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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6일 아침 뉴스가 온통 물바다다. 태풍「에위니아」가 무사히 지나가는 듯 하더니 집중호우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은 구름에 쌓여 보이지 않고 하늘에는 낮은 구름이 급히 흐른다. 날씨가 어떨지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 9시 30분, 동광초등학교에서 오한욱 교수님 티코에 동승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인심좋은 충청도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오한욱 시인님의 밝은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의 날씨 걱정은 봄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이다. 하물며 시어(詩語)에 있어서랴. 단어 하나, 토씨 하나가 한편의 시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고 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글 어귀부터 오시인님의 말 한마디에서조차 만남의 의미를 찾으려 군더더기를 덕지덕지 달고 있으니 이 글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심히 걱정이다. 아마 오랜만에「글밭제주」동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한껏 기대에 부풀어 벌써부터 수다를 떨고 있는가 보다.
아무려나 오한욱 교수님의 자주색 티코는 가끔 비추는 햇살에도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올라 에어컨 빵빵 자랑하면서 1차 목적지인 성산읍 오조리 「바다의 집」을 향하여 충청도 육상 선수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쌩쌩 잘도 달린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 동승한 강연옥 시인과 이성윤 시인도 덩달아 신이 난 듯 어부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차창 밖을 지나가는 돌담길 빌레왓들을 바라보면서 이 구좌에서 인물이 나는 이유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서 그렇다느니, 우리나라 시위문화는 뭔가 문제가 있다느니, 도대체 대한민국인지 떼한민국인지 모르겠다느니, 기타 등등, 어쩌구 저쩌구, 얼시구 절시구, 떼한민국 만만세.
우리 티코는 빌레왓 돌담길을 따라 무르익어가는 여름의 어께 너머로 언듯언듯 지나가는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출봉을 바라 달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서우봉」으로부터「지미봉 」까지 눈 앞에 펼쳐지는 들판만 바라보면, 갈옷 입은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곤 한다. 아마 내 어머니와 할머니의 친정이 이곳 구좌여서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피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용솟음치고 있어서일 게다.
조선 인조 7년, 1629년 이후 출륙금지령으로 어쩔 수 없이 숙명처럼, 이 바닷가를 따라 울퉁불퉁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이「빌레왓」에 살을 붙여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온 우리 선조들. 아마 내 기억 속에 나타나는 그 할머니들이 바로 내 선조인 그분들일 것이다. 내 몸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당신이 살던 곳을 다시 찾는 후손의 눈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는 나의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나의 전생이 바로 나의 선조들일진데, 내 몸과 마음이 바로 그분들의 것일진데.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소근댄다.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잘 봅써. 옛날 다니던 그 길, 그 언덕, 그 바다우다. 저 구름이우꽈? 그 때 검질 매레 가단 한숨 돌리멍 바라보던 뭉게구름이 저기, 저 구름 아니우꽈?'
창 밖을 바라보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제비갈매기처럼 하늘을 날으다 보니 벌써「바다의 집」이다. 시계를 보니 10 : 20이다. 이승익 회장님 부부가 반갑게 맞이하여 준다. 그런데 이승익 회장님 사모님이 노랗게 머리 염색을 하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노을 빛이다. 아하, 그렇구나. 엊그제 일출봉 일출이 환상적이었다고 하더니, 이시인님이 그 노을을 슬쩍하여 사모님에게 선물을 하신 게다. 정말 이국적으로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권재효 시인님, 안상근 시인님, 양래정 시인님, 양시인 친구분이라는 임성자 선생님, 양은하 선생님, 홍제선 시인님, 강경식 시인님, 홍기표 시인님, 김미정 총무님이 도착하여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고계추 선생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어 자리를 함께 하여 주셨다. 서귀포에서 오시는 김상호 선생님은 강방옥 명창팀을 모시고 성산항으로 바로 오신다고 한다.
글밭제주 동인들 대부분이 모인 후, 우리 일행은 성산항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방옥 명창팀과 한라산문학회 등 참석 예정자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12 : 30 도항선에 승선하여 출발하는가 싶더니 바로 우도항이다. 항해 시간이 겨우 15분이란다.
