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백산 산행(20201115) : 러시아 겨울 궁전을 환상하다
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비로봉 삼거리-어의곡리
1.죽령 이야기
소백산 비로봉에 오르기 위해 죽령에 다시 왔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소백산 국립공원 죽령분소 앞 죽령휴게소 주차장에서 송백산악회 대원들이 재빠르게 죽령탐방로를 따라 죽령탐방지원센터로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백두대간 죽령 표석을 오랜만에 보고 싶어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충북 단양에서 죽령을 넘어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죽령주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서라벌의 신라가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첫 번째로 개척한 고개가 하늘재(계립령)이고, 두 번째로 개척한 고개가 죽령이다.
'영남 관문 죽령' 표석에서는 죽령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간다는 아흔아홉굽이 죽령은 영남과 기호를 넘나드는 길목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깊고 이름난 중요한 관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158년)에 신라 사람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하였다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으며 한때는 고구려와 국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와 조선조 시대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길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신라 초기의 죽죽이란 인물이 실제했으며 그가 정말로 이 고개를 개척했다는 기록이 있는가이다. 반면에 산림청·경상북도·영주시·국립공원관리공단소백산사무소가 2006년 12월 6일에 세운 '백두대간 죽령' 표석 기단석 앞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서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수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소백산을 넘는 죽령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의 삼관문의 하나로 그 중에서 으뜸으로 손꼽혀 왔다."
여기서는 죽령의 개척 시기는 '영남 관문 죽령' 표석의 설명글과 같이 아달라왕 때로 보고 있지만, 죽죽이라는 구체적 인물이 개척했다는 언급이 없으며 도승의 설화에서 죽령 지명의 유래를 찾고 있다. 이렇게 보면 죽령은 역사의 구체적 어떤 인물이 개척했다기보다는 아달라왕 때 수많은 민중들의 노역으로 개척된 뒤 어떤 설화적 내용이 개입되어 우리말로 지어진 어떤 이름이 중국에서 한문이 보급된 이후 竹嶺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을 듯싶다.
이렇게 개척된 죽령에는 이곳을 넘나드는 숱한 애환이 깃들어 있는데, 조선조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와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 사이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교유(交遊)로 지금까지도 빛난다.
명현(名賢) 이현보는 많은 벼슬을 거쳐 형조참판과 호조참판을 지냈다. 임금님에게 사직을 간절히 원했으나 임금의 극진한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542년(中宗 37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됐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둔다. 그해 7월 안동으로 낙향하는 길, 풍기 군수로 벼슬하고 있던 주세붕이 나귀에 술을 싣고 죽령에 와서, 귀향(歸鄕)하는 선배 이현보를 마중한다. 높은 학식과 덕성으로 선비들의 우러름을 모은 두 사람은 30여 년 선후배였으나 뜻을 같이하는 자별한 사이였다. 벼슬길의 주세붕과 벼슬에서 물러난 이현보가 죽령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나눈 漢詩의 깊은 뜻이 오랜 세월을 건너 오늘에도 감동을 준다.
草草行裝白首郞(초초행장백수랑) 초라한 행장에 흰 머리카락 사내가
秋風匹馬嶺途長(추풍필마령도장) 가을바람 불 때 죽령 먼 길을 말 타고 가는데
莫言林下稀相見(막언림하희상견) 나무 밑에 모처럼 만난 사람과 말하지 말라.
落葉歸根自是裳(낙엽귀근자족상)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니라.
-이현보(李賢輔,1467~1555)
飄飄歸興趁漁郞(표표귀흥진어랑) 나부끼듯 흥겹게 돌아가는 어부같이
直沂驪江玉帶長(직기려강옥대장) 곧바로 긴 한강을 거슬러 왔네.
今日竹領回首意(금일죽령회수의) 오늘 죽령으로 돌아온 뜻은
乾坤萬古是綱常(건곤만고시강상) 세상 만고의 윤리와 도덕(綱常)이 아니랴.
-주세붕(周世鵬, 1495~1554)
서울 쪽을 향해 돌아보니 궁궐이 천 리 밖에 있구나.
고깃배에 누워 있은들 나랏일을 잊은 적이 있겠는가?
두어라, 내가 근심하지 않아도 세상을 구제할 어진 인물이 없겠는가?
-이현보의 '漁父歌' 중 제5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님 아니시면 내 몸이 없었으리.
이 덕을 갚으려 하니 하늘처럼 끝이 없도다.
-주세봉의 '오륜가' 중 제2수
*이현보(李賢輔), 1467년(세조 13)~1555년(명종 10)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예안 출신. 아버지는 참찬 이흠(李欽)이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됐다. 이때에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후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됐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둔다.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교유했으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시를 지으며 한가롭게 보냈다.
저서로는 『농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전하여오던 「어부가(漁父歌)」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效嚬歌)」·「농암가(聾巖歌)」·「생일가(生日歌)」 등의 시조작품 8수가 전한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학사에서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세붕(周世鵬), 1495년(연산군1)~1554년(명종9)
이조·병조 참판을 지낸 방유령(方有寧)의 문인으로 서원을 창시한 조선의 학자·문신이다. 본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이며, 시호 문민(文敏)이다.
