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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잠23:32]주제1: [탐욕에 대한 경계]주제2: [쾌락의 유혹을 멀리하라]
뱀 ... 독사 - 본절에서 이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한번 물리면 야기되는 치명적이고도 신속한 영향력 때문인 것 같다. 뱀이나 독사에 물리면 그 독은 신속히 퍼져 전신마비를 일으키고 결국엔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 경: [잠23:33]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 '괴이한 것'에 해당하는 '자로트'(*)의 기본형인 '주르'(*)는 '곁길로 돌다', '간음하다', '이상한 것' 혹은 '매춘부' 등의 뜻이다. '자로트'를 '이상한 것'으로 보면(strange sights, NIV;strange things, RSV),본 문구는 술취한 자의 감각과 판단력이 마비된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를 '매춘부'로 보면 (strange women, KJV), 음란한 정욕에 휩싸이기 쉬운 술취한 자의 방탕한 모습을 나타낸다.
성 경: [잠23:34]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 술취한 자가 깊은 바다에 누운 자 같다는 것은 일어설 수 없어서 바닥에 누워 있으면 마치 파도가 있는 물결 위에 누운 듯 계속 울렁거림을 느낀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이는 감각이 마비되어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를정도로 이르렀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 돛대 위는 누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그 위에 누었다면 그것은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술취한 자의 상태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성 경: [잠23:35]
술취한 자에 대한 묘사는 술에서 깨자마자 다시 술을 찾겠다고 하는 무서운 알콜 중독 증세에 관한 것으로 끝이 난다. 이쯤되면 이제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 형편이 된다.
성 경: [잠24:1]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 원문 직역은 '너는 악인을 부러워 하지 말라'이다. 여기서 '부러워하다'(*, 테카네)는 그 상대의 성품이나 인격보다는 가진 바 소유, 번영등을 질투하는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바로 앞 문맥(23:31-35)에서는 술취한 자에 관해 논했었는데 본장 초두에서는 악인에 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라는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참 지혜를 따르는 자는 악인의 물질적 형통을 질투하지 않을 뿐더러 그들과 동행하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
성 경: [잠24: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 '쇼드 예흐게 리밤'(*)으로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마음은 파괴를 연구한다.' 여기의 '파괴'는 강도, 살인 등을 가리키며 '연구하다'는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악인의 형통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부정 축재(蓄財)의 결과임을 보여 준다.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 문자적인 뜻은 '그 입술은 해악을 말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상반절과 함께 1절의 이유가 되는데, 악인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의 유익을 꾀하기 위하여 거짓, 중상 등 온갖 범죄를 일삼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아주 가까이서 악인의 이런 면들을 관찰하면 그의 더러운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Kidner).
성 경: [잠24: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 문자적으로 보면 지혜가 건축가로 되어 있다. 물론 본서에는 노골적으로 지혜의 의인화를 꾀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일례로 9:1-6에 의하면 지혜는 집을 세우고 손님들을 초청하여 그 손님들에게 지혜를 주어 '생명'을 얻게 하는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지혜로 말미암은 축복된 결실을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악인의 도모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지혜로운 자의 슬기로운 처신은 건설적인 결과를 낳으며 특히 한 가정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한다.
성 경: [잠24:4]
방들은 ...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 - 3절에서의 '집'과 마찬가지로 본절의 '방'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될 수 도 있겠지만, 한 가정, 한 인간의 성품 혹은 기업 따위의 단체등에 관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외 형을 암시한다면 '방'은 내면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Cook). 한편 어떤 학자는 내면보다는 외형, 특히 물질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현대를 이렇게 꼬집고 있다 : '오늘날 가정들을 보면 책꽂이가 TV 세트에 의해서 그리고 책상이 침대에 의해 방들로부터 쫓겨나고 있다'(Plaut). 참지혜자의 가정은 풍성한 내면적 요소로 가득하다.
성 경: [잠24:5]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 '강하고'(*, 바오즈)의 문자적인 뜻은 '힘 안에'로서 어떤 힘에 뿌리를 박은, 확고히 선 무엇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Cook). 비록 외관상 약해 보이더라도 참지혜자는 깊은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무처럼 삶의 목적과 중심이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 행동이 거리낌 없다.
성 경: [잠24:6]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본절의 '모략'은 싸움에 필요한 '전략'을 가리키고 '모사'는 그 전략을 짜는 '전략가들'을 가리킨다. 본절의 핵심은 승리를 위해 서는 힘, 완력보다는 전략이 중요하지만 진정한 전략은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근거는 문맥이 계속적으로 지혜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주제를 11:4;20:18 그리고 21:22 등이 다루고있다.
성 경: [잠24:7]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너무 높아서(*, 라모트) -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다에서 나는 보석 '산호'를 뜻한다(욥 28:18;겔 27:16). 말하자면 우매자에게 있어서 지혜는 너무 값이 비싸서 손에 넣을 수 없는 산호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라모트'가 형용사로 사용되면 '높은'인데 개역 성경은 이러한 형용사적 의미로 번역했다(too high, KJV, NIV,RSV).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중요한 재판이 열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은 재판 따위의 중요한 일이 있을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형벌에 처해지고 만다는 뜻이다. 지혜가 없는 우매자에게 이 같은 현실은 당연하다 하겠다. 당시에는 지혜있는 자가 사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았던 사실을 생각할 때 본 구절은 지혜를 습득하지 못한 우매자는 사회 속에서 그어떤 공직에도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을 밝히는 내용으로 볼 수 도 있겠다(Whybray).
