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쩜 그런 것이리라
나무가 피워낸 붉디붉은 꽃이었으나
그것이 사랑으로 완성되는 선물같은 향연이었으나
시들어버리는 추한 모습 보이기 싫어
나무가 버리기 전에 먼저 떠나는 마음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이리라
아직도 요염한 얼굴 보고싶은데
못내 아쉬워 울고 싶은 나무 내버려둔 채
시들기도 전에 꽃송이째 툭툭 듣는 동백꽃은 미완의 이별을 아름답게 완성함이니
시원(始源)의 그리움 속에 머문 듯한 섬,
단지 마음뿐인 동백섬 지심도로 간다
처음 가보는 섬이다
말만 들었던 섬,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이름도 예쁜 섬을 갈 수 있게 되어
가슴속에는 가벼운 희열로 설레고 있었다
사랑과 이별의 동백숲으로 깊어가고 있는 섬의 눈빛을 생각하며
웬지 원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것만 같은 섬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거제 장승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
철썩철썩 선미에 부딪치는 쪽빛바다의 출렁임 속에서
15분만에 배는 지심도에 우리를 부려놓았다
배가 선착장에 닿자 공기부터 다른 섬의 향긋한 내음이 바람결에 묻어 날아왔다
해운대 누리마루와 같은 휴게소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동백꽃을 보기도 전에 마음은 어느새 빠알갛게 물들어갔다
어디서부터 흘러왔을까
이 작은 섬 지심도는.....
머언 먼 아득함으로, 이제는 내 가슴속에서 마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락 차지하고야 말 섬 지심도를 품에 안기 위해 나무테크를 따라 난 길을 걸어 올라간다
배에서부터 왁자하게 함께 내린 노인대학에서 온 듯한 할머니 일행들과 같이 섬투어를 시작한다
지그재그로 시작되는 나무계단을 지나니 섬을 관통하는 산책로가 나타남에
몸과 마음이 동백꽃의 향연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008년 한국관광공사와 행전안전부 공동주최로 우리나라 3000여개의 섬들 중 1%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섬 휴양하기 좋은 섬 best 30에 선정되기도 한 지심도는
섬의 모양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에 위치한 이 섬은 폭 500미터 길이 1.5킬로미터 면적은 약 11만평의 작은섬으로
최고점은 97미터에 불과하다
약간 경사진 언덕배기를 오르자
예전에 천주교 공소였던 유적지의 흔적을 나타내는 성모마리아상이 나타났다
그 뒤쪽으로 동백나무숲이 울울창창 우거져있다
여기서부터는 민박을 할수있는 펜션들이 줄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동백꽃의 꽃말에는 '고결한 사랑','영원한 사랑','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등이 있다
지심도 오솔길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산책길 군데군데에는 피빛 선혈이 낭자하다
채 시들기도 전에 꽃송이째로 떨어지는 동백꽃은 떨어져서도 아름답다
아직도 고혹적인 눈빛으로 애잔함을 불러 일으키는 정갈한 꽃 동백꽃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한 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지심도에는 15가구 25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농업 어업을 겸한 민박업을 하여 얻는 관광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심도의 주 이동수단인 사륜구동이 보인다
남풍을 마파람이라 하듯이 섬의 남쪽 끝 마끝벼랑에 점을 찍고 돌아서서 다시 산책길을 올라간다
"아이구 이 꽃들이 내마음 닮았데이..."
앞서 가던 할머니 한분이 털썩 낙화한 동백더미에 앉아버렸다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귀여운(?) 모습을 담아본다
호젓한 동백나무 숲길을 걸으니 문득 강진 백련사의 숲길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동백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여수 오동도,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등이 있는데
작년에 가 보았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동백숲길은 이제 아련한 추억의 길이 되어버렸다
애틋한 추억에 잠시 젖어있는 사이 갑자기 섬안이 시끌벅적해졌다
어디선가 울어대는 새들의 울음소리 아니 노래소리가 요란하다
"찌리찌리 삐리삐리,뽀룡뾰롱 쪼롱쪼롱~~~~~"
아이구 시끄러버라 섬이 떠나갈 듯 하네
동백꽃의 꿀을 먹는다는 동박새와 짙은 갈색의 몸을 지닌 직박구리새가 나그네들을 위해 주악을 베푸는 것인가
정말 즐거운 비명이다
산책길 오른쪽으로 창고 같은 게 보인다
서치라이트 보관소라는 안내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지심도에는 아프게 흘러온 역사의 강이 있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광복직전까지 이곳에 주둔하며 해안방어 목적의 진지를 구축했다
1936년에 지심도 주민들이 강제이주 되었고 일본군 아까쯔끼(赤旗)부대 포진지와 탄약고가 만들어졌다
