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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량사는 전통 문법이나 학교 문법에서 말하는 수사나 수 관형사와는 다른 의미 범주를 형성한다. 물론 수사나 수 관형사 가운데 원수사와 원수 관형사는 수량사에 포함되지만, "첫째", "둘째" 등과 같은 서수사나 서수 관형사는 사물이나 사태의 수량이 아니라 차례를 규정하는 것이므로 수량사의 범주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서수사나 서수 관형사가 제외되기는 하여도 수량사의 범주에 드는 언어 요소들은 전통 문법이나 학교 문법에서 단일한 문법 범주로 설정하기 어려우리만큼 형태·의미상으로 광범위하고 매우 다양하다. 우선 언어 단위상으로 볼 때, 수량사는 조사나 접미사로서 수량화의 기능을 가지는 접사 수량사, 하나의 단어로서 수량화의 기능을 가지는 어휘 수량사 및 둘 이상의 단어로 구성된 구절로서 수량화의 기능을 가지는 구절 수량사 등 세 가지가 있다. 언어 단위상의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단어를 뜻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 수량사라는 용어보다는 셈숱말이란 용어가 더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아래 보기에서 고딕체 부분이 이러한 수량사들인데, (2)가 접사 수량사, (3)이 어휘 수량사, 그리고 (4)가 구절 수량사의 예이다.
이들 가운데 어휘 수량사와 구절 수량사는 그 형태 범주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여 수량사가 하나의 문법 범주라기보다 하나의 의미 범주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5)와 (6)에서 각각 볼 수 있듯이 어휘 수량사와 구절 수량사는 그 형태가 명사형, 동사형, 관형사형, 부사형 등의 모습으로 실현된다.
이 같은 형태적 특성에 따라서, 어휘 수량사든 구절 수량사든, (5ᄀ), (6ᄀ)과 같이 명사형으로 실현되는 수량사는 명사형 수량사, (5ᄂ), (6ᄂ)과 같이 동사형으로 실현되는 수량사는 동사형 수량사, (5ᄃ), (6ᄃ)와 같이 관형사형으로 실현되는 수량사는 관형사형 수량사, 그리고 (5ᄅ), (6ᄅ)과 같이 부사형으로 실현되는 수량사는 부사형 수량사라고 일컬을 수 있다.
형태상의 다양성 못지 않게 수량사는 의미상으로도 다양성을 보인다. 수량사들은 여러 가지 의미 특성을 지님으로 해서 특정한 의미 특성에 따라 다양한 대립 관계를 맺게 된다. 첫 번째로 수량사들은 어떤 언어 요소를 그것이 가리킬 수 있는 잠재 지시 대상 전부로 수량화하는 것과 잠재 지시 대상 가운데 특정 대상만으로 수량화하는 것으로 대립한다. 전자를 통칭 수량사, 후자를 특칭 수량사라고 불러 구분하곤 하는데, (7ᄀ)의 수량사가 밑줄 친 요소의 잠재 지시 대상 전부를 규정하는 통칭 수량사이고, (7ᄂ)의 수량사가 밑줄 친 요소의 잠재 지시 대상 가운데 일부 대상만을 수량화하여 표현하는 특칭 수량사이다.
두 번째로 수량사들은 어떤 언어 요소를 그 잠재 지시 대상 가운데 하나로 한정하여 수량화하는 단수 수량사와 둘 이상으로 수량화하는 복수 수량사로 대립한다. (8ᄀ)의 수량사 "한 그루"가 밑줄 친 요소를 잠재 지시 대상 가운데 하나로 한정하여 수량화하는 단수 수량사의 예이고, (8ᄂ)의 수량사 "대개"가 밑줄 친 요소를 잠재 지시 대상 둘 이상으로 수량화하는 복수 수량사의 예이다.
세 번째로 수량사들은 어떤 언어 요소를 수량화할 경우 그 수량 의미가 단의적이고 분명한 것과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으로 대립한다. 이를테면, (9ᄀ)의 "두 번"은 수량 의미가 '2'로서 단의적이고 분명하지만, (9ᄂ)의 "서너 차례"는 수량 의미가 '3'인지 '4'인지 불분명하여 모호하다.
