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그림 자료실에 올리려고 만든 게시물인데,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자꾸 문제가 발생해서 부득이하게 이 NBA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 운영진 분들께서 이 게시물을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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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AA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1983년 파이널 포 결승전에서 벌어졌습니다.
젊고 명석한 두뇌의 지미 발바노 감독이 이끈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
그리고 자타가 공인한 동 시즌 최고의 팀이었던 드렉슬러의 휴스턴 대 간의 결승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실 이게 대학농구 토너먼트의 참 맛이죠),
언더독,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가 휴스턴을 54:52로 누르며 우승을 합니다.
무명의 2년생 파워 포워드, 로렌조 찰스(43번)가 버저비팅 풋백을 성공시켰던 것입니다.
1. 결승전에 깜짝 선발출전한 로렌조 찰스 (Lorenzo Charles)
로렌조 찰스는 82-83 시즌에 평균 8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한 파워 포워드입니다.
로렌조는 원래 스타팅 멤버가 아니었는데, 여우같은 지미 발바노 감독이
결승전에 그를 깜짝 선발기용을 하면서 휴스턴 대에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센터 한 명에 파워 포워드 두 명을 선발로 내세운 NCS의 변칙 용병술에
휴스턴 대가 살짝 당황을 하는 사이, 로렌조가 드렉슬러를 상대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드렉슬러를 상대로 풋백 레이업을 하나 성공시키더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 때부터 과감하게 골밑 포스트업 공격들을 시도했던 것이죠.
스몰 포워드, 드렉슬러에겐 이 돌덩이 같은 포워드를 박스아웃 하는게 너무 벅찼습니다.
몸싸움만 하다가 경기 리듬을 잃은 드렉슬러가 결국 파울 트러블에 걸려버렸죠.
전반전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3개의 파울을 범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 중 두 개는 파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많았던 콜이었습니다만...
팀의 최고 에이스였으며 퍼리미터 공수의 핵이었던 드렉슬러가 지워졌습니다.
이게 지미 발바노 감독의 영악한 꼼수였고, 거기에 휴스턴 대학이 말려든 것입니다.
2. 골밑을 지배하는 블루칼라 워커
로렌조 찰스의 투지넘치는 수비와 리바운드는 경기 내내 눈부셨습니다.
드라이브인해 들어가는 드렉슬러의 슛을 막아내며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아킴 올라주원의 놓친 슛도 리바운드로 걷어내며... 자기 몫을 충분히 해냈죠.
3. 챔피언쉽 위닝 버저비터 풋백 덩크
파울 트러블로 인해 드렉슬러가 전반 10분, 후반 10분을 결장했지만,
워낙에 강력한 전력이었던 휴스턴 대는 막판까지도 버티고 있었습니다.
52:52로 경기가 마감되며 연장전에 돌입하는가 했는데,
NCS의 가드 위텐버그가 그냥 냅다 던진 공이 하필 골밑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로렌조 찰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로렌조는 그냥 잡아서 덩크를 했습니다.
경기는 종료가 됐고,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는 토너먼트의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상 최초로 런-앤-건 농구로 우승을 노렸던 휴스턴 대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고,
별 볼 일 없던 로렌조는 자기에게 날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대로 잡았던 것입니다.
4. 올라주원을 비롯해 휴스턴 대의 우승을 바랐던 모든 팬들에게 비수를 꽂은 로렌조
저 풋백 덩크가 결승골이 되면서 코트바닥에 엎드려 오열을 하던 올라주원의 모습은 유명하죠.
분명히 휴스턴이 훠얼씬 더 강력하고 나은 팀이었고, 우승후보 0순위였는데...
일단, 초반에 파울 3개를 범하며 경기를 못 뛴 드렉슬러의 공백이 너무 커서 아쉬웠을 것이고,
다 잡은 경기였는데, 막판에 터진 NCS의 두 개의 외곽슛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대학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선천적인 힘만 믿고 한 번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안 했다던 로렌조 찰스는
이 놀라운 우승의 기쁨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오프시즌에 엄청나게 몸을 벌크업하며 수퍼스타의 꿈을 키웁니다.
