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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체험연수기>
진도실업고등학교 교사 고재성
전화기가 악을 쓴다. “선생님, 저 박영흰데요. 얼른 오세요.” “워메, 어찌야쓰꼬, 금방 갈라, 잉?” 부랴부랴 옷을 입고 등짐가방 들쳐메고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구검문소 앞으로 후딱 델다 주실라?”
누가 탄지 만지, 온지 만지도 모르고 의자에 몸을 부렸다. 못잔 잠 보충하니라고 그런가 내내 잤다.
어딘지 모르겄다. 아침밥을 먹잔다. 나는 안 먹는다고 했다. 기사양반이 누룽지라도 먹으시란다. 내렸다. 밥 한 숟가락에 북어국물을 부어 몇 번 ‘떠묵고는 이내 차로 돌아와 의자에 몸땡이를 부렸다.
눈을 떴다. 인제 휴게소다. 인제 가믄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겄다고 허던 곳이다. 인자 봉게 이쁜 김미현 선상님이 내 곁에 앉어있다. 암매도 광주서부터 항꾸네 왔을 것인디 냅다 잠만 자니라고 모르고 있었다. 송형숙 선상님도 보인다. 이천에서 탔단다. 인자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오줌을 누고 손을 씻는디 누비옷 속주머니에서 뭣이 걸리적거린다. 부채였다. 그 비몽사몽, 헤롱헤롱헌 중에서도 금강산에 올라가 소리 한 대목 허겄다고 그것은 챙겼능갑다.
통일전망대 부근의 휴게소에 들렀다. 그곳에서 낮밥 묵고 통일관련 동영상을 보았다. 그 뒤, 북측에 가서 해야할 것허고 말아야 헐 것들을 안내조장한테 듣고 한참만에야 또 차에 올랐다.
남쪽 출입국 관리소가 보인다. 아, 인자 드디어 북녘땅에 가는구나. 무담씨 눈물이 매롤락 헌다. 우리가 탔던 안내원인 백조장의 친절한 설명에 남방한계선, 휴전선, 북방한계선 등이 어치고 생겼는지를 알았다. 오래된 시멘트 말뚝이 휴전선 표시란다.
드디어 북쪽 출입국 관리소가 저 멀리 보인다. 철길 위로 드문드문 인민군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앳되보인다.
여행허가증에 도장을 박고 통과한다. 인민군복을 입고 여행증에 도장 찍는 분한테 수고하시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웃으면서 여행 잘하고 오라고 한다.
우리가 탄 차는 고성평야를 가로 질러 금강산으로, 금강산으로 향한다. 들판에, 길목에 드문드문 인민군들이 장승맹이로 서있다. 나는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반응은 없다. 그래도 좋았다.
차가 드디어 온정각에 도착했다. 휘휘 둘러보고 숨도 크게 마셔보았다. 눈앞의 높다란 건물이 금강산 호텔이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 남북 적십자 회담 장소로 익히 알고 있던 곳이어서 감개가 남달랐다. 뒤편으로 둥근 아치형의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금강산문화회관이다.
우리 진도실고 네 사람은 동관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금강산들쭉술’ 한 병을 주문했다. 나는 조금 독한 것을 묵고잪았는디 여선생님들을 위해서 16도 짜리를 달라고 했다. 맛이나 향이 포도주허고 비스꼬롬했다. 평소 술을 전혀 않던 송형숙 선생님도 두어잔 마시더니 볼이 발그레 해졌다. 박영희 선상님허고 김미현 선상님은 한 잔씩만 하고 솟터 선배이신 신승태 성님허고 몇 분이 나눠 마셨다.
저녁밥 맛나게 묵고 우리는 온천탕으로 갔다. 소문대로 물이 장난이 아니다. 내 귀빠진 뒤로 요로코롬 좋은 물은 첨이다. 샤워기로 비누칠해 씻고는 바로 탕에 몸땡이를 담괐다. ‘아, 좋다. 좋다.’ 노천탕으로 간다. 싸한 공기가 몸땡이를 감싼다.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탕 변두리로는 빈 자리가 없다. 가운데 쯤해서 앉었다. ‘으흐흐흐 좋다.’ 몸땡이는 따땃허고 머리는 시원허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우리 깨 벗은 인간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좋다, 좋다. 우리가 금강산 신선들이다.
금강산온천에서 나오자 김홍전 선생이 보인다. “어이, 홍전이 시원헌 맥주나 한 잔 허까?” “좋제라, 형님.” 해서 우리는 매점으로 갔다.
