑코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주 아주 쉽게 말하자면, 전문 제상 차림 코디라 할 수 있지.
아주 아주 어렵게 말해봤자 결국 과방간이네. 상차림 담당. 좀 더 유식한 말로 하면 숙설간쯤 되나? 우리 아부지가 동네 큰일 생기면 맡아 놓고 그거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아부지 보고 맨날 과방이라 했지. 너 과방이구나?
좀 달라. 과방과 진설사는.
제사만 전문이라서?
제사 전문이 아니라, 전문 제사라니까.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달라.
어떻게?
제사 전문은 생일 결혼 회갑 같은 건 안 하고 제사상만 차리는 거고.
그러고?
전문 제사는 종묘대제 해신굿 향교제 충무공 사당제 같은 걸 말하지.
오우!
친구들이 탄성을 질렀다.
정말 너, 종묘제 같은 것도 니, 니가 차린다는 거니?
시방새가 물었다. 라즈니시는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라즈니시는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수많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비해, 드문 것이 중학동창회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회와 비교해도 중학동창회는 단연 드물었다. 그들이 굳이 중학동창회로 만나는 이유는 같은 재단으로 같은 교명과 교가와 교정을 썼던 공업고등학교 축구부 때문이었다.
중학생들도 자주 응원에 동원되었다. 프로축구에서 이름을 떨쳤거나 현재 K리그에 있는 코치진 중에는 그들과 한 운동장에서 공을 찼던 선수들이 많았다.
자조 섞인 투로 이름만 서울이라 일컫던 지역. 학교가 적었다. 중학동창이긴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동창이며 또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렇게 겹쳤다. 공고나 인문고나 대학 진학률은 낮았다. 그런 곳의 그런 중학교였다. 그러나 학교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공고는 축구명문이었다. 중학동창으로 만나야 자랑스런 교명을 쓸 수 있었다.
서울의 외진 지역, 그 중 더 가난한 동네에 살았던 라즈니시. 공부도 못했고 외모도 볼품없었으며 가까운 친구도 없고 학교 파하면 홀연히 사라지던 친구. 그 아이가 나름 돌올한 존재감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말발과 별명 때문이었다.
말발이라 하여 장황했던 건 아니다. 짧고 인상적이었을 뿐이다. 열다섯 살짜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오죽했을까마는, 같은 열다섯 살짜리가 듣기에는 충분히 그럴싸했다. 말이 길지 않았어도 왠지 오래 많이 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게로 인해 깊게 가라앉는 성질의 말들이었기 때문일까. 라즈니시가 짓는 별명도 짓는 족족 두루 쓰였다. 기존의 별명들을 밀어내고 붙박이가 되었다. 그런 힘이 있었다.
개발길질도 워낙은 선배들이 지은 수학선생 별명이었다. 선생은 아이들을 때릴 때 몽둥이나 손 대신 발을 썼다. 격투기의 화려한 발기술이 아니라, 흥분하여 마구잡이로 차고 후리고 밟는 식이었다. 힘만 세고 어설펐다. 개발길질에 당한 아이들 교복은 온통 구두약으로 얼룩졌다.
수업시작종이 울렸는데도 복도에서 떠들고 놀던 아이 중 하나가 ‘야, 선생님 오신다!’ 대신 짧고 빠르게 ‘야, 개발길질 온다!’라고 외쳤다. 그 아이는 흠씬 개발길질을 당했다. 라즈니시는 그 아이를 개발길질이라 불렀다. 구사하는 개발길질과 당하는 개발길질의 차이는 구원성(久遠性)에 있다, 당한 개발길질이 훨씬 오래가는 법이지……. 그때 라즈니시가 한 말이었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그런 뜻이었던 건 분명했다. 자신이 지은 별명이 오래 갈 것과 오래 갈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라즈니시는 알고 있었다. 수학선생 별명은 구두닦새로 바뀌었다. 애들을 패고 나면 선생의 구두는 언제나 반짝반짝 만질만질 빛났다. 역시 라즈니시의 작명이었다.
화려하고 맛깔스런 구절판에 개고기는 어떤가. 둘레 여덟 칸에 각각 때깔나는 음식이 담겼는데 가운데 둥근 칸에 밀전병 대신 개고기가 담긴 것이다. 싸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없고. 다 좋은데 늘 하나가 빠지거나 나빠서 온통 망치는 말솜씨. 성격을 남김없이 살린 데다 성씨(물론 구)까지 멀쩡하게 활용했으니 별명의 명품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발뒤꿈치라는 별명은 별명을 가진 친구의 발뒤꿈치와 직접적 연관이 없었다. 발뒤꿈치가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다. 정상이었고 평범했다. 당사자 발뒤꿈치가 아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발뒤꿈치가 갖는 상징? 그런 건 아니고 일종의 이미지랄까, 발뒤꿈치라는 것과 발뒤꿈치라는 말이 발하는 느낌 감각 인상 따위의 총체가 별명 주인공의 ‘어떤 것’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다는 것. 그것이 발뒤꿈치가 별명으로 굳어진 이유였다.
그 ‘어떤 것’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친구의 눈빛, 성격, 말투. 웃음, 필체, 식사습관. 머리모양, 체취, 걸음걸이……. 그 무엇 하나 발뒤꿈치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귀두까지.
