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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면/원격 문제와 발달 >
대면/원격 문제는 교육적 발달에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 대면교육과 원격수업은 기본적으로 형태 자체에서 비롯되는 질적 차이를 지닌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대면교육에 비해 원격수업은 수행할 수 있는 교육 내용과 영역에서 한계를 지닌다. ‘지식교육은 가능하지만 실험, 실습이나 인성교육, 전인교육은 어렵다’는 일반적 평가는 주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둘째, 역동적 상호작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발달 원리의 차원에서는 이 부분이 더 본질적 문제이다. 영역의 제한성은 총체적 발달을 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며 직접적 상호작용 부재는 ‘교수-학습의 결합’을 통한 ‘근접발달영역 창출’이라는 역동적 발달과정이 기본적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직접적 대면과 상호작용을 통한 근접발달영역 창출, 교수-학습의 결합 비고츠키에 따르면 의미있는 교육실천은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한 근접발달영역 창출에 있다. 근접발달영역이란 아직 충분히 발달, 성숙하지 않아서 혼자서는 수행할 수 없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수행할 수 있는 발달영역을 말한다. 의미있는 교육실천은 근접발달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스스로 충분히 익힌 것을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도움을 통해서도 수행할 수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도달한 발달기능과 역량을 토대로 교사는 아동, 청소년과의 상호작용과 협력 속에서 도움을 주고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해 나간다.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발달상황에 대한 구체적 파악과 진단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적절한 도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달상황에 대한 지속적, 직접적 관찰이 필수적이다. 구체적 발달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며 직접적인 대면 관계와 상황을 요청한다. 이러한 교육적 상호작용은 교사의 일방적 관찰과 개입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아동, 청소년의 활동과 반응과 끊임없이 결합되는 것이다. 즉 교수와 학습이 하나의 과정으로 결합, 통일되는 것이며 이러한 역동적 결합 역시 직접적 대면 상황에서 가능하다.
-살아있는 관계 및 상호작용의 부재로서 원격학습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원격학습을 바라볼 때 우선, 실시간이 아닐 경우엔 일방적 정보 제공에 불과하며 상호작용이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소통, 관찰과 개입이 불가능하다. 교사는 학습자의 상태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학습자는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난관을 해결하기 어렵다. 이 경우엔 ‘교육’이라기보다는 고립적 ‘자기학습’에 가깝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혼자서 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실시간이라 하더라도 의미있는 상호작용은 매우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실시간 원격수업을 하더라도 교사가 줄 수 있는 정보, 작용은 여전히 제한된다. 생생한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 학습자에 대한 관찰과 이해, 정서의 교류 그리고 그에 기초한 구체적인 도움 주기를 수행하기 어렵다. 원격학습의 이러한 한계로 인해 진도를 따라가려는 학습자는 결국 ‘대면적 사교육’에 의존하기 쉽다. 실제 이번 원격수업은 사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더 가중시키고 있기도 하다.
교사와의 상호작용만이 아니라 동료 간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더욱 제한적이다. 동료와의 상호작용은 비단 그룹과제 수행이 아니어도 항상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서로 묻고, 답하며 정보와 정서 등을 교환한다. 동료 간 협력적 상호작용 역시 학교교육이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발달적 과정 및 조건이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원격 상황에서의 상호작용에는 근본적 제약이 존재한다. 첫째,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 내용의 범위 문제이다. 카메라와 마이크 등 센서에 표집되는 정보에 제한된다. 정서나 분위기 등은 거의 담기 어려우며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여전히 한정적이다. 대면 상황에서 교류될 수 있는 정보의 다양성, 총체성에 견주어 근본적 제약을 지니는 것이다. 둘째, 이미지, 가상/실체의 문제이다. 주고받는 정보, 내용은 디지털, 이미지화된 것으로 비실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서로의 관계도 이미지를 통해 맺어지고 교육 자료로 이용되는 도구, 사물을 직접적 매개로 사용할 수 없다. 이는 실체가 지닌 정보, 내용의 실재성, 구체성, 무한한 다양성이 발휘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셋째, 직접적 개입의 부재 문제이다. 