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 프랑스의 식탁
(파리바케트 웹진에서 발췌 2003.01.02)
화려한 테이블 셋팅에 환상적인 데코레이션, 다양한 소스와 식재료, 한껏 고급스러움을 뽐내는 프랑스 요리는 우리에게 그다지 친근하고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음미해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한 프랑스인들의 가정식은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소박하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산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프랑스인의 식탁을 들여다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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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aul)은 매일 새벽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불랑제리(빵가게)에 빵을 사러간다. 폴의 입맛에 꼭 맞는 '바게뜨'가 있는 그 블랑제리 앞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폴은 자신의 몫으로 곡물 바게뜨 2개와 아내를 위한 '크르와상', 저녁에 먹을 후식인 작은 가또(파이)를 몇 개 구입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뺑 오 쇼콜라(초콜렛이 들어간 빵)'와 '플랑(커스타드크림으로 만든 파이)'을 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폴은 점심으로 콩과 소세지 등을 넣고 스튜처럼 푹 끓인 남부 뚤루즈 지방요리인 '까술레'를 즐기고, 쵸콜렛 동호회원인 아내는 저칼로리의 샐러드로 점심을 대신하고 새로 나온 쵸콜렛을 음미한다. 아이들은 학교내의 깡띤(구내식당)에서 영양사가 만든 식단에 철저한 위생관리가 이루어지는 점심을 먹는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스테까쉐(다진 스테이크요리)'와 '뿔레 로티(닭구이)', 그리고 '프리트(감자튀김)'. 아이들이 직접 배식판을 들고가서 정해진 코스대로 음식을 담는다. 프랑스의 서민층을 대변하는 폴의 가족을 통해 파리지엥의 하루 식탁을 살펴 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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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가족은 프랑스의 도시중산층이다. 물론 시골 생활은 이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시골의 식생활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취업율이 높기 때문에 가정에서 식사준비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외식의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간단하게 음식을 데우거나 해동하는 정도의 음식을 많이 이용하며, 그런 음식들의 구매액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식품회사들도 저마다 유명한 요리사들의 이름을 건 레트로트 식품이나 냉동, 냉장식품을 출시해 빠르고 간단하게, 맛있게 먹는 트랜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오븐이나 냉동고는 프랑스 가정의 필수품이며 캔 식품, 팩 식품, 병 식품도 많이 이용한다. 손님을 초대할 때 프랑스인들은 그리 큰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경우는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손님이 오면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고 식사 자체보다도 음식을 통한 대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적어서 프랑스에서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다 먹어 볼 수 있다. 보통의 레스토랑은 맛을 의미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식사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레스토랑은 우리 나라처럼 과장되고 격식있는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지 않다. 프랑스 요리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모양새, 보기 힘든 식재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가정 요리, 시골 요리나 보통의 레스토랑 요리, 별 몇 개짜리 고급 레스토랑 요리가 큰 차이가 있으므로 그중 어떤 요리인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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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달팽이나 개구리, 또는 거위간 등 혐오스런 요리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을 '개구리를 먹는 사람들'이라고 놀린다고 하지만 그런 편견은 그 음식을 먹고 나면 단숨에 사라지고 만다. 개구리나 달팽이 요리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식재료의 다양함에 있다.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기에 프랑스는 생산하지 않는 농산물이 거의 없고,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 다양한 종류의 생선과 해물을 구할 수 있으며, 내륙에는 강이 많아 담수어들이 풍부하다. 알프스, 피레네 등 산악지대에서는 양질의 가축과 유제품이 생산된다. 이렇게 풍부한 식재료에 지방마다의 지방색이 더해져 프랑스의 요리는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잦은 전쟁과 식민지와의 문화 교류, 새로운 식재료의 반입 등은 프랑스 식문화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독일 인접지역에서는 독일풍이 가미된 음식을 접할 수 있고, 남불에서는 지중해풍의 음식을, 북서쪽에서는 영국풍의 음식도 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지방음식은 특히 지방색이 강한데 가령 니스와 마르세이유 등 남프랑스에는 버터보다는 올리브유를 많이 사용하고 토마토나 피망, 마늘, 프레쉬 허브등의 향과 색이 좋은 야채들을 많이 이용한다. 바다에 접해 있어 해물 요리가 다양하며 그 향이 진하다. 프와 그라(거위 간)로 유명한 페리고르와 보르도 지방엔 와인을 이용한 요리와, 오랜시간 끓여서 만드는 요리들이 많다. 파리와 파리 근교는 지방의 여러 음식과 외국 음식들이 섞여져 더욱 고급화되고 국제화되고 있다. 이렇게 지방마다 다양한 식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들어먹는 요리들은 대대로 이어지고 맛으로 검증되면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위와 같은 지방색 이외에도 프랑스 요리의 또다른 특징은 소스의 다양함이다. 