우도항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니 온통 먹구름을 휘둘러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한반도 집중호우의 영향이다. 방파제 위에 올라가 일출봉을 바라보니 일출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구름이 파도를 몰고 발 밑으로 파고든다.
이번 행사에는 글밭제주 동인 이외에 한림화 선생님과 한라산문학회 송상 회장님, 김병심 부회장님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다. 그리고 지난 봄 표선 오문복 선생님댁 정기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강방옥 명창팀과 다시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명창 강방옥 선생님, 이숙자 선생님, 한복선 선생님과 대금 명인 강재천 선생님의 얼굴을 뵈니 서로 10년지기를 만난 듯 무척이나 반가워들 한다.
또한 이번 행사에 물심 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하여 주신 고마운 분들도 여럿이다. 글밭제주 동인인 고계추 선생님 외에 현윤조 조광건설 사장님과 김길호 고마촌 사장님이다. 조광건설 현윤조ㆍ고이순 사장부부께서는 우도까지 따라와 자리를 함께 하여 주셨다. 한라산문학회에서도 금일봉을 지원하여 주셨다. 그리고 우도면 사무소에서도 물심 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숙소인「우도 그린팬션」에 짐을 푼 우리 일행은 느긋하게 간식과 점심을 마치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16시경 우도 문학기행 행사를 시작하였다. 김미정 총무의 사회로 강방옥 명창팀의 길트기를 시작으로 이승익 회장님의 개회사, 고계추 선생님의 인사말씀, 한라산문학동인회 송상 회장님의 격려사와 시낭송에 이어서 한림화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다.
한림화 선생님의 특강 중 백호 「임제」(林悌, 1549~1587)가 제주를 기행하면서 남긴 기록이 관심을 끌었다.「임제」가 부친이 대정현감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부친을 뵈러 왔다가 제주를 기행하면서 느낀 소감을「남명소승」으로 났겼다고 한다. 그「남명소승」의 기록에 의하면, 「임제」가 제주 해녀를 처음 본 것은 산방산 밑 어느 해안가인 것 같단다.
「임제」는 '물질'을 하고 나온 해녀가 해녀의 짧은 작업복인 '소중이'만 입고 채취한 해산물을 지어 나르는 남편이나 남자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소감을 아마 대충 이렇게 기록한 모양이다.
'제주에는 치마도 없나? 여자들이 남자들 앞에서 남사스럽게 허벅지를 드러내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림화 선생님은 이 글을 읽은 후「황진이」묘소에 시를 지어 바쳤다가 파직을 당하기도 한「임제」의 그 호방한 의기에 보냈던 그 동안의 열렬한 찬사를 거두어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마 「임제」가 제주 해녀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듯하다. 치마를 입고 어떻게 해산물을 캐러 열길 물속을 자맥질한단 말인가. 춥지만 않다면, 남의 눈에 띄지만 않다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아야 좀더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척박한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 목숨을 내던지는 해녀들 앞에서는 종교도, 도덕도, 사상도, 이념도, 그 어떤 고상한 유토피아적 몽상의 구호도 모두 그 거치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져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잣대 하나로 거두절미, 남사스럽다고 매도하다니. 조선의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한림화」선생님은 오늘날 한국의 시인들은 너무 기교에 치중하는 것 같다고도 질타하신다. 빛깔이 같다고 무늬까지 같아선 창작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말씀하신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기인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순간 자리가 숙연해진다. 둘 다 옳으신 지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얼마나 고뇌하는가. 우리는 한 줄의 시를 얻기 위하여 한 밤, 어느 계곡 이끼 낀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시적 영감도 없이 피상적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 숙제처럼 꼭 같은 틀 속에 기교로써 시어들을 짜집기 하고 있지는 않는가?
감동이 없는 시는 죽은 시일 것이다. 체험을 동반하지 않은 시는 감동이 없는 죽은 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감동적인 시란 시인의 삶과 시의 소재가 잘 섞여 적당히 발효된 후 발아하는 씨앗이 자신의 몸을 썩혀 새싹을 키워내듯 자신의 영혼이 거듭나는 고통을 수반하여야 하지 않을까?
