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시간은 공간>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 같은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렸을 때는 시간이 꽉 찬 느낌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이를 뇌 연구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뇌 시냅스 사이의 정보 전달 네트워크 기능이 느려지면서 정보를 프로세스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기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더 많은 이벤트는 심리적으로 기억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 많은 기억들은 같은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길게 느껴지면 공간은 더 크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같은 원리에 의해서 공간을 크게 느끼게 하려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해야 하고,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하려면 기억할 사건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건들을 느낌과 감정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말처럼, 기억할 감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것이다.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쇼윈도의 다양한 상품이거나 혹은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거나,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이거나 어떠한 것이든 좋다. 건축가는 이런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를 디자인하는 연출가이다.(290~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