물론 웃음과 필체와 식사습관 따위가 발뒤꿈치 같을 리 없었다. 같을 리 없는 게 똑같아 보인다는 점이 신기했다. 발뒤꿈치의 모든 것은 영락없이 발뒤꿈치스러웠으니까. 조용히 해! 라는 지시마저(발뒤꿈치는 2학년 내내 반장이었다) 발뒤꿈치 구르는 소리로 들렸다. 사람과 별명의 궁합을 그토록 신통방통하게 맞추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라즈니시였으므로 그 모든 게 가능했다. 라즈니시가 별명을 붙이면, 별명대로 되었다.
반에 쌍둥이가 있었다. 그들에겐 일찌감치 누군가가 지어준 별명이 있었다. 자작나무였다. 인디안 체로키 부족이랬던가, 자작나무를 ‘서 있는 키 큰 형제’라 부른다고 했다. 쌍둥이 형제가 직접 말한 사실이었다. 별명은 거기서 유래된 거라고.
지들이 지은 거 아냐? 꼬락서니에 비해 어딘가 쫌 멋지잖아.
자작나무와 닮은 점이 있다면 두 가지, 피부가 희고 몸이 가늘며 길다는 거였다. 그러나 자작나무가 들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많이 나쁠 것만 같았다.
나무젓가락…….
라즈니시 한 마디로 자작나무 형제는 그 날로 나무젓가락이 되었다. 한 가지로 불리던 쌍둥이의 통합형 별명을, 기능성을 높인다며 라즈니시는 숫자로 개별화 했다. 태어난 순서대로 나무젓가락1, 나무젓가락2. 자작나무라 해주기엔 모두들 어딘가 찜찜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궁합이라고 여겨왔던 터였다. 쌍둥이의 인상은 누가 봐도 충일 보다는 결핍 쪽에 가까웠으니까. 피부가 희멀건 것도 뽀얀 게 아니라 창백한 거였다. 세수라도 한 번 안 하면 다른 애들 보다 오히려 더 구저분해졌다. 창백한 궁기. 정말 분식집 나무젓가락 정도가 적당했다.
원래 나무젓가락 앞에 ‘짱깨 묻은’이라는 관형사가 붙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자장 묻은 나무젓가락. 게다가 본디 별명이었던 자작나무를 음소 하나 바꿀 것도 없이 그대로 발음하면 자장나무였던 것이다.
라즈니시가 순간적으로 툭 던지는 별명은 금방, 그 별명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들로 빈틈이 없어졌다. 전격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고, 별명 당사자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도저한 힘이었다. 라즈니시가 지은 것이 기존의 별명들을 모조리 구축(驅逐)해 버린 까닭이었다.
직감적 언어 감수성에 의해 은밀히 행사되던 모종의 지배력. 그에 더해 라즈니시의 존재를 깊이 각인시켰던 사건이 있었다.
체육시간에 고르비의 만년필이 없어졌다. 만년필로선 그다지 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몸통에 그려진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펜을 거꾸로 들면 잉크의 흐름에 따라 완전 나신이 되는 재미있는 디자인 상품이었다. 교실을 지킨 것이 라즈니시였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주번 대신 교실에 남았던 라즈니시를 의심했다. 라즈니시는 반친구들을 비웃었다. 교실에 나 혼자였다, 물건 없어지면 당연 내가 의심 받는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물건을 훔치겠는가, 하고.
발뒤꿈치가 말했다. 그래서 훔칠 수 없는 거라고? 되레 악용할 수 있지.
라즈니시가 말했다. 체육시간에 없어졌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내가 변상하지.
그걸 내가 왜 증명해야 하지? 무조건 내 놓으면 될 것을.
니가 갖고 싶었던 걸 다른 놈이 가져서 화나니?
그래 화난다, 새끼야.
발뒤꿈치 성격이 나오려고 했다. 라즈니시는 입을 다물었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물건이 물건인 만큼 선생님을 개입시킬 수 없었다. 사실은 고르비도 삼촌 것을 훔쳐온 거랬다. 이래저래 드러내놓고 수배할 수 없었다. 그런 묘한 사정을 라즈니시가 악용한 거라고, 발뒤꿈치는 끝까지 말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고르비 얼굴의 붉은 얼룩반점만 자꾸 더 붉어질 뿐이었다. 라즈니시는 한 마디만 했다. 체육시간에 없어진 게 아니야……. 그러면서 역시 끝까지 당당했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표정에서 비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소행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끝까지 입을 다물어 준 너에게 고맙고 미안했고 창피했다…….
대구로 전학 간 친구에게서 온 편지 때문에 라즈니시는 혐의를 벗었다. 편지에는 쓰여 있었다.
만년필이 탐났다면 안 훔쳤을 텐데 홀딱 벗었다 입었다 하는 여자 그림이 탐나서 훔쳤고, 그게 더 창피했고, 그래서 진작 말할 수 없었다…….
만년필도 편지와 함께 되돌아왔다. 잉크가 메말랐으므로 여자는 내내 홀딱 벗고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반성어린 범인의 편지도 읽게 되었고 만년필도 화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범인 숨겨준 걸 잘한 일이라곤 할 수 없었으나 그 일로 인해 라즈니시가 좀 더 멋진 친구로 기억된 건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돌려줄 친구라는 걸 나는 믿었어.
