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않은 즐거움
머리가 지끈거린다 싶으면 나는 서측에 자리한 2층 창가를 곧잘 찾는다. 그곳은 알맞게 조성된 연못도 있고, 벚꽃이 만발한 주변에는 공원 벤치도 있어 1층 동료들의 머리를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떤 이는 휴대폰에다 조잘대고 있고, 어떤 이는 담배연기를 허공에다 내뿜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작 서측 창가를 곧잘 찾는 것은 따로 있다. 언제부터, 누가 키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못주변에 둥지를 튼 천둥오리 세 마리를 보는 쏠쏠한 재미 때문이다. 녀석들이 천둥오리가 맞는지 물어보아도 아는 이는 없어 나는 나름대로 집오리라고 말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4월의 오후, 녀석들은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숨겨진 오색 깃털이 삐져나오고, 멋스럽게 핀 철쭉 꽃잎이 더러는 흩날리고 더러는 깃털을 물들이고 있다.
퇴근에 앞서 창가를 한 번 더 찾았다. 녀석들은 지금 결코 깊지 않은 연못에서 자맥질이 한참이다. 머리를 처박았다 제 숨에 부쳤는데 한참이 있어서야 고개를 쳐들고 있다. 지난 4월 내내 지루한 장맛비에 생겨난 지렁이, 달팽이를 연신 조아먹는 게 아닌가 싶다. 배가 불렀던지, 젖은 깃털이 안쓰러웠는지 한 녀석이 물 밖으로 뛰쳐나오니 이내 두 녀석도 뒤따랐다. 그러고 보니 앞서가는 녀석이 가는대로 이리 가고 저리 가는 것을 보면 녀석은 무리의 가장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녀석이 수컷이라면 나머지 두 녀석은 암컷인지 확인해 볼 수 없으니 그냥 그렇게 믿을 뿐이다.
4월의 끝자락, 고사리 장마가 끝나는 시점에 이른 지금, 녀석들에게 변화가 일었다. 잠을 청하는 한낮에도, 자맥질을 하는 시간에도, 먹이를 찾아 쪼아대는 시간에도 두 녀석은 붙어 다니는데 반해 한 녀석은 항상 뒤쳐있다. 필시 녀석들의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음이다. 왜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어난 것일까? 형제간의 세력다툼, 부부간의 성격갈등, 이성간의 욕구갈등……, 인간 세계의 시각에서는 그걸 풀어낼 능력이 없지만 그들 간의 무슨 갈등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새로운 부임지에서 도시계획에 의한 공용사업 토지수용업무를 수행하면서 감정가격에 의한 보상비를 집행하고 있다. 팔순의 노모가 살아있는 탓에 미처 상속받지 못한 과수원도 있고, 아직 형제간 아귀다툼에 있는 토지도 있다. 국가로부터 책정된 보상비, 인간세계에서는 아등바등 끝없는 분쟁의 씨앗이 되고 그걸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할 때마다 난 괴롭다.
# 광경 1
팔순의 할머니 한 분이 인감도장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할머니에게 책정된 보상비 2억 원을 큰아들에게 입금해 달래서 통장번호를 물을 겸 어렵사리 찾은 그의 서울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께서 보상비를 받았는데 아마 큰아드님께 이 돈을 입금할 의사가 있으니 통장번호를 가르쳐 주세요.”
“감사하지만 저는 보상비를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머님께는 노후에 쓰시도록 제가 말씀드릴 터이니 어머님 통장에 입금만 해주세요.”
큰아들과 전화통화를 끝내고 팔순의 노모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할머니! 큰 아드님께서 극구 사양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지만 딸도 둘이나 있고 작은 아들도 있는데 자식 모두 편애하시면 안 되지요?”
그러나 정작 할머니 생각은 달랐다.
서귀포시 회수동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감귤과수원에다 한 평생을 바쳤다. 꼬박꼬박 영글어준 과실 덕분에 아들 두 놈과 딸 두 년을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감귤나무는 ‘대학나무’라 하지 않았던가?
둘째 아들은 의과대학을 나와 지금 서울의 종합병원장으로 있고, 두 딸도 제주시의 어엿한 중소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최고의 엘리트로 살아가고 있단다. 다만, 큰아들은 농학박사이지만 당시 농림부에 들어가 입에 풀칠이나 면하는 고만고만한 공직자의 신분에 있으니 당신은 그게 늘 가슴에 한이 되었던 모양이다. 후에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큰아들은 끝내 보상비를 거절하였다고 했다. 직장 사정상 당신을 모시지 못하는 불효라는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2억 원이 아니라 단돈 2백 만 원도 한 푼이나 더 챙기려 형제끼리 분쟁을 일삼는 가족들을 보면서 장시농사 한번 잘 지은 할머니는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경 2
조상 묘지에 대한 이장보상비 1천만 원을 서로 받겠다고 일곱 형제가 상속등기를 해왔다. 어머님이 15분의 3일, 나머지 여섯 형제가 15분의 2를 해왔다. 공무로 집행해야 하는 나로선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지만 형제별로 1백 3십여만 원을 따로따로 집행하면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더욱 나를 난감하게 만든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그나마 지분이 제일 많은 어머님의 보상비 2백여 만 원이 문제였다. 셋째아들이 어떻게 어머님의 통장을 가지고 왔는지 제일 먼저 그 통장으로 입금해 달라고 했다. 다음 날은 다섯째 딸이 다른 어머님 통장을 가지고 와 그것으로 입금해 달란다. 전후사정을 알고 보니 현재 어머님은 치매에 걸려 한 요양원에 입소해 계신다. 일곱 형제나 있으면서, 누구 하나 모시지 않으면서 몇 푼의 보상비는 서로 챙기겠다는 욕심, 어머님의 몫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형제간 아귀다툼은 점점 격해만 갔다.
만약,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볼썽사납게 어지러운 지분등기보다는 상속포기를 내세워 어머니에게 상속 이전을 하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당해보지 않아서 장담은 할 수 없다.
#광경3
보상비가 적다며 좀처럼 협의를 해주지 않아 공용사업 진척에 애를 먹고 있는데 부친이 병상으로 쓰러 눕기가 무섭게 큰아들이 증여등기를 마치고 보상비를 자신에게 달라 한다. 이에 격분한 동생은 지상권을 설정하였다. 보상비는 그야말로 공중에 떠 있어 난감하기만 하고 형제간 분쟁은 관공서마저 아귀터전으로 변해가고도 있다.
선친으로부터 오막살이 하나 물려받는 게 전부인 나는 동생, 그리고 누이 둘과 재산분쟁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오막살이 하나 물려받는다면 어머님 가시는 마지막 노잣돈에 보탠다고 이미 합의가 되었다.
최근에 돌아가신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무소유, 소유는 화를 좌초하게 되니 이승에 살다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소유하다가 모두 나눠주고 홀로 여유롭게 빈손으로 돌아가신 그 분이 새삼 존경스럽기만 하다.
물려주지 못해 아귀다툼인 소유한 자들이여!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불편하다 푸념하겠지만 없음의 고통은 잠시일 뿐, 아무런 상념도 없는 편안함의 극치이니 나누고 태우는 것을 실천할 것을 권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