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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을 마치면서 이제 다음 주면 다시 교회로 복귀하면서 안식년 6개월을 마치게 된다. 과연 안식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깨달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게 되었는가?
달리는 차를 6개월 세워두면 그 차는 좋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썩어가는 것이지, 그런 논리로 보면 6개월의 안식은 뒤처지는 것이고, 썩어지는 것인데 과연 나의 안식년 6개월의 평가는 어떤 것일까?
이제 되돌아보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목회에 부름을 받고 달려온 지가 84년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27년째다. 교육 전도사로 시작해서 전임전도사 그리고 개척하고 실패하고 다시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2000년에 개척을 다시 해서 여기에 이르고 있다. 2007년 쓰라린 아픔의 세월과 통합을 통해 전혀 다른 스타일의 목사님과 동역을 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고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모두 부족한 나의 모습 때문에 생긴 일임을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모자라고 형편없는 모습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길을 27년째 섬기면서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성도님들 앞에 부끄럽다. 그렇게 부끄러움의 목회를 잠시 접고 야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한국의 교회들을 살펴보면서 안식의 시간들을 가져 보았다.
안타까운 점은 신우회를 쉬지 못해서 절대적 안식을 갖지 못한 것이고, 또한 기도원에 자주 가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 다행인 점은 안식년 기간 동안 가정적으로 많이 안정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결산하며 안식년을 정리하기 원한다. 첫째로 안식년에 무엇을 보았는가? 전국의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보고 배운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제일 기억에 남는 교회는 분당 우리교회와 연세 중앙교회, 그리고 오륜교회였다. 많은 교회를 다니지 못해 아쉽지만, 이 세 교회는 예배에 감동과 무언가 모를 힘을 느끼게 했다. 특별히 분당 우리교회는 예배 속에 감동의 눈물과 교회의 세상을 향한 깨끗한 힘을 보여주었고, 연세 중앙교회는 복음의 열정과 능력이 느껴졌으며, 오륜교회는 예배의 현대화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교회는(부평감리교회 등) 예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은혜의 감동을 주고 있음을 느꼈다. 겉으로는 분명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는 은혜의 파동이 있었다. 아마도 기도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에 다시 가 보기로 하고 아직 가 보지를 못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엘리야 시대에 7000명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이 시대에 곳곳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드러내는 신실한 교회와 종들이 많음을 고백하며 나도 그 7000의 사람들 속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었다. 많은 예배가 특히 대형교회의 예배가 죽어가고 있음을 절감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많이 소문난 교회들을 보면서 더욱 이 안타까움은 더해만 갔다. 명성교회, 주안장로교회, 안산제일교회 등 내노라 하는 교회등을 방문해서는 기대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실망도 컸다.
한 번의 방문을 통해 무엇인가를 결론짓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한 예배를 통해 내가 느낀 점이기에 그저 표현해 본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 내가 보고 느낀 것의 핵심은 안타까움이다.
예배가 삶을 지배하지 못하고 설교가 온통 사람을 설득하는 것들로 채워져 가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속에 그분이 일하시는 영광을 볼 수 없었고, 온통 사람들의 외침과 사람들의 일함과 사람들의 역사만이 교회안에 채워져 있음을 보았다. 초대교회가 가졌던 경외함을 느낄만한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을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지 못함으로 세상이 교회를 무시할 수 밖에 없는 말밖에 없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게 되었다.
바로 내 목회가 그래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찬양이 세대간의 교회간의 단절을 야기하고 있음도 지적하고 싶다. 교회마다 부르는 찬양이 다 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폭과 차이가 너무 심하여 교회간의 연합을 추구함에 큰 장애가 될 것임을 감히 지적하고 싶다.
또한 교회가 교회로서 해야 할 중요한 사명에 목숨을 걸지 않고 부수적인 사명에 치중함으로 결국 교회를 세상에 버림받도록 만드는 일이 이 시대에 있음을 보았다.
교회는 세상을 리드하는 곳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며, 구원의 방주요, 최후의 방어선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의 지향점은 세상을 따라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는 일을 교회가 하면서 그 일의 결과에 따라 교회의 부흥이 결정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지금의 사태다.
이 심각성을 보아야 한다.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이 없으면 세상의 일들에 의해 교회의 부흥이 결정된다는 말인가? 이 말은 결국 세상이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바로 교회가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문제들이 생긴 그 시간, 집사들을 세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고 결정한 그 사건이 오늘 다시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의 문제는 물질과 환경과 어떤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문제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말이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음에도 떠난줄 모르고 법궤를 들고 전쟁에 나가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사무엘처럼 겸손히 성전에 누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교회를 회복할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안식년을 지내며 내게 최고의 깨달음은 바로 “이가봇”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사역의 현장에서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은 “이가봇”인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무엘처럼 성전에 누워 주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보좌 앞으로 가까이 가는 작업이다. 어떤 바쁜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보좌 앞에 겸손히 서는 사무엘의 모습, 초대교회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리라 고백한 그 고백으로 돌아가 말씀과 기도 속에 그분의 보좌 앞에 깊이 들어가 그분의 영광을 체험하는 일이며 그분의 영광으로 사역하는 자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결코 세상 영광을 얻고자 부름 받지 않았으며 오늘 여기에 있지 않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그 영광의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 부름 받았으며 그분은 나를 통해 그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심을 믿는다.
오! 하나님의 영광이여....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그 영광을 잃어버리고 아니 그 영광의 그림자조차 잊혀져버린 존재가 되어 세상의 그 낡아지고 쇠하는 영광에 취하여 없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한심한 인생들이여.... 하나님의 영광은 쇠하지 않으며, 낡아지지 않으며, 줄어들지 않으며 언제나 풍성하고, 언제나 동일하며, 언제나 능하신데... 어찌하여 이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세상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하늘영광을 이용만 하는고.. 진정 슬퍼해야 할 문제가 하늘 영광을 잃어버린 것임에도 우리는 하늘 영광이 떠남에 대해 울지 않고, 법궤를 잃어버린 것에 분노하고 있노라. 세상적 승리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실패에 고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버렸노라. 블레셋에 빼앗긴 내 영광을 누가 찾을꼬 주여 내게 다윗의 심정을 주사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케 하소서. 이제 내게는 그 영광을 회복하여 그 영광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날이 많지 않다.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며 하루 하루 그냥 보내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영광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그 영광에 취하여 그 영광의 냄새를 세상에 피우며 살기를 원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그 영광의 품안으로 말씀을 통해, 성령을 통해, 기도를 통해 들어가기를 소망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인자를 통해 들어가는 그 곳, 이사야가 체험하며 두려워 떨었던 곳, 베드로가 감히 그 앞에서 나를 떠나달라고 외쳤던 곳, 많은 무리가 그 영광의 광채아래 변화되었던 마가의 다락방 체험이 내게 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전반전은 아무것도 모른 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를 세우자는 인간적 정의로 시작한 목회라면 이제 시작하는 후반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그 영광으로 채워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임하시고 그 속에서 무한한 하늘의 안식을 체험한 자들이 세상을 버리고 하늘나라를 구하며 살아가는 그 위대한 변화”를 구하는 목회가 되고 싶다.
이것을 위해 후반전의 결심은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앞에 서자.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모세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모습을 보고 나서 그 영광의 광채로 얼굴에 수건을 가리고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는데 .... 2. 말로서 설득하는 목회가 아니라 하늘 영광과 능력을 믿음으로 선포하자. 3.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자. 4. 주님이 맡겨주신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자. 5. 인간적임을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 믿음으로, 성령으로 사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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