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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에 홍역치료발상지 공원을 건립하자!>
중국 당나라의 시인 하지장(659~744)은 지금의 저장성 샤오산인 월주 영흥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시인으로 날렸다. 그는 타향에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 그 감회를 묘사한 칠언절구 2수가 전해오고 있다.
少小離鄕老大回(소소이향노대회) 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鄕言無改鬢毛衰(향언무개빈모쇠) 고향 말투 그대로건만 귀밑머리 다 빠졌네.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불상식) 동네 아이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래) 웃으며 묻네, 손님은 어디서 오셨느냐고.
이 시는 어려서 떠나온 고향에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는 여전하건만 자신은 이미 귀밑머리가 빠지고, 백발이 되었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노인에게 동네 꼬마들이 다가와 고향을 돌아온 시인에게 다가가서 어디서 오신 손님이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느낌을 하지장은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 대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離別家鄕歲月多(이별가향세월다) 고향 떠나온 지 오래되어
近來人事半消磨(근래인사반소마) 모든 것이 거지반 사라져버렸네.
唯有門前鏡湖水(유유문전경호수) 문 앞 거울처럼 맑은 호수만이
春風不改舊時波(춘풍불개구시파) 봄바람에 이는 물결 예전 같구나.
이 시는 오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변했어도 예전과 변함없는 고향의 자연경치를 보고 느낀 감회가 잘 드러나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변했어도 고향의 산과 강은 변함이 없는 것을 느낀다.
필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는 우리의 고향 생초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고, 가깝게는 오부, 금서, 산청, 수동, 유림, 함양, 안의, 신원, 진주, 거창 멀게는 마산, 남원, 대구, 부산 등에서 늘비장을 찾아 왔었고, 5일장이 열리면 시장(市場) 안을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수많은 사람이 붐비었다. 이와 같은 생초는1970년대 산업화, 인구 노령화로 현재는 2,000여명이 거주하는 쇠퇴한 마을로 변했다. 고향을 방문할 때 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타갑다.
우리의 고향 생초는 산청군의 다른 면(面)보다 그 옛날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붐비었으며 산청군청의 다른 면(面)보다 내 세울만한 것이 많다. 그 예로 유적지는 어외산성, 태봉산과 경호강 반개섬에 가야 고분군들이 산재해 있고, 조선시대에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장관, 4성장군, 학자 등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조선의 반가(班家) 자제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후 말년에 향리로 돌아와 봉사했다. 생초를 빛낸 인물들도 솔선수범하여 향리 고향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제시해 본다.
필자도 고향 생초에 외부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관심사이었고, 그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십수년간 노력했으나 혼자의 힘으로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의 고향 생초에는 다른 지역에 없는 두 개의 발생지가 있다.
하나는 <홍역치료발상지>, 다른 하나는 <새마을금고발상지>이다.
그런데 <새마을금고발상지>는 산청읍으로 빼앗겼다.
남은 하나의 발상지는 <홍역치료발상지>이다.
이것마져도 동의보감촌이나 다른 지역에 빼앗길 수 없다.
생초에 반드시 <홍역치료발상지>가 건립되어야 한다.
발상지(發祥地)는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어떤 일이나 사물이 처음 나타난 장소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조가 태어난 곳을 방문하며, 그곳에 표지석, 안내판, 기념관을 세운다. 종교인들은 성지 순례라고 하면서 그 종교가 처음 일으킨 곳을 방문하여 기념하고, 그곳에 성전, 기념관이나, 역사관을 세운다.
2019년 12월 1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처음으로 전염병 코로나가 발생했고, 우리나라에는 2020년 01월 20일 발생했다. 이와 같은 코로나는 세계로 번져 2020년 8월 06일 현재 세계 현황을 보면 발생국가는 218개국,
확진자는 18,425,654명, 사망자는 700,343명이고, 국내의 확진자는 14,499명, 사망자는 302명이다.
조선 시대에도 전염병이 있었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병(病)은
죽음의 병, 암(癌)도 아니고, 전염병 두창과 홍역(紅疫)이다.