이렇게 수량 의미가 분명하고 단의적인 수량사들을 투명 수량사라고 하고, 수량 의미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수량사들을 불투명 수량사라고 한다.
네 번째로 수량사들은 자연수로 기술될 수 있는 수량 의미가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문맥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일정한 것으로 대립하는데, 앞의 것을 상대 수량사, 뒤의 것을 절대 수량사라고 한다. 예컨대, (10ᄀ)과 (10ᄂ)의 "절반"은 상대 수량사로서 그것에 의해 수량화되는 언어 요소 "국민"과 "시민"의 잠재 지시 대상이 수적으로 서로 다른 까닭에 자연수로 그 수량 의미를 기술할 경우 자연히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에 (11ᄀ)과 (11ᄂ)의 "오백 여 명"은 절대 수량사로서 그것에 의해 수량화되는 언어 요소 "국민"과 "시민"의 잠재 지시 대상이 수적으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연수로 기술되는 수량 의미가 서로 같다.
다섯 번째로 수량사들은 그들에 의해 수량화되는 요소와 유-포섭 관계를 맺게 되는 것과 그러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으로 대립한다. 수량화되는 요소의 잠재 지시 대상은 집합을 이루고 수량사가 나타내는 수의 지시 대상은 그 집합의 부분이 되는 관계가 유-포섭 관계인데, (12ᄀ)의 수량사 "일부"는 수량화되는 요소 "지원자"의 잠재 지시 대상이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자신이 나타내는 수의 지시 대상이 그 집합에 포함되어 있음을 뜻함으로써 "지원자"와 유-포섭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 (12ᄂ)의 수량사 "열 명"은 수량화되는 요소 "지원자"의 잠재 지시 대상이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을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나타내는 수의 지시 대상이 집합에 포함됨을 뜻하지 않음으로써 "지원자"와 유-포섭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처럼 수량화되는 요소와의 유-포섭 관계를 필연적으로 형성하는 수량사를 포섭 수량사, 그러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수량사를 비포섭 수량사라고 불러 구분한다.
여섯 번째로 수량사들은 수량화되는 요소의 잠재 지시 대상을 이루고 있는 개체들에 시점을 두고 그 개체들의 수량을 규정하는 개체 수량사와 개체들보다는 개체들에 의해 이루어진 전체에 시점을 두고 그 전체를 이루는 개체들의 수량을 규정하는 집합 수량사로 대립한다. 특히 이러한 대립은 통칭 수량사들에서 보게 되는데, (13ᄀ)의 "하나하나"가 개체 수량사의 예이고, (13ᄂ)의 "모두"가 집합 수량사의 예이다.
일곱 번째로 수량사들은 다른 언어 요소가 나타내는 사태의 수량 즉 빈도수를 규정하는 것과 사물의 수량을 규정하는 것으로 대립한다. 앞의 것을 빈도 수량사라고 하고 뒤의 것을 비빈도 수량사라고 하여 가를 수 있는데, (14ᄀ)의 "한 차례"가 빈도 수량사의 예이고 (14ᄂ)의 "한 송이"가 비빈도 수량사의 예이다.
