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은 우리민족 고유의 음식문화입니다. 쌈밥은 삼국시대부터 해먹었다니 맞는 말일겁니다.
어릴적 제 할머니는 상추쌈을 꼭 부루쌈이라 하셨습니다. 그 어감이 너무 좋아서 저도 부루쌈이라 부르곤 하였지요. 지금도 북한에서는 상추쌈을 부루쌈이라 한답니다. 상추쌈은 사실 따지고 보면 상당히 부담가는 음식입니다. 예전에는 며느리들이 피해야 할 음식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먼저 조신한 며느리로서 시아버지, 남편 앞에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먹는 일은 흉잡힐 일이어서였고, 상추에 들어있는 성분이 졸음을 유발하여 저녁식사후부터 다시 시작되는 고된 노동인 바느질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지요. 아무리 찾아봐도 부루쌈이라는 말의 기원이 모호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밥을 커다랗게 싼 상추쌈을 먹을때 눈을 부릅뜬다고 하여 부루쌈이라고 한다지만,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며느리들의 한과 근심이 서린 음식이 바로 상추쌈이었을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제대로 알아주지 않은 끝없는 노동, 고부간의 갈등 등등이 집약된 것이 바로 상추쌈이 아닐까 하네요. 사실은 누구도 먹지 말라 하지는 않지만, 자진하여 피하게 되는 안타까운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며느리가 나이가 들어 누구의 눈치도 안보게 될때 비로소 아무런 근심없이 (불우 - 不憂) 먹게되니 불우쌈이 된 의식의 해방 음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네요. ㅎㅎ 현대인에게는 건강염려증이 있습니다. 살찔걱정, 몸에 안좋은 음식을 섭취할 걱정, 콜레스테롤 등등..... 싱싱한 상추에 우리의 장을 듬뿍 얹어 먹으니 살찔 걱정없는 不憂의 쌈이 바로 부루쌈 (不憂쌈) 아닐까 하네요.
암튼, 쌈밥집이란 단어는 사실 제게 생소합니다. 쌈밥을 모르는것도 아니지만, 쌈밥을 파는 곳을 본적이 없어서일 겁니다. 옛날에는 이를 메뉴에 등장시킨, 거기에 전문 음식점은 없었습니다.한참전부터 TV를 보다보니 쌈밥집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급기야 밭에서 손님이 직접 뜯어다 먹는 유기농 쌈밥집까지 나오는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 유행이 많이 누그러졌다지요. 그 쌈밥에 나오는 채소도 다양하여 전통적인 부루쌈, 깻잎, 호박잎뿐만 아니라 케일, 머위, 갓, 양배추, 다시마까지 등장하는걸 보고 대단하다 느꼈지요. 언젠가는 먹고 말리라..... 하다가 한국에 들어갈 기회가 없는 바람에.... 사실 쌈은 삽겹살이나 기타 고기요리를 둘러 먹는 부재료의 개념이 강했지 음식점에서 이렇게 주재료로 부상한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사먹을수 없으니 만들어 먹어야지요. ㅎㅎㅎ
서설이 길었습니다.
쌈밥의 주재료는 쌈재료이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바로 강된장입니다. 강된장은 쌈장과는 조금 달라서 된장을 여러 채소 및 두부, 우렁 등과 함께 물없이 바글바글 끓여낸것을 말하지요. 채소가 신선한것이 중요하지만, 바로 장맛도 마찬가지로 중요할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구할수 있는 쌈용채소도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마켓에 자주 가지 않는 관계루다가, 동네 잡화점에서 구할수 있는것으로 해먹다보니 우리집 쌈밥은 대개가 적상추와 청상추 그리고 찜양배추가 주가 되지요. 예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Henry's라는 동네의 잡화점에서 99센트에 한다발 하는 특판때는 적상추, 청상추가 쌓이게 됩니다. 그럴땐 부담없이 쌈밥이죠.
먼저 강된장을 만듭니다. 강된장에는 뚝배기가 개념입니다. 미리 멸치와 다시마 양파로 육수를 만들어 놓습니다.
요기에 된장을 크게 두어번 뜨고 고추장을 섞어줍니다.
채소류는 너무 씹히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조금은 간소하게 들어갑니다. 양파다진것, 풋고추 다진것을 넣습니다. 여기에 새우 다진것을 준비하고......
바글바글 끓여주다가, 양파, 새우 다진것을 넣어줍니다.
다시 여기에 천연조미료인 마른 홍새우 갈아놓은것을 넣습니다. 구수한 맛이 살아납니다.
건더기로 두부를 으깨어 넣어줍니다.
다진 풋고추를 또 넣어주죠.
타지않게 잘 저어주며 한소큼 끓여내주면 강된장이 완성되죠.
여기에 파를 송송송.....
너무 짜지 않게 너무 싱겁지 않게 해주는 게 좋은것 같아요. 여기에 우렁을 잔뜩 넣어주면 좋겠지만, 여기선 구하기 좀 힘들어서..... 옛날 시골에 살때는 이모댁에 놀러가면 이모가 저녁지으시다가 집앞 논에 나가서 손만 쑥 넣으면 커다란 우렁이 나오곤 했지요. 지금은 농약때문에 거의 다 양식이라죠?
밥은 흑미찹쌀과 콩을 넣어 고슬고슬하게 지어 놓았습니다.
음...역시 지수에게는 좀 무리인 메뉴라서..... 따로 연어 스테이크를 준비하였지요.
저 강된장의 뽀~스!!!
이렇게 지어놓은 밥을 부루에 척 올려 커다란 쌈을 만들지요.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만든 쌈을 볼이 미어지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 하긴 다른분들은 쌈밥집 다 가보셨겠지요? ㅠㅠ
암튼, 이렇게 먹으면 몸에 미안함 마음이 안듭니다.
또 만드는 김에...쌈장도 한꺼번에 만들어 놓는 센스.....쌈장은 여러모로 쓰입니다. 삼겹살에도, 또 그냥 평범한 쌈에도 혹은 갈비에도 찍어먹을수 있죠.
양파, 풋고추, 마늘 다진것을 준비합니다.
역시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줍니다.
파를 넣어주고 아주 잘 섞어주죠. ㅎㅎ 파슬리 가루를 뿌려주면 나중까지 풍미가 살더군요.
통깨를 뿌리고 잘 비비면 완성입니다.
요걸 통에 담아 냉장고에서 숙성하면 오래두고 쓸수 있습니다. 요렇게요...ㅎㅎㅎ
이건 정말 여담입니다만, 아주 옛날분인 제 할머니는 김을 해우쌈이라 부르셨습니다. 해우쌈...... 이 말의 어원도 그리 확실치는 않네요. 해의 (海衣) 라는 말이 변하였다는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 (解憂所) 라고 한답니다. 근심을 버리고 오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김은 상추에 비하여 그리 근심섞인 쌈은 아니었을지라도 역시 근심을 버리는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암튼, 건강한 쌈밥 드시고 건강 근심 "뚝"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