천연두(天然痘, 두창: 痘瘡)는 수천년전부터 창궐하였고,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라니라에 창궐한 후 조선 세조 때부터 치료법이 나왔다. 그러나 조선 중기까지는 호흡기 전염병 홍역은 없었다.
홍역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신종 전염병이고, 증상이 역질과 같았으나 색깔이 붉어 홍역(紅疫)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홍역은 2020년 우리나라의 국민들에게 공포를 주었던 호흡기병 우한 코로나19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집안에 홍역이 발생하면 모든 가족이 한꺼번 죽기도 하였고,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병이었다. 마을에 홍역이 발생하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가 하면 사람들이 병이 없는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다.
이익의 <성호사설>과 정약용의 <마과회통>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홍역 발생 연보를 보면 1613년 홍역이 처음 발생했다.
그 이후 1637년, 1646년, 1651년, 1656년, 1663년,
1668년(현종 10년 무신년) 홍역이 발생했고,
12년 후 1680년(숙종 6년 경신년),
12년 후 1692년(숙종 18년 임신년),
14년 후 1706년(숙종 32년 병술년),
1707년 평안도에는 1만 수천명이 홍역으로 죽었다.
12년 후 1718년(숙종 44년 무술년),
11년 후 1729년(영조 29년 기유년),
23년 후 1752년(영조 29년 임신년),
23년 후 1775년(영조 52년 을미년),
12년 후 1787년(정조 11년 병오년)에 홍역이 크게 유행하였다.
<동의보감>에는 두창 치료 처방은 수록되어 있으나, 홍역 치법(治法)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는 전염병 홍역 치료의 발상지(發祥地)이다.
그 이유는 명의 유이태(劉以泰)가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홍역치료서를 저술하였기 때문이다.
유이태(劉以泰)가 태어난 이후 전염병이 발생 당시의 나이와 연도는
5세 1656년,
의학 공부 초기
12세 1663년,
의원인 된
17세 1668년(현종10년 무신년) 홍역이 발생하였고,
29세 1680년(숙종 6년 경신년),
41세 1692년(숙종 18년 임신년), 홍역이 전국적으로 창궐하였다.
명의로 널리 알려진 유이태는 홍역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이태는 홍역이 창궐하자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680년 홍역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유이태는 1692년(임신년)에 삼남(三南 :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홍역 치료에 나섰다.
1692년 지나가면서 홍역이 진정되었다. 홍역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유이태는 의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홍역 치료 방법을 기록한 의서를 저술을 결심하였다.
마진이란 사람에게 어떠한 병이기에 예전에는 없었다가 지금에야 생겨나고 전에는 가볍게 여겼다가 후에야 중하게 여기는 것인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2기(紀.30년)만에나 한 번씩 오던 것이 근래에 와서 1기에 한 번씩 돌아와 도성이나 시골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잇따르게 되었다. 아! 그 이유를 캐어 보니 세상에는 옛사람들의 신비한 비결이 없어 구호할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이에 대한 방약(方藥)의 미비함을 늘 개탄하여 왔다. 이에 고루함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운림과 마한산의 약방문을 대략 엮고 시골의 경험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마진편> 서문 유이태
산청 생초가 낳은 유이태(劉以泰ㆍ劉爾泰)는 향리에 무엇을 남겼는가?
1) 조선의 홍역학 태두(泰斗)는 누구이고, 조선 최초 <홍역치료서>, <홍역치료 발상지>는 어딜까?
조선시대의 홍역은 요즈음의 호흡기 질환 <코로나 19>와 같은 신종 전염병이었다. 유이태는 유학자 의원으로서 1696년(병술년) 그의 나이 46세 때 29세이었던 1680년과 41세이었던 1692년 홍역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 혜민국에서 조선인으로는 최초의 홍역치료서 <마진편>을 저술했고, 홍역학 태두(泰斗)이다.
유이태의 <마진편> 저술로 조선은 홍역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고, 산청군 생초면 신연은 조선의 홍역 치료 발상지(發祥地)가 되었다.
