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노들이란 말의뜻을 아십니까? 노들은 지명이기도하고 낫버들의 준말이기도한데 노양나무나 수양나무같이
큰버들이 아니라 낫이란 도구로 베기적당한 버들을 의미한다고합니다 해서 노들강변이란
낫버들이 많은강변을 이르는말일수도 있다합니다 어쨌던 옛날에는 황초령에서 고토-황초리 를 감돌아 흐르는 버들방천의
장진강유역을 노들강변이라 했다합니다
눈치가 빠르지못한사람일지라도 오를 민요 노들강변 얘기구나 아실겁니다
일재하 1930년대 한강의 노량진나루를 일컬는 노들나루는 살길찾아 떠나는 남편과의 이별이서러워 우는 여인네들의
처절안 울음소리가 그칠줄모르는 곳이요 가혹한 일제경찰들이 애국자들을 체포하여 건너든 원한과 분노의나루였읍니다
이무렵 일제는 애국적인가요와 춤가락에 신경을곤두세우며 탄압을시작
총독부산하 학무국은 총독부설립 20년이지났으니 일선일체의정신으로 이젠 일본가요 몇곡은 부를줄알아야한다 고
역설 우선 조선가수들부터 앞장서라 강요
이에격분한 작곡가 문호월은 나라잃은설움으로 울분에찬세월을 보내고있었읍니다
이때 일본 우에노음악학교에입학 하였으나 경제사정으로 중단한 옥명화가 찾아와 일제탄압속에서도 우리춤가락을
지킬 무용곡 창작을부탁 이에승락했으나 그의심란한심사가 적당한 선율을만드는데 실패,
마음을진정코자 친구병문안을갔다가 신불출과함께 노들나루를 건너게됩니다
이런 우연찮은 움직임이 두고두고 우리가요사 명가요요, 민요인 노들강변 창작으로 나타날줄 과연 그는알았을까요?
노를 젓고있는 사공의 구성진 노랫소리에 어울려 처얼썩 처얼썩 기슭을치며흘러가는 물결위에
칭칭늘어진 노들강변의 봄버들이 한폭의그림처럼 수면위에비껴 있고 살길찾아 북관땅으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는듯한
흐느껴우는 여인도 보였읍니다
우리가요사 명곡의탄생을보면 많은곡이 우연찮은 계기로이루어지고 보통사람들은 무심코지나쳐버릴 광경이
작곡가란 직업을가진 사람에겐 불후의명곡을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
문호월의 머리엔 지금 이광경들이 두가지악상을 떠오르게해 내면에서 심한갈등을자초했다
그중 여인의슬픔에서 나라잃은 민족의슬픔을느껴 그것을 선율로옮겨 비탄조의 엘레지로 만들고싶은충동이
불쑥생겼다 -- 허나 엘레지로선 음악으로서의 예술적승화 를 원하고 지금의 비탄을 노래로서 이겨낼수있는
겨래의애창곡을 만들려는목표는이루기힘들다-- 해서
칭칭늘어진 봄버들에 서정적기초를두고 옥명화의 요청처럼 흥겨운 춤가락으로 우리민족이
당하고있는 수난을 이겨내는곡 창작으로 결심 했다 그순간 나룻배는강기슭의 선착장에도착
배에 내리자마자 바쁘게 어느목로주점으로 직행 무슨낌새를챈 신불출도 군소리없이 뒤따랐다
그리고 담뱃불에타고 그을린 상을앞에놓고 문호월은 선율을적기시작 신불출도 그에맞춰 가사를 다듬었다
1934년 -창립1주년 기념특별호- 라는 타이틀로 ok-record 2월신보로 이곡은발매 됩니다
그전 이가요는 1930년대초 ok-record 창설을 위해준비중 다른회사에 시험삼아 의뢰하여
제작하여 보고 1933년회사 창립후 ok서 비로소 박부용의 목소리로 재취입했다
이곡은 작곡가 문호월이 곡을만들떄는 한강의 노들나루 를대상으로 했지만 곡을듣는이들은 낫버들인
노들이 많은 강변을 생각하며부른다.
부드럽고 운치잇는가락은 강변의봄버들을 두고 덧없이 흘러가는 무정세월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노들강물결위에
나라없는 민족의설움을 싣고가라는 당시우리민족의 갈망도 함께담고있읍니다
특히 3절가사--네가무슨 망령으로 재자가인 아까운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에헤야 네가진정 마음을돌려 이세상 쌓인한을 두둥실 싣고가거라---
에서는 우리겨레의 모든불행의 원인인 일제의 조선강점을반대하는 반항의 감정이 엿보입니다 . 특히 !!
---재자가인 아까운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 란 신불출씨의 강력한 시어에서는 당시애국자들을 체포하여 노들나루를 건너간 침략자들에 항거를 은유적으로 깔고있읍니다 이는 그시절로서는 표현기힘든것으로 한낱 연예인으로 치부한 신불출의
정신세계를알수있는 대목입니다
신민요는 정확히말해서 비록 우리작가들에의해 만들어졌으나 그내면에는 일본 음반업계의 상술이 깔려있다 한국에 처음
외국과 합자형식으로 들어온 일본음반사는 아무리일제하 라 하나 일본가요나 일본가사의노래가 영업될수없음을간파
결국 한국인들의 정서에맞는 판소리, 타령조의잡가,민요를 한국인창자를 동원 레코드화해 발매하다 그소재가
바닥나자 기존민요를 바탕으로 새롭게 편곡을해 한국고유악기에 서양악기를 합주시켜 반주
소위 신민요장르를 고안해낸것입니다
신민요 최초작품을-- 진주라천리길을 만든 작곡가 이면상 의주장에의해-- 음반업계서는 노들강변으로
보기로했다는 기록도있읍니다
그주장이야 어쩄던 민요로서의 갖춤이나, 예술적품격, 완성미등 으로볼때 그시기 최고 성과물이요 수작임은 분명하다
그리하여ok-record서는 이곡을 다시 제작하여 레코드상점에 넘기면서 이노래가 신민요로서 첫작품이며
자사창립과 더불어 내놓은 첫취입곡 이기때문에 의의가 자못크며 , 계속늘어나는 수요자들의 요구에 재판 제작한다고
자랑겸 광고를하기에 바빳다
이곡은 ---희극배우이며 히틀러등 유명정치가를 팬터마임으로연기하여 인기를끌고 , 키가훌쭉크며 맥고모자에 나비넥타이 그리고 지팡이를짚은모습이 트레이드마크로, 모리스슈발리에란 연예인이부른 샹송흉내는 일품이라 평을듣든--- 이복본이란 사람이 스윙템포로 멋진제스처를 써가며 노래해 인기폭발을 일어키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