긴 여운을 남기고 한림화 작가님의 특강이 끝나자 강방옥 명창팀의 시조창과 민요 몇 곡을 들었다. 다음은 시낭송 차례다. 관광객 임성자 선생님의 시낭송에 이어 글밭제주 동인 양래정 시인님, 안상근 시인님, 강연옥 시인님, 김상호 선생님의 시낭송이 있었고, 내 시도 한 수 낭송하였다.
17 : 30분, 시낭송이 끝나고 일행은 서빈백사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잡은 숙소 앞 잔디밭으로 나왔다. 우도의 저녁 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지금 이 시각도 한반도는 물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우도 앞바다는 천연덕스럽게 눈부신 노을이 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민요와 창을 들으며 늬엿늬엿 저물어가는 노을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한라산은 구름에 몸을 숨겨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바로 눈 앞에 높이 솟아오른「지미봉」 뒤로「둔지봉」,「두산봉」,「다랑쉬」,「높은오름」,「동거문이」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도 바다 위에는 수많은 멸치떼들이 햇빛을 쫓아 몰려다니듯 은백색 물결이 반짝거리고, 우뚝 솟은「지미봉」을 내려다보며 구름 사이에서 머리를 내민 태양이 종달리와 하도리, 행원리, 월정리를 붉게 태우면서 하늘과 육지와 바다가 한 몸이 되어 뒹굴기 시작한다. 강방옥 명창팀의 애달픈 노랫가락과 대금소리에 우도바다 파도소리 구슬피 울고.
나는 이때 바닷가 잔디밭 나무 벤치에 앉아 이 광경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는 이승익 시인의 눈빛이 젖어드는 것을 보았다. 필이 온 것이다. 낚시꾼이 대어를 낚아채듯, 이승익 시인은 자신이 평생을 바라보며 살아온 우도바다에다 다시 듬직듬직 시를 내갈겨 쓰기 시작한다. 저녁 노을 지는 우도 바다 위엔 이시인의 눈동자에서 쏟아져나온 시어들이 「다금바리」비늘처럼 번쩍거리며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우도에 가다
<서빈백사>
시/이승익
우도 바다는 매일 다비식이 한창이다
물보라 철렁이는 하얀 불기둥 속엔
업장소멸 하려는 죄 많은 인간들
아우성과 야단법석으로
낭낭하게 울리는
독경소리 마져
바람에
부서진다.
밀려드는 파도는 타다남은 사리들을
날마다 우도 바위에 날라다 논다
하이얀 사리 밭 길게 펼처져
햇빛 맞은 옥빛 사리들
지은 죄 사죄하듯
세차게 부는
바람 앞에
밤마다
숨죽인다.
*우도팔경중 제8경인 서빈백사(西濱白沙)는, 서쪽의 흰 모래톱이라는 뜻이다. 섬 서쪽에는 산호 백사장이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데, 이 곳에서 바라보는 지미봉의 경치가 그만이다.특히 석양 무렵 해지는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다.
그렇다. 죄 많은 인간들은 끝 없는 한(恨)을 염불로 포장하여 야단법석 떨고, 저녁 노을 불기둥은 우도 바다 산호 가지 위에서 그 한을 태운다. 그 산호가 사리가 되어 파도에 밀려오는 우도. 우도는 제주인들의 한을 태우다 남은 사리섬인가.
태양이 바다 너머 스러져간다. 강방옥 명창팀이 입은 갈옷이 노을에 탄다. 제주 갈옷이 이렇게 저녁 노을과 잘 어울릴 줄이야. 권재효 시인님이 분위기를 돋군다. 제주민요가 구성지게 울려퍼지자 동인들이 하나 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바로 옆 잔디밭에 자리를 잡은 관광객들도 신이 나는지 같이 어울려 춤을 춘다. 한림화 선생님이 날아든다.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잔디밭은 삽시간에 날렵하게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한 무더기 학떼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분위기가 화끈 달아오른다. 양은하 선생님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신명이 난 것이다. 갈옷 입은 승무였다. 고깔이 없어 안타까웠지만 어느 법회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장면이 연출된다. 우도를 탄생시킨 설문대할망이 강림한 듯, 용궁으로 자맥질한 만행이 할망이 되살아온 듯, 우도의 온갖 신들이 양은하 스님과 강방옥 명창님의 몸을 빌어, 넋을 빌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오한욱 교수님이 맞장구를 친다. 두 분은 우도 바닷가 잔디밭 위에 몸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승무와 고고와 탱고가 짬뽕이 된 비빔춤이다. 구름이 흐르는 듯, 파도가 밀려오는 듯. 참석자 모두는 한바탕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한 덩어리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오른다.
