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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청연 >
<병든 열심으로 살던 나, >
최영희 도로테아 66세, 서울 대교구 구로 2동 본당.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증언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영원히 받으소서!
저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교회를 다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학교 앞 성공회에서 성가대를 뽑는데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하여 오디션을 본다는 말에 나라면 자신 있게 붙을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 반 호기심 반으로 오디션을 보았고 합격하여 성공회를 다니게 되었으며 그때 받은 세레명이 도로테아입니다.
제 남편은 저와 함께 찬양을 하는 기타리스트이고 저희 부부 사이에는 네 명의 딸이 있습니다.
저의 큰 딸은 43세이고 막내딸은 23세로 20년이나 차이가 나고 막내와 셋째 딸은 위에 언니와 9년씩 차이가 나는 늦동이들 입니다.
제가 성공회를 다니다가 다시 엄마의 권유로 개신교를 다니며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였지만 엉터리 신자로 종교 생활했고 그 이후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희 시가는 수녀님도 계시고 신부님도 계시는 천주교 집안이었지만 남편은 냉담 중이었고 저희 시어머님은 주일만 열심히 지키는 종교인이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을 꾸고 난 이후 제 마음에 교회를 나가야겠다는 큰 울림이 있었고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눈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부르심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시어머니에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가 단 세 식구 사는데 누구는 교회가고, 성당가고 하는 것이 좀 보기에 좋지 않으니까 너도 성당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선뜻 성당을 다니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갑지가 저 혼자 성당을 찾아가 교리를 받겠다고 하고 둘째 아이를 업고 큰 아이는 손을 잡고 걸려서 같이 나가 교리를 받고 대구 대신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20대 후반이었고 저는 그 이후 성가대, 제대회 등 여러 단체 활동을 했지만 무늬만 신자인 미저리적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30대 초반에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개신교 신자인 저희 큰 딸 담임선생님이 개신교 목사님이 쓰신 책을 읽어 보라며 빌려주신 책을 한 권 읽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당에 성령 기도회라는 공동체가 있는 것도 몰랐는데 어느 날 성령 기도회 회장님과 봉사자들이 저를 찾아와 찬양 봉사를 할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하러 오셨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제 남편이 기타를 좀 치는데 같이 해도 되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고 너무나 좋아하셨고 그 때 부터 성령쇄신 봉사회에서 찬양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9세이고 남편의 나이는 34세 였습니다.
1.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알게 된 계기와 가입과정
제가 삼성산 성지 성령기도회에 들어가게 된 것도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의 섭리이셨던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다른 공동체에서 봉사를 하던 중, 어느 날 예전에 함께 찬양하던 봉사자가 전화를 하여 삼성산 성지에 와서 부활전야 미사 전례 성가를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거절을 하자 간곡히 와달라고 하여 하루만 한다고 간 것이 붙들리게 되면서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게 된 것은 2017년쯤 유럽 봉사회 초청으로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을 때, 회장이 내맡김 영성에 대해 들어봤냐고 물어보는데 왠지 모르게 이미 제 가슴에서는 이 단체에 대해 알고 싶었고 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이 삼성산 성지에 부임해 오시기 전 네이버 검색을 했는데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카페를 보게 되어 그 때 바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가입을 하고 나서 자꾸 제 폰이 아닌 남편 폰으로 가입 인사가 들어와서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알고 보니 제 남편이 메일을 보낼 일이 있었는데 용량이 좀 크다고 제 폰으로 해달라고 부탁을 하여 메일 주소를 변경하는 바람에 남편이 먼저 어떨 결에 가입이 되고 저는 그 후 바로 카페 지기에게 연락을하여 저도 가입하면서 이 때도 부부가 함께 쌍으로 같이 가입을 하게 되었고 이것도 아버지의 섭리인 것을 믿습니다.
2.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나기 전과 후
저희 부부는 정말 열심히 봉사 생활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던 남편은 기도회가 있는 날이면 출장을 갔다가도 시간이 부족 할 때면 비행기를 타고 와서 기도회에 참석을 했고
서울 교구 철야 때는 철야 전에는 시간이 없으면 저녁은 굶고 가도 항상 깨끗이 목욕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아주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빠지는 일도 없었는데 거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결석을 한 적도 없었고 개근상까지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 일은 언제나 최우선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미사, 성체조배,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 할 수 있는 모든 신심 생활에 도움 되는 일은 거의 빠지지 않고 하였습니다.