그때 라즈니시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거부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별 볼일 없는 주제에 어떤 힘인가를 발한다는 것. 공부도 못하면서 말 꿰맞추기는 장난이 아니라는 점 등이 그랬다. 그것만이었다면 그 아이에 대한 거부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즈니시의 사전에는 단어 두 개가 없었다. ‘모른다’와 ‘미안하다’였다. 하위권 성적이면서 모르는 게 없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시험지에 붉은 색연필 비가 마구 내리는데도 모른다는 말은 죽어도 하지 않았다.
어제 마이클 조던이 발표한 내용 알아?
누가 물으면, 알 경우는 물론 안다고 분명하게 대답하지만 모를 경우엔 절대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시카고에선 조던 혼자 다해.
이런 식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다음 말을 주시했다.
디트로이트로 가겠다고 했거든. 피스턴스 말야. 불스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라즈니시는 짐짓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불스에겐 안 됐지만 조던이 부담을 많이 덜겠지. 피스턴스에선 아이제이아 토마스가 함께 넣어줄 테니까.
모른다는 말 대신 포괄적인 사실로 일단 반응해 놓고,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서 구체적인 사태를 짐작하고 외려 한 발 더 나아가 아는 척하는 방식.
라즈니시 응대법에 넌덜머리가 난 친구들은 일부러 집요하게 굴었다.
너, 조던이 우리 나이로 몇 살인 줄 알아?
나이가 뭐 중요해. 중요한 건 실력…….
그러니까 조던 나이가 몇이냐고?
그러는 너는 매직 존슨이 몇 살인지는…….
씨발아, 조던 나이가 몇이냐니까?
그래도 라즈니시는 끝내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라즈니시는 뭐든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며, 그리하여 누구에게 잘못을 저지를 까닭이 없는 인간이었다. 발뒤꿈치와 개발길질은 라즈니시만 보면 미치고 팔짝 뛰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예 없는 단어가 있었는가 하면, 오래된 한자 음역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는 단어는 많았다. 대표적인 게 구라파였다. 1,2차 세계대전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통틀어 구라파전쟁이라 했다. 그 정도면 봐줄만 했다. 필리핀을 비율빈, 베토벤을 변도변이라고 하는 데는 모두들 짜증을 냈다. 라즈니시는 비릿하게 말했다.
그럼 어째서들 서반아어과라고 할까? 덕국을 독일로 바꿨대서 뭐가 달라졌을까?
거부감은 그 아이의 발음에도 있었다. 초성 ㅅ, ㅈ, ㅊ을 발음할 때는 반드시 입술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당겼다. ‘사’가 ‘솨’로, ‘저’가 ‘줘’로, ‘치’가 ‘취’로 들리기 일쑤였다. 뭔가를 고취하는 듯한, 아니면 스스로의 말에 취한 듯한 발음은 친구들을 설득하고 믿게 하는 데 나름 큰 효과가 있었으나 거부감도 그에 비례했다. 그랬다. 라즈니시에게 있어 거부감이란, 그 아이의 정체성 혹은 묘한 대인 지배력의 완성과 유지를 위해 불가결한 거였다. 그리고 그 거부감은 또 친구들로 하여금 라즈니시에 대해 여전한 우월감을 지닐 수 있게 했다. 언제나 적당히 깔볼 수 있었으니까.
졸업 후 16년 만에 만났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라즈니시도 달라진 게 없었다.
라즈니시 말을 듣고 있자니 진설사라는 것이 왠지 중요무형문화재에 버금가는 전문인 같았다. 하지만 진설사라고 다 같은 진설사는 아니겠지. 그는 생각했다. 거기에도 직급에 따른 서열이 있겠지. 흔히 ‘시다’라고 하는 곁꾼 아닐까. 달라지지 않은 라즈니시의 표정 말투 눈빛을 대하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거부감을 작동시켜 상대를 얕잡아 보았다. 그러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그는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러면 뭐 하나 묻자.
질문을 던진 건 그러나 그가 아니었다. 고르비였다.
어동육서는 왜냐?
라즈니시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고르비가 재차 물었다. 할 수 없다는 듯 라즈니시가 더디게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 온 거니 중국 기준이지. 중국은 동쪽이 바다 서쪽이 내륙이다. 답이 됐니?
잠깐 생각에 잠겼던 고르비가 반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홍동백서는?
라즈니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둘러댈 생각 마.
고르비가 말했고, 라즈니시가 픽 웃었다.
웃지만 말고 모른다면 모른다고 해라.
사실은 어동육서도 제대로 된 답이 아니거든.
아니라니?
나는 <주자가례>를 전범으로 삼고 <가례집람>, <가례원류>를 참고로 해.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봐. 어동육서 홍동백서는 여항세설일 뿐이야.
라즈니시 입에서 말이 쏟아지자 고르비 입이 막혔다. ‘시다’는 아닌 것 같다고 그도 생각했다.
새끼, 여전하구나.
고르비가 물러섰다.
라즈니시를 두 번째 만났을 때였던가. 그는 낭패를 당했다. 담석이 많아 아예 쓸개를 떼어버렸다는 뺑코에게 라즈니시가 한 말 때문이었다.