양래정 시인은 소꿉동무 임성자 선생의 손을 잡고 더덩실, 안상근 시인은 얼씨구, 홍제선 시인은 절씨구, 만년 소녀 강연옥 시인도 사뿐사뿐 끼어들어 덩실덩실, 고계추 선생님은 군계일학, 서귀포 칠십리 김상호 선생님도 허허덩싹, 이성윤 시인은 시어도 사나, 강경식 시인은 볼만 발그레, 홍기표 시인은 김미정 총무를 가까스로 안아 올려 지화자 좋구나 노을 속으로 줄행랑. 밤바다 어선들 집어등 켜들고 엉거주춤, 우도바다 파도조차 깜짝 놀라 화들짝. 얼쑤! 날아라 훨훨, 저 파도 넘고 저 구름 넘어, 저 하늘 높이높이.
대단한 신명들이다. 이래서 한민족은 신바람 민족이라는 것이다. 신명이 나기만 하면 종달리에서 우도까지 하룻밤이면 다리를 놓으리라.
밤 10시가 넘어서자 바람이 거세지고 몸이 오슬오슬 추워진다. 방으로 옮겼다. 강방옥 명창팀이 강경식 시인의 신청곡이라며 창부타령을 시작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권재효 시인님이 자작시 '대금산조'를 읊는다. 오래 전 쓴 작품인 것 같은데 지금도 달달 외우고 있다. 구성진 목소리가 강재천 명인의 대금소리와 파도소리에 녹아들어 우도의 밤바다를 건너 멀리멀리 여운을 남기며 흘러간다. 강방옥 명창팀의 회심곡이 끝없이 이어지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이른 아침, 일출을 보려고 일어나 핸드폰을 열어보니 밤새 수신전화가 여러통이다. 집에서 온 전화다. 무심코 전화를 걸었더니 다짜고짜 명령이다.
"무시거 허염수꽈. 어제 밤부터 전화허여도 전화도 안받곡. 거긴 바람 안 불엄수꽈? 빨리 배 탕 와붑써. 지금 제주신 어제 밤부터 바람이 장난이 아니우다. 낭덜이 다 꺾어지쿠다. 혼적 옵써 혼적."
밖으로 나가보니 바람소리가 제법 세차다. 빗줄기도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일출봉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안타깝다. 우도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의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나는 허전한 마음에 비를 맞으며 발길 닿는 대로「서빈백사」로 향하였다. 멀리 일출봉이 구름에 몸을 맡기고 축 늘어진 몸짓으로 물끄러미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숨비소리」가 들려왔다. 비 내리는 이 새벽, 바람이 제법 세, 파도 일렁이는데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여명쯤 되는 것 같다. 나는 순간, 파도에 실려오는 그「숨비소리」가 내 고향 조천 옛개「세배코지」어딘가에서 자맥질하고 있을 누나의「숨비소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도 바다 파도가 소리소리 지르며 내 가슴을 쾅쾅 친다.
저승에서 훔쳐온 누나 숨비소리
시/김태일
호오오이~
제주 바당 열두 길 물 속 솟아오른 누나
용궁 올레에서 부활한 듯
저승에서 훔쳐 온 긴 숨비소리
호오이~
저녁 노을 옥색 물치마 바라보며 호오이~
새끼 잔뜩 품어 안은 한라산 올려다보며 호오오이~
그래서 섬이 울었다
파도가 또 그렇게 울었다
누나 눈물은 저승 꽃
제주 바당은 누나의 눈물
이승 문턱 수평선 넘어오며 호오이~
파란 하늘 천국문 다시 올려다보며 호오오이~
제주 바당 폭풍우 집채 같은 파도 속
누나 숨비소리
호오오이~
나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내리는 시적 영감에 휩싸여 비 오는 줄도 모르고「서빈백사」모래밭을 허둥지둥 뛰어 넘어 파도치는 너럭바위 자락 끝에 발돋음 하여, 비바람 속, 파도 속, 저승 문턱 넘어 자맥질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였다.
