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인연의 향기(香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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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꽃,CEO로 승진하다.
내가 갑자기 불황이다, 무한경쟁이다, 하면서 각 기업체의 능력위주의 혁신
인사 바람으로 S공사의 지방에 있는 재투자기관의 사장으로 승진발령된 것은
'94년도의 봄이 막 시작되려는 3월 초순이었다.
준 공무원 신분으로, 연공서열이 중시되어온 관료체제인 S공사로써는 보기드문
발탁인사였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몇몇 선배들을 제끼고 승진했으므로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최고 경영층의 나에 대한 기대를 생각할 때 승진의 기쁨과 우려로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냐 하면 내가 사장으로 부임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노조의 강성지대로 "울산"과
쌍벽을 이루는 "마창(마산,창원)"지역에 소재하는 강성노조가 진을 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정부가 민간 기업의 노조와 힘겨루기를 한창하던 중, 공공기관인 한전,한국
통신,서울지하철노조등
정부투자기관마저 파업결의를 하는 등 전국적으로 노조의
힘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당시 강경노조의 대명사격인 H 중공업은 "골리앗" 기중기위에 노조원들이 올라가
목숨을 담보로 세기적 투쟁을 벌리고 있었고, 마치 봄 소풍, 가을운동회 같이
기업들은 일년에 두 번씩 노조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해는 민주노총이 결성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의 보이지 않는 의무 중 하나는 내가 새로 맡은 회사의 강성(强性)노조를,
약성(弱性)내지 중성(中性)으로 완하시키는 것이었다.
경영은 뒷전이었다.업종이 독점기업이니 누가 사장이 되어도 경영실적은 올랐고,
그게 그것이었다. 노조의 진압 여부가 경영자의 능력기준이었다.
* 경전선(慶全線)열차는 달린다.
기차가 달리는지, 아님 차는 가만 있는데 밖의 나무, 논밭들이 뒤로 달려가는지,
나는 달리는 차창 너머를 쳐다보며 지난 날의 직장생활을 뒤돌아 보고 있었다. 숱한 사연들이 많았지, 참으로 열심히 일해온 세월들이었다. 야근, 야근(夜勤)의
연속이었다.
야근 근무를 하다가 사무실 응접셋 의자에서 잔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야간을 하다가 졸음에 비몽사몽하다가 화장실 세면대에다 소변을 본 적도 있었다. 나는 이 때에 무리한 야간근무때문에 시력을 잃어 안경를 쓰게 되기도 했다. 때로는 억지술도 웃으면서 마셨다. 이 모든 대가(代價)들이 지금의 "승진"이라는
보답으로 "사장"이 되어 새마을 열차를 타고 부임지로 달려가는 중인 것이다.
가끔 실수도 했지, 또 어려웠던 일을 성취했을 때 기쁨에 들떤 적도 많았지.... 지난 날의 조직생활을 회상하는 사이에 어느 덧 기차는 밀양을 지나,
교통의 요지라고 배운 "삼랑진"에서 경부선이 갈라져서,일반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경전선(慶全線)"을 타고 있었다.
호주의 유명한 "캔버라"시를 모델로 우리나라의 최초의 계획도시로 유명한,
부임지 "창원"역에 도착하니,
총무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는 없던 대우였다. 이제 지방이나 서울이나 차가 밀리는 현상은 똑 같았다. 교통사고가 났는지,
도대체 차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이 기차를 타면 시간적으로 취임식에 참석하는데 충분하다고 안내한 장본인인
총무부장은 차안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신임 사장 부임시에는 전례대로 총무부장이 서울까지 모시러 오겠다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고, 그래서 혼자 기차를 탔던 것이다.
* 시선이 머무는 곳
결국 예정시간에 반 시간이나 늦게 도착, 사장실에 들려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취임행사장인 5층 강당에 도착하였다.
나는 승진 발령을 받고 줄곧 준비해온 취임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 직접 문안을 작성했기 때문에 비교적 명쾌하게 인사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또 사내(社內)연수원 교수부장을 3년간 역임했기 때문에,
그때의 강의 경험으로 여러 사람앞에서의 스피치(Speech)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 탓에 말을 하면서도 좌중(座中)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어느 지점에 눈길이 가던 중, 순간, 놀라운 한 시선에 하던 말을 한순간
멈출 뻔 했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저 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빛나는 여자가 있을까? 이런 지방에도 참으로 빼어난 여직원도 있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찰라적인 것이었지만, 영롱한 눈빛으로
나의 시선을 받아 내고 있었다.
아니, 시선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인사말을 마치고 강당 입구에서 전 직원들과 악수로 스킨십(Skinship)인사를
끝내고, 안내를 받으며 2층,내가 근무할 사장실로 내려왔다.
* 가음정(賈吟晶)! 그녀를 만나다
"사장님, 처음 뵙겠습니다."가음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소스라쳐 놀랐다. 바로 그녀가 아닌가? 취임 인사 중 눈길이 마주쳤던.... 그녀가 나의 여비서라니.... "아, 그래요, 내가 더 부탁을 드려야지요?" 약간은 의식적으로, 공식적인 말투로 인사를 받으면서 그녀와 악수를 교환했다. "가음정(賈吟晶)!" 특이한 성(性)에 톡특한 이름의 그녀와의 인연은
사장과 여비서"라는,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가장 통속적인 관계로
시작되었다.
(제2회 인연의 향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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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소 님의 역동적인 고향 카페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항상 열심히 댓글을 달아 글쓴이를 격려해주는 모습이 좋군요.
내 상상이 맞다면, 그대는 종화 큰 형님의 막내 동생? 옛날엔 일가친척,한 집안 이었지요.
부족한 글, 관심과 격려 주심 감사드리며......
대상까지 차지한 고향선배님의 단편 소설에 가슴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끼는건 고향은 언제나 가슴설레게 하는 그리움의 뿌리가 있어서일까요.
이렇게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훌륭한 작품까지 그려내는 고향의 존경하는 초하풋보리선배님께서는 그 옛날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명석한 두뇌와
불타는 향학열로 자신을 갈고 닦아 목표를 성취한 훌륭한 고향선배님이라고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좋은 글까지 게재해주시니
선배님께 무어라 감사한 말씀을 올려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 항상 건강하시고 행운이 늘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구름나그네"란 필명이 낭만틱해서 정감을 주는군요.가끔 고향카페에서 만나는 님의 글들을 잘 읽고 있지요.
작품을 게재하면서 많이 망스렸는데, 님의 격려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네요.
같은 고향이라는 한뿌리에 달린 우리들,그러기에 어색하지 않고,공감하고,소통이 되는 것이지요.
새삼 칭찬의 글에 감사드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