늦은 8시 30분에 차를 타고 숙소인 금강산비치호텔에 왔다. 내가 두 밤을 묵을 곳은 1동 309호란다. 방에 들어갔다.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응갑다. 최신식이다. 이틀 간 동거(?)할 다른 선생님들하고 수인사를 나눴다. 같은 지역이나 같은 학교에서 오신 분들허고 약속들을 허셨능갑다. 서로 자기 가까운 사람들을 찾아 방을 나선다.
장전항은 영락없는 오강단지맹이로 생긴, 호수 같은 항구다. 우리 학교 선상님들허고 수상호텔까지 걸어갔다. 현대아산 직원인 듯헌 사람들이 간간히 담박질운동, 걷기 운동을 허니라고 우리 젙을 스쳐지나간다. 금강산비치호텔에서 멀어질수록 야경이 장관이다. 꿈인가 생신가?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금강산 북녘땅을 내가 시방 나직나직이 볿고 있다.
여선생님들은 숙소로 들어가시고 나만 혼자 누각 쪽으로 걸어갔다. 누각 앞 쉼터에 서서 바다를 봄시로 춘향가 중, 방자가 이도령한테 춘향집 가리키는 대목을 흥얼거린다.
“ 저 건너~ 저~어허으~ 건너~~ 춘향집 보이난~~디...”
숙소로 오다가 승태 성을 만났다. “성, 한 잔 허실라?” “그러까?” 우리는 101동 1층에 있는 식당 겸 강당으로 갔다.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생맥주를 시켰다.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비틀즈의 ‘렛잇비’도 부르고... 알고 보니 필리핀 가수란다. 그래서 우리 노래는 안 부르고 맨 꼬부랑 노래만 불렀능갑다. 어째 관중들 반응이 시원찮다. 내가 손바닥 장단(박수)을 먼저 쳤다. 승태 성이 따라헌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도 박수를 친다. 필리핀 가수들 힘이 나는갑다.
봉사하는 여성의 이름이 ‘이천천’이다. 술 한 잔 헐라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술도 못 마시지만 근무시간에는 안 된단다. 조선동포냐고 묻자 자기는 한족이란다. ‘아, 그래서 이름이 특이했구나.’
11시가 다 되었다. 가수들이 노래를 끝낸다. 술집 문도 닫아야한단다. 우리는 일어섰다. 저쪽 탁자에 앉아있던 필리핀 가수가 웃음을 건넨다. 고마워서 보내는 웃음이리라. 나도 웃음으로 답허고, 노래 잘 들었노라고 말 건네고 발길을 돌렸다. 승태 성이 술을 한 잔 더 허자고 자기 방으로 가잔다. 다른 분들 계실 것인디 그래도 괞찮겄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허고도 같이 마시잔다.
3동 306호에 들어선다. 같은 모임 회원인 이기남 선생님이 계신다. 우리는 함께 잔을 기울였다. 머루주 한 병을 기어이 다 비웠다.
아침에 눈을 떴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내가 묵기로 했던 방(1동 309호)이 아니고 승태 성 방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날이 춥지 않다. 하늘을 비껴 보았다. 서쪽 하늘에 반달이 걸려 있는디 그 살짝 젙에 샛별이 반짝 웃고 있다. 참 좋다.
아침밥을 먹고 7시 40분에 차에 탔다. 차는 우리를 싣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북측에서 운영하는 목란관식당에서 막걸리를 두 병 샀다. 내 친정격인 창평고등학교 선생님들허고 한 잔씩 나눠마셨다. 물론 승태 성도 항꾸네... 엊저녁에 묵은 령통소주, 생맥주, 머루주들이 막걸리에 다시 살아난 듯허다. 뱃속이 제법 따땃해져 온다.
점입가경이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놓은 말잉갑다. 개골산이라 그런지 그 속내를 적나라허니 드러내놓고 있었다. 옥류동 무대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손마이크에 들려오는 여성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둘렀다. 나와 비슷허게 올라갔던 사람들이 도착하자 볼이 발그레한 앳되보이는 여성 안내원이 반갑게 맞는다.