성 경: [잠24:8]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사특한 자 - '사특'(*, 메짐모트)은 무법하고 음란한 음모를 묘사할 때 사용되며(레 18:17;삿 20:6) 여기서는 특히 냉혹하고, 계산적이고, 저돌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된다. '사특한 자는' 이러한 외관상 강한 활동력을 지닌 수완있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이웃들은 잠시 속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음모의 특성에서 드러나듯이 이 자는 각종 도덕성을 비웃고 가볍게 여기므로 얼마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그의 진면목이 탄로되기 마련이다.
성 경: [잠24:9]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 대부분의 영역본들이나 개역 성경처럼 본 문구의 주어를 '생각'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러나 평행구인 하반절의 주어가 원문상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 문구의 주어를 '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Toy). 이렇게 볼 경우에, 미련하고 사특한(8절)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죄라고 하는 해석이 가능해진다(W.J. Deane).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복과 용서 구함이다. 그러나 우매자는 그 방법을 모르거나 알아도 실행치 않으므로 결국 사람들의 혐오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성 경: [잠24:10]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본서 원문 직역은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함을 보인다면 너의 힘은 작다.' 모든 일이 평탄할 때에는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고 또 강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심각한 역경에 처하게 되면 인생의 무기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참 신앙의 판가름은 바로 이 역경의 때에 나게 된다. 왜냐하면 신앙은 인생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극복하게 하는 위대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시련과 역경의 때에 두려워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극복해야 한다. 한편 본절을 환난의 날 묵묵히 견디기를 도전하는 내용으로 본다면 이렇게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 '만일 재앙의 날에 연약해진다면 너의 힘은 과연 강한 것이겠는가!'
성 경: [잠24:11]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본절은 치명적인 위험 중에 있는 자들을 구출할 것을 명령한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 혹은 '살륙을 당하게 된 자'는 거의 죽게된 자를 뜻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악이나 사려깊지 못함으로 멸망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 자들을 가리키거나(Toy), 어떤 이유로든지 구속되고 재판받아 극형에 처해지기 직전에 있는 자를 가리키거나(McKane)또는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 처해있는 자를 가리킬수 있겠으나 본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음절이 구출받아야 할 자에 대해서 도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는 무관심, 무지 혹은 이기심 때문에 그를 구출하려는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눅 10:30-36).
성 경: [잠24:12]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승리로 이끄는 지혜]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 만일 진정 도움받아야 할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나온 말이라도 이 말을 하는 자들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한다. 그는 그만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주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마25:31-46). 그러나 실상 이 말을 하고 있는 자들은 알았으면서도 이같이 말하고 있는것이다. 즉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강도 만난 이웃이 급히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마음을 저울질 한다'는 말은 그 마음의 생각을 헤아려 안다는 뜻인데 이는 그 어떤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악한 내면을 속일 수 없음을 나타낸다.
성 경: [잠24:13]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꿀을 먹으라 - '꿀'은 분명히 지혜를 상징한다(14절). 이스라엘에서도 꿀은 건강식품일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육을 돕는 식품으로 알려졌다(사 7:15). 그러므로 순전하고 몸에 유익을 주는 물질인 꿀을 지혜를 대신하여 언급한 것은 매우 적절한 비유인 셈이다. 신약 성경에는 꿀과 함께 젖이 지혜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고전 3:2;9:7;히 5:12;벧전 2;2).
성 경: [잠24:14]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이는 1차적으로는 지혜를 따라사는 자가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영적, 육적 축복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영원한 내세의 삶 또는 그 축복에 관한 암시도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절의 '장래'(*, 아하리트)는 '소망'(*, 티크와트) 등의 용어가 메시야적 소망의 미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가끔 나타난다(창 49:1;렘 31:17)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성 경: [잠24:15]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의인의 집 ... 쉬는 처소 - 이것은 한 개인인 의인의 가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의인의 가정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는 하나님과 그분이 세운 계획 및 경륜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가정과 그들의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이다(마16:18).
성 경: [잠24:16]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 '대저'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이다. 악인이 의인의 가정이나 교회를 공격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의인의 궁극적 승리 때문이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수이다(잠 6:31;26:16;창 4:24;욥 5:19;마 18:22). 따라서 '일곱 번 넘어짐'은 완전한 멸망을 뜻한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완전한 멸망인줄 알았지만 의인은 다시 재기(再起)하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끝내 일으켜 세우시기 때문이다.
악인은...엎드러지느니라 - 반대로 악인은 한번 파멸에 처하면 회생할 수 없다. 하나님없이 재앙으로부터 재기하기란 불가능하고 그들에겐 그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15, 16절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의인은 승리를 거두지만 의인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바로 자신의 악행 때문에 넘어지리라는 것이다.
