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인생의 해답
 
 
 
카페 게시글
문화치유 스크랩 교회복지선교를 향하여
헵시바 추천 0 조회 56 07.08.21 06: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복지주일설교

                                            교회 복지선교를 향하여

눅10:30-37

지난해 11월, 경기도 양주시 단독주택에서 13살 곽 모 군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방문은 바깥에서 잠겨있었습니다. 부검 결과 곽 군의 사인은 뇌수막염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만 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 병입니다. 하지만, 곽 군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올 뿐이었고 어머니는 종교생활에 빠져 아들을 돌보기는 커녕 감금하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곽 군의 어머니는 아픈 곽 군을 방에 가둬버렸고, 곽 군은 숨진 지 사흘 만에 발견됐습니다. 2007. 2월26일 낮 서울 행당동의 한 셋방에서는 66살 김 모 씨가 숨진 지 석 달 만에 발견됐습니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습니다. 뒤늦게 설인사를 하러 들린 조카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김 씨는 25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두 아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홀로 지내왔습니다. 또, 김 씨가 살던 동네는 재개발지역으로 두달 전부터 철거가 시작돼 이웃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족 관계가 단절되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들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영상)가정해체로 가족의 붕괴를 막지 못하면 사회가 무너지고 교회도 무너집니다. 가족이 제 기능을 다할 때에 신앙도 유지되며 교회도 존재하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개인의 영혼을 돌보고 구원사역을 위해 힘써야하지만 영혼과 건강, 가정생활의 총체적인 돌보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선교적 사명을 다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선교적 사명은 시대적. 문화적인 요청에 따라 변합니다. 학교 교육이 필요하면 교회가 학교를 세우고 병원이 필요하변 교회가 병원을 세웁니다. 이 역할을 기업인이나 사회가 잘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시대적인 요청은 복지입니다. 교회는 복지선교를 해야합니다.

지역사회복지의 목적은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역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합의를 촉진시키고, 셋째는 대인적 사회봉사를 지원하며, 넷째는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며, 다섯째는 기존의 사회정치제도에 있어서의 변화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지역사회복지는 지역사회성원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사회복지 또는 사회사업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복지란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전문 혹은 비 전문인력이 지역사회 수준에 개입하여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제도에 영향을 주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일체의 사회적 노력을 의미한다. 지역사회복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상적인 지역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지역사회복지의 구성요건으로는 재가복지서비스, 요보호 대상자에 대한 개별원조 및 환경개선서비스, 주민참여를 위한 지역사회조직과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지역복지란 지반단위의 사회복지로서 지역주민의 생활문제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고용, 노동정책, 사회보장정책, 기타의 정책을 최종적으로 보완하는 활동이다. 지역사회복지는 일정한 지역사회 내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의 복지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부 또는 민간기관의 다양한 조직적 또는 전문적활동입니다. 독일 니버(Nieber)는 “교회는 사회복지를 낳고 키운 어머니 였는데 어머니로서 책임을 포기했기 때문에 세속화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사회사업은 지역사회를 섬김으로 선교의 영역을 넓히고 하나님나라의 의를 실천하는 전문적인 선교활동입니다. 누가복음은 가난한자와 굶주린 자, 병든 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구원을 말하는 사회구원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3:11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지니라”

1. 누가 강도만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보살핍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해갔습니다. 정부도 피해갑니다. 일부 정치가들은 선거에서 표나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경영인이나 사업가도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일만 찾아서 하고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보고도 피해갑니다. 여러분도 이런 상황을 보고 그 동안 피해가지는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보고 피해가는 자로 있겠습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은 다른 핑계나 책임 회피할 변명거리를 찾지 않습니다.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놓고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달려가 보고 불쌍히 여겨 응급조치를 하여 주막으로 데려갑니다. 35절 주막 주인에게 “돌보아 주어라”고했습니다. “Take care of him.”

돌본다는 말은 영어로 care라고하며 중요합니다. 이 뜻은 “돌보다, 보살피다, 구완하다, 보호하고 간호하다”는 말입니다. 복지에서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노인복지는 심신과 사회적 활동과 경제력이 격하된 노년기의 어른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지지해주고 보호해주는 활동입니다.

주간보호(day-care), 야간보호(night-care), 단기보호(short-stay service), 건강원조 서비스, 급식서비스, 교통서비스, 주택을 살피는 일, 말벗서비스 까지도 합니다.