하나의 음식에 각각 하나씩의 소스가 있다고 할만큼, 소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소스를 만드는 직업은 중세 시대부터 전문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처음 소스의 출발은 신선하지 못한 재료들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음식의 맛을 돋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기 이름을 건 소스를 개발해 내는 것이 요리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소스는 진한 육수를 만들어 그것을 베이스로 이용하는 소스, 와인을 이용하는 소스, 밀가루와 버터, 우유 등을 이용해서 만들어 내는 소스, 계란 등을 이용한 유화소스 등 그 장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소스는 우리의 김치만큼이나 그 종류가 많아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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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음식뿐 아니라 서양음식을 먹을 때,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식탁을 지키는 것이 2가지가 있다. 바로 와인과 빵. 목을 축여 주는 와인과 배를 부르게 하는 빵은 고대로부터 식사의 기본을 이루어왔던 요소이다. 발효법을 이용해서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서이다. 물론 그전부터도 곡류 가루와 물을 이용해서 만든 반죽으로 납작한 형태의 빵을 먹기는 했지만 우연히 반죽의 발효를 발견함으로써 빵은 더욱 다양한 모양과 맛을 지니게 된다. 제빵사의 직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세부터이다. 이 시대에는 각자 자기 집에 빵굽는 화덕을 갖추지는 않았고, 마을의 커다란 화덕에서 빵을 구워서 마을 사람들에게 파는 그런 식이었다. 빵은 요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또는 지방마다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그 지방에서 가장 많이 나는 곡류와 스파이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보통 빵은 또 그 모양에 따라서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고, 사용하는 곡류의 종류에 따라서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프랑스 빵은 당도나 유지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과 천연 이스트만 넣는데, 요즘은 인공 이스트를 사용하기도 한다.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프랑스 빵은 단연 '바게뜨'이다. 바게뜨는 모양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바게뜨는 막대기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게뜨도 여러 종류가 있다. 통밀을 이용하면 바게뜨 꽁블레라고 부르고, 들어가는 밀의 종류에 따라 바게뜨 비스, 바게뜨 그뤼오 등의 이름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프랑스인이 말하는 좋은 바게뜨는 껍질은 아주 단단하고 속은 크림같이 부드러우며 크림색을 띠고 기공이 불규칙하게 보이는, 돌로 만든 오븐 냄새가 나는 바게뜨이다. 바게뜨, 크르와쌍, 브리오쉬 등 식사와 곁들여 먹는 빵 이외에도, 부단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프랑스의 제빵사와 제과사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독창적이고 다양한 빵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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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음식문화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발전시키려는 인위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나 빵은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프랑스만큼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나라는 드물다. 특히 프랑스에 살아보면 그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서먹서먹한 초대 자리에서도 음식얘기만 나오면 | |
그들은 말이 많아지고, 자신의 지식을 총 동원해 미식에 대한 일가견을 토로한다. 요리에 대한 그들 각자의 신념과 주관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설전(?)을 마무리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런 문화적 풍토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요리사가 존경을 받는 직업이며 철저한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2대 혹은 3대에 걸쳐서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있고,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요리로 전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 요리사들은 직업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중학교 무렵부터 받는다. 20대의 훌륭한 요리사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조엘 로뷔숑, 알랑 뒤카스, 폴 보퀴즈 등 초특급요리사들은 프랑스에서는 최고 유명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편 음식점 가이드북인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매년 발간되는 미슐랭 가이드 책은 유명 레스토랑이나 신진 레스토랑에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별을 부여하는데, 그 별의 권위가 대단하다. 최고 명예인 별 셋을 받은 레스토랑은 주요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될 정도이다. 요리사 알랭 뒤카스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그의 독창적인 요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미슐랭에서 별을 6개나 땄기 때문이다(그의 레스토랑 두 개는 각각 별 3개를 땄다).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 맛을 기본으로,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서비스, 위생적인 조리 시설, 음식과 조화되는 와인의 선별 등 종합적인 항목에 대한 여러 번의 비밀심사를 통해 별을 부여한다. 때문에 고급 레스토랑들은 식당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많은 투자를 한다. 프랑스 정부 역시 프랑스 문화의 전달자로 요리사를 이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식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전통과 국민들의 자국음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 요리사들의 지속적인 노력, 그것을 알리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들과 함께 어울려져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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