성 경: [잠24:17]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즐거워하지 말며 ...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 '즐거워하지'(*, 티스마흐)는상대의 고통 따위를 보고 히죽 히죽 웃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며 '마음에 기뻐하지'는 동일한 고통을 보고 웃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내적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비록 그 상대가 자신을 치고 공격하였던 자라도 이 같은 자세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데 그 같은 미움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 상대방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 경: [잠24:18]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 혹자는 '그 진노'를 원수의 악한 생각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이 원수의 악한 궤계까지도 변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 때 그를 조롱했던 자가 당혹케 되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그보다는 개인적 복수심에서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는 자세를 경고한 내용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물론 성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멸망을 보고 기뻐함이 마땅하다(출 15장;17:15;삿 5장;시 58:10). 그러나 주의할 사실은 심판주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A.P. Ross).
성 경: [잠24:19]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행악자의 득의(得意)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 원문 직역은 '악인들 때문에 스스로 분노하지 말라.' 악안으로 인하여 분노할수 있는 경우는 많다. 특히 온갖 악행을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사는 경우를 보면 참기 어려운 분노가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본절은 그러한 경우에도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다음 절은 이에 대한 이유를 적고 있다.
성 경: [잠24:20]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 여기의 '장래'란 말은 땅 위에서 누리는 지속적인 축복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누리는 여생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악인에게는 장기적인 혹은 궁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땅 위에서든지 하늘에서든지 누릴 축복이없다. 잠시 축복을 누리는 것처럼 끝나버릴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장래'는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영생에 더 비중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악인 중 재앙도 없고 부를 누릴 뿐 아니라 고통도 없이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로 야기된 갈등을 안고 쓴 것이 시편 73편이다.
성 경: [잠24:21,22]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를 찾는 자]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진 왕에게도 복종하라는 내용이다.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 이것의 해석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반역자'로 번역된'쇼님'(*)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명사의 동사형인 '솨나'(*)는 '반복하다', '변화되다', '달라지다' 등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쇼님'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RV는 '정치 선동가', 시리아역(Syriac)과 탈굼역(Targum)은 '어리석은 자들', 라틴역(Vulgate)은 '딴 길을 가는 자들', 델리취(Delitzsch)는 '다른 성향의 사람' 그외에 '달리 생각하는 자', '불찬성자' 등이 있다. 그런데 본절 전체의 강조점은 상반절이 묘사하듯 하나님과 왕에 대한 경외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해석은 문제의 한 단어가 아닌 전체의 강조점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되어져야 하리라 본다. 가장 무난한 해석은 본 구절을 여호와와 왕에 대한 경외를 부정적 표현을 통해 강조하는 내용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 경우 해석의 내용은 이렇다 : '여호와와 왕 중 그 누구도 반역치 말라'(do not disobey either of them,RSV). 이 해석은 70인역(LXX)이 지지한다(벧전 2:17).
성 경: [잠24:23]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낯을 보아 주는 것 - 원문 직역은 '편애하는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재판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편파성을 보이는 것'으로 의역해도 무방하겠다(To show partiality, NIV).
성 경: [잠24:24]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 왜냐하면 한 나라의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건전한 윤리관을 가지고 공의로서 통치하는 정부를 믿고 따르는 반면 불의와 불평등이 조장되는 상황에서는 불평 불만속에서 제각기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려 들기 때문이다(Whybray). 물론 유다 말기, 이 윤리관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바벨론이 침입해 와서 유다를 멸망시켰었다(합 1:1-10).
성 경: [잠24:25]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기쁨을 얻을 것이요 - 백성들을 기쁘게 해주며 결국 백성들의 칭송과 존경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Cook). 법관이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방법은 그 맡은 책임대로 편파성없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다.
성 경: [잠24:26]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 '바른 대답을 하는 자에게 모든 사람이 그의 입술에 키스할 것이다'(Every man shall kiss his lips giveth a right answer,KJV)가 원문에 더 가까운 번역이다. 여기에서 바른 대답을 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법정에서 판사가 법을 따라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 곧 공정한 판결을 선고하는 것 혹은 증인석에 앉은 자가 본 그대로 증언하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 진실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Whybray). 바로 그런 자는 모든 사람의 키스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성경에서 입맞춤은 이성간의 애정의 표시뿐 아니라 존경, 신뢰, 우정 등의 표시로 행해지기도 했다(창 27:26, 27:33;4;삼상 20:41).또한 페르시아 시대에 있어서 키스는 진정한 우정의 표였다고 한다(Herodotus). 말하자면 진실된 교제를 나누는 자는 우정의 친구를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이다(롬 16:16;고전 16:20).
성 경: [잠24:27]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원문 직역은 '밖에서 너의 일을 하되 밭에서 준비하라. 그 후에 너의 집을 세우라.' 집을 건축하기 전에 밭을 질서정연하게 갈아 놓는 등 먼저 해야 할 일을 완수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집을 세우다'는 것이 가정을 형성한다는 의미로서 사용되는 사실을 고려할 때(출 1:21), 본절은 급하고 신중치 못한 결혼에 대한 경고로볼 수도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는 구매 혼인(購買婚姻)의 풍습이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본절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여자의 보호자에게 사의(謝意)로 상당한 분량의 빙폐(聘幣)를 지불하였던 것이다(창 34:12;출 22:16.17;룻 4:5;삼상 18:25). 어쨌든 본절의 핵심은 어떤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할 일을 구별하여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Whybray).
