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 상화울
상화울은 이성산성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상화곡 (桑花谷)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 마을 주위가 뽕나무로 가려져 있다고 하여 상화울이라 하였다. 뽕나무가 유난히 많아 주로 잠업농사를 짓는 마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마을 앞에 있는 산의 형태가 코끼리의 형상과 같다하여 코끼리 ‘상(象)', 어금니 ‘아(牙)'자를 붙여 상아울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연안 이씨(延安李氏)의 집성촌이다.
윗말 : 마을 윗쪽에 있다고 하여 윗말이라 하였으며, 이곳에는 샘이 나는 우물이 있다. 이 샘우물을 상화천(桑花泉)이라 불렀으며, 옛날에는 상화울 주민들이 이 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윗말을 샘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너멍굴 : 마을 우측의 작은 능선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우죽곡 : 마을 우측에 있는 마을로서 우직곡이라 하기도 한다.
건너말 : 마을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아랫말 : 마을 아랫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외에 건너짝·워링게·능밑·뱀내·사리곡·큰먼데기·성지·군질모퉁이·연적바위·말바위·마당바위·키재는 바위 등이 있다.
나. 밤동산
상일동에서 상화울로 들어오다 보면 작은 마을이 있는데 , 이 마을에는 밤나무가 많아 밤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 방죽머리
방죽머리는 마을 앞에 방죽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방죽 :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에 따라 전해져 오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풍천 임씨들이 자신들의 선조 묘를 쓰기 위해 묘자리를 파보니 물고기 3마리가 나왔다. 묘 앞에 연못을 만들어 고기를 키워야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다 하여 둑을 쌓고 물을 가둬 고기를 길렀다고 한다. 풍천 임씨의 선조 묘자리에서 앞쪽으로 관악산이 보이는데, 이 관악산을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그 불의 화력을 식히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 한다. 이 방죽은 해방후까지 그대로 있었으며 그후 후손이 조금씩 흙을 메워 논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중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방죽은 고속도로에 묻혀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덕직곡 : 상화울에서는 이곳을 덕죽곡이라 하기도 한다. 방죽이 있는 이곳을 말하는 것으로 언덕이 있는 방죽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소구니고개 : 소구니 마을과 방죽머리 마을 사이에 있는 작은 산의 고개이름이다.
그외에 납작고개가 있다 .
라. 소구니
소구니 마을은 방죽머리와 청뜰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 ,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작은 언덕 3곳이 있다. 작은 언덕배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라 소구니(작은 산과 작은 언덕배기)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마을에는 옛날 소금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었다는 말도 있고, 황산벌에서 군사들이 싸움을 할 때 작전을 소곤소곤하며 짰다는 설화가 내려오기도 하여 소고니→소구니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마. 청뜰(靑坪)
소구니 마을은 방죽머리와 청뜰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 ,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작은 언덕 3곳이 있다. 작은 언덕배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라 소구니(작은 산과 작은 언덕배기)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한 이 마을에는 옛날 소금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었다는 말도 있고, 황산벌에서 군사들이 싸움을 할 때 작전을 소곤소곤하며 짰다는 설화가 내려오기도 하여 소고니→소구니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바. 황록골
황록골 마을은 청뜰마을 아랫 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화약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풍천 임씨 문중보와 묘비에서는 이곳을 황릉곡 (黃陵谷)이라 기록하고 있다. 즉, 옛날부터 황릉곡이라 불려지던 것을 지금은 황록골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초이동은 초덕리에서 분리되어 초이리가 되었으며 , 당시 서부면사무소가 있었다. 현재는 초일동·초이동·광암1동을 관할하는 행정동명이며, 초이동사무소가 있고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과 길동을 경계로 하고 있다.
가. 사래기
사래기의 ‘사래'란 밭 이랑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 사래긴 밭→사래긴→사래기로 변하였다고 한다 . 또한 ‘사래'라는 것은 묘지기나 마름이 보수로 얻어서 경작하던 논밭을 말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옛날에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놀던 곳이라 하여 사락동(士樂洞)이었던 것이 사락이→사라기→사래기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나. 여산골
여산골 마을은 여산굴이라 불려지기도 하는데 , 이 마을 지형이 움푹 들어가 있어 여산굴이라 한다고 한
다.