교도소, 알콜 사목 센터, 노숙자 급식소와 지방 세미나와 피정 등 거의 모든 생활을 하느님 일에만 전념하면서 살았었지만 제 마음은 항상 두려움과 불안 근심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일 그것밖에 가장 탁월한 방법이 없는데도 내맡김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 미사하고 봉사 생활에만 전념하였고 전형적인 미저리적 신앙인으로 걱정 근심을 끌어 않고 살았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기 전 저의 상황을 보면 제가 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제 몸을 던지고 제 인생을 걸기로 작정하고 선택했습니다.
저의 그 당시 믿음의 상태는 신앙 서적을 통해 성령 체험하며 하느님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온갖 열심으로 정성을 다했지만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저의 정성과 치성을 통해 제 필요를 보상 받는다는 종교관을 가지고 병든 열심을 살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삼성산에 부임해 오시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본으로 된 책과 “딸랑 이거 하나를” 두 권을 신부님에게 선물로 받고는 집에 가지고 와서 단숨에 읽었고 제 남편은 창화살 책을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외적 신앙에 치우쳐 사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믿으면 구원의 조건을 충족하는 줄 알고 착각에 빠져 있을 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참으로 제게 신선한 충격이며 참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얼마나 제가 안주하면서 묵은 땅을 갈아엎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에페소서1:4~6 >
제가 아버지를 택했다기보다 하느님 아버지가 저를 택하셨고 그런 하느님이 저를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저는 하느님이 제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병든 열심을 살았었습니다.
극한의 정성을 보이며 철야기도, 단식기도, 매일 미사,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하느님께서 제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바라며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신 적도 많았는데 그것은 내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으니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을 이루며 살자고 하시는 의도이셨음을 몰랐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살고 그 뜻대로 가자고 하시는 것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는 어떤 법칙이나 보상이 아닌 사랑의 관계로서 함께하자는 가족 간의 관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거내영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큰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저희는 가족기도를 일주일에 한 번 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 저희 큰 딸이 기도 중에 대학에 가고 싶은데 자기는 대학에 갈 형편이 안돼서 너무 속상하다고 기도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서
부모인 제 마음은 너무나 아팠고 기도가 끝났을 때 저희 부부가 큰딸에게 아빠 엄마가 하느님 일을 하기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게 된 것을 이해하느냐고 묻자 이해한다고 했고, 그럼 엄마와 함께 단식기도를 하자고 하고, 삼일 단식 기도를 하고 난 후 미술학원 원장을 하던 본당 형제님과 면담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늦었지만 한번 노력해 보자고 하면서 입시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학원비가 비싸니 자기가 아는 원장에게 사정 얘기를 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전화를 하셔서 입시학원 원장이 저희 딸을 가르쳐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늦게 미술 공부를 하면서 수능 준비를 하였습니다.
저희 딸이 수능 시험을 마치고 입학원서를 네 군데 학교에 제출하였는데 한 군데 학교에서 원서를 접수하고 손을 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합격 여부와는 상관없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전철역까지 걸어갔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봉사를 하러 나갔을 때 어느 분이 저에게 찾아와 딸이 이번에 시험 봤느냐고 물어보면서 아직 합격자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저희 딸 입학금을 자기가 내주겠다고 하고 가다가 말고 다시 돌아서서 4년 치 등록금을 자기가 모두 내주겠다고 하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가시고 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찬양했고 아버지는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를 아시는 분이셨기에 미리 모든 것을 아시고 준비해 놓으셨다가 그때에 맞춰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으리 만치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저희들을 이끌어 가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대학 입학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어쩌면 내맡김이라는 단어를 그때는 몰랐지만 매일 아버지께 맡기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이끌리는 대로 이끌려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어 봉사를 하러 나가서 찬양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그분이 또 다시 저를 부르면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흰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자기가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쓸 것 같아서 미리 가지고 왔으니까 입학금 나오면 내라고 주었습니다.
