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큐브'는 모든 상황이 이미 시작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처한 궁지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 존재 또는 인간됨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라고 읽힌다. 물론 알다시피 큐브는 정육면체를 의미한다. 각 방에는 6개의 출입구가 있고 이는 다른 방으로 통한다. 함정이 있는 방에 잘못 들어가면 죽음을 당한다. 처참하게. 보이지 않는 줄날에 사람의 몸이 두부 조각처럼 토막나는 초기의 장면을 통해서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산에 의해 얼굴이 녹아버린 또 다른 희생자는 느슨한 위기감을 다시 한 번 재충전한다. 그런데 이제부터 위험은 장치적인 함정 다시 말하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의 갈등 속에서 욕망 속에서 나온다. 상당히 상징성이 있는 작품이다. 경관 출신인 인물이 그 갇힌 공간에서 물리적인 폭력과 번들거리는 생의 의지로 근거로 주도권을 획득해 나가는 것은 많은 담론과 현실적인 체험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과 유형 중의 하나다. 쓸모 없어 버려질 위기에 처해 있던 인물이 수학적인 암산에서 컴퓨터를 능가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그만이 그 닫힌 공간에서 탈출하여 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는 결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외부적인 조건과 거기에 반응하는 인간의 내적인 자세가 함께 어우러져 삶을 향한 태도와 결과를 빚어낸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줄거리는 많이들 보아서 알 것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상처를 늘 곱씹는 네 젊은 패거리의 주유소 습격. 여기서 또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실에서 영화의 설정으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너무 고지식한 또는 완고한 사실성을 요구하는 까다로움과 자기 검열을 살짝 비껴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풍자가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기성적 질서의 완고함에 어느 정도 적절한 똥침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우리의 정서적인 반응의 폭이 좀더 너그러울 수 있다면 긴장을 풀고 한 번 웃어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중심축을 올바로 간직할 때 많은 변주들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 한다. 마치 영화나 대중 매체의 전성기인듯. 이렇게 많은 영화 평론가들의 존재. 그들이 써내는 평글.
우선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만 무언가를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