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계고 교육력 제고의 필요성
특목고와 자율고의 과도한 입학 경쟁은 지난 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과열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우수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을 실현해 줄 것이라 믿는 학생과 학부모의 판단에 기인한 바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다른 각도로 해석해 보면 일반계고에도 수월성 교육을 포함한 이들 학교의 선진화된 운영 요소를 재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교육 수요자의 요구의 표출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계고는 30년이 넘는 평준화 체제 속에서 개인차가 확연한 이질적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급자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을 제공하여 학생의 적성과 소질을 극대화하는 실천 방안(고등학교 선진화를 위한 입학제도 및 체제 개편 방안, '09.12.10)을 발표하고 일반계고 교육력 제고를 올해 주요 교육 과제('10 대통령 연두 업무 보고)로 선정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국정지표(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08)로 삼아 학습자가 중심이 되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현 정부의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고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여 실행해야 할 때다.
고교 교육 다양성 및 자율성 확대 : 학점제 도입
현재와 같은 획일화되고 경직된 교육 체제로는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앞서 주지하였다. 따라서 교육력 제고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다양화와 자율화를 제안한다. 사실 교육의 다양성 및 자율성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교육의 다양성 확대를 위한 노력은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구체화되어 현재 자율고, 기숙형고교, 마이스터고 등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의 자율성 강화를 위한 노력 역시 교과(군)별 수업시수 증감을 허용하고 전 학년 선택교육과정을 적용한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내년부터 단계적 적용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나 교육과정만으로 다양화와 자율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양화는 학교간 다양화 뿐만 아니라 학교내 교육 프로그램 다양화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자율화를 강조한 개정 교육과정도 실제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시도된 다양화와 자율화 과제의 완성을 위한 실천적 전략으로 학점제 도입이 추진되어야 한다. PISA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는 학습자가 자신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교과를 선택하는 학습의 개별화를 통해 세계 최고의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도 획일적인 학년제의 틀을 벗어나 학년, 연령, 계열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른 수준별 과목, 관심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하는 학습 체제인 학점제 도입이 필요하다.
영어·수학 등 위계 교과의 경우 학습 결손 학생의 기초 능력 배양을 위한 고교 기초 과정에서부터 우수 학생의 수월성 학습 수요 충족을 위한 대학 수준의 심화 과정까지 폭넓은 단계의 강좌를 개설하여 학습자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회·과학·예체능 등 영역으로 존재하는 교과는 학년에 관계없이 원하는 시기에 선택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확대시켜 주어야 한다.
이러한 학점제는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평준화 체제 내에서도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반영한 개별화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위 학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제고시킬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특목고에 견주어 일반계고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고교 교육 책무성 강화 : 졸업요건 설정
고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자율성은 자율성 확대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책임과 자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상충되는 듯 보이면서도 책무성이 따르지 않는 자율성은 그 설득력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력 제고를 위한 두 번째 과제는 책무성을 강화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 전략으로 졸업요건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학년제·단위제에서는 모든 과목이 0점이라 할지라도 수업일수만 채우면 졸업이 가능하여 학업에 무관심한 무기력한 학생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서 교육력 제고 방안의 하나로 논의된 학점제가 교과별 이수 성취기준에 도달하는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하고, 누적된 학점이 최소 졸업학점에 도달하는 학생에게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라고 본다면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에 대한 최소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최소한의 학업 성취기준에 도달한 후 졸업이 가능하도록 책임지고 지도하는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핀란드,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도 졸업자격시험을 치루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졸업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아동 낙오 방지(No Child Left Behind)' 법령을 통해 기초학력강화를 강조하면서 고등학교 교육에서도 각 주의 특성에 맞는 영역별 성취기준을 설정하고 평가에 대한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출석일수에 더하여 반드시 이수해야 할 최소 필수 과목과 성취수준을 설정하여 전반적인 고등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졸업요건의 설정으로 교육의 책무성을 담보하는 선진화 방식이다.
고교 교육력 제고 전략에 거는 기대
2009 개정 교육과정은 단위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제도적 발판을 열어 주었다. 또한 현재 운영 중인 교과중점학교는 다른 교과로 범위를 넓히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학교와 지역 사회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인재 육성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설과 교원 여건을 선진화시킨 교과교실제 학교와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자율성을 대폭 부여한 자율고도 점차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앞으로의 교육적 효과에 기대를 갖게 된다. 따라서 이들 학교 유형을 확대 운영하고 여기에 다양성과 자율성, 책무성을 구체화시킨 기제인 이번 방안이 접목되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교육적 효과는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고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방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권역별 설명회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이번 방안이 더욱 다듬어져 하반기 시범학교 운영과 2011년 일반계 고등학교 확대 적용을 위한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번 정책이 다양성·자율성 강화와 책무성 담보라는 큰 틀 속에서 1,493개 일반계고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킴과 동시에 더 나아가 국가 전체의 역량 제고에 기여하는 제도로써 현장에 안착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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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근(교육과학기술부 학교선진화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