성 경: [잠24:28]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 거짓 증인을 겨냥한 경고적 명령이다. 여기의 '증인'은 반드시 법정 용어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본 구절을 어떤 개인 혹은 정부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 비난의 중지를 명령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성 경: [잠24:29]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본절이 28절의 연장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개인적 감정 차원의 복수 금지에 대한 강한 권고인 것은 분명한데 이는 심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마5:43-45).
성 경: [잠24:30]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밭 ... 포도원 - 이것은 인간의 세상적 소유물 곧 그 사람의 삶의 현장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밭, 포도원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 소유주의 삶의 현장의 특성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Gregory).
성 경: [잠24:31]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거친 풀 - 원어는 '하룰림'(*). 그 표면이 가시로 가득한 아칸더스(acanthus)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쐐기풀'을 가리키는 데 이 식물은 그대로 방치해두면 어디서나 신속히 퍼져나간다고 한다(Deane).
성 경: [잠24:32]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훈계를 받았었노라 - 매사에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는 훈련만 되어 있으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땅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책들을 읽고 설교를 들을 것이며 모든 살아있는 짐승 그리고 새, 물고기, 곤충 그리고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유용한 혹은 무익한 것들로부터 배울 것이다(Spurgeon).
성 경: [잠24:33]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좀더 자자 ... 좀더 눕자 - 게으른 자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더 잠자려는 사람의 모습에 비추어 묘사하고 있다. 이 묘사는 땀흘려 일하기를 싫어하고 육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게으른 자의 참 모습을 특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잠24:34]
주제1: [지혜에 대한 끝없는 추구]
주제2: [지혜자의 거듭한 교훈]
개역 성경에는 원문 일부가 생략되었는데 그것을 보충하여 완역하면 이렇다 : '네빈궁이 여행자처럼 올 것이요 네 부족함이 군사처럼 오리라.' 어떤 역본을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여행자' 대신에 '악당', '강도'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a bandit,NIV; a robber, RSV) '여행자'나 '악당'의 특성 중에 하나는 언제 나라를 침입하는 군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본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계속 게으름을 연습하는 자에게 빈궁은 갑자기 임한다는 것이다.
성 경: [잠25:1]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 - 본절은 25-29장의 표제어와도 같다. 표제어의 의미는 첫째, 25-29장에서 진술되는 내용은 솔로몬의 통치시대 때에 솔로몬이 기록한 내용을 근간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솔로몬의 기록을 근간으로 하기는 했으나 히스기야 시대 때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그 내용이 좀더 체계적이고 주제 중심적으로 재편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재편집은 왕 히스기야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25-29장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주제 중심적 재편집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7절은 왕과 그 신하를 위한 교훈, 26:1, 3-12은 어리석은 자를 위한 교훈, 26:17-28은 악을 행하는 자를 위한 교훈으로 되어 있음을 볼수 있다(Clark, Henry, Kidner).
성 경: [잠25:2]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성경에서 하나님과 왕은 동일한 맥락에서 언급되기도 하나 본절에서는 대비적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이나 그 깊으신 뜻 그리고 그의 우주 통치 방법, 의도 등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다(신 29:29;사 45:15). 성경을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은 풍유, 비유 등에 가리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어떤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계시의 제한성을 암시하신 바 있다(마 13장'씨 뿌리는 비유' 참조). 어떤 학자는 하나님의 이 속성에 관해 이렇게 소견을 적고있다 : '그 존재의 속성, 의도 등이 모두 알려져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더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McKane). 반면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라고 하는데 여기 '살피는'에 해당하는 '하르코'(*)는 '비밀을 밝히는 것', '연구해서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는 왕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서 왕은 국사(國事) 전반에 관한 문제들에 관하여 깊이 연구하여 국민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 궁금해 하는 것들을 숨김없이, 모호함이 없이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재판, 사법상의 문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Greenstone). 우리는 대비적 관점에서 본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왕의 통치가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운 자로서의 왕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국사의 원리,내용 등을 정립해야 하는데 그 경우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는 그 일을 할 수없기 때문이다.
성 경: [잠25:3]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본절은 왕의 속성 혹은 왕에게 주는 권고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전자로 볼 경우 이는 왕의 통치 행위 및 국사 특정 사항의 결정등은 평민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내용이 되겠다. 후자로 볼 경우 왕은 통찰력이 있어서 항상 한발 앞을 내다보고 전진함으로써 그의 통치권을 든든히 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이 둘 중 어느 것을 취해도 무리는 없으나 본절이 특정 부유의 사람들을 권고하는 대목의 일부이므로 후자로 보는 것이 좀더 바람직하다(1절 주석 참조).
성 경: [잠25:4]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 은을 비롯한 광물을 제련하면 순순한 물질만 남게 되고 대장장이는 그것을 가지고 유용한 기구들을 만든다. 이런 과정을 염두에 둘 때 제련 과정을 묘사한 뒤에 바로 나온 본 구절은 '은장색이 사용할 물질이 나올것이요'로 번역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많은 역본들이 이것을 지지한다(NIV, RSV,NEB).
성 경: [잠25:5]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 4절이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면 본절은 그예가 주는 주된 교훈에 해당한다. 그 근거는 두 구절이 평행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이 평행 상태를 뒷받침해 주는 것은 두 절이 공유하고 있는 '제하라'라는 명령어이다.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듯 왕에게서 악한 자를 제거할 경우 얻게 되는 유익을 담은 내용이 바로 본 구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주변에는 사리사욕만 탐하며 아첨하는 간신 모리배들이 모여든다. 이때 왕이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신하를 따를 경우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놓칠 수 있다. 반면에 그 같은 신하를 제할 때 왕궁에는 의로운 충신들만이 남게 될 것이고 그 충신들의 조언을 듣는 왕의 통치는 의로운 통치가될 것이다(Greenstone).
