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하루 전 지도를 펴놓고 자신들이 갈 곳을 미리 점검해보는 아이들 (꼭 연출같다 그치?)
첫째 날
12:20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으로 갈아탄 후 만종 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탑니다.
여행지로 가는 차안에서 할 수 있는 좋은 놀이를 하나 소개해드리죠. 아빠와 엄마가 아이들에게 일종의 여행지 난센스 퀴즈를 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우리가 지금 가는 동굴은?
1번) 원빈 동굴 2번) 북한 제 2 땅굴 3번) 두더지 동굴 4번) 고수동굴
내일 우리가 가게 될 청량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1번) 충청도 2번) 경상도 3번) 강원도 4번) 경기도
아이들은 서로 경쟁이 붙어 적극적으로 퀴즈를 풀려고 하고 퀴즈를 푸는 사이에 앞으로의 여행을 미리 예습하게 됩니다. 어딘가를 미리 감이라도 잡고 있는 상태에서 현장을 확인하는 여행과 부모가 이끄는 대로 수동적인 참여를 하는 여행은 당연히 만족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차에서 신나게 놀아줘야 휴게실 음식도 꿀 맛입니다.
산맥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북단양 요금소까지 가서 고수동굴을 찾아갑니다. 단양 8경으로 유명한 단양에는 고수동굴 외에도 온달동굴, 노동동굴, 천동동굴 등이 있는데 비록 그 구조는 다르다고 해도 전문 고고학 여행이 아닌바 에야 이 모든 곳을 다 갈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해서 아무래도 우리 귀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고수동굴을 목적지로 잡았습니다. 동굴 가는 길에 도담삼봉이 있는데 동굴이 오후 5시까지 입장이어서 먼저 동굴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16:00
고수동굴에 도착했습니다.
동굴을 처음 온 아이들은 이미 여행 전 부터 동굴을 간다는 것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굴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어떤 유희적 판타지가 아이들의 마음속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부터 15만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말이 15만년이지요. 75세를 사람의 평균 연령으로 잡았을 때 무려 2천 번이나 삶과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 억겁의 시간 동안 이 동굴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1,700여 미터에 이르는 동굴 안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15만년 동안 매일 먼지만큼씩 자라난 종유석과 석순들이 오늘 이 곳을 찾은 후손들을 위해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은 독수리처럼, 어느 것은 마리아 상처럼, 또 어는 것은 사자처럼 기기묘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태초의 신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듯 우리 가족은 손을 더듬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갑니다. 아빠의 허리에 큰 아이가, 큰 아이의 어깨에 작은 아이가, 작은 아이의 어깨를 엄마가 이어 잡고 칙칙 폭폭 기차놀이를 합니다. 아빠가 "오우!" 라고 감탄사를 터뜨린 후 걸음을 멈추면 마치 메아리처럼 뒤에서 "와아" " 히햐" " 멋지다"의 비명이 동굴에 울려 퍼집니다.
고수동굴은 수평, 수직 동굴이라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해야 합니다. 사계절 섭씨 15℃를 유지하고 있는 동굴답게 겨울이지만 실내는 후덥지근합니다. 우리가 처음 예상했던 대로 겨울의 동굴은 사람이 많지 않아 훨씬 여유 있는 관람이 가능합니다. 통로가 좁은데 사람들이 많다면 등 떠밀리 듯 출구로 밀려갈 것이 뻔 한 이치인데 그렇지 않으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관람이 길어지자 참을성 부족한 막내는 무섭고 덥다며 칭얼거립니다. 너무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여행이라면 이 부분을 참조하셔야 겠습니다. 미리 랜턴을 준비해갔다면 한결 나을 뻔 했습니다. 그리고 동굴 입구에서 목장갑을 사야 한다고 행상인들이 말씀하시지만 경험상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니 무시해도 좋을 듯 합니다.
사진 촬영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삼각대를 미리 준비하셔야 합니다. 플래시를 터트리면 동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런 장비가 부담된다면 동굴 안에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으니 거기서 가족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잰걸음으로 돌았는데도 약 40분 정도가 소요되더군요.
17:00
도담상봉은 동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단양 8경중의 으뜸이라는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 삼봉 (三峰) 정도전의 어린 시절 일화가 전해오는 곳입니다.