“선생님들 반갑습네다. 금강산이 명산이라 이름이 나서 동물들도 이곳에 모여들어 있습네다. 조오기 조~아래쪽을 보시면은 크다란 바위가 있는데 고곳을 머리로 하고 쪼오끔 내려오다보면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그곳을 눈으로 보고 그 아래 길게 나온 것을 코로 본다면 그거이 무슨 동물이겠습네까? 네, 바로 맞췄드랬습네다. 코끼리 같이 생기지 않았습네까? 그 다음 저 쪽을 보시면은 층층대초롬 보이는 데 있지 않습네까? 하나, 둘, 세 번째 보시며는 꼭 거북이가 턱을 받치고 누워있는 모습 아닙네까? 기리구 마지막으루 저 꼭대기 쯤 보시게 되면은 악어가 뒷발을 탁 버티고 기어오르는 형상 아닙네까? 고롬 선생님들 올라갔다 내려오시며는 재미난 얘기 들려 드리갔습네다. 안녕히 다녀오시라요?”
금강문, 비봉폭포를 지나 드디어 구룡연에 도착했다. 비봉폭포의 웅장함을 봐버려서인지 감흥은 크게 일지 않았다. 먼저 올라온 박영희, 김미현 선생님 들허고 사진 몇 장 찍고는 이내 내려왔다. 상팔담으로 가는 삼거리에 왔다. 조장이 올라갈 거냐고 묻는다. 상팔담에 갈라믄 얼음징(아이젠)이 있어야 한다기에 나는 저 다리까지만 간다고 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학교 송형숙 선생님이 내려온다. “선생님 인자 오세요?” “아니, 벌써 댕개오셨소?” “아이구 땀나. 선생님 얼른 올라가세요.” “거시기 없으믄 안 된닥 허든디요?” “ 아이고 암시랑토 안 해요. 그것 필요없어요. 얼른 올라가세요. 진짜 멋있어요.”
안내조장들한테 다리위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겠노라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되야부렀다. 박영희, 김미현 선생님은 그 길로 내려가고 승태 성허고 나는 상팔담을 찾기로 하고 눈 쌓인 길을 올랐다. 전라남도 교사 600여 명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곳곳이 정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드디어 상팔담이 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다. 정말로 안 올라오고 내려가부렀으믄 후회막급헐 뻔했다. 수 많은 봉우리들이 우줄우줄 서있었고, 절벽 저 아래로는 천상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연못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어서 푸른 물을 볼 수는 없었제만 흰 얼음 속을 명경지수는 흐르고 있을 터였다. 아, 이렇게도 아름다운 강산인디...무담씨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오신 분들은 하산하십시오!”라는 말을 듣고서도 사진 찍는다, 귀경한다 해서 한참이나 밍기적대다가 내려온다. “금강산은 우리의 기상이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글발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무봉폭포, 비봉폭포, 금강문을 지나자 아까 얘기를 들려준다던 안내원여성이 아직 안 내려가고 있다.
“안내원 동무, 아까 내려오믄 재미난 얘기 들려준닥 했는디, 어째 조께 들려주실라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머뭇머뭇허다가 수줍어 허면서 야그보따리를 꺼낸다. 신나게 친절허게 얘기를 했는디 기대이하였다. 그나저나 그 진지하고 친절함에 고마울 따름이다.
목란관에 도착했다. 박영희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안으로 이끈다. 당신들은 이미 밥을 묵었는디, 30분이 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빔밥을 시킴서 고기허고 달걀허고를 빼고 주라고 했다. 그러자, 접대하는 여성이, “고롬 볼품이 없잖습네까?” 하고 조금 속상해 하는 표정이다. 그러자 바로 이 선생님은 채식주의자라고 박영희 선생님이 거들어준다. 어제 저녁 ‘령통소주’에 딘 적이 있어서 평양소주는 맛이 어쩌냐고 그 여성 접대원한테 물었다. “평양소주 맛있습네다.” 한다. “글믄 평양소주 한 병 주실라?” 아직 밥이 나올라믄 한참이나 있어야했다. 너 홉이나 될까한 평양소주를 가져온다. 마침 바로 뒤이어 김치사발이 나왔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한테 한 잔씩 드리고 나도 맛을 보았다. 향은 령통소주 계통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부드러워 먹기에 편했다. 마침 같은 탁자에 앉은 다른 분한테도 권하고 목포에서 근무하는 선배, 동료한테도 한 잔씩을 권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비빔밥이 나왔다. 아니? 분명히 고기허고 달걀허고 빼고 도락했는디..... 우리 식탁을 맡은 그 여성 접대원은 두 말 않고 다시 가져오겠노라고 하고 갖고 간다. 잠시 뒤에 다시 나온 비빔밥에는 고기, 달걀이 없었다. 하, 그런디 양이 많아보인다고 한다. 고기 달걀 대신에 밥도 나물도 많이많이 넣었능갑다고 이구동성이다. 시간이 꽤 지난 관계로 밥을 서둘러 몰아넣었다. 정말로 맛나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움시로 비빔밥 최고로 맛나요. 맛나게 잘 묵고 가요. 하고 웃어보이고는 목란관을 서둘러 나왔다.