성 경: [잠25:6]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 말며(*, 알 티트하다르 리프네 멜레크) - 직역하면 '왕 면전에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 저돌적이고 욕망이 강한 자일수록 왕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드러내기를 힘쓴다. 물론 그의 의중에는 높은 지위로 승진하고자 하는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
성 경: [잠25:7]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왕 앞에 서는 자의 지혜]
문자 그대로 보면 본절은 교만으로 인해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6절에서 잠시 논(論)한 대로 화제의 배경이 왕의 면전인 것을 중시할 때 본절의 핵심은 왕실에서의 승진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참 지혜자는 자기 과시를 통한 무리한 승진을 꾀하기보다는 인내로 기다린다는 것을 본절은 가르친다. 인위적인 노력으로 승진을 꾀하는 자는 승진은 커녕 궁전 모든 신하들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하고 만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근동 지혜서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는 본 경고는 잔칫집에서 제자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주님이 인용하셨던 경고이기도 하다(눅 14:8-11).
성 경: [잠25:8]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 문자적인 뜻은 '다투기 위하여 급히 나가지 말라'인데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법정적인 관점에서 이 구절을 다루고 있다(Clark, Cook,Whybray 등). 아마도 '다투기'로 번역된 '랄리브'(*)가 법정적 용어이기 때문인것 같다(마 5:25). 소송건에 급히, 가볍게 뛰어드는 것 예를 들면 쉽게 증인석에 나서는 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목격한 내용이 신빙성이 없어서 일정 소송 사건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경우 쉽게 나선 그는 대중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 경: [잠25:9]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본절은 이웃과 논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끼리만 논쟁을 할 것이요 자신의 옳음을 인정받으려고 타인에게 논쟁 상대자의 개인적 단점, 비리 등을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도 어떤 형제가 분명히 범죄했을 경우, 그와만 만나 권고할 것을 가르치셨다(마 18:15). 범죄한 상대에게 이렇게 대하여야 한다면 의견 차이를 보이는상대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분쟁은 분쟁 상대자끼리만 알고 해결됨이 바람직하다.
성 경: [잠25:10]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원문이 '... 하지 않도록'의 의미를 지닌 '펜'(*)으로 시작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해서 재번역하면 이렇다 : '그것을 듣는 자가 너를 모욕하고 악한 평판이 따르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비밀스런 것을 청취했을 경우 인간은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 화자를 멸시하고 때에 따라서는 야단을 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곧 그는 입이 가볍고 신실하지 못한 자로 소문이 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친구들마저 잃게 될 것이다. 외경 집회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참조해 볼 수있겠다 :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신용을 잃게 되고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없도다.친구를 사랑하고 그 친구에게 신의를 지켜라. 그의 비밀을 폭로하였거든 더 이상 그와 사귀지 말라. 사람이 자기 원수를 죽인 것같이 너도 네 이웃의 사랑을 상실하였느니라'(집회서 27:16-18).
성 경: [잠25:11]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경우에 합당한 말(*, 다바르 다부르 알 아페나) -여기서 히브리어 '아펜'(*)은 원래 '바퀴'를 뜻하나(겔 1:15) 여기서는 '상황'(에 알맞은)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본 문구는 상황에 꼭 필요한 지혜롭고 시기적절한 말을 가리킨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 문자적인 뜻은 '은 그림 속에 금사과.'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 이것은 은빛을 바탕색으로 하는 접시따위의 주방 용품에 그림으로 새겨진 신선한 과일 모양을 연상케 한다. 당시 상당히 가치있는 물건으로 취급된 세공품의 일종이었던 아로새긴 쟁반이 언급된 이유는 상황에 맞게 재주있게 구사되는 언어의 가치를 좀더 생생히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성 경: [잠25:12]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본절은 바르게 알고 행동하기 원하는 자는 선의의 책망과 충고를 존중한다는 것을 가리킨다(9:9;15:31). 특히 '청종하는 귀'는 사제지간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참제자는 스승의 꾸지람에도 귀를 기울인다.
성 경: [잠25:13]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 원문 직역은 '추수철의 눈의 냉기.' 추수철에 내리는 눈이나 우박 따위는 추수꾼에게 시원함을 주기보다는 공포와 손해를 줌으로 여기 '눈의 냉기'를 문자 그대로 눈 혹은 우박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삼상 12:17, 18).그보다는 '사자'라는 표현이 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눈의 냉기'는 왕궁에서 5,6월의 찌는 듯한 열기를 식히기 위하여 포도주나 음료에 타서 먹던 레바논이나 헬몬산의 얼음 정도로 보는 것이 좋겠다. 결국 본절은 무더운 추수 때에 농부가 얼음물을 마신다는 뜻이 아니라 '시원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왕이 먹던 얼음과 추수때에 느끼는 갈증을 연관시키고 있는 듯하다.