이 아름다운 바위를 두고 정선과 단양이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정선에서는 이 바위가 정선에서 떠내려 왔으니 단양 주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한 모양입니다. 참 애교스러운 정선 어르신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소년 정도전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그럴 거면 도로 가지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이 일화의 전부입니다. 참 싱겁기 짝이 없는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물에 떠 있는 큰 돌맹이 3개, 이것이 도담삼봉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돌맹이가 자기네 것이라며 돈을 내라 마라 했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주차비라는 명목으로 2천 원의 세금을 징수하고 있구먼요. 이래저래 돈벌이가 되는 돌덩어리 인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도담삼봉
도담삼봉은 정자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더 운치가 있습니다. 남한강을 끼고 펼쳐지는 한적한 마을 - 선녀가 그 풍경에 감동 받아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이 참 그림 같습니다. 산쪽을 향해 약 300미터를 천천히 올라가면 선녀가 지나다녔다는 무지개 돌기둥이자, 역시 단양팔경중 하나인 석문이 보입니다. 도담삼봉과 석문은 종합 선물 세트이므로 한꺼번에 다 보시고 오기 바랍니다.
석문 안으로 보이는 마을
20:00
저녁은 봉성 숯불갈비를 먹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다음날 봉화의 청량산을 갈 것이었으므로 이날
그쪽으로 넘어가 저녁을 봉성에서 하는 것이 좋을 듯 했습니다.
단양에서 풍기를 거쳐 봉성으로 가는 길은 밤에 가기에는 좀 험한 길입니다. 5번과 36번 국도를 타게 되는데 굽이굽이 산길에다 초행길이라 차라리 고속도로를 탈 걸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밤이라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 IC에서 빠질 것을 권합니다.
봉성에는 돼지 숯불구이가 유명합니다. 약 8개의 구이집이 집성촌을 이루고 영업을 하는데 소나무 숯을 사용해서 고기가 아주 구수하고 고기를 따로 농장에서 기르는 탓에 육질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자리에서 구워먹는 것이 아니라 미리 다 구워서 내오기 때문에 식으면서 맛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돼지 숯불구이가 200g에 5천 원이고 돼지 양념구이가 200g에 6천 원인데 아이들은 양념을 더 좋아합니다. 달짝지근한 맛이 양념치킨을 먹는 듯 하거든요. 여하튼 이 근처까지 오셨다면 기념으로 드셔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숯불구이 양념구이
상호: 봉성 숯불식당
전화: 054-672-9130
영업: 10시30분에서 21시까지 |
22:00
청량산 근처의 민박집을 갈비집 주인에게 물었더니 한 군데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맛집이든 숙소든 현지인들이 가장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슈퍼나 식당주인 등은 지역 정보통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찾아간 곳은 청량산 관리 사무소를 지척에 둔 청량산 온천 민박이었는데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고 시설도 깨끗해서 맘에 들었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민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칙칙함은 전혀 찾을 길이 없었고 침구나 샤워시설 등이 아주 청결해서 좋았습니다. 가족실의 경우 하룻밤 5만원이라는데 기분 좋게 1만원을 깎아주시더군요. 보통 방이 남으면 숙박지의 경우는 이런 즉석 흥정이 가능합니다.
깊은 밤, 공기는 너무나 맑고 하늘에 별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촘촘히 빛납니다. 이런 맛에 여행을 하는가 봅니다.
깨끗한 방안 민박 외관
상호: 청량산 온천민박
전화: 054-673-2694
홈페이지: http://www.bonghwatour.com |
둘째날
08:00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몸을 지졌더니 몸이 아주 상쾌합니다.
이른 아침 청량산을 오릅니다.
봉화의 명산이자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특히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산이 바로 청량산입니다. 아이들만 없다면 입석에서 시작해 자소봉까지 등반을 하고 싶었지만 가족 여행에서 이것은 무리일 듯 하여 왕복 1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코스인 모정에서 청량사까지의 코스를 가기로 했습니다.
겨울 이른 아침의 청량산은 초입부터 웅장한 얼음폭포가 마음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그 옆의 고드름 잔뜩 달린 얼음 다리도 마치 조각품 같습니다. 겨울 여행의 묘미는 역시 겨울스러움을 만나는 것일테죠.
청량사까지 오르는 길은 마치 팽이처럼 팽그르르 하게 오르막길이 나있습니다. 비록 흙길이 아닌 포장길이어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청량사로 가는 산길은 충분히 오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볼이 발그스름해진 채 더운 김을 호호 내쉬면서 길가에 나무 하나를 주워 지팡이를 삼는 아이의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는 본전인 유리보전을 필두로 선불장, 범종루, 오층석탑 등이 아주 단아하게 놓여 있습니다. 청량산의 12봉을 병풍삼아 아래로 낙동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 청량사는 부처님과 신선이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갈하고 반듯하며 돌맹이 하나, 풍경 하나, 공중전화 부스까지 운치가 살아 있습니다.