차에 오르자 안내조장이 우리를 협박한다. 이미 통일연수프로그램이 진행되어서 우리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허허참 낭패다. 고개도 못들고 짭짭해 하고 있는디 차가 금강산문화회관 앞에 멈춰선다. 사람들이 들어간다. 우리도 들어섰다. 자그마한 책자를 나눠준다. <노래모음집>이다. 펼쳐보았다. 익히 들어본, 북측관리사무소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던 ‘반갑습니다’가 맨 첫노래로 실려있다. ‘휘파람’도 있다.
회관에 들어갔다.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능갑다. 교수가 발제를 하고 참가자들한테 의견과 질문을 받는다.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좋은 연수를 일부 교사들로만 한정해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도록 통일부에서 계속 추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도 체험연수에 참여하게 해서 통일의 필요성을 몸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박수들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체험연수 자료집을 제작해서 내실 있는 연수가 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어느 여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4시 30분에 평양교예단의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그때까지는 두 시간쯤 남았다. 온정각 서관에 있는 백화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반쪽이 선물을 하나 샀다. 옥빛 눈망울을 하고 있는 손전화줄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으흐흫..값도 싸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살포시 흘리고 밖으로 나왔다.
온정각 서관과 금강산문화회관 사이에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다. 그 건물 오른 쪽 벽면에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처녀가 밝게 웃고 있다.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디 쥐색 봉고차가 온다. 인민복(?)을 입고 주석초상을 가슴에 찬 중년 남자가 운전을 하고 있다. 번호판을 보았다. ‘평양-****’라고 씌여있다. ‘평양차가 이곳까지?’ 차를 그 앞으로 대더니 사람들이 내린다. 그건물 초상화맹이로 차려입은 여성들 세 사람이 내린다. 그리고 평상복차림의 여성 둘, 젊은 남성 한 사람... ‘혹시 평양교예단?’ 사진을 찍고 싶다. 근디 참았다. 그 젊은이한테 물었다. “혹시 평양교예단 단원들이싱게라?”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닙네다.” 답은 금방 나왔다. 봉고차에서 짐을 내리는디 봉게 다 먹거리였다.
인민복을 입은 중년의 사나이는 밖에서 꼬치구이를 굽는다, 조개를 굽는다하여 부산하다. 승태 성과 나는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막걸리 두 잔을 시켰다. 차림표를 보고 더덕구이를 시켰다.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온다. 바로 옆 자리에는 병섭이 성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평양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맞은 편에는 검은안경을 낀 사람이 맥주를 마시는지 어쩌는지 줄곧 계산대 쪽을 바라보고 있다. ‘히야~, 참말로 이쁘다.’ 승태 성이 나직이 중얼거린다. “선녀가 따로 없다.” 우리는 조개 한 접시를 더 시켜서 막걸리를 두 잔씩 더 마시고(막걸리 한 모금 마시고 접대원 큰애기들 한 번 쳐다 보고를 여러 번 허다가...^^) 밖으로 나왔다.
객석 오른쪽 앞, 마열 24번에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박선생님이랑 송선생님이 옆자리에 앉는다. 김미현 선생님은 뒤쪽 입석표를 받아서 우리 곁에 없다. 우리 차 안내원인 백조장이 말한 대로 입석이 나을 뻔했다. 공중곡예를 볼 때는 고개가 솔찬히 아플 것 같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배경음악과 함께 공연자들이 등장헌다. 각각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 나온 평양모란봉교예단 단원들이 족히 50여명은 될 듯허다. ‘뭣을 월매나 헐라간디 배우들이 조로코롬 많으꼬?’