미망인처럼 머리에 시커먼 면사를 뒤집어쓴 일출봉이 수많은 시어들을 파도에 실어 보낸다. 나는 파도가 구두 안을 기웃거리든 말든 걸신 들린 듯 허겁지겁 시어들을 집어 삼킨다. 나는 포만한 배를 조심조심 쓸어내리며 생명을 잉태한 산모처럼 그냥 뿌듯하였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느지막이 8시 반경에 아침을 마치고 버스를 임대하여 우도 관광 길에 나섰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빗줄기가 그치고 가끔씩 구름 사이로 햇살이 도둑 고양이처럼 비죽이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아마 우도가 「글밭제주」의 귀한 걸음을 알고 자신의 모습을 살짝 보여줄 모양이다. 김미정 총무가 서둘러 버스를 관광용으로 두어 시간 임대하였다.
일행을 모두 태운 버스는 「서빈백사」를 지나 「천진관산」을 향하여 조금 가파른 1차선 고갯길을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멈추어 선다.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서 올라가니 「천진관산」이다. 하지만 역시 구름이 끼어 있어 한라산을 볼 수가 없었다. 언덕 넘어 바로 동쪽 바다 위가 「주간명월」이라 한다. 물 때를 맞추어 썰물일 때 배로 굴 속에 들어가면, 굴 속 벽에 햇빛이 반사하여 둥그렇게 달 형상이 비친다고 하여, 낮인데도 달을 볼 수 있는「주간명월」이란다.
다시 버스로 되돌아와 몸을 맡기니 이내 동쪽으로 건너가 어느 높직한 해안 언덕에서 멎는다. 멀리 「후해석벽」이 보인다. 바로 아래는 가파른 절벽인데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검은 모래사장인 「검멀레」가 펼쳐진다. 그 「검멀레」 끝자락에 자그마한 동굴이 하나 있었다. 고계추 선생님이 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따라오란다. 거기엔 다시 굴 밖으로 나가는 자그마한 통로가 있었다. 다시 해안가 바위 틈을 따라 조금 들어가자 커다란 굴이 다시 나타난다. 옛날에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동안경굴」이다. 정말 커다란 고래처럼 생겼다.
다시 버스는 동쪽 해안을 따라 달린다. 가는 곳마다 바다 위엔 해녀들이 수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비양도 다리를 지나니 하고수동 해수욕장이다. 이 모래는 하얀 보통 모래란다. 우도에서는 세 종류의 해수욕장, 즉 검은 모래 해수욕장, 하얀 모래 해수욕장, 산호 모래 해수욕장을 모두 볼 수 있다던데, 바로 그렇다.「여의도」의 3배 정도밖에 안된다는 이 조그마한 섬이 세 종류의 모래 해수욕장을 모두 갖추고 있다니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우도는 없는 것이 없는 섬인 것 같다. 특히 이 우도 해산물은 제주 어느 해안의 해산물보다도 좋은 양질의 상품이란다. 널미역, 소라, 전복, 기타 모든 해산물이 모두 특품이란다. 어제 저녁 고계추 선생님이 선물하여 구워 먹은 소라만 하더라도 제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양질의 상품이었다. 그렇게 큰 소라는 최근 들어 처음이다.
「우도팔경」은 이 외에도 「야항어범」,「전포망도」,「지두청사」가 있다.「우도팔경」은 향토사학자이기도 한 「김찬흡」교장선생님이 연평중학교에 재직 당시, 1983년 명명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버스는 우도 관광을 마치고 11시 도항선을 타기 위해 서둘러 하우목동 항구를 향하여 달린다.