그는 1522년(중종 1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어 사가독서한 후 검열·부수찬 등을 지내다가 이항의 소지를 공공연한 자리에 꺼낸 문제와 관련하여,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 후 곤양 군수를 거쳐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여러 가지의 일화들을 남겼다.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재산 문제로 동생과 다툰 한 백성이 있었는데, 주세붕은 그 형으로 하여금 제 아우를 업고 종일 동헌의 뜰을 돌게 하였다. 그가 몹시 지치게 되었을 때에 불러 ‘어릴적 동생을 업어 기를 때에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가졌었느냐?' 하니 자신의 욕심을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세붕을 비웃었으나 얼마 안가 그의 솜씨에 감복하였다. 실록의 사관은 '유학을 겨우 알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다.'라고 그를 평했다.
1542년(중종 37) 백운동에 고려 말의 학자 안향의 사당을 세웠다. 이듬해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1541년 5월 22일의 실록에서는 '사당의 좌우에 학교를 세워 유생이 거처하는 곳으로 하고, 약간의 곡식을 저축하고, 이자를 받아서, 고을 안의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 준수한 자가 모여 먹고 배우게 하였다. 당초 터를 닦을 때에 땅을 파다가 구리 그릇 3백여 근을 얻어 중국에서 책을 사왔는데, 경서(經書)뿐만 아니라 무릇 정·주(程朱)의 서적도 없는 것이 없었으며, 권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항<李恒, 1499년(연산군5)~1576년(선조9>의 분경(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로 벼슬을 얻기 위해 집정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엽관운동(獵官運動)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타 학문에 대한 유연한 사고방식과 백성을 위한 마음가짐의 선비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기록했다.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털어가면서 백성들을 구황하였는데, 그의 구황실적은 도내 제일이었다. 풍기 군수에 제수된지 1년 뒤 조정에서는 이와 관련한 포상문제를 논하였다. 그 후 직제학·도승지·대사성·호조 참판을 역임하고, 1551년 황해 감사로 있을 때 해주에 수양 서원(문헌 서원)을 창설하였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죽은 후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위키백과
영주에서 다시 죽령을 넘어 국립공원 '죽령 옛고개명품마을' 안내 표지목이 있는 단양으로 되돌아왔다. 2012년에 9번째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선정된 단양의 '죽령 옛고개명품마을'은 소백산 도솔봉 북쪽 죽령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죽령 옛고개명품마을'을 내려볼 수 있는 곳에 명품마을과 죽령 산신 다자구 할머니 설화를 소개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 표지판 설명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는 소백산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죽령 산신당에서 해마다 죽령산신 다자구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 설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이곳에는 산적들이 밤낮으로 나타나 백성을 괴롭혔는데, 산이 험준하여 관군도 산적을 토벌하기 힘들었다. 이 때 한 할머니가 나타나서 산적소굴에 들어가 ‘다자구야’하면 산적이 자고 있는 것이고, ‘덜자구야’하면 도둑이 안자고 있는 것으로 관군과 계획을 짰다. 두목의 생일날 밤 술에 취해 산적이 모두 잠들자 할머니가 ‘다자구야’라고 외쳐 이 소리를 들은 관군이 산적을 모두 소탕하였다. 그런 다음 할머니를 찾았으나 할머니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그제서야 사람들은 할머니가 죽령산신임을 깨닫고 죽령산신을 다자구할머니라 부르게 되었으며 나라에서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고 한다. 신당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1948년 3월 8일에 주민의 성금으로 새로 고쳐 만들어졌다. 제사의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죽령산신당에 대한 믿음이 깊이 남아 있다.
죽령 옛고개명품마을과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 설화 내용을 살피고서 뒤돌아서서 동쪽 죽령분소로 건너왔다. 앞서서 출발한 송백산악회 일행들을 따라가기 위해 서두른다고 했지만 15분이 흐른 뒤였다.
2.러시아 겨울 궁전을 걷는 환상
소백산국립공원 죽령분소 옆 죽령탐방로 입구에 들어서서 소백산 비로봉 산행을 시작한다. 어제 남파랑길 23.5km를 걸은 탓에 무릎과 허벅지근육이 몹시 불편하다. 오늘 선두 일행이 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재-어의곡리로 내려온다고 하니, 비로봉-비로봉삼거리-어의곡리로 내려가는 내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니 일행을 좇아서 허겁지겁 무리하게 따르지 말고, 무릎과 허벅지를 달래며 천천히 걸어가자. 풍경을 마음껏 호흡하며 나홀로 웰빙산행을 즐겨보자. 이런 마음을 알았을까? 죽령탐방로 입구의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4.5km, 소백산 천문대 6.8km, 두 개의 당당한 표석이 흐트러진 목표의식을 꼿꼿이 세워준다. 소백산 천문대까지 딱딱한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걷는 길이 언제나 지루하고 팍팍하지만 연화봉에서부터 제1연화봉-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산줄기 4.3km 산행은 늘 가슴이 벅차다.
죽령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행길에 오르니 남녀 산객 둘이 두 손을 다정히 잡고서 앞서서 걷는다. 그들을 앞지르며 물으니 제천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였으며 소백산 비로봉에 오른 뒤 다시 죽령으로 회귀한다고 한다. 중년의 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아름답다. 영원한 사랑의 모습 같다. 저 모습은 살아서만의 사랑을 뛰어넘어 죽음 저편까지 이어질 것이다.