공연자들을 대신해서, 부시도록 노란 한복을 입은 사회자가 인사를 한다.“동포 요로분~, 반갑습네다~! 우리 평양모란봉교예단은 문화성 산하의 예술단체로소 북측의 대표적인 교예단입네다. 그 동안 모나코국제교예축전 등에소 대상과 금상을 수십차례 닙상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으며, 매년 수십 차례 이상의 순회공연도 실시하고 있습네다. 오늘 요로 분들을 맞이해서 동포애의 심정으로 최선의 기량을 선보이갓습네다. 우리 단원들이 기량을 펼쳐보일 때마다 격려의 박수 힘차게 보내주시면 고맙갔습네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배우들이 퇴장하자 곧이어 자전거묘기가 시작된다. 여성, 남성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오더니 갖가지 묘기를 부린다. 자전거를 타다말고 갑자기 모로 기울이더니 자빠라질락말락헌 상태로 멈춰있기, 360도 회전하기, 두발자전거로 줄넘기, 외발자전거로 줄넘기, 장대같이 높은 외발자전거 위에서 줄을 돌리고 그 안에서 겹치기로 줄을 돌리고 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단 말이 실감났다.
그 뒤로,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널뛰기, 기막히다 장대재주, 허허참 곤봉 묘기... 그나저나 가슴 조마조마하게 한 것은 어린 시절 동춘서커스단에서 보았던, 입에 짧은칼 물고 그 칼 끝에 긴칼 끝을 잇대놓고, 그 긴칼 손잡이에 쟁반, 쟁반 위에 물잔을 올려놓고 부리던 묘기허고 같은 종류이기는 헌디, 그것은 째비도 안 되었다. 동춘서커스단에서는 기껏 그 상태에서 사다리 오르내리기가 전부였는디...
왼통 하이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칼을 입에 물고 소도구들을 머리 우로 떠받쳐든 채 허공에서 내려온 그네에 앉는다. 그 그네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돔시로 점점 올라간다. 원이 커지고 속도가 붙는다. 머리를 위로 쳐든 상태에서 여전히 칼을 입에 문 채...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해서 죽겄는디, 그 허공에서 갖가지 묘기를 부린다. ‘절묘’란 이를 두고 생겨난 말일까? 말간 진액이 나도 몰르게 내 볼딱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밖에도, 커다란 동글테에서 펼쳐보인, 아름다운 두 남녀의 몸짓(정전땜시 공연이 솔찬히 늦어져 현대아산 책임자가 두 번이나 올라와 사과를 했제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음^^), 신통방통 공받기, 소학교 차림을 한 청년들의 힘찬 봉재주들이 이어졌는디 모다들 탄성을 연발하게 했다.
드디어 마지막 공중곡예만 남았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 무대 설치를 헌다. 허공에 그네들을 설치하고 무대 위로 그물을 설치한다. 시간이 걸링랑갑다. 아까 신통방통하게 공을 주고 받던 사람 둘이서 나와각꼬 마임을 헌다.
키가 작고 야윈 사람은 원통을 들고 나오고, 건장한 다른 한 사람은 무거워 보이는 쇠뭉치를 들고 힘자랑을 험시로 무대로 나온다. 야윈 사람이 자기도 그 쇠뭉치를 들어보겠노라고 허나 낑낑대기만 헐 뿐...그러다 객석에 있는 한 남자 선생님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그 분을 반듯이 누워 있게 하고는 배 위에 원통을 갖다 댄다. 원통은 야윈 사람이 붙들고 있고 쇠뭉치는 건장한 사람이 들고 있다. 건장헌 사람이 쇠뭉치를 원통 안에 밀어넣어 누워 있는 사람의 배 우에 쇠뭉치를 떨어뜨릴락 헌디 발로 살짝 건드려서 피하게 한다.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는다. 몇 번을 그러다가 갑자기 야윈 사람이 쇠뭉치를 뺏어서 관중석으로 휙 집어 던져버린다. 객석이 왼통 웃음바다다.
곡예사들이 줄을 타고 올라간다. 무대 왼쪽 높은 곳으로 세 사람, 왼쪽 높은 곳에 네 사람, 가운데 그네에 한 사람이 자리를 잡는다. 흐르던 음악이 멈추고 드럼소리만 낮게 깔리더니 이내 그것도 멈춘다. 가운데에서 다리 구실을 하는 사람이 짧게 기합소리를 지르고 상체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팔을 벌리자 오른 쪽 위에 있던 여성곡예사가 두어 번 구르더니 몸을 옆으로 날린다. 옆돌리기를 하더니 가운데 사람 손을 잡고 건너 편으로 날아가 무사히 안착한다. 이어지는 공중 2회전, 남성곡예사의 공중 3회전...이어지는 탄성, 휘파람소리...
