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의 미관을 대표하는 것은 건물과 도로, 공원 등이다. 건물에 딸린 간판은 개인이 단장하고 도로와 공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가꾼다. 꾸며진 모습이 도시의 미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아름다운 도시는 모두가 조화로워야 한다.
국제행사를 대비하여 생활환경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도로의 확장사업, 나무가꾸기, 가로변환경정비 등 행정지도를 통해 개선하게 되었다. 건물은 디자인이 좋아야 하고 간판은 영업의 종류와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80년대 전후에는 도로변에 있는 건물은 낡고 색채도 흐려 우중충하게 보였다. 손질하면 다소 나아질 것 같지만 소용이 없었다. 건물선과 도로선이 맞지 않고 도로가 좁아 차량과 사람들이 엉키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한 실정이었다.
도로변의 영업집은 간판이나 광고가 지저분하고 난립된 간판이 많았다. 하나의 업소에 하나의 간판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많은 간판을 붙이는데 만족했다. 점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희미하게 퇴색된 간판과 한두 개의 글자가 떨어져 나간 간판, 유리창문에도 영업 안내문이 온통 뒤덮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선진국의 경우 빌딩의 이름은 작고 깨끗하게 붙여져 있다. 업소마다 간판도 잘 정리되어 있다. 이런 길을 걸어가면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단정하다. 거리의 환경이 그 나라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도시의 환경은 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80년대 초중반 공직에서 환경정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환경정비는 주택상가 등 건축물과 그에 딸린 간판이나 도로변에 있는 각종 시설물들의 상태나 모양이 불량하여 환경을 저해하면 깨끗하게 관리한다. 외국의 빌딩과 도로변의 간판사진을 보고 배우고 우리도 해내야 한다고 간판제작업 대표자들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대비하여 단계별로 환경정비를 단행했다. 우선 건물도색과 간판을 개인별로 자비로 정리하고 일부 지원하기도 했다. 중앙로는 지하철 1호선 개통 준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구간별 도로의 확장이 가로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남포로, 구덕로, 중앙로의 일부지역을 확장했다. 환경정비를 위해 시장이 직접 버스를 타고 일일이 지적하는가 하면 실무팀은 현장에 걸어 다니면서 지적하고 나중에 정리한 현장을 재확인까지 하였다. 정비가 불량한 건물이나 방치된 적치물 등을 사진에 담아 매주 개최되는 구청장회의 때 공개하여 정비를 촉구하였다. 돌출간판 철거 후 간선도로에 시범간판을 만들며 각고의 노력 끝에 도로가 많이 깨끗해 졌다. 도로변에 새로운 고층빌딩이 건립되면서 깨끗한 환경으로 변모되었다.
하루는 한시민이 찾아왔다. ‘가라오케‘라는 간판으로 노래연습장을 운영한다면서 가라오케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가짜오케스트라‘의 이름이라고 했다. 더 확대되기 전에 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일본식 표현에 대한 거부반응이 매우 컸다.
간판은 원칙적으로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한글학회에서 보내온 답변은 ‘가라오께’를 ‘녹음반주, 노래반주, 가요반주 등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듯 세월이 흘러 지금은 노래연습장, 노래방, 노래주점으로 업소명칭이 정착되었다. 용어는 달라졌지만 더 좋은 우리말로 통용되고 있다. 한 시민의 건의가 새로운 언어문화를 만들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우리말과 외국어가 융합되어 새로운 언어가 도시의 얼굴을 흩뜨리고 있다. 2000년대의 중반 이후에 영업점과 아파트 이름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 보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진 아파트 이름에 혼란하여 나이든 부모가 며느리 집을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유머도 생겨났다.
우리집 아파트의 이름은 더샵센텀포레이다. 또 다른 이름은 엘지메트로시티, 해운대힐테이트위브, 남천엑슬루타워, 구서롯데캐슬골드 등 많은 이름이 있다. 보이는 이름마다 길고 짧든 간에 외래어 투성이로 혼돈스럽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외래어가 포함되어야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관스럽다.
상가영업집도 마찬가지다. 겐로쿠 우동, 하오하오 반점, 어드벤쳐 커피, 호우양꼬치 플러스 등 다양하다. 오피스텔도. 모텔도, 호텔도 외국어 투성이다.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하지만 대안을 찾지 못하고 거의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의 얼굴은 간판이고 이름이다. 도심지 내의 도로와 공원, 건물들은 많이 깨끗해 졌다. 그러나 외국어로 포장된 간판은 새 화장을 해야 한다. 한번 사용한 언어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순수하고 부드러운 우리말이 보이지 않는다. 모르는 용어들이 이웃을 하자고 날뛴다. 매우 한탄스럽다.
이제 부터라도 우리글이 사용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모두의 자긍심을 높이고 새로운 문화를 싹트게 하는 일이다. 모두 새로 만들어 우리 옷에 맞게 낮선 얼굴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