사실 그때도 합격자 발표자 나지 않았을 때이고 합격여부를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삼백만 원이 들어 있었고, 며칠 후 학원에서 저희 딸이 합격했다고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원서를 내면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울었던 그 학교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섭리는 이미 모든 것을 예정해 놓고 계십니다.
저희도 너무 기뻐서 학교에 전화해서 합격 한것을 확인하고 교무과에 전화해서 입학금이 얼마인지 묻자 2,977,000원이라고 하여 깜짝 놀라 아버지가 하시는 일임을 믿고 감사하며 기쁨의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저는 이런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체험들을 경험했지만 제 삶에 있어서 저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제가 원하는 대로 무엇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의 문제가 저의 신앙에 성숙을 이루어 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는 체 열심히만 믿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열심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부할 때는 내려놓음을 통해 무엇을 비우고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려고 무단히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비우고 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느님으로 채우는 것이며 하느님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고, 아버지께 매달려서 아버지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시도록 저를 내어드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있기에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채우시는 중심에 계시는 것을 믿고 내 필요를 스스로 채우려 할 필요가 없이 아버지 하느님께 완전히 내맡겨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기에 제 필요를 채워주시는 아버지로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심한 신앙생활로 채우려 했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기 이전에 저는 제 필요를 채워주실 때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거내영을 알고 난 후, 저는 하느님이 제 청을 들어주시지 않든 들어 주시든 하느님 때문에 행복하고 하느님만 있으면 그 나머지는 덤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 번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렸으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주시든지 우리는 그저 물 위에 떠있는 낙엽처럼,
부는 바람처럼 그저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하느님 뜻에 그냥 내맡겨드려야 한다.>
'내맡긴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도사제|09.12.20|
지도 신부님의 말씀처럼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을 수 있고 내맡겨 드릴 수 있으며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고 야속한 마음을 가지기도 하지만 아버지께 무조건 내맡겨 드리고 나면 아버지께서 저에게 정말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귀한 것을 허락하시기 위한 과정임을 알 수가 있었고
내맡김의 삶을 살면서 제 삶에 하느님이 최우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래 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하게 되었었는데 금리가 오르고 원리금 상환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가져오게 되어 아파트를 매매하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았습니다.
저희 아파트가 사는 곳은 교통이 좋고 전철역도 가까우며 인프라가 좋아서 빨리 팔릴 줄 알았지만 또 다시 금리가 오르고 아파트 값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겹치며 저의 생각과는 달리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대로 모든 상황들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저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니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는 법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고, 화살기도를 통해 더욱 깊이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는 가운데 경험되어지는 성숙이 있음을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제힘으로 하려 하고 제 노력으로 할 때는 모두가 힘들어지고 아픈 상황이 만들어지기만 할 뿐이고
결국은 제 삶의 끝에 하느님이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가, 저를 어디까지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되었고, 어떠한 위험이나 어려움에 처해도 아버지는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제게 닥친 어려움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 것만이 꼭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죽을뻔한 경험을 몇 번 하여서 두려움이 많고 늘 불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불안은 자생력을 가지고 있어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두려워하고 걱정 근심을 하면서 불안을 갖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을 추구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릴 때 그것만으로 안전하고 충분히 채워질 수 있기에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도 되고 제 삶에 있어서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렇게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살던 제가 이제 불안해하지 않고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거내영을 통해 내맡김의 삶을 살고 제 한 몸 던지면서 제 인생을 걸고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였기에
<내맡김은 “빼앗김”이나 “잃음”이 아니라 “얻음”입니다.
한 번의 맡김으로 영원을 얻게 되는 것 “영원한 얻음”입니다.>(지도사제 창화살 3-04)
“영원한 얻음”을 살아가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기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살아갑니다,
<성모님의 '하느님께 내맡김'은 너무도 철저하다 못해 너무 완벽했고
그래서 그저 단순하기만 했다. 참으로 '완전',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내맡김'이었다.
당신의 아들, 성자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부의 뜻에 대한 내맡김과도
어쩌면 그리 똑같을까!
혹시라도 누가 '그 어미의 그 아들, 그 아들의 그 어미'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까 두려워서일까!
