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23편 1절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표준새번역>
지난 글에는 하나님의 이름 중 첫번째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라는 뜻의 "여호와삼마"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성전 위에, 그리고 우리 마음의 성전에 하나님이 늘 거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오늘 계속해서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이름 중 두 번째는 잘 알고 계시는 “여호와로이”입니다. 사실 이 ‘여호와로이’라는 단어만 들으시면 그리 익숙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여호와로이'란 이름으로 잘쓰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로 더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보셨던 시편 23편 1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의 히브리어 원문을 읽어보면 “미스모르 엘다비드 여호와로이 로 예싸르”인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분이 “여호와로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들 중 하나로 널리 불려 지고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여호와로이는 특별히 다윗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양을 치던 목자였기 때문일까요? 다윗에게 ‘목자’의 의미는 특별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돌보던 양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절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갈 길 몰라 헤매는 양들을 보면서,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길을 잃는 양을 보면서, 목자 없이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양을 보면서 다윗은 누구보다도 당연히 목자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바로 여호와가 나의 목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푸르디 푸른 풀밭에 눕게 인도해주시고, 정말 편안히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목자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영혼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바로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걱정이겠습니까? 혹시 해를 입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는 그냥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지팡이로, 때로는 막대기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 원수의 목전에서도 나에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어주셔서 언제나 내 잔을 가득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돌보실 것이기에 내가 하나님의 집에 영원한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시편 23편의 고백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느 상황에서 어떠한 해석으로 들어도 참 행복한 고백입니다.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다윗의 믿음이 우리믿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하지만 우리들이 자주 암송하며, 자주 사용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라는 다윗의 고백을 우리도 드리기 위해서는 새삼스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고백이 온전한 고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두 가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라는 고백은 바로 나 자신이 그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하는 '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양의 특징을 알고 계십니까?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양들은 눈이 나쁩니다. 그래서 눈앞에 무엇인가가 보이면 그것만 졸졸 따라갑니다. 양을 치던 개가 눈 앞에 나타나면 그 개가 목자인줄 알고 졸졸 따라가는 정말 눈이 나쁜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이 나쁩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영적 시력이 너무도 나쁜 양들입니다. 목자와 비슷한 것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것이 진리인줄 알고 졸졸 따라가기도 합니다. 또한 양은 잘 속습니다. 정말 분별력이라고는 전혀 가지지 않은 동물이 양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 자주 속습니다. 그렇게 속이고 속여대서 더 이상 안 속을 것만 같은데 세상 유혹 시험에 또 속아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미혹하게 하는 영들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지켜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적 분별력이 없이 행한다면 우리는 잘 속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그리고 양은 잘 넘어집니다. 잘 넘어지는 것 뿐 아니라 넘어지고 나면 잘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가까스로 일어나도 중심을 잘 못 잡는 동물이 양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양과 똑같은 모습인거 같지 않습니까? 우린 얼마나 자주 넘어집니까? 그리고 넘어지면 일어설 수 없어서 낙망하고 쓰러져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겨우겨우 우리 힘으로 일어서도 다시 기우뚱 넘어질 때가 또 많습니다. 오직 목자 되신 하나님이 오셔서 세워주시지 않으면 결코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 서서 목자의 도움이 필요한 한 마리 양일뿐이라는 고백이 바로 ‘여호와로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이 이름을 깊이 묵상해보시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는 다윗의 고백 속에 담겨진 고백 “하나님 저는 당신의 양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 주셔야 하는 저는 그저 양일뿐입니다.” 라는 뜻을 발겨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고백속에는 나의 목자 되시는 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분명한 대상에게 고백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왕이나 지도자가 목자가 아닙니다.우리 부모가 우리의 목자일 수 없습니다. 결코 목사들이 목자일 수 없습니다. 부와 명예가 우리의 목자일 수 없습니다. 평안함이, 안락함이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따라갈 때 우리는 온전한 신앙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일을 합니다. 선한목자는 밤낮으로 양들을 생각합니다. 양들을 위해 "어떤 푸른 초장으로 갈까? 어디로 시원한 그늘로 갈까? 어떤 물을 마시게 할까?"를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셔서 밤낮 우리를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선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 되셔서 우리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천국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원합니다. 즐겨부르시는 복음성가의 가사 내용처럼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아멘!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목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환란 날의 도움이십니다. 우리의 산성이시고,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여호와로이’의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할 때 바로 이런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아멘!
특별히 시편 121편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목자 되신 하나님'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나의 목자 여호와에게서로다. 나의 목자 여호와께서 나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나의 목자 여호와는 나를 지키시는 이시라. 나의 목자께서 나의 오른쪽에서 내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나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나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목자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나의 목자 여호와께서 나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마지막으로 한 목사님의 간증을 끝으로 짧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일이 다가오자 이 목사님이 인쇄소에 전화해서 주보 복사를 의뢰하려고 했습니다. 마음이 분주한 상태라 이것저것 인쇄소 사장님에게 서둘러 말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주일에는 할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화기를 들고 인쇄소 사장님께서 이것저것 받아 적으시더니 확인을 위해서인지 그 날 설교 제목을 다시 한 번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게 제목이 맞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다시 한 번 급하게 확인하시고 맞다고 급한 마음에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쇄소 사장님이 그럼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복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급하게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일이 되었습니다. 주일 오전부터 바쁘고 분주한 마음에 미처 주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말씀선포를 시작하려는 순간 제목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바로 주보 제목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 제목을 계속 마음으로 곱씹으면서 성도님들에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설교할 내용이 없습니다. 주보에 적힌 제목을 다 봐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결코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저는 이 설교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부터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다시금 저부터 회복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계속해서 이 말씀만 하시고는 그 강단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곧 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자기의 목자가 되어 있었음을 회개하고 다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 되기"를 간구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여호와로이"로 충분하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하십니까?"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멘!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한 양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목자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드리는 귀한 믿음의 하루하루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시 저와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로이의 하나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어떤 것이 우리의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혹여나 세상에 눈이 빼앗겨 나의 목자의 자리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가지 않도록 주여, 연약한 양들을 주관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자주 넘어집니다. 일으켜 세워주시옵소서. 자주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쫓아갑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고백을 가지고 날마다 목자 되신 하나님만 따라 살게 하시옵소서. 이 여호와로이의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