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 틀어박혀 만 랩을 채워보겠다고 껨질만 한지 어연 이틀 째 되던 날 나는 점심에 그만 아부지에게 걸려 솥뚜껑같은 손바닥으로 등짝을 퍽퍽 두들겨 맞곤 방에서 쫓겨났다. 아부지는 '공부도 안하는 놈이 가게라도 봐야지' 하면서 나를 카운터에 앉히더니 자신은 주방으로 가며 지지고 복고에 열중 중이다.
[RRRR.......RRRRRRRR]
"네......준이치 중화요리입니다."
이 손바닥 보다도 작은 시골 동네에서 짱깨집을 하신지 어연 20년째인 우리 아부지는 가계를 계약 하던 날 예정일 보다 두 달이나 빨리나온 나의 탄생에 감동해 나가도 중화요리가 아닌 준.이.치.중.화.요.리 집으로 이름을 바꾸셨다. 덕분에 나 역시 20년째 짱깨집 아들 혹은 짱깨 준로 통하고 있으며 1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매일 매일 짜장면만 먹는다는 전설속의 인물이 되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준이치 중화반점입니다를 입밖에 꺼내고 있지만 나는 중학교때 까지만 해도 가게 이름을 바꾸자고 징징거리가 다반사였다.솔직히 나가노 반점이였으면 내 인생은 한결 순탄하다 못해 비단결이였겠지
하긴 옆 집 저녁상에 숟가락이 몇갠지도 훤히 아는 이 동네에서 숨겨봤자 얼마나 숨기겠냐만은 문제는 우리 아부지의 극성이였다. 저 덜덜거리는 새빨간 스쿠터 위로 준이치 중화반점이라는 글씨를 황금색으로 박아넣은 아부지는 모가 그렇게 자랑 스러운 건지 이 동네 저 동네 심지어 읍내까지 안 쑤시고 다닌 곳이 없을 정도였니. 덕분에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애기들이 글을 읽기 시작하는 4살때 부터 짱깨 준 통했다. 아마도 내 친구녀석들 몇몇은 내 풀네임을 모르는 새끼들이 응근히 있는 눈치다.
참고로 제대로 된 내 이름은 오카다준이치, 아부지 이름은 나가노 히로시다. 성부터 다른 우리 부자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짙은 쌍커풀 뿐이다. 왜 성이 다른지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의심스러운 사실은 우리 아부지 앞에서 내 어머니 그러니까 날 버리고 20년전에 토낀 그 여자에 대해서 물어보면 하루종일 눈물만 찔찔 짠다는것 뿐 [...] 사연많고 눈물까지 많은 아버지라 나도 굳이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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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대다수인 우리가게에 손님이 오는것은 아주 드문 일이였다. 전화 온 주문을 메모지에 짜장 둘 이라고 대충 휘갈겨 아부지가 한테 건네주고 오자 누군가가 들어오려는듯 문 앞에 걸린 모빌 밑으로 두 다리가 보였다.
"어서오세요 -"
손님인가 싶어 나름 착실하고 공손한 인사 바깥에 있는 이 인간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얼쩡거린다. 그러다가 무릎이 불쑥 가게 안으로 들어와 나는 엉정쩡한 자세로 카운터에서 일어나 버렸다.
"어서오세...아이 씨발"
이게 무슨 장난질이야 오늘 걸리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낡고 칙칙한 인테리어에 한 몫 하고 있는 이 싸구려 플라스틱 모빌 때문에 장난질 하고 있는 새끼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으로 다가가자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예쁘다- 아이 예뻐 "
손가락까지 불쑥 튀어나와 싸구려 오색빛깔의 모빌 구술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얘는
이럴 줄 알았어. 우리동네 마스코트 꽃순이다.
정오시간만 되면 산책에 환장한 사람과 마냥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 꽃순이는 오늘의 타켓으로 우리집 모빌을 선택한건지 아까부터 빛 받은 구슬보다도 더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모빌을 만지작거린다.
"예쁘다- 아이 예쁘다 "
가게 앞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는 꽃순이는 나한테는 조금 귀찮은 존재라 훠이훠이 손짓을 하며 저리 가 버려 라는 눈짓을 줬다. 그런데도 얘는 날 무시하고 댕글댕글한 눈동자로 반짝거리는 구슬만 처다본다.
"야 너 진짜 안갈래?"
"아이 예쁘다 예쁘다 너무 예뻐 "
"이씨 ..이게 진짜 "
이런 싸구려 구슬이 모가 좋다고 저렇게 집착인건지 동네 사람들 말은 다 들어도 내 말만 않듣는 꽃순이에게 짜증을 부리자 활짝 웃고 있던 그녀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탁한 눈동자로 나를 처다봤다. 꽃순이의 눈빛에 소름이 살짝 끼쳤지만 다시 얘는 제정신이 아닌 애를 곰씹으며 전혀 쫄지 않는 척을 했다.