성 경: [잠25:14]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거짓 선물로 자신을 자랑하는 자.'이 사람은 많은 것을 약속해 놓고 아무 것도 지키지 않으므로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사람은 여름 가뭄 때 한바탕 쏟아지는 비와 서늘한 바람을 고대하는 자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신약에서는 죄악과 파멸로 인도하는 거짓 선생들이 바로 이와 같은 존재로 비유된 바 있다(벧후 2:19;유 12절).
성 경: [잠25:15]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보다는 참을성있게 진지한 자세로 건의(建議)를 올릴 때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니라 - 부드러운 말은 처음에는 거의 가능해 보이지 않던 일도 성사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관대하고 호감을 주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속의 장벽을 헐며심지어 적의(適意)마저 없애주는 위력을 지닌 것이다. 한편 부드러운 인내의 말투는복음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자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신약 성도가 준비해야할 덕목이기도 하다(벧전 3:15, 16).
성 경: [잠25:16]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족하리 만큼 먹으라 - 꿀이 모든 즐거움을 상징하는 음식임을 고려할 때 (Cook), 본절은 모든 즐거움을 정도에 지나치지 않게 취하라는 권고로 보여진다. 에덴 동산 타락 이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즐거움을 주는 물질 혹은 기호를 적절히 취하여 즐거움을 맛보기보다는 고도하게 취하여 심신을 상하게 만든다(Kidner).
성 경: [잠25:17]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경우에 합당한 말]
원문 직역은 '너의 이웃의 집에 너의 발이 좀처럼 있지 않게 하라(혹은 귀하게 되도록 하라...).'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 죄성을 염두에 둔 묘사로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빈번한 만남을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낳아야 하는데 도리어 미움을 낳는 인간 세태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 '너무 친하면 경멸하게 된다'(Clark). 그러나 절제를 강조하는 앞절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친한 벗이라 하더라도 예의와 삼가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로 볼 수 있겠는데 문맥을 중시할 경우 후자가 좀더 낫다.
성 경: [잠25:18]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방망이 ... 칼 ... 살 - '방망이'(*, 메피츠)는 무거운 나무 망치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곤봉을 뜻할 것이다. 이것은 달려드는 적을 한 방에 기절시키기 위하여, 칼과 살을 각각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적을 찌르고 맞추기 위하여 사용하는 치명적인 무기들이다(Mattew Henry). 이처럼 거짓 증거는 무죄한 이웃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14:5;출 20:16;신 5:20).
성 경: [잠25:19]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악인을 의뢰하는 자는 그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고통만 더하게 될 뿐임을 경고하는 구절이다.
성 경: [잠25:20]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 - '마음이 상한 자'란 원문에 따르면 '마음이 무거운 자'인데 많은 근심되는 일로 인해 크게 낙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상태에 있는 자에게 세레나데와 같은 것은 큰 위로를 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연주 결과가 추운날 옷을 벗긴 것과 같은 싸늘함을 낳는다고 묘사되는 것으로보아 이곳의 '노래'란 상황에 맞지 않게 흥을 돋우고자 하는 노래를 상대방에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느끼게 만들 것이 뻔하다.
쏘다(*, 나테르) - 이것은 고대의 천연탄산 소다로 알려져 있는 물질을 뜻한다. 동방에서 이 물질은 주로 세척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물질 위에 식초를 부을 경우 즉각적으로 부글부글 끊는 발효의 효과가 나타난다(Shaw).
성 경: [잠25:21]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22절 초두에는 본절과 22절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이유 접속사 '키'(*)가 있으므로 22절은 본절의 가르침에 순종할 경우에 따르는 결과를 서술하고 있다. 본절은 악인에 대한 궁극적 심판자가 하나님이시므로 도리어 원수 사랑을 통해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고 하는 심오한 교훈과도 일맥상통한다(롬 12:21). 엘리사는 소경이 된 채 사마리아 성(城)까지 끌려온 이방 아람인들에게 처벌 대신 떡과 물로 대접하였다(왕하6:17-22).
성 경: [잠25:22]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 대적으로부터 예상 외의 대접을 받았을 경우 그 상대는 먼저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서 그는 통증에 가까운 수치를 느낄 것이다(18:19;20:22;24:17;창 42:45장). 그리고 이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일 그가 계속 적의와 증오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엄중해질 것이다. 반면에 통회하는 마음으로 화해의 손을 내민다면 그의 상대방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평강을 얻을 것이다.
성 경: [잠25:23]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 어떤 학자는 팔레스틴 북부 지역이 건조 지대이므로 본절 내용이 신빙성이 없거나 본절과 관련되는 공간적 무대가 팔레스틴 지방 이외의 곳이라고 이해한다(Kidner, Whybray).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북풍은 팔레스틴 지방 북쪽에 위치한 바다에서 생겨난 수증기를 동반하므로 충분히 비를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Clark). 그러나 본절의 핵심은 '북풍'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소하는 혀'곧 상대를 모함하는 혀가 분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성 경: [잠25:24]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2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잠25:25]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 - 이 표현은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의 모습보다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소식을 오랫동안 안달하며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시에는 우편 제도가 발달하지 못했던 관계로 멀리 있는 소식을 전해 듣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따라서 마음졸이며 기다렸던 좋은 소식이 왔을 경우 소식을 받는 자는 새 힘을 회복케 되기 마련이다. 영적인 범주에서 볼 때 우리는 '좋은 기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odnews)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요 4:13, 14;7:37).