마지막 공중 4회전! 드럼소리도 숨을 멈췄다. 짧은 기합소리가 오간다. 다리 구실하는 사람이 몸을 떨군다. 맞은편 위에 있는 여성곡예사가 힘차게 허공으로 솟구친다. 몸이 팽그르르르 돈다. 손을 뻗친다. 두 사람 손이 닿았다. ‘웜매 어찌야쓰까’, 손을 서로 잡지 못허고 그냥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도 관중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대로 끝나는가 했는디, 다시 줄을 타고 올라간다. 우리는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시 또 드럼이 숨을 죽이다 딱 멈춘다. 기합소리 짧게 오가더니 가냘픈 몸이 허공을 가른다. 피빙핑핑 돔시로 내려온다. 서로 손을 뻗친다. 이 번에는 손을 잡았다. ‘아!’ 아차차차... 근디 이 번에도 손을 놓치고 만다. 그런디도 박수소리는 파도맹이로 문화회관에 출렁거렸고, 곡예사들이 다 내려올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모든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나온다. 인사를 한다. 우리는 일어섰다. 손바닥이 불나게들 쳐댄다. 객석에서 사진기들이 일제히 감았던 눈망울을 터뜨린다. 영락없는 불꽃놀이다.
금강산문화회관을 나선다. 다시 또 만나자는 사회자의 말허고 ‘다시 또 만납시다.’라는 노래가 겹쳐 귀에 쟁쟁허다. 5시 반이 좀 넘었다. 고성항횟집 예약 시간이 8시라 우리 네 사람은 바로 온천탕으로 향했다. 7시 반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온천탕 안은 한산했다. ‘아, 맞어,. 다른 사람들은 시방 거자 밥 묵겄구나...’ 샤워를 허고 온천에 몸을 담근다. ‘어, 시원허다. 좋다좋다.’ 한참이나 있다가 노천탕으로 간다. 거기에도 몇 사람 없다. 냉탕에 갔다. 어허 차다. 손에 물을 묻히고, 폴뚝에 찬물을 찌클고, 정갱이에, 허벅지에, 거시기에, 배에 가슴에, 머리에...그러다가 퐁당. 어허 씨언허다.
온천탕 안에 들어와 시계를 본다. 기껏 30분배끼 안 지났다. ‘아이고메,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아부렀네, 잉?’ ‘어치고 시간을 삐대꼬? 그래, 거시기에나 들어가각꼬 머시기나 허자.'
증기사우나실 문을 열었다. ‘쉬이쉬이’허는 소리가 연신 흘러나오고 사우나실 위로는 증기가 가득 뒤엉켜 있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 되었다싶어 언능 들어갔다. 온도가 꽤 높다. 코가 쬐께 거시기허다. 의자에 행감을 치고 앉었다. 눈을 감는다. ‘사철가가 3~4분은 되고, 흥보가 앞대목은 8분, 춘향가 배운 데까장 허믄 30분이 넘고...그라믄 대충 가겄구나. 뭣부터 허까? 그려 걍 거시기부터 허자.’
“적성~~의~ 아~침~날의~~ 늦인 안~개~ 끼어~~으으~있고 녹수우~으~~~저문~~봄~은
화~~류 동~~~풍~ 둘~렀~난디.....”
나직나직이 부르고 있는디 문을 여는 기척이 난다. 노래를 멈췄다. 나보다 나이 더 먹은 듯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저 만치 자리를 잡는다. 이내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이산 저산 꽃이 피니...” 어쩌고저쩌고 힘시로 사철가를 흥얼거린다.‘허, 이 양반 보시게. 소리 듣고 여그 들어오셨능갑네?’ 한참 들어주다가 멎쩍기도 해서 그냥 나왔다. 노천탕으로 갔다. 아는 얼굴이 있다. 이봉환 선생이,“ 고선생님허고 저하고는 시간대가 비슷헝가비요?” “그러요, 이?”
7시 20분에 나왔다. 김홍전 선생이 나와 있다. 이미 솔찬히 들어갔다. 벌써 쎗뿌닥 꼬부라진 소리를 헌다. “형님, 오늘은 나허고 금강산 호텔에 갑시다. 술 한 잔 해야 안 쓰겄씀미까?” “우리 8시에 약속을 잡아놔부렀는디?” “아따, 그래도 한 잔 허장께~!”옥신각신허고 있는디 우리 핵교 선상님들이 나온다. “와따메 금강산 선녀가 따로 없소, 잉? 워메 걍 뽀송뽀송허니 이삐네, 모다?”