여덟 번째로 수량사들은 의문문에서 의문의 초점을 받아 의문사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으로 대립하는데, 의문사 기능을 가지는 수량사들은 구체적 수량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수량 가운데 특정 수량을 선택하여 대답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므로 선택 수량사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러한 선택 수량사에는 불투명 수량사 가운데 "몇", "암만", "얼마" 등의 어휘 수량사와 이들을 구성 성분으로 하는 구절 수량사가 있다. 그리고 이들 이외의 모든 수량사는 의문사 기능을 가질 수 없는 것들로서 비선택 수량사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지금까지 수량 표현에 있어서 비교적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덟 가지 이분법적 의미 특성을 보면서 그들에 의한 대립 관계를 통하여 수량사들의 의미적 다양성을 살폈다. 하지만 수량사들은 이들 여덟 가지 말고도 또 다른 의미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적 다양성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종전에 수량사를 단일한 문법 범주로 인식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수량사들의 이러한 의미적 다양성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량사를 단일 문법 범주로 인식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은 수량 표현이 통사적으로도 단순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수량화 구문은 수량사에 의해 수량화되는 언어 요소가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문장 수량화 구문과 명사 수량화 구문으로 갈라진다. 문장 수량화 구문은 수량사가 (15ᄀ)에서처럼 문장 전체가 나타내는 사태의 수량, 즉 빈도수를 규정하는 구문이고, 명사 수량화 구문은 (15ᄂ,ᄃ)에서처럼 문장의 구성 성분인 명사(구)가 가리키는 사물이나 사태의 수량을 규정하는 구문이다.
이 두 유형의 구문 가운데 명사 수량화 구문에는 다시 수량화되는 명사에 대하여 수량사가 어떠한 통사 기능을 가지느냐에 따라 서술적 수량화 구문과 수식적 수량화 구문 두 가지가 있다. (16)의 문장들이 수량사가 수량화되는 명사(구)에 대한 서술어의 기능을 가지는 서술적 수량화 구문의 예이고, (17)의 문장들이 수량사가 수량화되는 명사(구)에 대한 수식어의 기능을 가지는 수식적 수량화 구문의 예이다.
이 가운데 수식적 수량화 구문에서 주목할 사실은 수량사가 (17ᄀ)에서처럼 관형어로 실현되어 수량화되는 명사(구)에 대하여 명사 앞 수식어가 되기도 하고 (17ᄂ)에서처럼 부사어(또는 명사어)로 실현되어 수량화되는 명사(구)에 대하여 명사 뒤 수식어가 되기도 하는 점이다. 모든 수량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휘 수량사나 구절 수량사들의 대분분은 이와 같이 명사 앞 수식어와 명사 뒤 수식어로 위치 변이를 하여 수량사가 의미상으로뿐만 아니라 문법상으로도 하나의 범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한편 수식적 수량화 구문은 수량사의 어휘·통사적 특성에 따라 보통 수량화 구문과 부류 수량화 구문으로 갈라진다. 앞의 (17)로 든 것과 같은 예들이 보통 수량화 구문으로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수식적 수량화 구문이다. 반면에 부류 수량화 구문은 (18)에서처럼 의존 명사의 한 가지인 단위 명사(분류사)가 수 관형사에 기대지 않고 직접 수량화되는 명사(구)와 통합하여 수량 의미를 나타내는 구문으로서 드물게 쓰이는 것이다.
또한 보통 수량화 구문은 수량사들이 위치 변이를 하여 명사 앞 수식어로도 쓰이고 명사 뒤 수식어로도 쓰일 수 있음에 비하여 부류 수량화 구문은 수량사들이 오직 명사 뒤 수식어로만 쓰이는 통사적 제약을 받는다.
수식적 수량화 구문은 지금까지의 예에서와 같이 하나의 명사(구)에 대하여 하나의 수량사가 수량화하는 홑 수량화 구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명사(구)에 대하여 두 개의 수량사가 거듭 수량화하는 겹 수량화 구문도 있다. 또한 하나의 문장에 나타나는 두 개의 명사(구)에 대하여 서로 다른 수량사가 각각 수량화할 때 두 수량사의 상호 의미 작용에 관련된 의미 현상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줄이기로 한다.
첫댓글 수량표현을 셈숱화, 수량을 셈숱말, 차례를 규정하는 것은 수량사의 범주에서 제외, 접사 수량사와 어휘 수량사, 그리고 구절 수량사 세 가지. 이들의 형태가 어떤 품사형의 모습으로 실현되는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수긍을 하면서도 어렵다는 건 확실하네요. 차근차근 천천히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요, 셈숱화나 셈숱말이란 단어는 맞춤법 검사기를 작동시켜 봤더니 대치어가 나오지 않네요. 곱디고운 순 우리말... 팍팍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말도 있었군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