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 의하면 이라발(Elapattra)용왕이 과거 가섭불(迦葉佛)시대에
한 비구(比丘)로 있으면서 이라수(伊羅樹)라는 나무를 꺽은 죄로
이라발 용왕이 되었는데,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려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실 때 만나뵈어야 한다는 수기(授記, 예언의 뜻)를 받는다. 그래서
무수한 세월을 기다리는데 마침 석가모니불이 성불(成佛,부처가
된다는 뜻)하시었다는 소식을 친구인 상구 용왕의 궁에서 다른 친구인
금제야차(金齊夜叉)로부터 듣는다.
그래서 상구 용왕의 딸인 절세미인과 금은보화를 상금으로 걸고 부처님을
만나뵐 방도를 세상에 묻게 되고, 당시 세상에서 현자로 추앙되던
나라타가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게 되는데,
이라발 용왕은 너무나 기뻐서 한 달음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려가려고
서둘다보니 머리는 벌써 부처님 계신 곳에 와 닿았으나 꼬리는 아직
수천리밖에 자기의 용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부처님 앞에는
청년 바라문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뵙고 장차 미륵불이 출현할
시기에 다시 인간이 될 수기를 받는데, 이를 지켜보던 나라타가
부처님의 성스러운 교화에 감격하여 무리를 이끌고 불타의 제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복잡한 설화의 내용을 한 장면으로 압축 표현하기 위하여 배경
처리는 평면으로 펼쳐보이는 수직 시각으로 처리하고 인물과 나무는
수평 시각으로 처리하는 이중 시각법으로 화면 구성을 이루어서
투시도법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매우 어색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땅히 표현되어야 할 부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부처의 존재를 암시하는 불좌(佛座, 부처가 깔고 앉는 좌대)와 녹야원(鹿野苑,
부처가 맨처음 설법하였던 곳)의 설법을 상징하는 니구류(尼拘類)나무가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이 당시에 부처를 인격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금기(禁忌)로 여기는 전통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당시의 모든 불전도나 본생도(本生圖; 부처의 전생을 주제로 한
그림)에 적용되었던 원칙이었다. 즉 아직 인격신상(人格神像)에
대한 예배의 경험이 없던 인도인들에게 부처를 인격신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경(不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니구류 나무 아래 대좌(臺座)를 향하여 합장하고 꿇어앉은 이라발
용왕과 물속에 잠겨 있는 상구 용왕을 비롯한 두 명의 용녀(龍女)들이
보인다. 즉 터번을 쓴 머리 위에 다섯 개 머리가 달린 오두룡(五頭龍)의
모습이 장식되어 용족(龍族)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머리만 먼저
왔다는 오두룡(이라발 용왕)의 두상(頭像)이 물 속에 크게 표현되었으며
그 위로 금제야차가 보이고, 손길로 가리키며 길을 안내하는 나라타
선인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모두 논둑처럼 생긴 육지로 양분된
물 속에 잠긴 듯 표현된 것은 용궁임을 강조하려는 화면 구성의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수면을 상징하기 위하여 연꽃과 연잎들을
어지럽게 배치하고 물결무늬라 생각되는 종횡의 선들을 산만하고
불규칙하게 표현하였으며, 육지에는 떡잎 모양의 유치한 나무 표현이
있고 물 위를 나는 오리의 소박한 표현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표현 기법이 매우 유치하고 표현 의욕이 너무 지나쳐 회화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더구나 앞서 살펴 본 "아쇼카왕
사자기둥 머리"의 사실적인 표현기법과 비교해 볼 때 두드러진
양식적 퇴보 현상인데 , 이는 외래 미술 양식을 받아들여 자기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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