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의 시작은 입춘인데 입춘 글이 없어서 옛날 썼던 글을 잠시 수정하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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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다.
확실히 남도의 겨울은 중부 이북 겨울보다 훨씬 따뜻했다. 따뜻하다는 것은 단순히 체감을 뜻하는 것뿐만아니라 정서적인 측면도 고려한 것이다.
구례군지를 보면 년중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최저온도가 -2도 정도이니 군대를 강원도로 다녀왔거나 철들며 살아온 곳이 중부 이북인 사람에게는 이곳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겠는가?
소 한 대한을 거쳐서 그 따듯한 동네에 입춘이 왔다. 요즘에야 입춘방을 붙이는 곳도 드물고 또 붙인다손 치더라도 손으로 쓰기보다는 노란바탕에 붉은 글씨로 쓰인 부적이 더 흔하다. 그 정성의 더하고 덜함은 고려치 않더라도 여전히 복을 구하려는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터다.
그런데 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붙이지 않는 방을 왜 입춘에는 붙이는 것일까? 다들 새해의 시작이라고 알고 있는 음력 설에는 하지 않는 구복을 입춘에 하는 것은 혹시 입춘이 실제적인 새해의 시작이기 때문이 아닐까?
농 경사회에서는 예부터 역법을 정하는 것이 아주 큰 일이었다. 천문지리를 관측하는 역관 혹은 사관은 제왕 직속의 관리로 인간사를 정하는 규범의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이 하던 주 역할 중의 하나가 한 해의 시작, 한 달의 시작을 정하는 것이었다.
하 나라는 인월(寅月)을, 상왕조는 축월(丑月)을, 주왕조는 자월(子月)을, 수(水)의 덕을 입은 진나라는 한 해의 시작을 10월인 해월(亥月)로 삼기도 했을 정도로 다양하게 한 해의 시작을 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농사를 짓는 농경시대에는 굉장히 부적절했고 일관된 농경의 시작과 끝은 알려줄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는데 이는 곳 부국안민과 직결된 요소였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새해와는 상관없이 태양의 이동 경로에 따라 일년을 정하는 절기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 첫번째 절기가 해마다 양력 2월 4일경인 입춘인 것이다. 즉, 전통적인 농경사회에 있어 실질적인 새해의 시작인 것이다.
그 입춘일 절입시각에 맞춰 사람들은 이렇게 썼다. 입춘대길이라고...따뜻한 봄의 시작을 맞아 한 해 풍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다 좋아지기를 빌었다. 요즘에 쓰는 건양다경은 원래 쓰이던 입춘첩이 아니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워서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기 전에 쓰였던 연호가 건양이었는데 복잡한 건양의 년간에 경사스런 일만 일어나라고 쓰기 시작했다.
매천 황현이 쓴 봉성관 중수기 시작이 "광무 초에 나라가 중흥의 업을 세우로 천자의 예악을 쓰기로..."하며 운운하는데 광무 연호 이후 건양다경이 광무다경으로 바뀌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요즘도 역법세계에서는 음력이나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양력 2월 4일 입춘 절입시각(올해는 13시 32분)으로 그 해의 시작을 삼는다. 즉, 올해 입춘일 절입시각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신묘년 토끼띠인 것이다.
우리카페도 입춘방을 걸어야 할까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첫댓글 몬당님,
구례 정보 담뿍 담긴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