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어 원더풀 월드
자정이 지나고 난 후 그나마 남아있던 취객들도 모두 가버린 편의점엔 서늘한 침묵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환은 수학공식을 빼곡하게 적어 두었던 공책과 문제집을 덮고 유리문 너머 콘크리트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올라오는 거뭇거뭇한 어둠을 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엔 홀로 걸려있는 이질적인 가로등 하나 뿐, 거기에 간간히 들리는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들은 그에게 지난 밤 좀비영화를 생각나게 까지 했다.
어둡고 조용한 자정의 편의점은 누구에게나 적응이 안 되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는 특히 그 어둠이 싫었다. 낮에만 해도 또렷이만 보이던 눈 앞 열 걸음 너머도 어둠속에선 그를 위협할 온갖 것들이 숨어있을 수 있었다.
길고양이들부터 범죄, 그리고 그 누군가의 심장의 바닥부터 가득 채워져 온 어느 익숙한 두려움들까지. 어질러진 방안을 숨기기 위해 거대한 천으로 가리듯 덮어버렸다.
남겨진 사람들의 침묵은 너무도 고요해서 또 죽은 사람들 보다 더 고요했다.
그는 그 침묵을 덮기 위해 계산대 옆에 붙어있는 작은 라디오의 스위치를 키고 가만히 심야의 방송에 집중했다. 라디오의 가볍고 텅 빈 소리는 남은 침묵들의 틈새를 더 벌여 놓을 뿐 해결책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집중했다. 그토록 공허한 소리의 진동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디제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쓸데없는 농담들을 모두 끝내고 팝송 하나를 틀었다.
꾸벅꾸벅 계산대에서 선잠을 자던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뒤틀리며 깨어났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그는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오디오에서 수없이도 들었던 이 노래는 어머니의 어떤 간절함이 깃들어있었다. 간절함, 그건 늦은 밤에 마주친 강도와 맞서 싸우다 죽은 남편을 뒤로 하고 오로지 그녀의 거친 두 손으로 두 아이를 키워왔던 그의 어머니가 간절히 ‘원더풀 월드’를 바라는 어떤 힘. 그러나 그와는 사뭇 다른 낡고 좁은 단칸방의 탓, 늦은 밤 견딜 수 없이 그리운 아버지의 손길. 그는 옛 생각과 함께 텅 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원더풀 월드를 상상했다.
띵동.
트럼펫 소리를 단번에 깨트리는 소음의 장본인인 ‘그 남자’가 유리문 뒤에 새까만 차를 대기시켜놓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걸음걸이는 나름 위풍당당해 보였지만 160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개그맨을 연상시키는 우락부락한 못생긴 외모의 남자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쓰레기봉투 주실래요.”
“여기요.”
“말보루도 한 갑 주세요.”
아, 네. 뒤로 돌아 담배들 사이를 뒤적여 보았지만 그 남자가 찾던 담배는 없었다. 그는 황급히 유리문 옆에 붙어있는 편의점 구석에 자리 잡은 창고로 향했다.
“잠시만요.”
창고의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편의점 내부를 보여주는 낡은 CCTV와, 한가득 쌓여있는 담배들과 그 외 물품들이 전부인 아주 내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탑처럼 쌓여있는 담배들 중에서 그 남자가 찾던 담배 한 보루를 찾으며 낡은 CCTV를 슬쩍 살폈다. 아무래도 수상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외모의 그를 의심하기는 당연한 일이였다. 남자는 한동안을 유리문 밖 어둠을 향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의심하려 하지 않고 왼쪽 팔에 담배 한 보루를 낀 채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정환의 손은 더 이상 문손잡이를 돌리지 못했다. 그는 행여 소리라도 날까 손잡이에 스며든 살을 천천히 하나씩 떼어냈다.
남자는 편의점 안을 두리번대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계산대 옆에 있는 교과서를 흘깃 보았다.
“학생 인가봐.”
“…네.”
“공부 열심히 해.”
정환이 묵묵히 남자의 담배를 계산하는 동안 노래는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 자동차 안, 아이의 얼굴이 또렷했다. 그는 눈을 거두었다.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n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Oh yeah
차에 시동이 걸렸고, 그대로 차는 고요히 출발하였다. 깊은 어둠속으로 미끄러지듯 빠져 들어가더니 가로등 밑을 건너 마침내 어둠은 그들조차 감싸 안았다. 노래가 끝나고, 급박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속보를 발표했지만 그는 라디오를 끄고 말았다.
문학도를 꿈꾸는 은혜의 작품입니다.
다 들 감상하시고 한 말씀들.....
첫댓글 다읽었다.문장은좋왓다만 이문장이무었을 뜻하는지 할배는 줄거리를 잡지못하고 읽었다.너무어렀다 할배에게는^^^
한마디로 장하다.나의손녀 은혜에게
습작이라고 하기엔 많은 원숙함이 배어 있는것 같네요! 많은 재능을 하나님께서 주실것 같아요!
* 팁하나 >>> 글을 쓰고 생각할때 공기반 소리반을 섞어보세요! ㅎㅎ 제 점수는요????
(심사위원 왈) >> 100점 입니다. ㅎㅎㅎ
줄거리..엄마가 강도와 맞서다 죽음.자신은 유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비겁하게 현실을 외면하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생각 많이 하고 읽으셔야 이해합니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오네요
은혜 멋지다!
훌륭하네. 은혜가 좀 어두운 스토리를 즐겨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