뱀내 : 장마 때 배가 다니기도 했다고 하여 뱀내라 한다.
배밑갓 : 배가 들어오던 곳이라 하기도 하며, 이곳의 형상이 배 밑부분처럼 둥그스름하다고 하여 배밑갓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 영봉재·가운데들·전나무골·가재골·싸릿골 등이 있다.
다. 송림(松林)
송림마을은 말 그대로 소나무가 많은 마을이다 . 마을의 입구에는 옛부터 노송(老松)이 많이 있어 소나무숲을 이루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송림이라 하였다고 한다. 사래기와 같은 동명으로 부르고 있다.
라. 지지미
지지미 마을은 옛날 지김리 (池金里)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충주 지씨가 자리잡았으며 김해 김씨 그리고 전주 이씨가 들어와서 마을이 형성되어 지김이→지김리→지짐이→지지미로 어원이 변화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에 각 씨족의 묘가 많이 들어서 있어 묘역잔디와 마을의 잔디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여 지지미(芝芝美)라 하는 말도 있다. 지잠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 마을에는 초이동사무소가 있으며 충주 지씨(忠州池氏)와 진주 강씨(晉州姜氏)의 집성촌이다.
능머루 : 밀성군 묘역이 있는 곳을 능머루라 한다.
바배기 : 바배기 벌판을 말한다.
웃골 : 마을 윗쪽의 골짜기를 웃골이라 한다.
연봉지 : 마을 뒷산 정상을 연봉지라 한다.
연봉지 : 비석이 서 있는 곳이다.
마. 개미촌
개미촌은 서낭촌이라 하기도 한다 . 서부농협 초이지소 옆에 있으며, 상일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마을사람들이 부지런하고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여 개미촌이라 한다.
불당골 : 절의 암자가 있었다.
됨봉 : 산의 봉우리를 됨봉이라 한다
바. 월남촌
월남촌은 근래에 형성된 마을로 당시 마을의 지주 (地主)들이 자주 싸움을 하였다 하여 월남촌으로 불렸다는 말도 있고, 월남파병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 사람들이 자주 싸움을 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자산 : 마을 앞의 앞산이라 하는 산이 기자산이다.
그외에 개댕이라는 지명도 있다.
사. 대사곡(大寺谷
옛날 큰 절터가 있었던 곳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진주 강씨 공목공파보(恭穆公波譜, 1927)』에 의하면 대사곡(大寺谷)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옛 기와편이 보이고 있어 절터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사곡(大巳谷)이라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큰뱀이 서린 지형 또는 용의 우물을 인용해 불려지던 대사곡의 ‘사(巳)'·‘사(蛇)'는 신빙성이 없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용의자리 : 우물터를 말하고 있으며 용의 우물은 지금은 흙으로 메워져 있다.
광암 2리는 1989년 시로 승격될 때 초이동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광암동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많이 있다. 따라서 이 고인돌의 넓직한 바위를 한문으로 표기하다 보니 광암동(廣岩洞)이 되었다. 광암2동에는 산밑·평암마을·불당골·남밖마을이 있다.
가. 평암마을
평암마을을 예전에는 가운데말이라 불렀다 . 옛날에는 부자마을이었다고 하는데, 근래에 망하는 집이 늘어나고 마을을 떠나는 사례가 많아져, 1998년 2월 8일부터 평암마을이라고 마을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지석묘), 일명 ‘5형제 바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남시청 근린공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우물너머 : 웃말을 일컬어 부르는 말로서,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이 우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뭍에물 : 향교고개로 올라가는 오솔길의 샘물을 말한다.
생이고개 : 향교고개를 말한다.
비누고개 : 산의 형태가 고기의 비늘처럼 생겨 비늘고개→비누고개로 어원이 변화되었다고 하며, 이 고개를 넘으면 사래기·송림마을이 있다.
고두절 : 생이고개 마루턱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빈대가 많아 절을 불살랐다고 하는 말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세수고개 : 고두절터 밑 고개길을 말한다.
그외에 큰갓·작은갓·장작터·참새골·앞산·날기터골 등이 있다.
나. 불당골
불당골은 절이 있던 마을이다.
다. 산밑
이성산자락 밑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을 산밑이라고 한다.
라. 남밖
초이동과 감북동에서 이성산성 밖의 산밑·불당골·가운데 마을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 남외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