1696년 유이태의 <마진편> 저술 이후에 저술된 홍역치료서는 1759년(영조 35년) 이헌길 <마진기방>, 1798년(정조 22년) 정약용 <마과회통>이 있다. 이들 3권은 조선의 3대 마진의서이다.
2) 조선의 <질병 예방치료(豫防治療) 주창자>는 누구인가?
다른 마진 서적이나 다른 의서에 질병 예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이태는 그의 저서에 질병 예방을 강조했다. 유이태는 병들기 전에 질병을 예방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한 질병 예방 주창자이다. "건강할 때부터 계절에 따라 음식을 먹어야 한다."라고 <유이태유고(遺稿)>에 기록되어 있다.
3) 시도(施道 :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를 펼친 생초
유이태는 자신이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희사했고, 을병년(1685~1686) 흉년에 경상좌우도의 사우들에게 백미를 빌려와 굶주림에 있는 사람을 구했다. 유이태의 행적은 승지 한배하(훗날 공조판서 역임) 편지와 예조에 올리는 <예조정장>에 施道가 기록되어 있다.
4) 7권 저서 저술, 5도(道) 실천, 위민(爲民)⚫애민(哀愍)정신의 인술을 펼친 장소
산청군 생초의 유이태 혜민국은 전해지는 의서(<마진편>, <인서문견록>,<실험단방>)와 1975년 잃어버린 2권 의서, 1940년대 초반 화재로 소실된 <침구방>과 <부인방> 의서 저술된 장소이며,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곳이고, 5도(道)를 실천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환자들에게 위민(爲民)⚫애민(愛民)정신의 인술(仁術)을 펼친 곳이다.
5) 의술 윤리 도덕 실천 장소
산청 생초는 조선의 명의 유이태가 참된 의사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의술 윤리도덕을 실천한 곳이다.
유이태 약력
▸ 생몰년 : 1652~1715년 2월 27일
▸ 자 : 백원
▸ 호 : 신연당(新淵堂), 원학산인(猿鶴山人), 인서(麟西)
▸ 관 직 : 어의(御醫), 안산군수
▸ 품 계 : 숭록대부
▸ 저 서 : <마진편>, <인서문견록>, <실험단방>,
1975년 잃어버린 <2권의서>,
1940년대 초반 화재로 소실된 <침구방>과 <부인방>
▸ 유 품 : <예조정장>, <유이태유고>, <간찰>
▸ 명성(名聲)
①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신의(神醫)
② 환자의 마음의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
③ 홍역학 태두(泰斗)
④ 질병 예방 주창 유학자 의가(醫家)
⑤ 의창(義倉)을 주관하여 나눔을 실천한 유학자 의가(醫家)
⑥ 5도(道)를 실천한 유학자 의가(醫家)
⑦ 한국 유학자(儒學者) 의원의 전범(典範) 제시한 유학자 의가(醫家)
⑧ 참된 의사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의술의 윤리도덕을 확립한 유학자 의가(醫家)
⑨ 위민(爲民)ㆍ애민(愛民)정신을 펼친 유학자 의가(醫家)
(1) 유이태 의학사상
인생관(人生觀) :
사친지의(事親知醫), 제중인심(濟衆仁心)
어버이를 공경하기 위해 반드시 의학(醫學)을 알아야 하며,
자손들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돌보아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정신관(精神觀) :
무귀무천(無貴無賤), 무친무소(無親無踈)
남녀노소·귀천·친소·민관·빈부를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을 보살피며,
백성을 사랑하는 위민(爲民)·애민(愛民) 정신을 펼치는 것.
학문관(學文觀) :
공리후세(功利後世), 보상일신(補償日新)
후세에 공덕(功德)을 넘기고 후학들이 새로운 치법을 만들어
의학이 날마다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것.
의약관(醫藥觀) :
향정비약(鄕井備藥), 단방수록(單方隨錄)
자연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향약재를 이용한 치료법을 개발·채록하고,
치험 사례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으로써 전통적인 향약의학 성격을 고수하는 것.
