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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중류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담한 마을이 있으니 사람들은 이 마을을 백룡촌이라 한다. 도문시의 백룡촌은 전설의 고장이다.
백룡촌에는 100년 이상 되는 전통가옥을 바탕으로 해 건설한 모조 건축부락(仿古部落群)인 ‘중국조선족백년부락’이 있다. 백년부락 안에는 또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많은 생활도구들이며 농경기구와 문물들이 완전하게 보존돼있어 도문시 월청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하여 이곳은 관광객들이 연변에 와 꼭 들러보는 명소로 되였다. 백년부락은 선후하여 중국특색마을, 중국전통마을, 중국력사문화명촌 등 칭호를 획득했으며 CCTV 제4채널, 절강위성, 산동위성, 봉황위성 등 매체들도 선후하여 백년부락에 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했다.
13일 오전, 도문시 월청진 백룡촌에 위치한 전통민속마을인 백년부락을 찾았다. 백년부락은 백룡촌의 김경남(68세)씨가 10여년간의 해외로무생활을 마치고 2009년 3월부터 건설하기 시작했고 2010년 9월 16일 정식으로 오픈했다.
백년부락 입구에 이르니 키를 넘는 커다란 석비에 빨간색으로 새겨진 ‘중국조선족백년부락’이라는 글자가 눈에 안겨왔다. 이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 전임 주임이 2010년 9월 9일, 직접 백년부락을 찾아 써준 ‘중국조선족백년부락’이라는 제사라고 한다.
백년부락 입구에 들어서 바로 오른켠에는 돌담으로 둘러쌓인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었는데 돌담너머로 매돌, 솥, 벼짚으로 만든 바줄이며 장작들이 눈에 안겨왔다. 거기서 백년부락기념품상점을 지나 북쪽에 있는 나무다리를 건느니 아름드리 수양버들 밑 정자 안에는 샘이 깊은 드레박 우물까지 있었다. 이 우물은 지금까지 수원이 말라들지 않고 수심이 2메터 이상으로 깊었다. 우물 정 북쪽에 있는 기와집이 바로 백년고택이다. 이 고택은 조선이주민 박여근이라는 상인이 1877년부터 3년간의 시간을 들여 1880년에 완공한 가옥으로서 지금으로부터 140년의 건축력사를 갖고 있다. 아무리 지켜봐도 못 하나 친 곳 없이 100여년이 넘도록 기둥이며 대들보가 맞물려 성한 채로 그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였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가슴 뜨겁게 느껴졌다. 백년고택 처마 밑과 정주간 천정에는 어느새 제비가 둥지를 틀고 노닐고 있었다. 백년고택 서쪽에는 2009년에 세웠다는 물레방아가 깨끗하고 시원한 지하수를 휘뿌리며 잘 돌아가고 있었다. 백년부락은 아담하고 정다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백년부락을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백년부락 부락장 김경남씨는 “원래는 저의 셋째 동생 김경택이 고향마을에 사놓은 100년 이상 되는 집에서 늘그막에 초두부나 해먹으면서 양로를 할 타산이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조선족문화 체험을 하러 찾아오고 또 정부에서 관광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를 적극 지지하면서 저는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조선족 전통가옥을 한채, 두채씩 지으며 백년부락을 건설하게 되였다.”며 “지금까지 백년부락 건설에 정부자금 800여만원, 개인자금 500여만원이 투입됐다.”고 소개했다.
현재 백년부락은 조선족 건축풍격 특점을 갖춘 28채(그중 초가 13채)의 가옥과 ‘사합원식’ 조선족풍미관으로 구성되였는데 그중 가장 진귀한 가옥은 지금으로부터 140년의 력사를 가진 조선족식 옛 기와집이다. 이 가옥은 지금까지 중국 경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족풍격의 옛집이며 옛날의 모습들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어 조선족의 풍속과 건축 력사를 연구하는 데 심원한 의의가 있다. 하여 지금까지 연변대학, 길림대학, 중앙민족대학 등 국내의 대학생과 연구생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공부하는 조선족대학생들과 연구생들까지 백년부락을 찾아 조선족 문화, 력사, 사회 관련 론문을 집필해내기도 했다.
이날 백년부락에는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 찾아온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물레방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나무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백년고택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네를 뛰며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에 안겨왔다.
연길에서 자가운전관광으로 자식들과 함께 백년부락을 찾았다는 연길시민 안녀사(68세)는 “백년부락에 있는 초가집을 보니 옛날 저희들이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초가집에서 살던 기억이 새록새록 안겨오네요. 지금도 140년이나 되는 옛날 기와집이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고 백년고택 안팎에서 제비가 둥지를 틀고 노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제비는 풍수가 좋은 집에 찾아든다 하지 않았습니까?”며 백년부락에 처음 온 감수를 밝혔다.
한편 이날 한쌍의 한족부부가 조선족 민족복장을 곱게 차려입고 마당 안의 그네를 감상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네 뒤에서 열심히 안해를 밀어주고 안해는 기쁜 모습으로 그네를 뛰고 있었다. “비록 오늘 날씨가 덥긴 하지만 조선족 전통민속마을에서 직접 조선족 민족복장을 입고 조선족문화 체험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남편이 말했다.
김경남씨는 “코로나사태가 채 걷히지 않아 백년부락은 아직 정식으로 단체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지 않지만 요즘 들어 주변에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백년부락을 찾아오는 일반 나들이객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예전에는 마을 로인들도 우리 민족복장을 입고 퉁소를 불고 장단에 맞춰 관광객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우리 말 배우기, 례물증정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해 관광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적어 수입이 떨어져 마을 로인들을 쓸 수 없게 되자 체험활동이 적다며 구경 왔던 사람들이 섭섭해하는 경우가 있다.”며 “향후 남방 손님들이 찾아오는 상황을 보면서 민박, 음식점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민속오락이나 기타 체험활동도 늘여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먹거리, 볼거리와 놀거리를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백년부락에서는 지금까지 운영한 이래 최고로 3만여명의 관광객을 맞이했는데 지금 추세 대로 나간다면 올해 지난해 절반 정도는 능히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향후 타산에 관련해 김경남씨는 “백년부락에는 눈에 띄게 화려한 건물도 없고 현대화한 놀이시설도 없지만 여기에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중국 관내 사람들은 백년부락은 정말 좋은 곳이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라고 평가한다.”며 “향후 저는 백년부락에서 사라지는 우리 문화를 다시 찾고 싶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계속 원 생태적이고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며 솔직히 고백했다. 그의 말 마디마디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겨레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전설의 고장에서 중국조선족 무형문화재를 굳게 지켜나가는 그의 행보는 계속 진행중이다.
현진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