뺑코, 운전 특히 조심하고 밤길 조심해.
그러면서 이유라고 댄 말이 이러했다. 원래 쓸개가 없는 짐승은 다니던 길밖에는 다닐 줄 모른다는 것. 대표적으로 노루와 토끼가 그러하다고 했다. 사냥꾼들이 그러한 짐승들의 습성을 노려 오가는 길목에 올무를 놓는 거라고. 그러니 쓸개 없는 뺑코도 자칫 길을 잃으면 정신을 놓고 마냥 헤맬 수 있다고.
노루와 토끼가 쓸개가 없다고?
정말 가당찮았으므로 그는 거부감을 잔뜩 실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라즈니시는 차분하고 진지했다.
노루와 토끼한테도 당연히 쓸개가 있을 거라고들 믿지. 그런데 머이, 그런 당연한 믿음의 근거는 뭘까. 사람과 같은 포유류라서? 장어는 포유류가 아닌데도 쓸개가 있어. 포유류란 그저 새끼 젖 먹여 키운다는 공통점밖에 없어. 쓸개 있고 없고가 포유류의 기준은 아니지. 이봐 머이, 어째서 노루와 토끼한테도 당연히 쓸개가 있을 거라 믿지?
그와 함께 있던 친구들 모두 망연해졌다. 쓸개가 있다고 우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확인해서 거짓으로 드러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고 속으로 별렀을진 몰라도. 그래서 시의원에 출마한다는 라즈니시의 다음 말도 개코쥐코로 들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라즈니시는 정말 시의원에 출마했다. 그것도 여당 공천으로.
그가 낭패를 당한 건 두 번째 만남에서였고, 그게 낭패라고 확신했던 건 세 번째 만남에서였다. 다 함께 당한 거긴 해도 그 중 공부 좀 하고 잡학에 능한 걸로 인정받던 그였으므로 열패감이 더했다.
그래, 확인해 봤어?
세 번째 만난 날 라즈니시가 그에게 먼저 물었다.
뭘?
쓸개.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노루와 토끼한테 쓸개가 있나 없나 알아보는 일 자체가 우습고 참담했다. 라즈니시가 물을 줄 몰랐다. 그런 일일랑은 그냥 잊고 지나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라즈니시는 분명 어떤 확신을 갖고 묻는 것 같았다.
니……말이 맞더라.
하마터면 그는 그렇게 얼버무릴 뻔했다. 라즈니시가 묘한 웃음을 슬쩍 웃어주지 않았다면.
확인을 주고받은 건 아니지만 웃음의 의미는 ‘농담이었어.’였다. 그는 농담에 식은땀을 흘린 셈이었다.
라즈니시가 한 번 더 만만치 않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거부감 역시 그만큼 커졌다.
라즈니시의 시의원 출마설이 설이 아닌 확정사실로 밝혀진 것도 세 번째 만남에서였다. 구의원도 아니고 시의원이었다. 선거 홍보명함을 받아든 친구들은 모두 놀랐다. 누군가가 물었다. 뒤늦게 동창회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도 이것 때문? 거부감은 언제라도 반감으로 바뀔 수 있는 거였다. 라즈니시가 말했다.
우리 중에 내 선거구에 사는 사람 나 말고 없지? 주소지 옮겨달라는 말 아니다. 설령 내 선거구에 살고 있다 한들 늬들이 날 찍어주겠냐?
그리고 껄껄 웃었다. 완벽히 사람 좋은, 여유 있는 웃음이었다. 그런데도 슬며시 거부감이 고개를 쳐드는 건 뭘까, 그는 생각했다. 거부감은 라즈니시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이지 라즈니시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문제는 아닐는지.
어떻게 출마까지 하게 되었느냐고 물은 건 나무젓가락2였다. 제사 전문이든 전문 제사든, 하여간 제상 차리는 게 일인 사람이 시의원에 출마한다는 사태가 나무젓가락2에겐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 일로 보인 모양이었다. 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웃음의 여세를 몰아 라즈니시가 말했다.
순 말발 덕이지 뭐. 늬들이 지겨워하는. 그런데 그거 제대로 세우니까 정치 원로들한테도 먹히더라.
제사 전문 아닌 전문 제사 상차림 코디네이터, 즉 진설사인 라즈니시는 가끔씩 일반 제사상도 차렸다고 했다. 일부러 빵상 아줌마라는 사람의 흉내까지 내며 ‘가끔씩’을 강조했다. 일테면 아르바이트였던 셈이지, 가-끔-씩!
그 방면에선 꽤나 이름난 진설사의 아르바이트였으므로 라즈니시가 상대했던 쪽은 주로 재벌가, 원로정치인, 고위관료․법조․의료인이었다. 왕족과 공(公)자시호 이상 전문 제례 진설사가 제상을 차린다는 것만으로도 제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례는 물론 관례와 혼례와 상례에 두루 정통한 데다, 말을 창안하고 구사하는 솜씨와 위력이 예전부터 남달랐던 라즈니시였다. 그런 유능한 진설사가 조상 제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굉장한 의미를 두었다.