내 마음에는 어쩌면 그 아들의 '짧은 내맡김'보다,
그 어미의 일생을 통한 '긴 내맡김'이 오히려 제 마음에 더 아프게 시려올 뿐이다.>
- 창에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내맡김 영성의 모범은 누구인가?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성모님이 수태고지를 받으실 때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특별한 선택을 받았지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에 노출되는 부담을 함께 받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은총과 고난은 패키지로 같이 오기에 아버지께 내맡겨드리는 것만이 신앙의 최고의 정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제 자아의 벽을 허무는 강력한 화살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저와 관계를 맺고,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느님과 우리를 소통하게 할 수 있는 통로가 내맡김의 삶이며 이것만이 직접적인 통로이고 이것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도와주는 것이 화살기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살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가 저에게 사랑을 하자고 다가오시는데 대한 반응이고, 자발성을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를 제 안으로 품게 되는 뜨거운 사랑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묵주기도 백단, 성체조배, 염경기도 등 참 많이 기도했고 은근히 그것을 자랑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화살기도는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기도를 저의 청원을 위한 수단이요 목적으로만 여겼고
제 뜻대로 기도하면서 제가 원하는 대로 제 생각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갖게 되면 속상해하고 자책하곤 했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걱정과 근심과 불안은 늘 제안에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뜻을 저버린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발만 급하여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알지 못하고 돌이킬 줄도 몰랐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해 화살기도를 알게 되었고 화살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살게 만들어 주는 길잡이가 되었고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왜 탁월한 영성인가?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화살기도가 저를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깊숙이 데려다주었습니다.
화살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고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버지 하느님의 방식은 무엇인지 저의 삶의 자리에 하느님 아버지를 초청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화살기도를 통해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어 가게 되었고 아버지를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서 저절로 사랑을 살도록 이끌려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게 되니 창조주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대등한 관계를 통해 제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가 증명되고 하느님으로 채워지니 나는 중요한 존재이며 이미 안정감을 느끼고 그걸로 모든 것이 충분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사랑을 살지 못했고 제 감정과 생각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니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만 하고 싶었기에 사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선언하시고 설명하시며 경험하도록 하시는데
저는 “얼마나 더하면 제 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떼를 쓰는 기도를 드렸을 뿐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었습니다.
화살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시는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제가 어디쯤 있는지 방향을 맞춰, 가는 길을 얼만큼 잘 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화살기도로 매일의 일상과 함께 도전하면서 나아갈 때 제가 바라는 것들을 얻게 하기보다는 그것이 제게 닥친 모든 문제들을 통해 저를 만들어 가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알기 전 저의 기도는 무작정 빌고 빌어서 얼마나 더하면 제 기도를 들어 주실까 하는 태도로 제 필요를 채우는 데에만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이 저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며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아버지 하느님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창화살 책에서 3-04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1) 우리는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세워서도 안되고, 세울 필요도 없다.
2) 나를 지탱해 오던 경험, 지식 이것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3) 아버지께서 세워 주시는 계획은 참으로 놀랍고 오묘하고 신기하기에 완전히 내맡겨 드리며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느낌대로 따라가야 한다.
는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느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애심으로 가득한 저의 뜻은 제 영혼에 평화를 깨뜨리고 고뇌하며, 혼돈의 무덤에 갇혀있으면서 율법의 굴레의 올무에 묶인 채 가짜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저의 신앙 상태는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했고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단체도 없었으며
아버지는 제 곁에 계시면서 저의 큰딸의 경우처럼 늘 당신 사랑을 보이시고 섭리하시며 채워주시고 이끌어 가셨지만
저는 그때 일뿐 내맡김의 삶을 몰랐기에 냉탕 온탕을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제 뜻의 삶은 저를 가로막고 있어 굴욕과 모욕 앞에 서지 않기 위해 방어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인정받으려 애쓰고 살게 하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늘 뒷전으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남편의 사업 부도로 집을 쫒겨나게 되고 20여 일 만에 아버지께서 마련해 놓으신 지하 삯월세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저희 막내를 임신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위에 아이들은 세 명이나 있었고 지하 삯월세로 쫓겨난 상황에서 또 아이를 주셔서 아버지 뜻을 알리 없는 저는 내맡김의 삶을 살지 않아서 원망만 했습니다.
이 상황에 왜 또 애는 주시느냐고 불평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생명의 주인이시고 이 아이는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그 선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저를 보고 얼마나 섭섭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를 통해 제 마음에 평화가 왔고 감사는 곧 거룩한 내맡김의 삶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위한 최고의 긍정임을 알았습니다.
