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탑승기
오늘은 오래전 잊지못할 추억 한조각 꺼내볼까요.
20세기 항공기술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던 콩코드 여객기가 런던과 뉴욕, 파리와 뉴욕운행을 2003년 10월 24일을 마지막으로 중단함에 따라 4시간만에 초음속의 속도로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미국을 연결해 주던 콩코드의 기록은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설속에서 난 우연하게도 그 콩코드 여객기를 타 본 승객중 하나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마치 독일이 통일이 되기 직전에 베를린에 가서 분담의 아픔을 같이 느꼈는데 이듬 해 통일이 되어 다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추억으로 남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필자가 돈이 많아서 그 비싼 콩코드를 탄 건 아닙니다. 국제 비지니스를 하다 보니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British Airway 를 예약해 두었는데 갑자기 그 비행기가 취소된 겁니다.
난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는데 뉴욕으로 건너가 런던행 B.A.로 옮겨 탈 예정이었습니다. 런던에서 매우 중요한 비지니스약속이 있었는데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B.A.에 항의를 하고 같은 시각의 다른 비행기를 주선해 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B.A.측에서 생각지도 않게 비슷한 시각에 뉴욕에서 출발하는 콩코드기에 자리가 있는데 그걸 타시겠느냐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물론 추가요금은 없었습니다.당연히 행운이었지요. 그래서 콩코드를 타 볼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겁니다.
콩코드기의 요금은 정상운행시 편도로 7,154달러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780만원 정도 였습니다. 엄청 비싼 거지요. 그러니 이 비행기는 돈 많은 갑부나 비지니스상 정말 급히 대서양을 건너야 할 직장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파리-뉴욕간 7시간 45분 걸리는데 콩코드는 3시간 55분의 초음속으로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으니까요. 음속이란 마하로 표시하는데 마하는 시속 약 1,200km랍니다. 콩코드의 최고시속은 마하 2였습니다. 따라서 시속 2,400km로 날아가는 겁니다. 소리의 속도보다 2배나 빠른 거지요.
비행기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음속돌파를 해야 하니까 공기저항을 작게 받도록 길쭉하고 승객 정원도 130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자료를 보니 좌석이 92석으로 되어 있더군요. 기종에 따라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기내좌석배치는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 두자리씩 네자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약 4간 운행중 내내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야 하는 건 좀 불편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음속돌파 기념으로 항공사측에서 승객들에게 소위 "음속돌파기념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기념볼펜도 하나씩 주었습니다. 음속돌파할 때는 자동차 기어를 바꿀 때 약간 움찔하는 것처럼 비행기가 한번 쿠션을 받는 듯한 느낌이 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2003년 10월 24일 마지막으로 뜨는 "뉴욕발 런던행" 콩코드비행기의 마지막 남은 표 두장의 값이 얼마였는지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무려 6만3백달러(당시 환율로 약 7,200만원)였답니다. 마지막 콩코드를 한번 타보려고 거금을 지불한 겁니다.
콩코드 운행을 중단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비싼 돈을 주고 대서양을 건너다닐 승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듯 합니다. 2000년 7월에 발생한 113명사망의 추락사고도 이유중에 하나였답니다. 승객들의 안전운행에 대하여 신뢰를 떨어뜨린 거지요.
1969년 3월에 처음 시험운행을 개시한 이후 30여년만에 운행을 중단한 거지요. 승객을 태우고 상업운행을 개시한 것은 1976년부터랍니다.
1995년에 리메이크된 영화 ‘사브리나’의 마지막 장면은 ‘신데렐라’류의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엔딩신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부유한 남자 주인공 라이너스는 뒤늦게 사랑하는 여인 사브리나를 찾아 나섭니다. 프랑스 파리로 되돌아간 사브리나를 만나기 위해 뉴욕 공항으로 가던 그는 시내 교통이 막히자 차에서 내려서 무작정 뜁니다. 그렇게 해서 공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구입합니다.
그 때 비행기표를 건네주는 항공사 직원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에도 이 비행기를 타보신 적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질문을 던진 이유는 곧바로 밝혀집니다. 그가 탄 비행기는 다름아닌 콩코드 여객기였습니다. 항공사 직원이 질문을 던진 것은 초음속으로 날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초음속으로 날아간 라이너스는 파리의 사브리나 집 앞에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나서는 사브리나가 도착하고, 문을 열려다 문득 뒤를 돌아보고, 어두운 골목 한 켠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나고, 서로 감회어린 시선을 주고 받은 뒤 키스를 나누고....전형적인 패턴으로 마무리됩니다.
콩코드 여객기가 퇴역당한지 1년 이상 지난 후 런던에서는 이색적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콩코드 여객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 30여명이 토니 블레어 총리 공관 앞에서 “콩코드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다시 보게해달라”며 피켓 시위를 벌인 겁니다. 이들은 “정기 운항을 해달라는 얘기는 아니고, 일년에 몇 번 정도 에어쇼에서라도 콩코드가 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2만명이 사인한 청원서를 총리실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정부가 결정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브리티시에어웨이와 에어프랑스는 이미 상당수 콩코드 여객기를 항공 박물관으로 보냈습니다. 더 나아가 브리티시에어웨이는 회사의 재정을 위해 콩코드 여객기를 분해, 판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 쓸만한 부품과, 기념품이 될만한 부분들을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거죠.
최근 한 경매에서는 이탈리아 사업가가 콩코드의 뾰족한 앞머리 부분을 11만5000파운드(약 2억3000만원), 콩코드에 장착된 롤르 로이스제(制) 엔진 한 쌍을 6만파운드(1억2000만원), 푸른 가죽으로 된 좌석을 2000파운드(400만원)에 구입한 적도 있답니다.
어쨋든 20세기 항공 기술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던 콩코드 여객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시속 2,400km의 속도로 4시간만에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미국을 연결해주던 콩코드의 기록은 새로운 비행기가 개발되지 않는 한 영원한 전설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전설에 필자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구요.
그런데 제가 2005년 5월 12일에 이 글을 제 네이버 블로그 ‘해외여행기’란에 올렸을 때 도저히 믿기어려운 해프닝이 또 일어났습니다. 그날 하루동안 무려 8,932명이 이 글을 접속한 것이지요.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에서 이 글을 ‘요즘 뜨는 이야기’라는 ‘오늘의 블로거’로 선정한 것입니다. 인터넷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한 날이었지요. (글/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