우리동네 마스코트 꽃순이
있을거 다 없고 없는것은 무조건 없는 이 시골 동네에 이런 특이한 종자는 유별나고 질기게 존재했다. 특히 동네 바보 형이라던지 아니면 미친 여자애라던지 꽃순이는 그런 캐릭터의 중간 쯤 되는 애로 그렇게 밉상맞은 미친년이 아닌 동네에서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잔뜩 받는 정신나간 애였다.
미친애가 그렇듯 비가 오면 우산도 안쓰고 흠뻑 맞으며 뛰어다니질 않나 아무 이유없이 동네를 걸어다니고 혹은 맨발로 길바닥 을 쏘다니다 인심 좋은 할머니들의 손에 붙잡혀 억지로 고무신을 신은 적이 다반사다. 물론 그때마다 신발이 저절로 신겨졌다며 엉엉 우는 고단수의 미친짓도 보여주긴 하지만
기분이 좋으면 더운 날씨에 어르신들이 모인 그루터기에 쫑쫑쫑 다가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고. 그럴때마다 아이고 우리 이쁜이 춤도 잘추네 얼쑤얼쑤 덩실거리며 노인네들이 박수도 쳐주면 꽃순이는 그게 그리 좋아서 까르르 웃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애교도 어찌나 많은 지 그의 눈웃음에 안넘어간 사람이 없을 정도다. 생각해보니까 이 동네에서 그 녀석을 싫어하는건 오로지 나 뿐이다.
"어이구 켄이 우리 준이 보고 싶어서 놀러왔어?"
으르릉 거리며 서로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을 무렵 아부지는 배달을 나가시려는지 한 손엔 무거운 철가방을 들고 나오셨다. 그 사이 아직도 앞에서 알짱거리는 꽃순이를 본 아부지가 기특하다는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나를 노려보던 정신나간 눈빛은 사라지고 꺄향꺄향 하고 웃는다.
저 여시같는 놈
아버지의 쓰다듬는 손길이 좋은건지 아까와는 판이하게 웃는 미야케가 야속해 버럭 소리를 지렀다
"아부지! 아부지가 꽃순이 집에 데려다 줘!"
"켄 한테 꽃순이가 뭐니 친구한테"
"누가 저런 미친애하구 친구야!!!!!"
미친애에 포인트를 주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부지가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더니 '주문이나 잘받고 있어' 라면서 덜덜거리는 낡은 스쿠터를 타버리곤 가버렸다. 째끄매지는 아부지의 뒷모습을 보다 짱구이마에서부터 밀려오는 고통에 머리를 감쌌다. '아..내 골이야 ' 라고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오자 내가 아픈모습이 보며 이제 모빌 구슬따위는 관심도 없는지 지가 맞은 마냥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처다본다.
"왜 !"
비웃는건가 라는 생각에 씩씩 거리자 우물쭈물 제 옷깃을 쥔 미야케의 시선이 땅끝을 향하며 작게 말했다.
"나...나..안미쳤는데 ........미친거 아닌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말을 내뱉은 미야케 때문에 순간 당황했다. 십 년 넘게 쟤가 말짱하게 말하는건 처음이였다. 나사풀린 웃음 따위는 싹 가신 표정으로 말하는 미야케는 도무지 적응 할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는 얼마 전부터 읍내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허튼 말은 아니였나보다. 그렇다면 차차 제 정신이 돌아왔다는 말인데
"이것봐라 예쁘지?!"
제 정신으로 보일려던 꽃순이가 주섬주섬 매고 있던 미니 크로스백을 열자 들판에서 딴 건지 꽃들이 한가득이다. 그걸 한 움쿰 쥐어서 손위에 펼쳐보이더니 연신 자랑질이다. '이건 저기 뒷동산에서 따왔고 이거는 길가다가 발견했구우-'
아직 제정신은 아니구나. 그래 어렸을때 부터 미친 니가 약빨 좀 들었다고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오면 그게 말이 안되지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우주의 탄생보다 미스테리한 니 머리속을 누가 알겠냐
약간은 녀석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유난히 밝은 갈색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또 기분이 좋은지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다. 애는 전생에 강아지이기라도 했던 걸까 머리만 쓰다듬어 주면 저렇게 좋아 죽으니 가끔은 내 손이 민망해진다. 나는 꽃순이의 손 위에 있던 많은 꽃 들 중에 분홍색 코스모스를 미야케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밝은 갈색위에 분홍색 꽃 그러자 웃던 녀석이 '아?' 하는 표정으로 살짝 놀랐나보다.
하긴 맨날 싫다고 싫다고 짜증만 부리던게 나였는데 갑자기 잘해주니 놀랄만도 하겠다.
"준이치는 코스모스가 좋아?"
" 조금..."
코스모스가 좋다기 보단 이 꽃분홍이 미야케한테 어울렸다고 생각 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꽃순이는 내가 머리에 꽂아준 코스모스를 조심 스럽게 만지더니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