복지의 정신은 나의 작은 섬김을 통하여 약한 자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지의 정신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복지의 목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랑과 섬김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후에는 무엇을 섬기고 주님영광을 위하여 봉사를 하고 살아야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의 사명은 시대적인 요청에 반응하며 복지선교에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교회의 지체된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기를 부탁합니다.

2. 기독교 복지는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사람의 욕구를 해결함으로 자비를 실천합니다.

자비는 mercy이고 慈는 사랑할자이고 悲는 슬플비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공감을 하면서 슬퍼하는 사람의 고통을 제거하도록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레헴 !j,r, (rechem)]은 어버이가 아들에 대하여, 형이 동생에 대해 가지는 근친적 정애(情愛)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물론 이런 인간 감정의 기초로 되고 있는 동포감이나 우월감에 기초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의 약함, 가련함, 도울자 없는 상태에 대하여 보여지는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죄를 사해져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시 51:1).헬라어에 있어서는 명사헬라어 [엘레오스]는 일반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자비, 친절행위를 의미한다(마 12:7). 특히 그것은 인간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하신 자비를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보여 졌습니다.

<칼레의 시민> 은 조각가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 - 1917)이 제작한 조각 작품입니다. 칼레市가 1347년 영국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시민들을 위해 밧줄에 목을 매어 처형받기로 자원한 6명의 칼레시민들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습니다."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목을 매 처형받아야 한다."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습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나오라...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습니다. 상인이 나섰습니다.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되었지요.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 피에르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市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입니다. 1895년 6월 3일 기념상이 제막되었습니다.

나 한사람의 자비로운 헌신과 희생이 다른 사람을 햅고하게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본을 부여주셨습니다.

눅6:36“”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했습니다. 자비를 베푸는 자가 선한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자비를 베풀지 못하면 선한 이웃이 아니요 악한 이웃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자비의 마음입니다. 누가 선한 이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선한 이웃은 ”자비를 베푸는 자니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3. 교회는 성도들에게 봉사(Diakonia)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림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명령했습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Go and do likewise."

"Go and do same."

누가 이 명령을 실행에 옮겨야합니까? 그 대답은 확실합니다. 이 설교말씀을 듣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교회 노인복지센터는 1999년도에 시작하여 9살을 맞이했습니다. 재가노인복지라는 용어도 모를 때에 회의에서 설명을 해가며 시작된 중요한 지역사회선교의 현장입니다. 사회복지는 직원들의 몫이 아니라 교인 한사람 한사람이 신앙을 실천하는 도장으로 여기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봉사의 아름다운 미담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상당히 무관심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직원들은 직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선교적 사역의 사명을 확인해야합니다. 교우들은 복지선교를 우리의 사명으로 알고 복지서비스에 적극참여 하기를 바랍니다. 한사람씩 자매결연 을 맺어 찾아가 섬기기도하고 기도와 물질로 섬김의 봉사에 참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도 상으로 주십니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요 작곡가인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는 본래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가 음악을 공부한 동기는 흥미롭습니다. 그 동기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음악이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던 그는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한 곡들을 작곡하고자 애썼습니다. 또한 그는 스스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들을 거절했던 음악가로도 유명합니다. 그것은 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의 독특한 가치관에서 비롯되는데, 크라이슬러는 비싼 출연료 받기를 거부했고, 비싼 음식 대접받기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유분의 돈은 교회나 사회사업 기관에 아낌없이 헌금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언제나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돈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잠시 맡겨 준 공적인 것이지 자기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인간미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예술가로서 흔하지 않은 인격적인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주는 자로서 살고자 했지만, 실상은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을 들으면서 그의 사랑의 실천을 기억합니다.

주의 제자는 행동하는 신앙, 실천하는 신학을 가져야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 하십니까? 심광노인복지 센터를 통하여 많이 섬기시고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괴물 영화를 보신적이 있습니까?(영상)

주인공 현수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괴물의 존재는 멍청한 첫째 아들과 제멋대로 둘째 아들 그리고 약간 다른 차원의 소년인 막내 그리고 약간 다른 차원의 소년인 막내 딸의 공동의 적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뭉쳐질 수 없었던 가족이 공동의 적 괴물 때문에 뭉칠 수 있었습니다. 현수가 살아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수를 살려 내야한다고 하는 일념으로 엄청난 위기를 모험하고 고통을 참아내며 괴물에게 과감히 도전을 합니다. 우리 모두도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목숨을 걸고 그렇게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