라즈니시의 말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선조의 음덕과 후손의 명운이 상호 조응하는, 이른바 발복(發福) 제례법에 대한 역설로 이어졌다. 어디까지나 성의를 다해 조언했을 뿐 의뢰자를 미혹케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라즈니시가 쓰는 말들이 모두 고문 가례집들에 출처를 두고는 있었으나, 말 잘 부리고 믿음 갈 줄 알게 쓰는 수완이 남달랐던 만큼, 현 사회에 통용되는 정치 경제 문화 관련 용어와 최근 유행어들을 재치있게 섞어 활용했다. 알아듣기에 편했을 뿐 아니라, 라즈니시가 품고 있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제법 잘 정돈된 의식과 신념을 은연중에 드러내게 되었다. 정치입문 제의를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의원에 출마하게 된 직접적이고 실질적 후경은 발복 제례였다. 직업인으로서 예와 성의를 다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았을 뿐인데 라즈니시에 대한 의뢰인들의 평은 예상 밖이었다. 발복 효과라면 단연 오윤석 진설사! 사업의 창성과 선량(選良)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선조 묘를 이장하고 새단장을 마친 사람들은 가장 먼저 라즈니시를 찾기 시작했다. 돈, 명예, 인맥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왔다. 굴러들어왔다고 했다.
이래저래 걸려 있다 보니 출마 간청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더라구…….
그 말을 했던 라즈니시나 그 말을 들었던 친구들이나 시의원 당선을 낙관했던 게 사실이었다. 말에서 감각되는 느낌이라든가 분위기가 왠지 그랬다.
거부감과 반감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홍보명함에 박힌 후보자 학력을 본 친구들의 고개는 다시 갸울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학력이었다. 명함대로라면 라즈니시는 중학교 졸업 뒤 마닐라 D.A.인스티튜트와 서울시내 모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돼 있었다. D.A.가 뭘 뜻하는지, 인스티튜트가 어떤 교육기관인지, 언제 수료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중학 졸업과 국내대학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사이에 있는 D.A. 인스티튜트. 그로선 확인해 볼 수도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쓸개였다.
어쩐 일이야, 여긴?
라즈니시가 물었다.
이봐 머이, 그렇잖나 머이? 라며 늘 부르던 별명을 쓰지 않았다.
묵거사라는 사람 취재하러……. 온 김에 너도 좀 만나려고 파출소에 물었더니 모르더군. 동창들도 니가 둔내에 산다는 것 말고는 몰라.
그도 라즈니시라 부르지 않았다.
작은 늪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자 더 이상 포장도로가 아니었다. 백여 미터도 더 진입하지 못해 차에서 내려야 했다. 길은 좁고 풀이 무성했다. 차 돌릴 공간도 없었다. 차를 버려둔 채 무성한 풀길을 걸었다. 얼마 안 가 하얀 조립식 주택이 나왔다. 마당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라즈니시였다.
여기 살고 있는데 왜 파출소에선 널 몰랐을까?
그가 말했다.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닌 거지, 내가.
그러고 라즈니시의 말이 끊겼다. 먼 산 위의 구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저런 구름은 말야.
라즈니시가 말했다.
바라보고 있으면 모양이 변하지 않아. 그런데 딴 데로 잠깐 한눈을 팔고 나면 영락없이 달라져 있거든. 그래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이렇게. 그러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통 변하질 않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재밌어, 구름 바라보는 거.
여전히 구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집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보통의 조립식 전원주택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것들이 보였다. 마당의 돌자갈, 몇 그루의 배롱나무, 긴 나무의자, 주워온 듯한 화분과 잎 넓은 화초, 마당과 건물 사이에 깔린 얼마간의 잔디밭, 야외 부뚜막, 베고니아 심은 돌구유…….
길이 좁아 차가 못 오겠던데 집은 어떻게 지은 거야?
그가 물었다.
날랐어. 자재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자서 나르고 혼자서 지었지. 어렵지 않아.
라즈니시는 아예 구름 위로 올라앉은 것 같았다.
집 한 채를 혼자 나르고 혼자 지었다?
밀차로 나르고 지개로 옮겼어. 어렵지 않아.
마당 한 귀퉁이에 외바퀴 밀차가 보였다. 두엄이나 나를까, 건축자재를 실어 옮길 순 없을 것 같았다. 지개는 보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
그가 말했다.
사실은 뻥이야. 어느 날 내가 갖고 싶은 집이 여기에 살며시 내려앉았을 뿐이야. 통째로. 하늘에서.
라즈니시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밀차와 지개로 지었다고 믿을게.
둘이 마주보고 웃었다.
라즈니시에게서 뭔가 없어졌다는 걸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 얼른 알 수 없었다. 라즈니시의 눈과 제대로 마주친 순간 무언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느껴져야 할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안 보였다. 그게 무얼까.
시간 괜찮으면 차라도 한 잔 하지.
그를 집 안으로 안내하며 라즈니시가 말했다.
묵거사 사는 데 멀지 않지? 너도 잘 알겠구나 그 사람.
그가 물었다.