온정각에서 김홍전 선생을 포도시 따돌리고 우리는 8시가 조금 넘어서 고성항횟집에 도착했다. 여그저그 아는 얼굴들이 많다. “재성아!” 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봉게 창평고등학교 조인 선배님이 볼그작작헌 얼굴로 나를 보고 손짓을 허신다. 눈인사를 허고 우리 자리에 가 앉었다. 접대원이 나온다. 술은 뭘로 헐라냐고 묻는다. 평양소주 있냐고 물었다. 북측소주는 령통소주 밖에 없단다. 글믄 남측소주 도라고 했다. 금강산들쭉술도 있도 개성인삼주도 있는데 하면서 뾰루뚱해 한다. 겁나게 귀엽다.
우리 넷은 잔에 막걸리를 채우고 건배를 했다. 접대원이 막걸리를 사다먹은 것에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접대원들이 입은 옷이 두 가지인디, 짙은 감색(하늘색) 줄무늬옷을 입은 사람들은 조선동포들이고 자기맹이로 붉은 두피스를 입은 사람들이 북측 사람들이란다. 글고 자기 집은 온정리란다. 인사로 술 한 잔 허랑게 술은 못헌단다. 안주를 싸서 묵어라고 손에다 건넬락헝게, “일 없습네다.”한다. 처음에는 서운했는디, 알고 봉게 우리말로 “괜찮습니다.”란 뜻이란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예의 그 대답이다. 근무중이라 안 된단다. 이따가 근무가 끝나믄 가능허단다.
막걸리도 동이 나고 소주도 다 마셨다. 일어설라고 헌디 승태성이 이기남 선생님허고 항꾸네 왔다. 해삼, 멍게 한 접시 더 시켰다. 쐬주잔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잣커니했다. 벌써 10시 반이 넘고 11시가 다 되어 간다. 옥태성이 저 짝에서 왁자지껄허니 패를 잡고 있다. 문형채 성님은 북측 접대원 손을 잡고 뭐라고 해싼다. ‘아참, 이 사람들도 언능 치워야 11시에 퇴근허제?’ 아쉽제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히야, 야경 참 쥑인다.’
여선생님들은 먼저 들어간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고, 승태 성허고 이기남 선상님허고 나허고 엊저녁에 가본 데에 갔다. ‘아하, 여그도 영업이 11시까징갑다.’ 이천천 씨가 청소하고 있다. 눈인사만 허고 객실로 올라간다. 그 때 옥태 성네들이 노래방에 들어간다. 항꾸네 가자신다. 술 취한 고재술이 무대 우게 올라간다. 왼갖 똥폼 다 잡고 이수영의 ‘얼마나 좋을까’를 불렀다. 배용호 동지가 세종대왕 님 한 분을 내 꼴마리에 꽂아준다. 그러고는 기억이 없다.
눈을 떴다. 7시다. 내 젙에 승태 성이 누워 있다. ‘아, 이런! 또 외박을.....’
끝날 오전 여정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만물상 산행이고 또다른 하나는 해금강, 삼일포다. 나는 만물상에 가보고 싶었다. 근디 해금강에도, 삼일포에도 가보고잪다. 강원도 관찰사 제수를 받자마자 금강산 귀경 나섰다가 술에 취해 명사십리에서 나귀를 비껴타고, 삼일포를 찼았다던 조선 선조 때 정치인 정철. 그가 그랬을 만큼 삼일포가 참말로 아름다우까? 허는 호기심도 있었고, 북측 주민들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허는 기대감도 있어서였다.
결국 송선생님만 만물상으로 향하고 우리 세 사람은 해금강, 삼일포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온정각에서 출발한 차는 얼마지 않아 풀빛 철망(관광객들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 양 쪽에 길을 따라 길게 쳐놓은 철망)이 없는 일반 도로에 들어섰다. 이내 자그마한 내를 건너 오른쪽으로 길이 휜다. 왼쪽에 북측 주민들의 동네가 바로 코앞에 있다. 조금 더 가자 왼녁으로 학교가 보인다. 백조장의 말마따나 주민들이 건물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어있다. 관광객들이 지날 때에는 으레 그런단다. 통행에 방해를 안 줄라고... 조금 더 가자 확 눈에 띄이는 팻말이 있다. 중학교하고 자그마한 내하고 경계에 뚝방이 있는디 그 뚝방에 팻말 네 개가 박혀 있다. 그 입간판에는 붉은 글씨로, “조.국.통.일”이 새겨져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라고 한다.