도항선에 오른 일행은 멀어져가는 우도를 바라보면서 이러저런 상념으로 마음이 착잡한지 모두 말이 없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성산항에 도착한 일행은 동남「고마촌」식당에서 9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마지막 오찬을 함께 하였다.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지 소주 잔이 말을 타, 말고기 구이판 위를 훨훨 날아다닌다. 우도 문학기행의 공식적인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엔「빌레왓」돌담 너머로 낮은 구름떼들이 급히 북녘 바다쪽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말떼와 같다. 현윤조 사장님이 말고기를 얼마나 많이 가져오셨는지 말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모든 게 말처럼 보이는가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우도와 종달리 사이를 너울져 흐르는 파도가 북쪽 한바다로 내달리던 모습도 말떼와 같았다.
그런데 엊저녁 한반도 집중호우로 몇 십명의 인명 피해까지 안긴 장마전선이 남으로 남하중이라는데, 어째서 우리 제주의 바람과 구름과 파도는 북으로만 내닫는가. 아마 남하중인 장마전선과 한바탕 전투라도 벌이려나보다. 제주시가 가까워져도 한라산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러나 제주에는 큰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이제 이「글밭제주」여름 문학기행 후기도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은 명구(名句) 한 마디로 깔끔하게 마치려 한다. 시작할 때 방앗간 참새처럼 너무 쫑알거려서 끝내기라도 화끈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이문열」이 평역한「나관중」의「삼국지」서사(序辭)에 기록된 이 명구(名句)를 너무 좋아한다.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똘똘 뭉쳐 농축시켜 놓은 듯 하다.
'수레바퀴 자욱에 고인 물에 사는 미꾸라지에게는 그 한 말 물이 사해바다에 갈음한다.'
그렇지 않은가. 중국에 비하면 한반도가, 한반도에 비하면 제주도가, 제주도에 비하면 우도가 '수레바퀴 자욱에 고인 한 말 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하늘, 이 바다, 이 땅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이 제주바다가 바로 사해바다요, 우도바다가 바로 사해바다인 것이다. 출륙금지령으로 이 섬에 갖혀 살아야 했던 내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고, 내 할머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또 그렇게 살았다. 마치 이곳이 우주 전체인 것처럼.
지난 6월 9일, 우도 바다 건너 하도리에서 해녀박물관 개관식이 있었다. 우리 제주의 정신이요 상징인 해녀가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뜻있는 제주인들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곳 우도는 1300여명의 상주 인구(주민등록 인구는 1813명) 중 200여명 이상이 해녀라고 한다. 어쩌면 이 제주에서 제주 해녀의 전통을 마지막까지 이어갈 곳이 바로 이 우도가 아닐까 한다.
바라건데, 이 우도를 중심으로 해녀의 전통이 굳게 지켜져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해녀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리기를 기원한다. 현재, 우도 해녀 1인당 연 소득이 4천만원 내외라고 하니, 먼 훗날 해녀 1인당 연 소득이 1억원을 넘어서고 도시 근로자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다면, 다시 해녀의 전성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등과 FTA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제주의 밀감 산업을 대체할 고소득 산업은 관광 산업과 함께 해양 산업이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 제주바다가 세계 사해바다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아름답고 기름진 바다일지도 모른다. 우리 선조들이 출륙금지령으로 갇혀 살던 이 제주가 바로 제주인들이 꿈에도 그리던 환상의 섬, 「이어도」일지도 모른다. 저기, 어느 빌레 틈 모래밭에서 땀에 절은 갈옷을 입고 김을 매던 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그래 그래, 내 새끼. 이 땅이 어떤 땅이고. 이 땅이 바로 이어도여, 이어도. 그래 그래, 내 새끼.'
글을 마무리하며 뒤돌아 보니, 모니터 위엔 노을 소리,「주간명월」에서 피어오른 구름이 우도봉을 휘감는다. 귓가엔 파도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숨비소리.