아니면 취재 마치고 밥이나 함께 먹든지…….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설마 여전히 ‘모른다’라고 말할 줄 모르는 건 아닐 테지. 그는 라즈니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도 역시 보통의 전원주택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것들이 있었다.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여닫이 창문, 거실 중앙 천장의 네모난 광정(光井), 황토벽, 새 모양의 목각들, 오래된 이남박과 소여물 주걱, 마른 감과 옥수수, 타일로 만든 액자, 그리고 개 고양이 모양의 한지공예품들이 천장 밑 들보에 나란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라즈니시는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차를 준비했다. 식탁 위에 찻상보를 깔고, 찻잔받침과 차숟가락을 내놓았다. 전혀 품이 들어 보이지 않을 만큼 동작이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라즈니시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식탁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으로 비껴든 햇살이 식탁 한쪽 가장자리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한 잔만 마시고 그는 일어날 참이었다. 묵거사를 만나려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라즈니시 말마따나, 취재를 마치고 밥이라도 함께 먹으면 될 터였다.
아주 좋네. 무슨 차야?
그가 물었다.
산국화에 구기자를 넣었어. 죽염 조금.
차에 소금을?
응, 아주 조금.
차 이름이 뭔데?
없어.
없어?
없어.
니가 직접 만든 거야?
응. 문 밖만 나가면 먹고 마실 거 천지야.
그는 자기 잔에다 어느새 두 잔째 찻물을 붓고 있었다. 그리고 없어진 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즈니시에게서 사라진 것. 그래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것.
그걸 뭐라 해야 할까.
그는 그것에 이름을 붙여 본 적이 없었다. 일종의, 불안감 같은 거였다. 라즈니시 자신에 의해 깊이 억눌린 그것은, 말 그대로의 불안감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자신감으로 때로는 수다 또는 침묵과 응시 따위로 위장되었다. 지독한 불안감을 주체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라즈니시를 우연히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도 끝내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가장되는 불안을.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의 낯선 모습을 보게 된 뒤로 그는 유심히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즈니시의 불안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주의 깊게 살핀 지 석 달쯤 지나 그는 알게 되었다. 불안과 고통이 라즈니시 자신이 짓는 별명들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거기엔 일련의 유형 같은 게 있었다. 불안이 시작되는 순간, 깊어지는 단계, 해소되거나 더러는 억압된 채 잠재되는 등의 과정 같은 것. 그의 짐작은 그 후로도 계속된 관찰에 의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라즈니시의 일면을 그는 느끼고 알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라즈니시와 좀 더 가깝다고 스스로 여긴 까닭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두웠던 체육 교보재 창고. 그 속에서 신음하던 라즈니시를 본 건 그뿐이었으므로.
체육교사는 반장 대신 그에게 교보재 창고를 맡겼다. 4단 이상의 뜀틀을 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체육 시간 전에 열쇠를 받아 창고문을 열어야 했다. 교보재 방출과 수습을 마친 뒤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반납하는 게 일이었다.
5단만 되면 그는 뜀틀을 넘지 못했다. 모든 학생들이 마지막 단계인 6단을 거뜬히 뛰어 넘었다. 4단 이상은 그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아무리 세게 도움닫기를 해도 5단 앞에서 몸이 굳었다.
교보재를 나르며 친해지다 보면 6단 정도는 금방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체육 교사는 말했다. 그는 한 학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뜀틀을 뛰어넘지 못했고 무거운 교보재들과 씨름해야 했다.
그날도 뜀틀이며 높이뛰기틀 따위를 창고 안에다 힘겹게 끌어다 놓고 그 곁에 널브러졌다. 매트에 누워 창고 안에 떠도는 먼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라즈니시가 창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게 그때였다. 어딘가 은밀한 느낌 때문에 그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뭔가를 토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목울대가 심하게 경련했다. 하지만 교보재 창고를 화장실로 오인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었다. 라즈니시 이마에는 진땀이 흘렀다. 충혈된 눈이 불안하게 떨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명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괴로워했다.
그날 라즈니시에게서 받았던 느낌은, 불안이나 고통 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생명을 위협하는 무엇, 혹은 견딜 수 없는 병발작의 조짐에 쫓기는 눈.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온 한줄기 빛이 라즈니시의 그 눈에 꽂혔다. 완벽하게 비어 버린 수정체를 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눈이 아니라, 무서울 만큼 투명한 광물질일 뿐이었다.
새로 전학 온 아이가 생길 경우 라즈니시에게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되었다. 공포라 해도 상관없을 불안은 낯선 학생의 출현으로 촉발되어, 그 아이에게 별명이 주어지는 시점에서 시나브로 해소되었다. 매번 그랬다. 그다지 오래 걸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학 온 아이의 별명이 탄생하기 전까지, 겉으론 아닌척하면서 어둡고 외진 곳에서 라즈니시는 혼자 괴로워했다.
즉흥적으로 툭 던지는 별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재미도 취미도 아니었다. 상대를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하고 나름의 규정을 끌어내는 일이, 쉽기는커녕 라즈니시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두 가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별명 짓는 일이 대체 뭐기에 그토록 절박했던 건지. 그리고 기껏 별명 짓는 일일 뿐인데, 어째서 그것이 라즈니시에게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몰고 왔던 건지.
새로운 별명이 생기고 두루 쓰이게 되면 라즈니시는 불안에서 헤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깊이 침잠할 뿐 완전히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걸, 꾸준히 관찰해온 그는 알았다. 너스레와 공연한 자존심 따위로 은폐된 그것은 ‘거부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비쳤다.
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라진 거란 그거였다. 억압되고 위장된 불안과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별명이란 게……너한테는 뭐였니?
