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6장 31-32절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표준새번역>
제 주변에 계신 분들은 이 본문을 보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이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하나님은 참 너무한거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인지라 당연히 할 수 있는 고민아니냐는 겁니다. 맞습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고민입니다.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고, 입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세례요한도 석청과 메뚜기를 먹었고,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그 정도는 고민할 수 있는거 아닌지요?
때론 목회자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 마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고민한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이 본문이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두번째 시간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바로 '무엇을' 입니다. 이 '무엇을' 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이라는 단어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혹시 옷장을 열고 무엇을 입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분명 입을 옷이 너무 많았거나, 아니면 입을 옷이 너무 없거나, 그도 아니면 마음에 드는 옷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벌 신사들은 절대 고민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 옷이 하나 밖에 없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옷이 많다는 것을 비난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감사가 고민으로 바뀌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 옷을, 내일은 이 옷을 입으면서 감사함으로 살면 되는데, 우리는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고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먹을 것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주신 양식에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고민하고 계십니까?
출애굽기에 보면 참 재미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16장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백성은 감사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가지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고기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모세와 아론을, 결국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다 굶어 죽게 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자손의 아우성을 들으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저의 모습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했어도, 구원을 경험했어도 먹을 것 하나에 고민하고, 원망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이라는 순간이 찾아오면 고민이 아니라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왜 그 감사가 우리에겐 불평으로 바뀌어버리는지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우리는 오늘도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불평합니다. 우리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가 생각납니다. "산다는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한벌은 건졌잖소" 우리는 빈 손으로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셨음을 잊지 마십시요. 그럼 고민이 아니라 감사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로, '무엇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믿음의 결여'입니다. 31절은 시작할 때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러니 30절의 결론인 것입니다. 30절이 '무엇을'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어찌하여 믿음이 약하냐? 무엇을 입히실지, 무엇을 마시게 하실지, 무엇을 먹게 하실지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는 거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는 것 아니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이미 만나와 메추라기를 준비하신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의심과 염려로 우리의 키를 한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이라는 단어를 꺼내들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 무엇을 먹게 해주실건대요? 하나님, 무엇을 입게 해주실건대요? 하나님, 무엇을 마시게 해주실건대요? 이야기해보세요!" 혹시 이렇게 하나님께 외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은 이야기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허락하신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이라는 문제 때문에 '가나안'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모습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시지 않을까요? 이건 의심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믿어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도 새 하루가 주어집니다.
이 하루 '무엇을'이라는 문제로 고민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풍성함에 감사하시겠습니까?
이 하루 '무엇을'이라는 문제로 의심하고 걱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