그 결과로, 그는 10킬로 가량의 체중을 더 늘렸으며, 그건 모두 돌덩어리 같은 근육이 되었습니다.
3학년인 83-84 시즌엔 자신의 평균을 18점, 8리바운드로 상승시키며 올-아메리칸에도 선정이 됐지요.
84년 올림픽 선발전에선 찰스 바클리와 남은 한 자리를 놓고 끝까지 경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대표팀 연습 경기에서도 바클리를 박스아웃으로 밀어내고, 바클리에게 망신을 많이 준 유일한 선수였고요.
2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신장 때문에 NBA선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유럽 리그에선 잘 나가던 선수였습니다.
4. 영광과 죽음을 함께 한 선수와 감독
지미 발바노 감독은 팀을 우승시킨 후 10년 후인 93년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발바노 감독의 파란만장한 농구인생과 암투병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지요.
로렌조 찰스도 2011년에 발바노 감독과 같은 4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타고 가던 버스가 반대편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 것입니다.
유투브에 가면 로렌조 찰스가 사고로 죽은 현장과 버스가 우연히 찍힌 영상도 있습니다.
더 재미있고(?)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는데,
이 둘이 Raleigh에 있는 Oakwood 공동묘지에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서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나란히 누워서 말이죠.
첫댓글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를 알게 되네요 박사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박사님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셔서 조금 색달랐습니다. 게시판에 따라 글의 질이 좌우되지는 않습니다만...
늘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
엄밀하게 보면, 이 글은 NCAA 게시판이 맞는 자리가 아닌가 해서요.
그런데 드렉슬러나 올라주원이 다 NBA에서 뛰었고,
로렌조 찰스도 애틀란타 홐스에 잠시 있었던 터라서...
아아아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입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드렉슬러는 가드중에서도 몸이 크고 강한 편이었는데도 많이 버거워했던가요?
기본적인 몸뚱아리 자체가 달랐습니다.
로렌조 찰스는 찰스 오클리나 찰스 바클리같은 타입이었습니다.
백넘버가 본문의 34번이 아니고 43번인가 보네요... 퍼킨스의 마른 몸매가 이채롭군요..
아, 타이핑 에러가 ;;
잘봤습니다. 감독님은 지미V클래식의 주인공이시네요...
제이님 오타네요. 발다노가 아니라 발바노.
아, 제가 예전부터 이 감독을 자꾸 발다노로 발음하던 버릇이 있었습니다.
발다노가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이름이었기도 하고, 왠지 발바노는 입에 잘 안 붙기도 했고...
리서치나 자료없이 기억에만 의존해서 글을 쓰다 보니 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동영상과 GIF파일도요. ^^
예전 박사님이 준결승 루이빌을 상대로한 휴스턴의 영상을 올리셨고, 영상안의 휴스턴 모습이 워낙 임팩트가 있어서 결승전도 다운받아서 감상했었죠. 결과를 모르고 본터라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배경과 선수성향까지 알고 나니 더 좋습니다.
내공 100만배 글이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Doctor J님이 정말 오랜만에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셨네요.. 사진/그림란이 아닌..ㅎㅎ 잘 보고 갑니다.^^
역시 박사님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고 잘 보고갑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기회였군요. 얼마나 짜릿했을지....ㅎㅎ
하늘에서 공이 뚝 떨어졌죠.
풋백으로 팀 우승시키라고...
잘봤습니다. 전력의 차이를 용병술로 채운 것이 인상적이네요.
83년 토너먼트에서도 퍼스트 라운드부터 2차 연장 끝에 신승했고,
그 다음에도 두세 경기를 1점, 또는 2점차로 이기고 올라온 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우승은 정말 하늘이 내린다는 걸 알 수 있죠.
소름이 사악... 끼칠 정도로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초입부 보다가, 올려서 글쓴이 보고 역시 박사님 했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 하킴-드렉슬러는 콤비는 다시 휴스턴에서 만나서 우승을 경험했네요.
발바노 감독이 살아있다고 가정하면, nba 무대에 있을 확률이 있겠네요
그런데 보통 NCAA에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성공한 감독들이 NBA 에 와선 별로더라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