활동과정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장애와 난관에 대한 그때그때의 적절한 도움주기가 매우 어렵다. 넷째, 상호작용의 방향성 문제이다. 교육적 상호작용은 ‘명시적 정보 교환’ 차원을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는 탐색적, 확산적 과정이다. 그런데 원격 상황에서는 가시적 정보조차 제약된다. 그래서 일부 재택근무처럼 명시적인 자료를 주고받고 의사결정을 하는 ‘닫힌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있을 수는 있어도 교수-학습과 같은 ‘열린 상호작용’을 하기에는 기본적 한계를 지닌다. 대면적 상황을 통한 역동적 상호작용의 부재는 현상적으로 지식 교육에서조차 원격학습이 ‘집중력이 감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결국 수업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설사 어떤 진전이 있더라도 그것은 자기학습의 결과이지 교육이나 학교 효과라고 할 수 없다. 자기학습을 통한 진전은 적극적 자발성과 제공되는 정보를 소화할 수 토대를 이미 지닌 일부에게만 가능한데 그조차 엄밀한 의미에서는 ‘발달의 진전’으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부분 기존의 사고 역량, 고등정신기능 수준에서 제공된 정보를 취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지 사고 역량의 새로운 발달로 나아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 역량의 발달을 위해서는 내적 개념체계, 생각 과정의 변화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더 높은 수준에 먼저 도달한 이(교사든, 동료든)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비자발적 학습자, 상황의 문제 원격학습의 가장 명백한 한계 중 하나는 ‘비자발적 학습자 및 상태’의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그나마 자발적 학습자 및 학습 상태를 전제로 다룬 것이다. 실제의 교육 장면에서 비자발적 학습자와 학습 상태(자발적 학습자도 때때로 수업 참여를 회피함)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다. 대면 상황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큰 어려움이고 교수-학습 과정에서 많은 노력과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원격수업에서는 원천적으로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으며 사실상 배제된다. 자발성이 있다 하더라도 제공되는 내용을 소화하기 어려운 학습자도 배제된다.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울 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후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식 교육과 발달의 문제 ‘원격학습이 지식 전수는 할 수 있지만.....’이라는 시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교과교육을 ‘지식 전수’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원격학습이 ‘지식 교육’에서조차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간과하려 한다는 것이다. 원격학습을 경험한 많은 아동, 청소년들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내용 소화를 위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것에서 보듯 원격학습은 ‘지식 전달’에서조차 효과적이지 않다. 그것은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모든 국면들-제공할 수 있는 내용과 활동의 제한, 학습자 상황 파악의 어려움, 상호작용의 부재, 적절한 도움의 어려움 등-에서 원격학습이 제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교과교육을 ‘지식 전수’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매우 협소한 비발달적 관점이다. 교과교육은 단지 지식 전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과 고유의 지식 체계를 매개로 고등정신기능 및 발달역량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교과교육을 통해 함양되는 고등정신기능 및 발달역량은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의식적 파악, 개념적 사고 등 모든 교과에 공통되는 것과 교과 특유의 것들이 있다. 예컨대 사회교과는 공간적 사고(지리), 시간적 사고(역사), 관계적 사고(일반사회)를 함양해 나간다. 이러한 역량과 기능은 제공되는 지식체계, 활동체계의 매개 없이는 안되지만 지식이 전달된다고 해서 저절로 형성, 발달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과 사고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 숙달과 창조적 적용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적절한 도움이 요청된다. 교과교육의 주된 목적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량과 기능의 형성, 발달에 있는 것이다. 수년전부터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온 ‘역량중심교육과정’ 논의는 불충분하고 왜곡되어 있지만 이러한 관점이 일정하게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교과교육은 지식 전달이 주요하기 때문에 원격학습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시각은 협소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비발달적, 비교육적 관점이다.