죽령탐방로에 예전에는 없던 야자매트를 길 한쪽에 좁게 깔아 놓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딱딱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걷는 산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이리라. 야자매트길은 제2연화봉 아래서 끝난다. 인공의 야자매트보다 그냥 흙길로 놓아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탐방로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여러 쉼터를 설치하여 그 쉼터에 각각 이름을 붙여 놓았다. 예전에는 휙휙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그 쉼터 이름을 헤아리며 걸어가기로 하였다. 첫 번째로 만난 쉼터는 이야기쉼터, 탐방로 왼쪽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는 수리취, 산국, 진범 등의 풀꽃들을 소개하며 계절별로 본 풀꽃들의 세상살이를 소개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처음으로 지리산의 수리취를 찾았을 때, 산국과 감국의 차이점을 알고서 구별할 때, 오리가 줄지어 가는 모양의 보랏빛 꽃이 진범임을 알았을 때, 그 가슴떨림이 되살아난다. 산행하며 발견한 수많은 풀꽃들이 들어있는 내 사진첩 속 무수한 생명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발견과 감격의 순간은 오직 혼자만의 감동으로 가슴 속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이야기쉼터를 지나 만나는 잣나무쉼터, 그 입구에는 긴 나무의자 몇 개가 설치되어 있고 잣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잣나무쉼터를 지나면서 제2연화봉에 우뚝한 새하얀 건물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슴 부풀리는 백색의 강우레이더관측소 건물에 올라볼 수 있을까?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힘들겠어. 그럼 전망대에 올라서 소백산 주변을 파노라마로 조망해 볼 날이 언제일까?
이어서 만나는 혜성쉼터에는 사각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국립공원', '숲이 주는 다양한 혜택', '혜성'에 대해 설명하는 세 개의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국립공원'과 '숲이 주는 다양한 혜택'의 각 설명안내판에는,
국립공원이란?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서, 이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가가 지정 관리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소백산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21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고, 이중 20개 국립공원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하는 일은 자원에 대한 조사 연구, 탐방프로그램 운영, 공원시설 관리 등입니다.
우리 약속해요
1.싫어요! 과일껍질-과일껍질은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껍질에 남아 있는 농약은 땅과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됩니다.
2. 아파요! 꺾지 마세요-아름다운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3.안돼요! "야~호"-"야~호" 하는 소리에 숲 속 친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대신 마음을 활짝 열고 숲 속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어떨까요?
숲이 주는 다양한 혜택
1.산소공장 : 1ha 당 45명분의 산소 공급-숲은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2.공기정화기 : 숲은 더러워진 공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3.자동재해방지센터 : 내리는 비의 양 35%를 지하수로 흡수-숲은 기후를 알맞게 조절해 줍니다.
4.아름다운 방음벽 : 숲은 시끄러운 소리를 감소시켜 줍니다.
5.녹색댐, 정수기 : 숲은 물을 담아두는 가장 큰 저수지입니다.
6.야생동물의 집 : 야생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합니다.
설명안내판을 옮기면서 숲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고 산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이 쉽지만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쉬운 일들을 실천하지 않는 주위의 산객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해야 할까? 이들 설명안내판들을 읽은 뒤 혜성쉼터 덱에 설치된 혜성에 대한 해설판을 사진으로 담고서 떠난다.
혜성쉼터를 지나면서 탐방로 왼쪽 좁게 깔린 야자매트를 밟으며 걸었다. 야자매트에 떨어져 발에 짓밟혀 뭉개진 노박덩굴 붉은 열매와 노란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노박덩굴이 어디에 있지? 그 위쪽 길가에 노란 껍질을 단 붉은 열매들이 빛나는 노박덩굴이 보였다. 봄이 꽃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달려가는 계절의 흐름에서 노박덩굴은 붉은 열매들을 햇빛에 더 고혹적으로 반짝이게 한다. 새들이 이 열매들을 먹어 그 씨앗들이 더 많이 더 멀리 퍼져서, 종자들이 무성하기를 바라는 노박덩굴의 끈질긴 노력은 인간의 후손 사랑과 무엇이 다를까?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강원도 평창의 동대산에 오르면서 노박덩굴 뷹은 열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서당개 3년이면 풍얼 읊는다'고 송백산악회 산벗님들께 얻어들은 식물의 꽃과 열매들에 대한 배움으로 그 고유한 역할들을 깨닫게 되면서 혼자서 가슴 벅차게 기뻐하였다. 식물의 간고한 노력을 배웠으면 세월의 시간들에서 노박덩굴처럼 현실적으로 자식들에게 큰 사랑을 퍼부어야 하였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노박덩굴에 경의를 표하며 자식들에게 쏟은 내 정성과 노력의 부족에 부끄럽고 죄스러워 고개를 숙이니,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야자매트에 떨어져 으깨어진 열매들의 모습이 애달프게 내려다 보인다.
바람고개전망대가 오른쪽에 보인다. 약 50분이 걸려서 죽령휴게소에서 2.5km 지점의 바람고개 전망대에 이르렀다. 태양계에서 3번째로 큰 별 천왕성 해설판이 세워져 있다. 천왕성은 1781년 영국의 허셜이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하여 허셜의 별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바람고개전망대에서 남쪽 풍기 풍경을 조망하지만 미세먼지 탓에 부옇기만 하다. 바람(風)이 쓸쓸히 불어오는 바람고개에서 나는 어떤 바람(願)을 찾아야 할까?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 개인적인 것보다는 좀더 큰 영역에서 민족과 세계, 인류의 문제? 미세먼지는 내 바람(願)마저 희부옇게 만들어 풍기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나는 허둥허둥 탐방로로 나서는 길밖에.