성 경: [잠25:26]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 이 표현은 한 사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가속한 공동체 전체가 받는 영향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공동체는 평소 믿고 따랐던 의인이 삶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한 의인이 악인의 위협으로 그 고결성을 상실할 때 그 공동체가 겪을 혼란과 좌절, 실망에 따른 타락은 그 정도가 심각한 것이다.
성 경: [잠25:27]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꿀이 몸에 좋지만 과용하면 무익하듯이 영예(榮譽)는 귀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추구하면 결국 무익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영예는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성 경: [잠25:28]
주제1: [인간 관계에 관한 교훈]
주제2: [자기 통제의 지혜]
고대 세계에서 성벽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성읍을 방어하는 데 있어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 따라서 성벽이 없다는 것은 곧 침략자에게 성(城)을 내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본장을 마감하는 본절은 자기의 마음, 곧 자신의 모든 욕망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무너진 성벽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70인역은 이를 행함(실천)과 관련하여 또 제롬(Jerome)은 방종한 언어와 관련하여 이해하였다.
성 경: [잠26:1]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팔레스틴에서 여름에 눈이 내리는 적은 없지만 설령 내린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릴 것이므로 무익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는 봄부터 10월까지 비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추수철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데 그때 비가 내린다면 그것은 익은 곡식에 손상을 주어 도리어 해가 되며 심지어 불길한 징조로까지 생각되었다(삼상12:17).
영예(*, 카보르) - 내적인 가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문맥상 외적인 가치, 곧 높은 지위 따위를 뜻한다고 봐야 한다. 미련한 자의 높은 지위는 여름의 눈이나 추수철의 비처럼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롭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지위에 합당한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자신의 욕심을 따라 그 지위을 남용함으로써 다른 많은 사람에게 불이익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 경: [잠26:2]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팔레스틴 전역에서 쉽게 발견되는 참새는 까닭없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제비 역시 먼 이국 땅을 행해 갈 때는 그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다. 참새와 제비같은 미물(微物)들도 이유나 목적이 없는 행동은 취하지 않듯이 인간 세계속에도 이유 없는 결과, 특히 악한 저주는 까닭없이 임하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주가 공의(公義)에 관계없이 마술 화살처럼 그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같은 어리석음을 본절은 깨우쳐 주고 있다. 발람도 그같은 미신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인 바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민 23:8).
성 경: [잠26:3]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본절은 어리석은 자는 당나귀나 말처럼 이끌기 어려우니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 특히 시 32:8,9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에 둔하고 어두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으려는 잠재적 본성을 지닌 인간 모두에게 주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성 경: [잠26:4]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 미련한 자에게서 나오는 말에 맞장구 치다 보면 자신도 그 우매함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이다. 한편 사도 바울은 우매한 자들에게 맞서 대항하기 보다는 스스로 미련한 자처럼 되기도 했다. 그는 효과적인 전도를 위하여 피전도자의 수준으로 낮아졌던 바 이것은 분별력 있는 낮아짐이다(고후 12:11).이는 분별력없이 휩쓸려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성 경: [잠26:5]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외관상으로 볼 때 4절과 본절은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련의 랍비들은 4절은 세속적인 논쟁에 관하여, 본절은 종교적인 논쟁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논쟁은 피해야 하지만 종교적인 논쟁은 맞서서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극단적인 랍비들은 4절과 본절의 논리적 모순을 전제로 본서 전체의 정경성을 의심하고 있다(Cook, Toy). 그러나 본절은 분명히 미련한 자에게 대답해야 할 경우를 제한함으로써 4절과 본절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4절이 미련한 자의 수준에로 떨어지지 말라는 소극적인 경고라면, 아마도 본절은 미련한 자와 헛된 변론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를 책망하고 그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라는 적극적 권면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잠26:6]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두 발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보냄을 받는 자가 그 목적을 잘 수행치 못할 어리석은 자라면 그를 보내는 일은 두 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한편 두 발을 자르는 일은 치명적인 해악을 연상케 하는데 이 사실은 '해를 받느니라'의 원문상의 의미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해를 받느니라'(*, 하마스 쇼테)의 원문 직역은 '폭력을 마시다'이다.
성 경: [잠26:7]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본절 하반절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상반절의 경우는 힘없이 달렸나니에 해당하는 '달르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1) '절름발이의 다리를 제거해 버려라'(마찬가지로 미련한 자가 잠언을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라, Grk.). (2) '정상인의 다리는 절름발이의 그것보다 길다'(그처럼, 잠언이 미련한 자에게는 너무 높아 도달할 수 없다, Rashi). (3) '절름발이가 춤추는것과 같이 ... '(Luther). (4) '절름발이의 다리가 힘없이 달렸나니'(개역 성경, Ewald). (5) '절름발이의 두 다리는 서로 같지가 않듯이 ... '(KJV). 이와 같은 여러 해석이 있으나, 어쨌든 절름발이의 걸음이 무기력하고 부조화스럽듯이 미련한 자와 잠언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Ross, Toy).