치병관(治病觀) :
미병절선(未病節宣), 선조후치(先調後治)
건강할 때 절제하는 생활로 병을 예방하고, 발병하면 근원을 찾아서 신속히 치료하며,
완치 후에는 철저히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
수기관(修己觀) :
존양천리(存養践履), 성실불구(誠實不苟)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여 편안하게 하고,
본심을 잃지 않고 의(義)로운 일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
(2) 유이태 5도(道)정신
ㆍ정도(正道) : 성인처럼 바른길을 걷는 것.
ㆍ효도(孝道) : 부모를 공경히 모시는 것.
ㆍ시도(施道) : 자신이 가진 것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ㆍ의도(醫道) : 병의 근원을 탐구해 증세에 따라 처방하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하는 것.
ㆍ수도(壽道) : 절제된 생활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
산청군 생초에 홍역치료발상지가 반드시 건립이 되어야 하는 이유
20세기에 들어와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사망률보다는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더 높다.
미래에 창궐할 전염병에 대하여 준비를 하여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홍역치료발상지공원 건립으로 조선의 전염병과 현대의 전염병 실체를 파악하고,
미래에 창궐할 전염병을 대비해야 한다.
1. 경남 산청군 생초는 호흡기 전염병의 경각성을 높이는 장소이다.
2. 조선을 움직인 명의(名醫)가 있다.
3. 홍역학파(學派)의 태두(泰斗)가 있다.
4. 명의의 의학사상이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5. 명의의 건강 치법이 전해오고 있다.
6. 유학자 의원의 전범(典範) 제시와 의술 윤리 도덕 확립 장소이다.
7. 교통이 편리하다(고속도로, 3번국도, 서울남부터미널 3시간)
8. 인근 관광지(동의보감촌, 구형왕릉, 함양 상림, 남계 서원, 안의 황석산성, 용추계곡, 거창 수승대)가 있다
홍역치료발상지 공원 건립 효과
▸ 전염병 홍역 치료발상지 성지로 전국적인 명소
▸ 대한민국 힐링 장소
▸ 힐링 관광객 증대로 지역경제 활성화
▸ 인근 관광지(동의보감촌, 구형왕릉, 함양 상림, 남계 서원, 안의 황석산성, 용추계곡, 거창 수승대) 활성화
홍역치료발상지 공원으로 적합한 산청군 생초를 살펴보자.
산청군 생초면 어디에도 홍역치료 발상지 표지석이나, 안내판도 없다.
한의학 성지를 표방하는 산청군청에서 유이태 유적지 찾아가는 이정표는 고사하고 표지석도 하나 없다.
생초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본다,
홍역치료발상지 공원이 건립되면 생초는 발전하게 될 것으로 본다.
전국 각지에 발상지가 있고, 발상지를 어떻게 홍보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저마다 발상지 표지와 안내판을 설치하여 홍보하고 있다.
그 예로,
전북 고부와 고창은 동학혁명,
전북 임실은 치즈,
경남 의령은 의병,
경남 진주는 소년운동,
깅원도 정선은 정선아리랑,
경기도 광주는 천주교,
서울 종로구는 한국만화와 우편 사업 그리고 독립운동(탑골공원)뿐만 아니라 곳곳에 표지석,
서울 중구는 국궁,
경북 청도는 새마을운동과 화랑,
경북 포항은 새마을 운동,
경북 구미는 자연보호운동,
경북 영주는 콩 재배,
충북 제천은 농경문화,
충북 음성은 고추 맴맴의 발상지,
두산그룹은 종로구에 두산의 발상지,..... 등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건립한 발상지 안내판이나 표지석을 보자,
동학혁명발상지 표지석 및 안내판
농경문화발상지 안내판
천주교발상지 안내판
국궁발상지 안내판
정선아리랑발상지 안내판
진주 소년운동발상지 안내판
한국만화발상지 안내판
두산그룹발상지 안내판
이외도
동학혁명발상지 표지 및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