길 오른쪽에 ←8.0km 비로봉, ←3.7km 연화봉, 죽령주차장 3.3km→ 이정목과 간이화장실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 방향이 활짝 트여서 연화봉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연화봉 왼쪽 아래에 소백산 천문대도 머리를 세우고 있다. 그곳에서 5분여 길을 따라 오르면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흰 머리를 내보이기 시작하고 헐벗은 물푸레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의 풍경은 대체로 가장 삭막해 보인다. 가을의 화려한 단풍 시절이 끝나고 겨울의 풍성한 함박눈 시절은 돌아오지 않은 탓에 이 시기의 풍경이 가장 쌀쌀맞고 적막해 보인다. 이 느낌에 죽령탐방로 이 지점의 풍경이 꼭 일치하는 듯하다. 흑갈색 수피들이 이런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북돋운다.
이 지점에서 두 번의 산굽이를 돌아서 10분쯤 걸으면 탁 트인 길 앞쪽 제2연화봉에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새하얀 건물이 하늘로 치솟아 우뚝한 풍경을 마주한다. 이 풍경이 조금 전의 적막하고 쌀쌀맞고 메마른 감각을 씻어내고 가슴 따스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낸다. 저 순백의 건물을 볼 때마다 이상스럽게 러시아 겨울궁전의 눈 덮인 풍경을 환상하며 영화 '닥터 지바고'의 유리와 라라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영상을 떠올린다. 그 환상은 2018년 2월 4일 입춘날 소백산 비로봉 산행 때의 환상적 雪景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 雪景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산 위에 우뚝 솟은 하얀색 건물은 이국적 낭만을 일으키고 그 흰빛은 러시아 겨울 궁전을 떠올리며, 그 상상의 끝에 순백의 함박눈이 끝없이 내려서 대지를 뒤덮는 풍경이 떠오른다. 제2연화봉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새하얀 건물을 마주하면 언제나 이런 환상에 잠겨서 사랑의 열정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환상 속으로 유리와 라라가 걸어나오고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른다.
제2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세워져 있어서 마루금으로 산행하지 못하고 제2연화봉 둘레를 돌아야 한다. 그 갈림목에 백두대간 제2연화봉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야자매트는 제2연화봉 오르는 길로 이어지고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죽령탐방로에는 야자매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한 굽이를 돌아가면 왼쪽 넓은 빈터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아름다운 고리를 가진 행성인 토성에 대한 해설판이 있어서 이곳을 고리전망대라고 이르는 듯하다. 남쪽으로는 제2연화봉이 가로막고 있고 북동쪽이 활짝 열린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남한강 도담삼봉이 조망될 터인데 미세먼지로 가득하여 북쪽 풍경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 대신에 동북쪽으로는 연화봉과 소백산 천문대가 분명히 보이고 멀리 비로봉이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제2연화봉까지 딱딱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팍팍하게 걷다가 또 왼쪽 좁은 야자매트 깔린 곳을 느긋하게 걷기도 하면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고리전망대에서 충분히 조망을 마치고 이제 서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질량이 지구의 300배가 넘는 가장 큰 행성, 그래서 행성의 왕이라 불리는 목성 해설판이 있는 '목성 숲' 덱,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수많은 돌덩어리들이 그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돌덩어리들을 가리켜 소행성이라 부른다. 그래서 소행성을 태양계의 작은 가족이라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한 소행성 해설판이 있는 '소행성 나무' 덱, "토양의 70%가 녹슨 철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붉게 보이는" 행성인 화성을 설명한 해설판이 있는 '화성 별동산' 덱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첨성대 모습을 본뜬 건축물이 있는 소백산 천문대가 나온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여기서 끝나고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 그 동쪽 언덕에 "지구는 액체 상태의 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행성으로 표면의 71%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 푸른 행성으로 보인다.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온도와 대기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라는 '지구, 인간의 고향, 푸른 행성' 지구에 대한 해설판이 있는 '지구 마을' 덱을 지나면, 마지막 화장실이 있는 연화봉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왼쪽 길은 연화봉을 거치지 않고 비로봉으로 이어지고 곧바른 길은 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 왼쪽에 "금성은 크기와 지름, 질량, 표면 중력 등이 지구와 거의 비슷해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금성은 태양과 달을 빼고는 하늘에서 가장 밝으며, 새벽녘 동쪽에 밝게 빛나는 금성을 '샛별', 초저녁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별'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적힌 별빛탐방로의 금성 해설판 덱,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으로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관측하기 어려운 천체이다. 낮에는 350도 밤에는 영하 170도로 온도차가 심하고 대기가 없어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수성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야생화밭의 '죽음의 행성'이라 불리는 수성 해설판 덱을 지나, 드디어 연화봉에 오른다.