라고 그가 물었다.
차 마셔.
라즈니시는 턱짓으로 찻잔을 가리켰다. 역시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묵거사는 손 대지 않고 찻잔을 이쪽 탁자에서 저쪽 탁자로 옮긴다며?
어렵지 않아.
라즈니시가 선선하게 대답했다.
어렵지 않다구?
나는 집도 옮겼는데 뭘.
밀차로 실어 나른 거라며?
밀차로 집도 실어 날랐는데 찻잔 정도 못 옮길까.
손 대지 않고?
응. 손 대지 않고.
그가 웃다 말고 말했다.
해 봐.
응.
라즈니시가 자신의 찻잔을 저쪽 탁자로 옮겼다.
손 대지 않고 옮긴 거야?
손 대지 않고 옮긴 거야.
그가 하하하 웃었다. 라즈니시도 끌끌끌 웃었다.
상심이 컸지? 낙선한 거 말야.
차……마시라니까.
라즈니시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 구름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랑은……어떻게 된 거니?
그를 바라보았을 뿐 라즈니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불안의 기미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얘기 들었어. 혼자 내려왔다는 거. 사실 널 찾아온 건…….
라즈니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야. 너는 나를 잘 알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나도 집사람과 좋지 않아. 아내가 왜 그러는지, 너라면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라즈니시는 말하지 않았다.
넌 단지 별명만 잘 짓는 게 아니었어. 그 전에 상대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지. 그러기 위해 넌 아주 고통스러워했어. 그랬던 만큼 상대의 본성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짚어낼 수 있었던 거야. 별명은 바로 그로부터 나오는 거였지. 공포와도 같은 네 두려움의 결과였달까……. 체육 교보재 창고에서 널 보았거든. 그 뒤로도 죽.
라즈니시는 말이 없었다. 구름이 다시 생겼다.
내가 날 어떻게 알겠어. 그러니 집사람이 왜 저러는지도 알 턱이 없지. 너라면 적어도 나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어떤 놈인지.
몰라.
라즈니시가 입을 뗐다.
몰라?
몰라.
그는 왠지 막막하여 더 묻지 못했다. 라즈니시가 하늘을 바라보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구름 없어졌다 생기는 것만 신기한 듯했다.
와이프 별명이 베아트리체였어.
라즈니시가 말했다.
애칭이었지. 물론 내가 지어준. 와이프도 나름 그걸 소중하게 여기며 지금껏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나한테 말하더군.
라즈니시 입술에 옅은 미소 같은 게 스쳤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뭐랬는데?
그가 물었다.
웃기지 마셔. 나 베아트리체 아니거덩!
아내의 말투를 흉내내며 잠깐 라즈니시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으로, 그날로 끝이었어. 모든 게 다.
떠났나?
그는 머! 머! 머! 머! 쏘아대고 오피스텔로 혼자 나가 사는 아내를 떠올렸다.
내가 떠난 거지. 와이프는 살던 대로 살고. 베아트리체라고 부르고 믿었던 건 나뿐이었으니까, 나만 무너진 거지. 쾅.
별명 하나로 삶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걸까, 물음을 망설이는 그에게 라즈니시가 말했다.
차 마셔.
아니, 너무 늦었다. 이러단 취재 못하겠어. 묵거사한테 갔다 다시 오든지 할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너질 때, 불안도 두려움도 함께 와해돼 사라져버린 걸까. 억압된 것도 위장된 것도 없어 보였다. 가없이 높고 맑은 하늘 때문이었을까. 라즈니시 뒤의 구름 배경 때문에 그리 보였던 걸까. 무너진 사람의 슬픔 같은 건 없었다. 라즈니시에게서 무너져 내린 건 무얼까.
나는 별명을 지어준 적도 없는데 집사람은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그가 물었다. 뒤꼍으로 난 문을 나서서 몇 걸음 산 쪽으로 걸었다.
지어주었었겠지.
라즈니시가 말했다.
천만에, 집사람은 별명 같은 거 없어.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라즈니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목조 주택 한 채가 무서우리만큼 완강하고 육중한 적막에 감싸여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멈추어 섰다.
그의 앞에는 길이 없었다. 길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첫댓글 와
쌤님예, 고맙심니더. 가만히 앉아서 샘님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이 행복
단숨에 읽고 아니, 숨도 못 쉬고 눈도 못 돌리고예. 
빠져뿌리씸더. 갑자기 지가 공중에 븡 뜬 거 같아예. 다 읽고나서야 한숨이 푹 나왔어예........한 시간이나 지난 줄도 몰랐어예. 길 없는 길을 찾아나서는 우리네 삶 그 고
픔...
쌤, 일단 감사!!! 늘 기다리고 있답니다. 쌤의 단상!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줄곧 곱에 곱으로 배가되는 무게에 또박또박 읽어냈습니다.
잘 읽었습니가. 감사합니다.
저두 동감! 지난번 동창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많은 별명들이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아 무디어진 내 머리를 탓했습니다. 이젠 내 기억력도 다 된 듯...
근데요. 내사랑님. 이 글은 쌤님이 이 단상 코너에 직접 올리셨지만, "구효서 단편소설" 항목이 따로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차를 마시려고 하다가 클릭을 했는데 찻잔으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쭈-욱 읽었습니다.