“길 모르는 자의 길은 멀고 잠 못 이루는 자의 밤은 깊다.”라는 말이 있듯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아버지께 내맡기지 못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우리의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존재(有)케 하는 존재의 원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없는 죽음은 "허무"입니다.
하느님 있는 죽음은 "소유"입니다.> 지도사제.10.08.19. 09:22
위의 말씀처럼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면서 내맡기지 못하고 지는 십자가는 고난이며 고통이고 무거운 짐이지만
아버지께 내맡겨드리고 기꺼이 지는 십자가는 부활이요 구원이며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갖게 되고 아버지가 저를 놓지 않고 원하는 자리까지 기어코 데리고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참믿음의 길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뜻이라는 커다란 자아의 돌덩이는 불순종을 살게하고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세워 놓았지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저의 자아의 큰 돌덩이를 치워준 사랑의 도구였습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삶”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지도사제의 이 말씀처럼 화살기도를 통해 물질과 세상 권세에 눌려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제 삶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화살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이 제 뜻을 누르고 아버지 뜻에 굴복하자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더욱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삶으로 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성경을 매일 저녁 읽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에페소서 1장을 읽고 그것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았는지 삶에서 적용하였는지 나누고 일주일 동안 1장을 매일 읽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일주일이 지나면 그 다음장을 읽고 일주일 묵상하고 하면서 성경 말씀과 함께 화살기도와 한 축을 이루어 가니 영혼 풍성한 자양분이 채워져 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십 삼년 정도 교도소 봉사를 했었는데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에 있는 많은 교도소를 다니며 찬양을 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후원회원들을 위해 주교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렸는데 어느 해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미사를 집전하게 되었고 미사가 끝난 후 교도소 구경을 시켜주며 그 안에 있는 사형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교도관이 사형장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말씀을 하셨는데,
한그루는 사형장 담 안에 있었고 한그루는 사형장 밖에 자라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 나무가 한날한시에 심은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형장 밖에 있는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키가 크며 싱싱하게 아주 잘 자라고 있었고 안에 심어진 나무는 키도 작고 잎도 별로 없으며 아주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형수들이 밖에 있는 나무를 지나갈 때 이 나무를 붙잡고 자기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는 “나는 이제 다시는 널 볼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마지막 자신에게 있는 진실한 감정을 다 쏟아 주어 잘 자랄 수 있었고, 사형수들이 안으로 들어가서는 사형대 의자에 앉아서 죽음 앞에서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 떨고 어떤 이는 저주를 쏟아내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나쁜 기운을 쏟아 내었기 때문에 안에 있는 나무는 잘 자랄 수 없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제 저도 온 마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니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관리를 받는 귀한 터전인 무형의 성전은 아버지 사랑의 기운을 받는 영적장이고, 댓글을 통해 진실한 마음을 토해내고 신부님의 다양한 교육과 지도, 댓글을 통해 영적으로 충분한 거름을 채워 싱싱하고 건강한 나무처럼 성장하고 날마다 구원을 완성해 나가게 되니 무형의 성전과 댓글은 곧 저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지 않았을 때는 외부요인에 의해 이끌려 살아왔지만
지금 저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아가니 제 삶의 주체이신 아버지의 의를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면서
저의 삶은 아버지 중심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혼을 다 불태워 아버지께 사랑을 바쳐드립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은 경기에서 우승하는 선수들처럼 열정적이고 퇴보 없는 믿음으로 이끄는 탁월한 영성이기에 많은 영혼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화살기도는 아버지가 주시는 영감이 무엇인 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고 아버지 뜻에 먼저 저를 내맡겨 드렸기에 아버지 뜻이 아니면 쉽게 '아님말구'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화살기도로 어떤 일이든 무리수를 두지 않고 아버지께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아버지 안에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도록 이끌려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제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어 아버지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삶을 살지 못하며 내맡기지 못한 제 믿음은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지식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거내영은 성령의 ”새로운 파도“이고 ”새 물결“로 거내영의 세계화를 위해 포문을 열고 계시는 아버지께 이 한 몸 죽기까지 바쳐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겨 드리오니 이끌어주시고,
저희가 당신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