제5회 소백산 철쭉제를 기념하여 1987년 5월 31일에 세운 연화봉 정상 표석이 의젓하다. 해맞이전망대에는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으로서 작용하며, 행성·소행성·혜성들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그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은 지구 지름의 109배나 되는 큰 크기를 갖지만, 지구에서 약 1억5000만 km나 떨어져 있어 동전보다도 작게 보인다."는 태양해설판이 있다. 그 옆에 행성의 상대적 거리에 따라 죽령탐방로에 설치한 행성해설판의 위치 안내도인 '태양계의 크기를 체험하자'는 해설판이 있는데 이 안내도를 상세히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관심의 부족과 무지의 소산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즐긴다. 소백산 여러 산행 중 이번 산행을 통하여 소백산천문대에서 설치한 행성해설판의 실제적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연화봉에서 사방이 활짝 열려 있어 조망이 좋다. 제2연화봉과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연화봉 정상 아래 첨성대 모양을 본뜬 건축물 소백산 천문대가 아름답다. 동쪽으로는 제1연화봉과 비로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 속의 나는 진흙 속에 피어난 맑은 연꽃 봉오리 속에 서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로봉 서쪽의 세 개의 연화봉 중심에 연화봉이 있다. 연화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제1연화봉, 서쪽에 제2연화봉이 펼쳐진 모습은 연꽃 세 봉오리가 꽃을 피운 형상이다. 또는 세 산봉우리를 연꽃 한 송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은 꽃잎이고 연화봉은 花心을 이루는 꽃술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연꽃 봉오리에서 맑은 향기가 피어오른다. 향기에 취하고 향기에 정화되어 마음이 향기를 타고 흘러간다. 몸이 새털보다 더 가벼워져 비로봉으로 날아간다.
3.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4.3km, 앞선 일행들은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을 향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소백산 죽령-비로봉 산행의 제 맛은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것은 엄밀하게 산행이 아니다. 그 길에서 굳어진 몸은 가벼워지고 팍팍해진 다리에서 힘이 솟아난다. 연화봉에서 내려서는 참나무 군락지 숲빛은 흑갈색, 쓸쓸한 숲의 초겨울 풍경이다. 그러나 참나무 가지의 단단한 근육질에 시련을 물리치는 강인한 의지가 굳어있다. 역도선수의 근육 같다는 사과나무와 경쟁하듯 구불구불한 가지들을 하늘로 내뻗고 있다. 참나무들은 권투선수처럼, 레슬링선수처럼 돌격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스래나무와 거제수 줄기와 가지들도 참나무 군락지에 섞여서 어떤 시련이든 함께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흑갈색 메마른 풍경에 스산해진 마음은 산죽밭 초록빛 반짝이는 풍경을 보고 샘물을 마시는 기분이 된다. 산죽밭을 지나면 '비로봉 3km, 연화봉 1.3km' 이정목이 있는 빈터에 이른다. 뒤돌아보면 연화봉 두 봉우리와 소백산천문대,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서쪽으로 향하는 햇살에 역광으로 빛난다. 갑자기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제1연화봉 서쪽의 전위봉을 오르다가, 그 어깨를 오른쪽으로 감아가는 모퉁이 비탈에서 멈추었다. 2018년 2월 4일 이곳에서 후미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었다. 낙엽은 깔려 있으며, 바람은 고요하고 햇볕이 바른 언덕에 그들은 없다. 이번엔 나 홀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멀리 앞서간 일행들과 함께 걷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마른 빵을 꾸역꾸역 씹으며 커피를 마셨다.
점심을 먹고 몸을 일으키니 오후 1시를 넘은 시각이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더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두 일행이 국망봉을 거쳐 어의곡리로 내려온다고 해도 더 늦을 수 있다. 제1연화봉 아래 비상구급약품함이 설치되어 있는 빈터에서 동북쪽이 활짝 열려 있다.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제1연화봉 오르는 급경사 나무덱에서는 걸어온 풍경을 반드시 뒤돌아보아야 한다. 삶이란 회고와 성찰이요, 동경과 의지가 아닐까? 목표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면 성찰이 부족하고, 목표에서 벗어나 뒤돌아보는 데만 집착하면 성취가 작아진다. 걸어갈 이 길이 나를 끌고, 걸어온 저 길이 나를 민다.