신도들의 소음도 높지 않고 속세의 때들이 이 절에 들어오는 순간 자연정화를 하는 듯 깨끗하고 순결한 그 무엇이 청량사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오래전 화백으로 태어났다면 이곳을 배경화로 꼭 풍속화를 그리려 했을 것 입니다.
청량사에는 아주 예쁜 찻집이 있습니다. 안심당이라고 이름지언 진 곳, 그러나 간판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아름다운 싯구로 장식되어있습니다. 산사음악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실내는 한쪽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 그리고 작은 액자와 닥종이 인형 소품들이 너무 멋지게 놓여 있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어버린 몸을 온기로 녹이면서 차를 마십니다. 작설차, 유자차, 갈바람차, 대추차가 있고 마치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듯 어린왕자차라는 예쁜 이름의 차도 있습니다.
아침 식사 전이라 고구마나 감자가 있었다면 불에 구워먹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가지고 온 과자로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음식물 반입이 안 되지만 이른 산행이라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요기를 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차를 마시며 외웠던 어느 청량산 사람이 지은 시를 부분 부분 떠올려봅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 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11:00
청량산이 좋았던 것 중 또 다른 이유는 청량산 입구에 '청량산 박물관'이 아주 잘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료 관람이어서 더 기특하죠.
1층은 봉화의 역사, 민속, 축제, 관광지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홍보관이고 2층은 영상실, 자연실, 역사실로 구성된 전시실입니다. 3층은 전망대가 있고요. 무료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관리도 잘 되고 깨끗해서 꼭 한번 들러보실 것을 권합니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청량산 여행의 마무리 혹은 시작지로 박물관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 일 듯합니다.
체험하는 또박이 뭔가를 메모하는 뚜순이
관람시간: 동절기(11월-2월): 9시-5시
하절기(3월- 10월): 9시 - 6시 (월요일 휴관)
전화번호: 054-679-6322
홈페이지: bonghwa.go.kr/cheongryang |
12:00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낙동강 변으로 달리는 길이 아주 근사한데다 이 길만 타고 가면 몇 개의 멋진 관광지를 계단 밟듯 만날 수 있습니다.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이육사 문학관입니다. 사실 이곳은 뜻밖이었습니다.
청량산에서 약 15킬로를 안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은혜라는 곳에 이육사 문학관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평소에 육사의 웅혼하고 남성적인 시세계를 좋아했던 탓에 급하게 방향을 바꿔서 육사를 만나러 간 것입니다.
은혜에서 안쪽으로 약 4킬로 정도를 들어가니 문학관이 나오더군요. 중간에 퇴계종택과 퇴계묘소를 지나게 되는데 영락하고 고루한 유교적 흔적을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육사에 이미 너무 많은 마음을 뺏긴 후였습니다. 7월이면 청포도가 전설처럼 익어간다는 육사의 고향 원천리에 그의 문학관이 있었습니다.
역시 2004년에 지어진 탓에 관리가 아주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문학관에는 선생의 흉상과 육필 원고, 독립운동 자료와 시집,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층에는 영상실과 세미나실 등이 있더군요.
그러나 이 곳 까지 사람들이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인가 봅니다. 사람들이 전무했고 그 때문에 문학관은 마치 독립 운동을 하는 선생의 고독처럼 냉기마저 흘렀습니다. 입장료가 2천 원입니다. 작년에 방문한 고창의 서정주 문학관이 오버랩 되더군요. 그곳은 무료였지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름 석 자를 세상과 타협한 이는 후세들에게 입장료 한 푼을 받지 않고도 그 이름을 기억나게 할 재주도 있었나 봅니다.
육사의 시를 판본 하는 아이들
천천히 육사 묘소도 보고 생가까지 가고 싶었는데 예정외의 장소였고 점심시간이 벌써 지나고 있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동절기 5시) 까지
전화번호: 054-851-6593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홈페이지: www.264.or.kr |
그 다음 만나는 곳은 천 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 선생의 도산 서원입니다만 그 곳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 대신 서원을 지나자마자 낙동강 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장관을 절벽에서 볼 수 있는 길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4:00
바로 찾아간 곳은 산림과학박물관입니다. 마땅히 점심 먹을 곳이 없어 박물관 옆 포장마차에서 빙어튀김과 칼국수를 먹었는데 환상적으로 맛이 없더군요. 음식 만드는 성의라도 없었다면 차라리 위안(?)이라도 될 텐데 갖은 정성을 다 해서 해온 음식이 죽을 맛이 나니 참으로 난감하더구먼요.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배가 고프면 맛집 탐색에서 실패할 확률이 90프로입니다.