차는 남으로남으로 달린다. 검문소가 있는디 그곳을 통과해야 한단다. 근디 그 검문소 앞에는 우리 남측의 군대 검문소 앞에 있는 ‘정지’에 해당하는 글씨가 있단다. 백조장이, “그게 뭘까요?”라고 묻는다. 한 글자란다. 어떤 분이 ‘서’라고 대답한다. 아니란다. 답은 ‘섯’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동그란 푯말뚝에 ‘섯!’이라고 씌여있다.(안 가보신 분들 가셔각꼬 꼭 확인해보시길...^^)
차는 드디어 해금강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있다. 섬이 거의 없는 동해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물은 보니 청명지수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섬은 선경이라, 송강 정철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흠뻑 취할 만했다.
삼일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앞서 간 사람들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 가다 보니 오른쪽 숲속에 거북이도 같도 비암도 같은 것이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근디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 검은 이끼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남북 통일이 안 되야서 짜도 저리 울고 있능갑다고 젙에 걸어가는 사람들한테 야그했더니 피식 웃는다.
저 앞에 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관이라고 했는디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사람들이 그 건물에 몰려 있다. 그 앞에서는 야외 포장마차가 자리잡고 있다. 그 건물 층층대에 올라간다. 안에는 밖과 마찬가지로 먹거리를 사고 판다. 호수에는 얼음이 얼어있다. 저 멀리 정자도 보이고 자그마한 바위섬들도 보인다. 경치가 쥑인다. 김미현 선생님허고 나허고 사진 여러 장을 찍었다. 인자 고만 가자는 안내조장의 말에 발길을 돌리기는 해야쓴디, 어치고 참새가 방앳실을 그냥 지나치리요? 오징어꼬치에 막걸리를 사서 봉완이 성님허고 우리 식구들허고 나눠 묵고서사 발길을 옮겼다.
충성대에 올라섰다. 저 멀리 연화대가 보이고 김정숙 여사에 대한 글발이 보인다. 안내원이 설명을 헌다. “선생님들 반갑습네다~! 여기는 삼일포라 하는 곳인데~ 옛날 어느 왕이 하루만 묵으려고 왔다가 고조 경치가 하도 좋아서스리 삼일간 묵어 갔다 기래서 삼일포라 한답네다.....”
네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사선대, 그 앞에 있는 조그마한 바위섬이 단서암, 좀더 뒤로 있는 평평한 바위가 신선들이 춤추고 놀았다는 선무암... 과연 왕이 삼일 동안 놀다 갈 만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해금강에서 보았던 여성안내원이 손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란 시조의 작가로 알려진 봉래 양사언 선생의 한시를 번역해서 들려주었다. 낭송이 끝나자 이내 박수를 쳤고 노래도 한 자리 불러 도라고 졸랐다. 안 부르믄 여그 앉어서 꼼짝도 안 해분다고 헝게 여그저그서 맞장구를 친다. 박수를 친다. “선생님들 청도 있고 해서, 그럼 한 곡 부르갔습네다.”
무슨 노랜지는 모르겄다. 예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정성을 다해 부른다. 생긴 것은 우리네 큰 누님맹이로 생겼어도 목소리는 은쟁반의 옥구슬이다. 우리는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고 했다. 내심 나도 한 자리 허고잪았는디, 시켜준 사람이 없어서 못했다. 김원중의 ‘직녀에게나’ 춘향가 중의 ‘사랑가’ 한 대목을 허고 잪았는디.....
발길을 돌리기 전, 삼일포 전경을 한 번 더 쭈욱 살펴보았다. ‘내 여름에 다시 오리라. 내 꼭 다시 와서 배를 타고 사선대에 가서 신선들허고 한번 놀아보리라.’
차량 행렬은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오던 길을 더듬는다. 검문소를 지나 대나무숲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이나 빠져나오자, 오른쪽 둔덕에 아까 보았던 “조.국.통.일” 팻말이 눈에 띈다. 우리 차가 점점 다가간다. 근디 내 눈 앞에 아까 올 때 본 것허고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조.국.통.일”이란 팻말 너머로 붉은 운동복을 입은 꼬맹이들이 이리저리 몰려댕긴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아그덜아!”허고 소리침시로 손을 흔든다.
어린시절, 고향집 탱자나무 울타리에 참새떼 푸르르푸르르 거림서 여그저그로 날아댕기듯 그 귀여운 꼬맹이들은 드넓은 마당에 깔깔댐시로 이리저리 몰려댕기고 있었다. <끝>
^*^배암다리 : 모든 분들이 금강산통일체험연수에 다녀올 수 있으믄 씨겄구만이라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