제1연화봉 오르는 덱을 힘겹게 오르면 제1연화봉 이정목에 이른다. 제1연화봉은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야 하지만 출입금지 구역, 예전에 오른 적도 있어서 그냥 통과한다. 나무덱을 올라섰다가 '아고산지대'와 '천상의 화원 소백산 연분홍 철쭉꽃' 두 개의 설명안내판을 지나면 소백산 능선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소백산 산행 풍경의 으뜸이요 백미이다. 이 능선길 풍경에 견줄 만한 풍경은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내 일천한 산행 체험에서 찾아보자면 초점산-대덕산 능선길일까? 지리산 연하봉-촛대봉 능선길일까? 그러나 소백산 비로봉 이 능선길만큼 활짝 열리면서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에 모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이 능선길에 백설이 덮이는 풍경은 장관이다. 2018년 2월 4일 입춘날의 송백산악회 산행에서 박중훈 대장님, 낙원님과 오기님 부부와 함께 이 구간에서 즐긴 雪景의 추억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천동계곡 갈림목을 지나 비로봉까지 600m의 길을 따라 오른다. 아무 거칠 것이 없이 펼쳐진 북쪽 비탈면에 함초롬한 주목나무들이 푸르르게 싱그럽다. 비로봉 칼바람을 이겨내는 나무들에 경탄하면서도 이들의 고난과 시련을 생각하면 괜스레 애처롭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동요 '겨울 나무'를 조용히 웅얼거려 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이원수/시, 정제문/곡, 겨울 나무)
초겨울 오후의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천동계곡 갈림목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야자매트가 깔린 덱을 성큼성큼 걷는다. 8분이 걸려서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2주 전에 왔을 때는 짙은 운무에 비바람이 몰아쳐 잠시도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햇살이 빛나고 바람은 거세지만 비로봉 칼바람으로서는 온순한 편이다. 산객들이 한산하여 정상 표석을 배경하여 편안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표석 앞면엔 小白山 毘盧峯 1,439.5m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서거정의 소백산 漢詩가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小白山連太白山(소백산련태백산)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逶迤百里挿雲間(위이백리삽운간) 백 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에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분명획진동남계)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서
地設天成鬼破慳(지설천성귀파간) 하늘과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小白山'
소백산 비로봉에서 소백산 사방을 조망해 보지만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視界가 멀지 않고 흐릿하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서쪽 죽령 너머의 도솔봉은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국망봉과 상월봉 그리고 신선봉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지라 잘 보인다. 소백산 산봉들의 이름과 그 이름에 깃들인 정신적 지향을 생각해 본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서쪽 산봉우리 이름은 모두 불교적이다. 비로자나불의 비로봉,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맑고 향기로운 연꽃의 연화봉, 도솔천의 도솔봉 등이 불교 이름이다. 소백산 남쪽 기슭의 여러 사찰 초암사·비로사·희방사 등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더 큰 영향은 고치령 동쪽 봉황산 기슭의 부석사가 끼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산 풍경이 도승들에게 서방정토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들이 소백산 서쪽 산봉들에 불가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서쪽의 세 연화봉 산봉을 연꽃 한 송이로 보든 세 송이로 보든 이 산봉들은 비로봉의 비로자나불을 향해 연꽃을 바치며 불공의 예를 올리는 형상이다. 그래서 이 산봉들은 죽령 너머 피안의 극락세계 도솔봉의 도솔천으로 해탈해 간다고 도승들이 생각했을 법도 하다.
소백산 비로봉 동쪽의 국망봉은 유가적 이름이다. 예로부터 선비는 나랏일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우국지사를 선비다운 선비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초암사에서 국망봉으로 올라와 산행한 뒤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산행기를 남겼으니 國望峰에 담긴 뜻이 이해된다. 그 동북쪽에 위치한 상월봉은 민속적인 듯 도가적이고 신선봉은 도가적이다. 이 두 산봉 이름에서는 현실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소백산 비로봉을 내려선다.
국망봉·어의곡리·비로봉 갈림목에서 어의곡리로 하산한다. 아무런 잡념 없이 발걸음이 가볍다. 그래도 무념무상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국망봉을 거쳐 늦은맥이재에서 하산하는 선두 일행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나보다 빠르게 어의곡리에 도착할까? 아침에 만난 중년 부부, 두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죽령탐방로를 따라오르던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리막 비탈길을 빠르게 내려간다. 2주전 어의곡리에서 비로봉에 오를 때 평택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가 휴식을 취하던 곳을 지나간다.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이 낭랑하게 들려온다. 여기서 비로봉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그들의 뒷소식이 궁금해진다. 더 내려가서 다리를 건넌다. 2주전 만난 3대 가족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젊은 부부와 그의 아들, 그 꼬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천에서 왔다고 하는 그들 3대 가족의 소백산 산행 이야기도 듣고 싶다.
어느새 소백산북부사무소 어의곡리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어의곡리 주차장에 이른다. 대모산님, 어디세요? 사랑별님이 전화를 걸어서 내게 묻는다. 무어라고 답변해야 할까? 목표 지점에 거의 다 왔다는 말밖에. 지척의 송백임시본부 홍가네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3시 37분이다. 걸은 거리17.5km, 걸린 시간 5시간 48분, 이틀 연속하여 걸어서 몸은 몹시 무겁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행복하였다.
4.죽령탐방로 행성 해설판을 따라서
죽령탐방로에 왜 행성 해설판들을 설치하였을까? 소백산 천문대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다면 그 거리와 위치는 임의적으로 정하였을까? 그동안 아무 개념 없이 해설판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이번 산행 때 연화봉 해맞이전망대에서 '태양계의 크기를 체험하자' 해설판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태양계의 크기를 체험하자' 해설판의 내용은 이렇다.
"연화봉 정상을 시작으로 죽령휴게소까지의 약 7km 구간에는 거리 축적에 맞는 위치에 각 행성에 대한 정보를 담은 각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탐방로를 걸으며 태양계의 크기와 상대적 거리를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설판의 위치에 대한 아무 개념 없이 죽령탐방로를 허겁지겁 걷기만 했는데 이제서야 해설판 위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연화봉의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의 크기와 상대적 거리에 따라 죽령탐방로에 행성의 해설판을 설치했음을 알게 되었다. 죽령주차장이 명왕성 광장, 태양계탐방로 입구에 해왕성해설판이 있으며, 恒星 태양을 공전하는 行星에서 2006년 명왕성이 제외되어 행성은 8개(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로 보고 있음도 알았다. 국립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에서 죽령 탐방로에 설치한 10개의 해설판을 정리한다. 해왕성을 제외한 7개 행성해설판에 혜성과 소행성 그리고 행성들을 거느린 태양, 이렇게 3개의 해설판을 더하여 10개의 해설판을 정리해 보았다.각 해설판 위치는 괄호 안에 적는다. 그동안 무지했던 것들이 빛을 찾아 하늘의 무지개로 피어나는 순간을 깨달으며 이 또한 오직 혼자의 가슴으로 감격했다.