동백나무의 열병식을 보듯 줄지어 서있는 동백나무 숲길에 들어선다
물든 꽃송이 행여 밟을라
어떤 시인은 지심도에 가거들랑 제발 사뿐사뿐 걸어라고 했다
지심도에는 껍질이 한방약재로 쓰이는 후박나무와 대나무,소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림이 자연분포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해양과 내륙생태계를 연결하는 환경보호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상록수림 중 60~70%가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지심도의 동백처럼 우리나라 재래종인 홑동백은 핀듯 안 핀듯 벌어진 듯 만듯 그 모습이 너무나 고혹적이며
청순하다
산책로가 끝났다 싶은 갑자기 환해지는 곳에서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섬의 거의 정상부근에 있는 헬기장에는 이렇게 낭만적인 흔들벤치가 있어 다정한 연인들을 손짓한다
물결에 흔들리듯 사랑도 이렇게 흘러가는 곳
지심도에서 동백꽃에 취하고 그대 마음에 머물고도 싶다
흔들그네 옆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바람결에 날아온 동백꽃들이 해풍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따금씩 찾아와 지지배배 노랠 불어주던 아름다운 동박새의 다정함을 잊지 못하겠노라며
자신을 피워준 고목 동백나무가 너무나 그립다며 꽃송이는 나그네들과 같이 무심한 바다를 굽어본다
다시 산책길이 이어지고 동백숲이 하늘을 가린 동백터널이 나타났다
터널 속에서 햇살이 비처럼 뿌려져 반짝거린다
지심도의 진수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직박구리의 날개 퍼덕이는 소리에 흠칫 놀라기도 하면서
원시의 숲속에서 잠시 옆에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동백터널을 빠져나오자 뭔가 이상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역사탐방이라 적힌 안내판에는 일본해군 상징 깃발인 욱일기게양대라고 적혀있다
아픈 역사의 잔재들이 섬 곳곳에 남아있다
새끝(샛끝벌여) 전망대에서 먼 바다를 바라본다
마끝이 섬의 남쪽 끝이라면 새끝은 섬의 북쪽 끝이다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라며 동박새가 그려진 이정표가 있는 이곳에 서면
해식애가 발달한 동쪽해안을 조망할 수 있다
새끝 전망대에 서면 소나무가 인형머리털처럼 자란 찬물고랑과 동섬이 바라보인다
그 밑에는 낚시터로 유명한 노랑여도 있다
산기슭에서 찬물이 나와 고랑을 타고 바다로 흘러간다하여 찬물고랑,
동쪽 끝에 있는 섬이라 하여 동섬,
물속에 잠긴 바위를 '여'라 하는데 노란색깔로 보여 노랑여라고 명명하였다
이렇게 지심도 지명에는
새끝(샛끝벌여),마끝,높은여(바위벼랑이 해안쪽으로 높이 툭 튀어나옴),노랑여,찬물고랑,말뚝밑 등
순수한 우리말인 토속어가 많다
작년에 가 보았던 소매물도처럼....
관광차 이곳 지심도에 들렀던 일본인이 이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터를 잡았다
'전망좋은 집'이라는 펜션을 차린 것이다
역사의 강은 이렇게도 흘러간다
해발 100미터도 채 안되는 지심도 가장 높은 곳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자리잡고 있었고
잘 정비된 산책로도 좋았으며 안내판 역시 잘 설치되어 있었다
산책로 곳곳의 방향은 동박새 부리로 가리키고 있었으며
또한 지심도에는 대나무숲도 울창한데 마을 주민들은 이 대나무로 어구나 건축재료로 쓴다고 한다
산책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심도가 일본군 군사요새가 되면서 전기를 만들어내었던 발전소 소장의 집인 관사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서치라이트 보관소,욱일기 게양대,외에도 지심도에는
표지석,포대진지 4곳,탄약고 2곳 등이 수려한 환경의 이면 속에 아픈 역사의 한 단면으로 숨겨져 있었다
원시의 생명력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동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해풍에 실려온 건강한 야생의 정기를 마음껏 들이마셔 본다
수령 500년의 아름드리 동백나무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이제 원점회귀 선착장에 돌아가려고 한다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지심도투어는 내 가슴속에 맑은 해풍 한웅큼 남겨 놓았다
지심도가 일년 중 가장 지심도다운 시절,동백꽃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올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사랑과 이별을 가장 아름답게 완성할 줄 아는 동백꽃의 지혜도 배웠다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안녕인사를 하고 내마음의 동백꽃이 마알간 얼굴을 내밀며 아쉬워했다
선착장이 보이는 나무난간에 서니
지심도의 섬그림자가 애잔한 실루엣이 되어 일렁인다
흡사 내마음의 잔영을 비추기라도 하듯...
사랑은 어쩜 그런 것이리라
단지 마음만 다할 뿐 바라는 것은 없는,
떠날 때를 알고 말없이 떠나주는 것 그런 것이리라
동백섬 지심도는 그런 마음을 머금은 곳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