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넘치고 능동적인 아이 기르기
문기정
세상의 아이들을 들여다봅니다. 형제의 숫자가 줄어 부모들은 자식을 금덩이처럼 아끼고 자연 버릇없는 아이가 되고 맙니다.
가정을 들여다봅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아이들은 할머니가 맡아 기릅니다. 외할머니도 거기에 한몫 거듭니다.
어린이를 맡고 있는 기관은 어떤가요? 여전히 부족한 수의 유아 교사며 보모가 많은 수의 어린이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기본 생활 습관이 있고 생활규칙이 있으며, 빠듯한 과제가 쌓여 있습니다.
육아 도서를 들여다봅니다. 육아 방식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성숙주의적인 방법으로 기르는 데 익숙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행동주의적인 방법으로 기르는 데 익숙한 부모들 간에 의견이 다르고, 상호작용주의적인 방법으로 기르는데 눈을 가진 선생님과도 육아 방식의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참신하고 뾰족한 육아 방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아교육의 실천가인 히라이 노부요시가 쓴 ‘꾸짖기 전에 읽는 책’은 이들의 육아방식을 통합한 것으로, 이 내용을 내 주변의 많은 분들과 가정의 젊은 부모들, 유아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선생님들이 이 책의 내용을 한 번쯤 읽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그분의 글을 번안하여 지금 여기에 그 대강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1. 히라이는 어떤 사람인가?
히라이 노부요시(平井信義)는 1919년 3월 일본 토쿄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뜻한 바 있어 또다시 도후쿠(東北)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그 후 모자 애육회 애육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어린이집 원생들을 돌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연구소 근무를 마치고 오차노미스(茶の水)여자대학 교수로 봉직하면서 유아연구를 계속하였으며, 1970년 오오쯔마(大妻)여자 대학으로 옮겨 20년간 근무하였고 정년 후에도 계속하여 비상근 강사로 일하였습니다. 또한 의학박사로서 유아보육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아동학 연구회장직을 맡은 바 있습니다.
저서로는 ‘등교 거부아’ ‘자폐아의 보육과 교육’ ‘잃어버린 모성애’ ‘어린이의 능력을 알아내는 법’ ‘좋은아이 나쁜아이’ ‘걱정되는 어린이들’ ‘가정교육과 친자관계’ 등 다수가 있습니다.
2. 히라이의 교육관
히라이의 교육관의 기저에는 ‘성선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보려는 입장입니다. 성선설의 주창자라고 할 멍쯔(孟子)는, 인간은 본래 그 성품이 선하기 때문에 각자가 본성적으로 선한 것을 토대로 하여 행동을 하게 되면 성인군자도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서구에서는 18세기 중엽 루소(Rousseau)에 의하여 성선설이 주창되었는데, 그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인간은 본시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은 출생 시에 어질고 티 없는 선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어른들의 풍습과 관습에 오염됨으로써 악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루소의 성선설은 어린이를 혹독한 훈육에 의하여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히라이의 교육관과 유사한 현대 교육가로서 니일(Neill)을 들 수 있습니다. 니일은 영국의 서포크에 ‘섬머힐’이라는 학교를 설립하여 약 50년간 자유교육을 실천한 분입니다. 그도 역시 성선설을 수용하여 그 믿음을 결코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어질기 때문에 성인의 어떤 암시도 받지 않고 혼자 자랄 수 있게 한다면 아이들은 발전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히라이도 니일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동양의 교육학자이자 의사인 셈입니다. 히라이는 ‘어린이가 하는 일에 악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히라이의 육아원칙
어린이의 장난질을 지켜 보십시오.
어린이의 장난질은 호기심의 표현입니다. 영아가 몸을 이동할 수 있게 되면 주위의 모든 사물을 탐색하게 됩니다. 이러한 장난질은 탐색활동이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의욕의 한 표현인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장난질을 막게 되면 어른스런 아이가 되어 자기의 뜻대로 과업을 행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고 맙니다.
어린이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십시오.
자발성의 발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자유란 방임과는 다른 것으로서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하고 있는 일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가급적 지시, 명령, 통제 등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말참견하거나 손을 거들어주지 않는 가운데 주어지는 자유야말로 자발성, 즉 하고자 하는 마음을 기르는 필요 불가결한 양육방식입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워야 합니다.
어린이답다는 것은 어떤 어린이를 말할까요? 장난스러운 어린이, 농담할 줄 아는 어린이,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심지어는 싸움도 불사하는 어린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거나 이유를 물어보는 어린이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어린이는 가끔 버릇이 없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진정 좋은 어린이의 모습들인 것입니다.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알고 양육해야 합니다.