-학교 효과 발달은 오직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달해 나간다. 양육자와 주변 사람들이 발달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자연발생적 과정만으로 발달의 한계가 분명하다. 학교는 체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발달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교육 조직, 기관이다. 학교는 교육과정 및 교사를 통한 체계적 내용과 매개, 도움을 제공하고 교수-학습의 통일적 과정을 통해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면서 전면적, 총체적 발달을 추구해 나가는 곳이다. 또한 동료들과의 다양한 상호작용과 협력의 조건을 부여하는 곳이다. 그 점에서 변화 및 발달 일반과 ‘학교 효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학교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발달을 도모할 수 잇다는 것이고 둘째, 발달의 상향 평균화 효과이다. 비고츠키는 학교의 주요한 역할의 하나로 ‘발달의 평균화 효과’를 지적한 바 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발달을 이끌면서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장애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과 도움을 주는 곳이고, 발달이 늦은 아동일수록 창출 가능한 근접발달영역이 더 넓기 때문이다. 학교가 없을 때보다 학교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대는 더 높은 수준의 발달을 이룰 수 있고, 발달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학교 효과 실현 여부는 원격학습을 ‘공식적 학교교육과정 실현 수단’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격수업은 두 기준 모두에서 학교교육과정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격차를 크게 벌리며 전반적 발달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지식 전달에도 제한적이지만 사고 역량,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유의미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 |
3. 파행적 학교운영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2020년 1학기는 ‘온라인으로 진도를 나가고, 무늬만 등교인 오프라인에서 평가, 시험을 보는’ 파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2학기에도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2차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팬데믹 상황은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학교교육에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2학기 이후에도 ‘온라인 진도-등교 평가, 시험’이라는 파행을 반복할 것인가?
1) 원격 학습은 학교교육의 기본 수단이 될 수 없다.
원격학습은 ‘학교교육 효과’를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파행으로 인한 발달 결손 문제는 이후 지속적 문제가 될 것이다. 1학기에는 워낙 예상치 못한 초유의 사태로 준비된 대응도 어려웠고 다급하게 원격학습으로 땜빵을 했지만 그러한 방식을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관련 교육적 견지와 발달적 관점에서는 ‘원격학습’을 공식교육과정 집행의 기본 형태로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원격학습은 학교교육 효과가 매우 미약하며 발달 및 교육 성취에서 광범한 결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후 교육과정 진행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이전 시기 발달을 전제로 구성되는 것인데 광범한 발달 결손으로 발달 상황과 교육과정과의 괴리가 커지는 것이다. 이는 단지 교수-학습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모든 아동, 청소년이 ‘발달적 차원의 피해’를 장기적으로 입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셋째, 발달 격차도 극단적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보편적 평균화라는 중요한 학교효과를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발생한 격차는 이후 축소되기보다 갈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격차의 피해가 더욱 크다.
전반적으로 원격학습은 학교효과가 미약하여 학기 중 상황보다는 사교육과 개별학습에 의존하는 방학 중 상황에 더 가깝다. 교육 실제와 괴리된 채 ‘교육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온당하지 않다.
2) 온라인 개학 정책을 폐지하고 (온라인) 학습 지원 정책으로 변경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학교가 폐쇄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격 기술과 시스템은 교육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 효과와 격차 유발의 문제를 감안할 때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는 아동, 청소년의 자기 학습을 지원하는 것으로 활용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할 경우 원격 시스템은 교육적 이점으로 전화될 수 있다. 이후 교육과정 수행 및 발달의 토대가 확대되며 학교 효과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 격차는 확대될 수 있지만 개학 이후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느린 학습자에 집중될 수 있어 전체적으로 상향 발달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등교 수업은 최대한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실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반/수업시수 축소 등으로 학습 집단 규모, 집합 규모를 최소화하고 ‘핵심적 내용’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학교 폐쇄와 등교가 번갈아 진행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는 정해진 기간에 학기를 마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팬데믹 시기에는 학기 운영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억지로 정해진 기간에 형식적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려는 것은 파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팬데믹 시기의 교육 결손과 파행을 보완하는 방안의 하나로 그 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가을 학기제’ 도입을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3) 안전한 학교
팬데믹 시기 학교교육을 비상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일정하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가장 올바른 대응 방향은 안전한 학교 체제를 구축해 휴교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학교는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공간 중 하나이며 그 때문에 사회의 다른 분야가 정상화되는 상황에서도 폐쇄 상태를 지속하기 쉽다는 것이 보여졌다. 최소한 사회 전반이 정상화될 때 학교도 정상화되는 것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 더 강력한 대응력, 안전한 환경을 갖출 것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