휴~
가벼운 별명으로 시작되는 문장에 무언가 나름의 짐작이 되어질 듯, 뒤꿈치가 보일락말락.
놀랍습니다. 고맙습니다.
라즈니시를 찾아 떠나볼까?
물론 여전히 삶은 모를 것이지만 라즈니시라면,
역시 아주는 아니더라도 거의 갈라선 저에게 해 줄 말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세계의 문학을 샀었는데요. 그때 보다 더 재미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의미를 알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어렵네요 선생님! '지어주었었겠지' 한 줄이 서늘한 여운으로 내내 남아있을 것 같아요...~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읽는 내내 자꾸 '트라우마'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왜일까요?
‘트라우마’일까요? 라즈니시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라즈니시가 묵거사네요. 제목을 보고 가벼운 소재인지 알았어요.
근데 읽어갈수록 전혀 가벼운 소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어요.
네. 라즈니시가 묵거사에요. 가장 오래된 인간의 공포 가운데 하나는 '무지에 대한 공포'라고 합니다. 제 장편 소설 <나가사키 파파>에는 '모든 이름 없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수첩을 갖고 다니는 스스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름없는 것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고 하네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의 만남은 우리를 두렵게 한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붙인답니다. 이름을 붙여서 그것을 자신이 지닌 공동의 상징체계 안에 끼워넣어 자리매김하려고 한다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무지 두려워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세상은 알 수 없거나 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찬 것인데, 사람은 이름을 짓는 것으로, 명명하는 것으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지요. 이름이란 명명이란 인간의 편의상 짓는 것일뿐 실재나 실체나 실질과는 다른 거겠지요. 문제는 자신의 편의상 그렇게 이름 지어놓고 스스로 믿는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그 믿음으로부터 배반당하는 사례를 썼습니다. 그 믿음으로부터 배반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이름이나 명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초라하고 가난해질 망정. 작가의 말이 길었습니다.
이름으로 이루어진, 말로 이루어진, 기호로 이루어진, 가상의 언어세계. 그것을 라캉은 '상징계'라 하던가요. 그 가상의 상징계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데 문득, 문득 말입니다, 저 '실재계'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지요. 그 모습은 무섭고 끔찍하고 혼란해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답니다. 그만큼 우리는 실재가 아닌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실재계의 느닷없는 도래. 그것을 프로이트는 언캐니uncanny라고 했나 봐요. 그리고 지젝은 '실재의 열정'이라고 말했나 봅니다. 김혜자 주연의 <마더>에서 그런 실재계가 불쑥, 문득, 나타나지요.
그건 모성애도 아니고 왜곡된 모성애도 아니고, 모성애니 뭐니 하는 이름짓기 세상 너머에 출몰하는 실재계의 모습입니다. <마더>가 뉴욕타임스 선정 2010년 10대 영화에 뽑혔다는 거 아시죠? 아우, 또 길어졌네요. 이런 말 정말 아무데서도 하지 않는데 우리끼리니까. ㅋㅋ
영화 마더 꼭 빌려봐야겠어요.ㅋㅋ
이런 효서아저씨가 너무 좋습니당ㅋㅋㅋ
실재계는 무서운데요.
노자는 "인자하지 않다."라고 말하지요.
길게라도 설명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묵거사가 아직 낯선 단어에요. 제게는 처음 듣는. 이것도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저도 처음 들어요.
-묵언수행을 한다하여 그리 불린다는데 -본문中에
묵거사도 일종의 별명이지요. 묵언수행하는 거사. 거사는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일상수도하는 신도라는 뜻임. 불가에서는 여신도를 보살, 남신도를 거사라고 해요. 다 함쳐 말하면 다 보살.
'처사'(거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면서 내내 예전에 선생님이 저에게 해주신 '반짝이는 도시적 감수성을 잊지마라'는 말씀을 한 번도 잊지 않으면서 써왔는데요...선생님의 그 말씀을 길잡이 삼아 지금까지 오기도 했구요... 오늘 선생님의 소설과 설명을 읽으면서 다시 그때 그 말씀을 새기게 되네요. 감사 감사^^*
나는 당초부터 시골감성이지요. 세대도 그렇고. 도시적 감수성은 아무래도 바나나인 것 같아요.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어 보세요. 새로운 세대들 막 치고 앞으로 나가는 저 당돌하고 발칙한 감성을 보라구요. 작품은 '구효서 외 예술-소설'메뉴에 올려 놓았어요.
도시적 감수성이 바나나라는 말씀이 재미있네요.^^*
바나나는 사람 이름이랍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여자 작가에요.
묵거사, 라즈니쉬의 인물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짧지만 깊은 소설이네요. 100% 집중해서 읽을 시간을 기다리다 지금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감사감사~~^^*
선생님의 단편소설모음을 메뉴에 추가하였습니다. 이 글은 댓글이 많아 이곳에 그대로 두고요. 새 메뉴에 다시 올렸습니다.
ㅎㅎㅎ
길섶님과 단편코너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벌써 만드셨네요.
지기님은 <이동>클릭만 하면 되었을 텐데.
댓글도 지워지지 않고 전부 이동이 되걸랑요.
단편 찾아보기가 수월해졌습니다.
샘~! 제 개인카페로 모셔갑니다.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