깜찍 말고 끔찍.
산림과학박물관도 절대 실망을 주지 않을 장소입니다. 이름이 워낙 재미없어 보여서 기대를 크게 안했는데 막상 내부를 관람해보니 서울의 잘 지어진 박물관 보다 월등하게 우수했습니다.
산림의 역사와 자원, 경북의 산림, 나무의 마당, 생명과 문화의 숲이라는 테마로 구성된 4개의 전시실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압권은 "나라와 준의 초록별 모험"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는 4D 영상실 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6분의 시간을 아쉬워합니다. 영화 내용에 따라 의자 앞에서 물과 바람이 나오는 다이내믹함은 큐슈의 잘 지어진 하우스텐보스의 입체 영화관보다 더 우수했습니다.
또한 이 박물관은 체험 시설이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단지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닌 아이들이 뭔가를 눌러보고 들여다보며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있어 아이들이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겨울 여행에 있어 이런 즐거운 박물관 나들이는 역시 최고의 테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하회마을을 향합니다. 여기도 원래 예정이 없던 곳이었는데 한번 욕심을 내 봤습니다. 산림 박물관에서 30분 정도면 만날 수 있을 만큼 지척의 거리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유혹이었죠.
점심을 워낙 부실하게 먹어 하회마을 가는 길에 맛집을 하나 찾기로 했습니다. 주유를 하면서 물어보니 그 근처에서 가장 맛있다는 간고등어집을 가르쳐 주네요. 안동에 왔으니 찜닭이나 헛제사밥은 못 먹고 가도 고등어는 먹고 가야죠.
산림박물관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 쪽으로 가다보면 SK 주유소가 나오고 이 집은 바로 그 주유소 옆에 있습니다. 와룡기사식당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어서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비릿하고 고소한 고등어 냄새가 훅하고 밀려옵니다. 고등어조림은 팽이 버섯과 깻잎을 충분히 넣어서 비린내가 거의 없습니다. 고등어 특유의 짠 맛이 식욕을 돋구고 얼큰하고 쫄깃해서 어른 입맛에 그만입니다. 흐믈흐믈하게 푹 조려진 무도 아주 맛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릴에 구운 고등어를 잘 먹습니다. 고등어 백반을 시키면 이 음식이 나옵니다. 된장찌개가 같이 나오는데 된장 맛도 아주 좋습니다. 이 집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안전한 집'이 아닐까 합니다. 죽을 만큼 좋아는 아니지만 먹고 나서 후회하는 집은 절대 아니라는. 참고로 이 집을 나와서 안동 방향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경치가 거의 예술입니다. 백두산 천지가 이곳으로 떠내려 왔다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안동 하회마을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겨울 하회 마을은 적극 비추천입니다. 특히 뚜비뚜바 여행의 삼일 째 일정이 문경과 청풍 호수 주변의 관광단지 이므로 이곳에서 드라마 세트장을 포함 다양한 전통 문화 체험을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이벤트도 없는 겨울의 하회마을은 대규모 민속 쇼핑 단지라는 느낌 외에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기념품 집, 한옥으로 지어진 주점, 한옥으로 지어진 민박집만 요란하게 음악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곳을 굳이 2천 원의 입장료(어린이 700원)까지 내가면서 갈 필요가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여행 전문가라고 불리면서도 너무 많은 욕심을 냈다는 것을 후회했지만 그나마 낙동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1박 2일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를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셨겠지만 단양고수동굴, 청량산, 산림과학박물이 가장 무게감이 큰 관광지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연과 교육이 함께 어우러진 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아주 그만이었고요.
가만 보니 본 코너를 데이트 코스로 이용하는 독자 분들도 꽤 많이 계시는 것 같은데 뭐 그것도 좋습니다. 박물관은 빼고 동굴과 청량산 코스로만 돌아도 멋진 루트가 나올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그이와 동굴 여행이라..웬지 에로틱 해 버리지 않습니까?
조만간 문경과 청풍문화재 단지를 가지고 등장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뚜비뚜바 2탄을 마칩니다.
그때까지 행복한 가정 잘 만들고 잘 계시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