첫댓글 김태일시인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마치 이시간에도 우도 바닷가에 철렁거리는 파도소리 들리는 듯합니다.강방옥 명창님의 창소리 들리는 듯합니다.강재천명인님의 대금소리, 우도 바다와 어우러진 그 소리 들리는 듯합니다.양은하 수필가와 오한욱 시인님의 우도 바다 파도처럼 너울 너울 춤사위 보이는 듯합니다.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회장님, 별말씀을요. 지금도 제 모니터 앞에는 우도봉을 중심으로 춤추던 그 저녁 노을, 그 파도소리가... ^^ 일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을 회장님과 글밭제주 동인들, 그리고 강방옥 명창팀과 함께 나누게 되어 정말 가슴 뿌듯합니다. ^^
김태일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그려진 선생님의 묘사 덕분에 그 날 그곳으로 선명하게 다시 가볼 수 있었습니다. 멋진 선생님이 계셔서 우리 글밭이 한 층 더 힘이 실리고 빛이 납니다. 김태일 선생님 감사히 잘 읽으며 배워 봅니다.^^*
후기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영상처럼 그날의 일들이 스치는데 밤바다는 기억이..제가 일찍 자는 바람에^^; 그리고 감사합니다...선생님이 계셔서 글밭행사의 후기는 항상 빛이 나는 것 같아요..다음에 뵐 때는 꼭 말로서 감사 드릴께요..
강경식 시인님, 김미정 시인님, 한 알의 빗방울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방울의 물방울을 보탰을 뿐인데, 수고는요. 김미정 총무님과 강경식 시인님의 며칠간의 수고에 비하면, 제 수고란, 저 하늘 떠가는 구름, 잠 못 이룬 하룻밤의 설레임... ^^
오늘 전 또 우도에 갔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그린 팬션을 지나가면서 얼마 전 문학기행의 시간들을 회상했답니다. 김태일 선생님을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급요리를 먹은것 같은 잊지못할 맛이 내내 남아 행복하게 하는 문학기행이었습니다. 회장님, 총무님, 강경식 시인님, 덕분에 호강했습니다. 우도봉에서 피워내는 사랑꽃을 봐야 되는데 ....(화가와 보일러공) 오댕장사하며 20,000원미면 내 얼굴을 그려 준데요
아빠~^^꼬릿말 달려고 했더니 권한이 없다네요. 조금 전에 카페 가입했어요.^^ 아빠가 쓰신 문학기행 후기 잘 읽었어요.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아빠 1박 2일 일정으로 우도 다녀오시고 며칠동안 설레서 잠도 잘 못 주무셨을 것 같아요. 그쵸?ㅎㅎ 여러 시인님들과 좋은 추억 만드시고 오셔서 딸인 제가 더 행복하네요. 사랑하는 아빠~"자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하늘, 이 바다, 이 땅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말 처럼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하늘, 땅(바다는 없네...ㅎㅎ)에서 감사하는 마음 지니면서 최선을 다할께요. 아자아자!
一筆揮之로 달리는 문체들로 마치 저도 함께한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세심하게 빼놓지 않은 순간들을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 합니다. 모두들 행복한 시간들었네요...저도 덩달아 우도 백사장으로 잠시 순간으로 다녀갑니다. 회장님 이하 동인님들의 건강한 모습들과 함께 합니다. 늘 건승하소서^^*
오늘은 기분 좋은날입니다..고명따님 오셨고 저 멀리 중국에 계신 민들레님께서 오셨으니 이 아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모두들 고맙습니다.
아이구, 어쩌나, 그동안 여러 선생님들이 이렇게 다녀 가신 줄도 모르고... ^^ 김상호 선생님, 다시 우도에 같다 오셨군요. 저도 또 가고 싶답니다. ^^ 양래정 선생님, 그렇지요? 저는 그 커다란 소라를 잊지 못한 답니다. ^^ 오, 내 가슴에 뜨는 달, 진경이구나. 7월에 다녀 갔는데 이제야 답장을 하는구나. 이해하거라. 아빠가 좀 게을렀나 보다. ^^ 강갑순 시인님, 강시인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군요. 눈앞에 선합니다. ^^ 아이구, 회장님도 다녀 가셨군요. 이렇게 게을러서야 어떻게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갈지, 반성 좀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 여러 회원님들, 너무 답장이 늦어 거듭 사죄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