흔히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독자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인격체인 것입니다. 그들을 존중하는 부모야말로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숙지하여 발달 단계에 따른 발달과업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게젤(Gesell)의 연령별 표준행동목록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성숙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준비성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양육방법이 선택되어져야 합니다. 이 원칙은 현대적인 표현을 빌면 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머와 농담을 조장해 주십시오.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정에 활력이 넘치고 평온함이 흐르며 마음의 벽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웃음이 없는 엄격한 가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행동이 틀에 얽매어 무미건조한, 웃음이 없는 가정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유머는 사랑이 통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익살과 농담이 있는 가정이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꾸짖지 않는 교육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간신히 몸을 이동할 수 있게 되면 곧 장난질을 시작합니다. 이러한 장난으로 입은 피해는 부모가 떠안아 곤란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고, 자연히 어린이를 꾸짖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나 양육자는 어린이의 행동 결과에 대하여 조용히 호소하여야 합니다. ‘할아버지는야, 이것을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라고 호소하면 다시는 그런 장난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휴지통을 엎지르고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작거리는 유아에게 나무람이 없이 ‘뿅뿅’하면서 엄마가 쓰레기를 주워 담으면 아기도 따라서 주워 담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쓸데없는 장난은 졸업을 하게 됩니다.
어린이에게 무엇이든지 도전하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의 창조성에 기초한 도전을 지켜보면 어린이는 무한한 잠재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의 창조성은 가끔 엄격한 가정의 버릇주의에 의해 감춰지고 맙니다. 어린이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어린이의 생각에 맡기면 창조적인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 스스로 발달해 가도록 느긋하게 지켜보십시오.
어린이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면 스스로 발달해 가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어린이가 행하는 일을 보고 있자면 꾸물거리고, 자주 실수를 하기 때문에 성급한 부모나 양육자는 곧 손을 써주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내맡겨보면 비록 진전 속도는 느릴망정 여러 번의 시행과 착오를 거듭하는 동안에 바른 결과를 얻어내게 되고 새로운 방법이 창안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성급할수록 결과만 중시하게 되어, 어린이의 창의성은 묵살되고 행동은 위축되는 것입니다.
감동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부모의 감성으로부터 하고자 하는 마음은 길러집니다. 어린이가 해낸 일에 대하여 감동할 수 있는 부모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인정받기를 기대하면서 행동합니다. 일의 수행 결과가 자랑스러울 때 어린이는 격려와 칭찬을 받고자 합니다. 부모가 진실로 감동하는 장면이 많아질 때 아이는 의욕이 넘치게 됩니다.
버릇들이기를 중지하십시오.
버릇들이기는 철저한 훈육 하에서 가능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훈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버릇주의는 어린이다운 어린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무엇 무엇을 하여라” “무엇 무엇을 하여서는 안돼”하고 명령하는 것이 버릇들이기의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어린이가 순종하기를 바라는 양육자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무조건 순종하는 상황에서는 자발성이 위축되며 과제의 발견이나 자기실현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령적 압력에 의한 버릇들이기는 중지되어야 합니다.
4. 히라이 육아법에 대한 중요한 판단
양육방식의 유형은 유아의 발달에 관한 견해가 각기 다른 데서 형성되었습니다. 히라이와 같은 성숙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유아 중심의 양육 패턴을 형성하였고, 스키너(Skinner)와 같은 행동주의자들의 경우에는 행동의 형성(shaping)을 인위적으로 가능케 하는, 이른바 부모 중심의 훈련식 양육방식을 형성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양대 지주는 지금도 유력하며 두 가지 방식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숙주의자들은 지나치게 허용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과보호적이어서 오히려 좋지 않은 인성을 형성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애정이 흐르고 유아 존재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풍토이므로 히라이와 같은 육아 원칙을 고수한다면 바람직한 양육 패턴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행동주의자들은 가시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 외현적인 행동의 변화를 조작적으로 형성하고 유지시키기 때문에 얼핏 바람직한 양육 패턴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처럼 기계적인 양육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형성된 바람직한 행동도 쉽게 소거됩니다. 기본생활습관을 형성시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는 부모나 양육자들이 고려하여야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행하다보면 성격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들여진 버릇이 오래가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버릇들이기 같은 지배적 양육방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요사이는 양자의 통합론으로서 상호작용주의 육아 방식을 채택합니다. 타고난 품성을 그대로 개발하도록 돕는 한편 환경적인 요인을 첨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양육방식은 인지 교육적 관점에서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부모 또는 양육자는 이상의 발달에 관한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양육 방식을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히라이의 육아법은 인간중심 교육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