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법당
독참(獨叅)이란 무엇인가?
독참(獨叅)은 총림(叢林)에서 조실이나 방장(方丈)스님이
후참 자(後叅者)를 1;1로 직접(直接) 지도하는 수행(修行)
풍토(風土)를 말 한 겁니다, 총림대중(叢林大衆)은 보통
500명에서 많으면 몇, 천명이 함께 수행하는 대사찰을
말합니다, 그런 대 총림에서는 수행체제에 맞는 소임을 짜는
데 그것이 절에서는 용상방(龍象榜)이라고 합니다,
용상방에는 조실(祖室), 방장(方丈), 주지(住持), 선 원장
(禪院長), 강사(講師), 율 원장(律院長)등 소임(所任) 직제
(職制)를 짜게 되는데, 공양주 채공까지 온 대중이 용상방
명단에 오르게 된다, 용상방은 용과 코끼리를 상징한 말인데,
백수에 왕이 코끼리고, 용은 물고기가 변해서 등천하는 것을
상징한 것으로써 혁범 성성(革凡成聖)을 말 한 겁니다,
범부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님들의 출가(出家) 목적(目的)은 모두가 다 성불(成佛)에
있습니다, 그러니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수행을 하 기 위해서
만든 것이 사찰에 소임직제인 것이고, 갓 출가한 행자라고
해서 예외가 없는 것이 총림 수행체제의 평등소임제이다,
수행을 하다 경계가 닥쳐서 자기 힘으로 안 되면 조실스님
이나 방장스님을 찾아가서 묻고 답(答)을 찾는 것이 독참
(獨叅) 문답(問答)이다, 방장스님은 선지식(善知識)이고,
선지식은 수행의 제반 문제나 즉문(卽問) 즉답(卽答)으로
해결해 주는 분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옛 조사님들의 선문답(禪問答) 어록(語錄)은 독참(獨叅)
에서 나오는 수행(修行) 문답(問答) 어록집(語錄集)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황벽스님과 임제스님의 독참(獨叅)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는 <三度發問 三度被打> 일화입니다,
임제스님이 황벽선사 회상에서 수좌로 3년간 참선을 했다,
3년 동안 참선만 했지, 조실 방을 찾아가서 독참(獨叅)할
생각도 못하고 정진만 열심히 했다,
그런 임제스님을 목주스님이 황벽 조실스님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고 했다, 무엇을 물어봅니까? 어떤 것이 불법의
참 뜻입니까? 하고 물어보라고 가르쳐 주었다,
다른 수좌스님들은 매일 조실 방에 들어가서 독참(獨叅)을
했는데, 임제스님만 3년간 묻지도 않았으니, 목주스님이
말하여 준대로 황벽선사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참뜻입니까?
물었다, 황벽선사 묻는 임제스님을 주장자로 20방을 쳤다,
이렇게 세 번 묻고, 세 번 죽도록 매만 60방을 맞았다,
임제스님 맞는 이유도 모르고 매만 맞았으니, 정이 뚝 떨어
졌다, 그래서 걸망을 쌌다, 목주스님 떠나려는 임제스님에게
가려거든 황벽 조실스님에게 하직인사는 올리고 가라고 했다,
임제스님 하직 인사를 받은 황벽선사 다른 곳에는 가지 말고
대우선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대우선사를 찾아가니, 그대는 어디서 오는 수좌
인가? 황벽선사 문하에 있다가 몽둥이로 매만 맞고 왔습니다,
대우선사 혀를 끌끌 차면서 꾸짖기를 그대를 위해 그렇게 간절
하게 일러주었는데, 깨닫지는 못하고 허물만 말하고 다니는
놈이라고 꾸짖는 말에 도를 깨달아 버렸다,
임제스님 깨달고 하는 말이 불법이 별것이 아니 로 구만!
하고 대우스님 옆구리를 쥐어박고, 바로 다시 황벽선사
회상으로 돌아왔다, 임제스님 독참(獨叅) 일화는 후학(後學)
참구자(參究者)가 선지식을 찾는 독참(獨叅)을 말한 것이다,
조실(祖室)방은 언제나 문(門)이 열려 있다, 후학들에게 줄
답(答)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구도(求道)의 길은 치열
(熾烈)하다, 그 작 저작 허송세월이나 하는 풍류가 아니다,
한 회상을 열어서 개당보설(開堂普說)했던 옛 선지식들은
뼈를 깎는 고행 정진으로 명안종사(明眼宗師)가 되었다,
그런데 요새 인터넷으로 보니, 도(道) 깨달았다는 분이
너무 많다, 실참실구(實叅實究)에서 오는 자내증(自內證)
이면 다행인데, 해오(解悟)를 증오(證悟)라고 착각(錯覺)
하는 것이 문제(問題)이다, 결론은 동타 지옥이다,
그건 그렇고! 선지식(善知識) 조실(祖室)스님이 직접 참구
(叅究)자를 찾는 독참(獨叅) 일화를 보면 남악회양선사
회상에 마조(馬祖)스님이 찾아와서 참선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앉아서 참선을 했던지, 회양선사 조실 눈에
띠였다, 그래서 마조스님이 좌선하는 곳에 가서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물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남악회양선사 벽돌을 득득 갈았다, 마조가 스님 묻기를
스님 무엇 하십니까? 거울 만들려고 벽돌을 가네!
벽돌을 간다고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그것을 안 자네는
앉아만 있는 다고해서 어떻게 부처가 되는가?
마조스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여보게! 마조수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그 말에 마조스님이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는 독참(獨叅) 일화입니다,
이렇게 옛날 스님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수행을 했습니다, 지도하는 선지식도 조실 방에서 찾아
온 수좌 독참 만으로는 성이 차지를 않으니까, 조실이
직접 수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서 깨달음으로 인도
한 것이 독참(獨叅)인데, 한국불교에서는 그 좋은 독참의
맥이 끊긴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독참(獨叅)은 선지식이 선원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수좌를
점검하는 제도이다, 선지식은 깨달음을 얻는 부처이다,
깨달은 안목으로 후학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부처님도 제자들이 물으면 즉문 즉답으로 답을 주셨다,
그 수행자의 근기에 맞는 수행 방법을 제시하셨다,
한국불교는 간화선이다, 간화선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독 참(獨叅) 부재(不在)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조실 선지식
이 매일 수좌들을 불러 독 참을 통해서 수행 경지를 묻고
답해 준다면 마조 같은 명안종사가 쏟아져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뿐이다,
오늘은 독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 함께 수행해서 부처님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