1)혜성, 더러운 눈뭉치(혜성쉼터)
태양계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중 얼음과 먼지로 구성된 것을 혜성이라고 한다. 혜성은 긴 타원궤도를 돌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태양과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꼬리도 없이 차가운 얼음형태로 보내다가, 태양 근처로 오면 강한
태양열을 받아 얼음 알갱이들이 가열되면서 멋진 꼬리를 휘날리는 혜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혜성은 머리(코마)와 꼬리로 구성되어 있다. 코마의 크기는 수십m ~ 수십km이며, 코마를 이루는 물질에 따라, 그리고 태양과의 위치나 거리에 따라 꼬리의 길이가 달라진다.
혜성은 다양한 종류의 유기물과 무기물을 포함하고 있어, 과학자들은 혜성이 태양계 탄생과 생명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보고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혜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혜성과 충돌실험을 하는 등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2)천왕성, 허셜의 별(바람고개전망대)
천왕성은 태양계에서 3번째로 큰 행성이지만 맨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지구인들은 천왕성과 해왕성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1781년 영국의 허셜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우연히 천왕성을 발견하였다. 천왕성은 누워서 공전하기 때문에 극지방보다 적도 지방이 더 추운데, 이는 생성 당시에 지구 정도로 큰 행성과의 충돌때문으로 추정된다.
3)토성, 아름다운 고리를 가진 행성(고리전망대)
토성은 물보다 밀도가 낮은 행성으로 지상에서도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 고리는 수 cm ~ 수 m에 이르는 수많은 얼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두께는 1km정도로 매우 얇다. 이 고리는 15년을 주기로 지구에서 보이다가 안보이다가 한다. 또한 토성의 고리와 고리 사이에는 좁은 틈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넓은 것이 카시니의 틈이다. 과학자들은 위성이 접근하다 부딪혀 고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목성, 행성의 왕(목성 숲)
목성은 질량이 지구의 300배가 넘는 가장 큰 행성으로 조금만 더 컸더라면 태양과 같은 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빠른 자전으로 인해 중심부가 볼록하게 나온 타원모양을 하고 있으며, 자전방향으로 선명한 줄무늬와 대적반이라는 태풍 모양의 눈을 가지고 있다. 60개가 넘는 위성을 거느리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4개의 위성은 갈릴레이가 발견했기 때문에 갈릴레이 4대 위성(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모두 명왕성보다도 크다.
5)소행성, 태양계의 작은 가족(소행성 나무)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수많은 돌덩어리들이 그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돌덩어리들을 가리켜 소행성이라 부른다. 그래서 소행성을 태양계의 작은 가족이라 이를 수 있다.
이들은 태양-지구 거리의 2-4배에 해당하는 곳에 띠를 이루며 모여 있다. 이 띠를 소행성대라고 부르며, 각각의 소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궤도를 돌고 있다. 소행성은 직경 1km보다 큰 것이 약 100만 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는 약 10만 개의 소행성이 발견되었고, 그중 가장 큰 소행성은 세레스로 크기는 1000km에 이른다.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은 탄생 이후에 주변 공간에 남아있던 잔해들을 집어삼키며 덩치를키웠으나, 소행성대에 위치한 작은 소행성들은 목성의 강한 중력 영향으로 행성으로 크지 못한 채 남겨진 행성의 재료들이다.
소행성은 다른 행성의 인력에 잡혀 위성이 되기도 한다. 화성의 위성(포보스, 데이모스)이나, 목성·토성의 위성 중 상당수가 원래는 소행성이었다가 행성의 달이 된 것이다.
6)화성, 붉은 행성(화성 별동산)
토양의 70%가 녹슨 철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붉게 보인다. 화성 표면의 어두침침한 무늬는 외계인이 파놓은 운하로 착각되어 화성인에 대한 많은 공상과학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현재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여 많은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화성의 지름은 지구의 반 정도이고, 중력도 매우 작지만, 화산과 산, 마른 강바닥, 협곡, 사막, 그리고 극지방에는 만녈설이 있고, 하루의 길이와 자전축의 기울기 때문에 나타나는 계절의 변화 때문에 두 행성은 비슷한 점이 많다.
7)지구, 인간의 고향, 푸른 행성(지구 마을)
지구는 액체 상태의 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행성으로 표면의 71%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 푸른 행성으로 보인다.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온도와 대기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지구는 1초에 32km의 속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 또한 지구를 공전하는 달은 지구의 하나뿐인 자연위성으로, 인류의 발길이 닿은 유일한 천체이다.
달을 망원경으로 보면 표면 여기저기에서 원형의 움푹 파인 구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커다란 운석과의 충돌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이를 운석구덩이(크레이터)라 부른다.
8)금성, 용광로(별빛 탐방로)
금성은 크기와 지름, 질량, 표면 중력 등이 지구와 거의 비슷해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금성 대기를 이루는 이산화탄소의 온실 작용으로 온도가 482도이며, 태양에 가장 가까운 수성보다도 더 뜨겁다. 또한 대기의 압력은 지구의 90배(90기압)로 웬만한 물건은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금성은 태양과 달을 빼고는 하늘에서 가장 밝으며, 새벽이나 초저녁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새벽녘 동쪽에 밝게 빛나는 금성을 '샛별', 초저녁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별'이라고 한다.
9)수성, 죽음의 행성(야생화밭)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으로 지구에서 볼 때 태양 주변에서만 왔다갔다 하므로,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관측하기 어려운 천체이다. 낮에는 350도 밤에는 영하 170도로 온도차가 심하고 대기가 없어 생명체가 살 수 없다.
표면에는 수많은 운석구덩이(크레이터)가 있어 달과 착각을 일으킬 만큼 비슷하게 생겼으며, 2006년 8월 24일 명왕성이 행성에서 제외된 후 현재는 8개 행성 중 가장 작다.
수성에는 대기가 없는데, 이는 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태양풍 때문이기도 하며, 공기분자조차 붙잡아 두지 못할 만큼 중력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태양, 태양계의 중심(연화봉 해맞이전망대)
46억 년 전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기체덩어리가 뭉쳐져 만들어진 태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소를 태워 빛을 낸다. 질량이 지구의 33만 배로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9%를 차지하기 때문에 태양계의 중심으로서 작용하며, 행성·소행성·혜성들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그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은 지구 지름의 109배나 되는 큰 크기를 갖지만, 지구에서 약 1억5000만 km나 떨어져 있어 동전보다도 작게 보인다.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
소백산 국립공원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휴게소 앞 도착
영주 풍기읍 수철리의 죽령주막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휴게소에서 죽령을 넘어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로 넘어감
경북 영주 쪽에서 충북 단양 쪽으로 바라본 죽령고개
백두대간 죽령 표석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해발 696m 죽령
영주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으로 되돌아감
소백산 국립공원 죽령분소
소백산 국립공원 죽령탐방지원센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
제천에서 왔다는 아름다운 중년 부부의 산행 모습
소백산 제2연화봉에 우뚝한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당겨본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모습
노박덩굴 열매
땅에 떨어진 노박덩굴 알맹이들과 벗겨진 껍질들
혜성쉼터
소백산 연화봉과 그 바로 아래의 소백산 천문대 모습
당겨본 소백산 천문대 모습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2018년 2월 4일 입춘날 산행 모습
소백산 제2연화봉에 우뚝한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소백산 제2연화봉 아래에 자리한 제2연화봉 표석
2018년 2월 4일의 모습
고리전망대
첨성대 모습을 한 소백산 천문대 입구
왼쪽 제1연화봉에서 맨 오른쪽 끝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산줄기
소백산 제2연화봉의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와 앞쪽 첨성대 모양을 한 소백산 천문대
소백산 연화봉
연화봉 해맞이전망대의 태양 해설판
죽령탐방로의 행성해설판 위치와 행성 안내도
연화봉 아래의 참나무 군락지와 사스래나무
거제수 군락지
점심을 먹은 곳
소백산 제1연화봉 오르는 산길
빈 터에서 동북쪽으로 올려본 소백산 비로봉 산줄기
제1연화봉 오르는 덱에서 뒤돌아본 풍경
왼쪽부터 소백산 연화봉, 소백산 천문대, 소백산 제2연화봉의 소백산 강우레이더관측소
제1연화봉 이정목
소백산 비로봉 산줄기
위와 같은 곳에서 2018년 2월 4일 입춘날 산행 때의 풍경
비로봉까지 1.5km 이정목
뒤돌아본 왼쪽의 연화봉과 앞 산봉 뒤의 제1연화봉
소백산 비로봉과 그 아래 주목군락지 풍경
2018년 2월 4일 입춘날의 소백산 비로봉과 주목군락지 풍경
천동계곡 갈림목
주목군락지와 비로봉 오르는 야자매트 덱
어의곡능선과 그 뒤의 신선봉
소백산 비로봉 정상표석 앞면
소백산 비로봉 정상표석과 함께
2018년 2월 4일 소백산 비로봉 정상표석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소백산 비로봉 정상표석 뒷면
2018년 2월 4일 소백산 정상표석 뒷면
사진을 찍기 위해 산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비로봉에서 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남쪽 산줄기
앞 오른쪽 세 번째 산봉 제1연화봉, 뒤 왼쪽 연화봉, 그 뒤 오른쪽 제2연화봉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북쪽 산줄기
소백산 비로봉 정상 모습
비로봉 삼거리(비로봉·국망봉·어의곡리 갈림목)로 내려오면서 뒤돌아본 소백산 비로봉 풍경
비로봉 삼거리의 이정목
비로봉 삼거리에서 올려본, 소백산 비로봉 오르는 중간지점의 암봉
소백산 북부사무소 어의곡리탐방지원센터
내려본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버스정류장과 주차장
새밭골 늦은맥이와 비로봉 갈림목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버스정류장과 주차장
송백임시본부 홍가네식당 도착
*행성 해설판을 따라서
혜성
천왕성
토성
목성
소행성
화성
지구
금성
수성
태양
태양계의 크기를 체험하자
행성의 거리와 행성해설판 위치안내도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