성 경: [잠26:8]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돌을 물매에 매는 것 - 이 묘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라틴역에 근거를 둔 것이로 보석 같은 귀중한 돌하나를 잡석(雜石)더미 위에 던지는 행위에 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Perowne, Clark 등). 또 다른 하나는 물매를 사용할 줄도 모르는 자가 돌을 물매에 묶는 모습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해석이다(Whybray). 그러나 그 어떤 해석을 따르던 간에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묘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예', 곧 세상적인 지위를 미련한 자에게 부여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성 경: [잠26:9]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 손에 가시나무를 들었을 경우 만취한 사람은 그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의 경우 잠언의 말씀을 읽거나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적(知的)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는 없다. 잘못 사용하고 잘못 적용하여 남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이 어리석은 자의 경우는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정확히 적용하여 상대로 하여금 깊이 교훈을 주는 지혜자와 대조를 이룬다(전 12:11).
성 경: [잠26:10]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본절만큼 원문 이해가 어려운 곳도 많지 않다. 따라서 본절에 대한 번역은 다양한데 그 대표적이며 가장 바람직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궁수(弓手)는 어리석은 자를 고용하고 모든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와 같다.' 본 번역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 내용이 미련한 자의 행위 혹은 그 행위가 낳은 결과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문맥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번역에서 '어리석은 자 ...나그네를 고용하는 자'란 궁수가 그 활을 생각없이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가진 바 능력이나 지위를 생각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자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본절이 주는 교훈이라 하겠다(Brown, Cook, Toy).
성 경: [잠26:11]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듯이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어떤 경고에도 불구하고 악한 행위를 반복한다. 토해 놓은 곳으로 발을 돌이키는 개의 비유는(벧후 2:22) 죄를 반복하는 행위를 꼬집는 대목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잠26:12]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
스스로 미련함을 인정하는 자는 소망이 있으나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구제 불능에 가까움을 가르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통감하는 자는 새 출발할 가능성이 많다.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에서 세리가 바로 그 모범이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하다고 믿는 자는 회개의 가능성이 희박한데 동일 비유의 바리새인이 바로 그 모범이 된다(눅 18:9-14). 자신의 죄를 통감한 세리는 기대밖에 의인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성 경: [잠26:13]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개역 성경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원문에서는 본절에 두 차례에 등장하는 '사자'가 서로 다른 용어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각각 '솨할'(*), '아리'(*)로서 전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자'를 , 후자는 좀더 특징적인 '포악한 사자'를 가리킨다. 이 두 용어를 포함한 본절을 좀더 실감나게 의역하면 이와 같다 : "게으른 자는 '거리에는 사자가 있어 아주 포악한 사자가 누비고 있다'라고 말한다." 게으른 자는 자신이 책임 회피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핑계요 자기 기만일뿐이다(Kidner).
성 경: [잠26:14]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 아침 일찍이 일어나 활동할 생각은 않고 침상에서 뒹구는 게으른 자의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6:9, 10;24:33). 어떤 학자는 '게으른 자가 침대 위에서 몸을 한 번 뒤집었다면 그로서는 엄청난 일을 한 것'이라고 비꼰다(McKane).
성 경: [잠26:15]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19:24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음식을 입에 넣기조차 싫어하는 게으른 자의 극단적인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성 경: [잠26:16]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 - '선히 대답하는 사람'이란 바른 판단에 근거한 의견 제시를 하는 사람을 말하고 '일곱'이란 완전 무한수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다수의 완벽하고 지혜로운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다. 게으른 자는 생각하기 조차 싫어하므로 참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진지한 토론을 거부한다. 또한 그의 관심은 본능을 좇아 안락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있는데, 지혜 추구를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라고 매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성 경: [잠26:17]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간섭하는(*, 미트아베르) - 문자적인 뜻은 '간섭하다'외에 '격노하게 되다', '흥분하다' 등이 있다. 이 동사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싸움을 보고 그 당사자들보다 더 흥분하고 격분하여 그 싸움에 끼어드는 행인을 연상케 한다. 이 행인을 본절은 개의 귀를 잡는 자에 비유하고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 개란 오늘날처럼 가정에서 길들여지지 않고 들개나 여우 따위처럼 들에서 멋대로 자랐기 때문에 사납기가 짝이 없었다. 따라서 이 같은 특성을 지닌 개의 귀를 잡았다는 것은 큰 상처를 입기를 자초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관없는 싸움에 분을 내고 흥분하여 끼어든 자를 바로 그 같은 위험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다툼, 분쟁을 그치게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마땅하다(마 5:9).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분쟁에 개입할 때 흥분하거나 격노한 상태에서 개입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성 경: [잠26:18]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 - 원문 직역은 '불덩이, 화살, 죽음을 던지는 미친 사람'이다. 이것은 화살에 불을 달아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인명(人命)을 가볍게 보고 살인을 도모하는 사람은 미친 자임에 틀림없다.
성 경: [잠26:19]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 '내가 희롱하였노라'를 의역하면 '농담삼아 해봤을 뿐이야' 혹은 '심심 풀이 삼아 해봤을 뿐이야'이다. 이는 남을 속여 큰 상처를 입게 하고도 '나는 손해 입히려는 마음이 없었어. 재미 삼아 그래본거야'라고 일축해 버리는 뻔뻔스럽고 경솔한 자를 연상케 한다. 이 자는 살의를 가지고 불화살을 쏘는 미친 자와 같다. 농담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내뱉는 농담은 때로 살인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에게는 농담에 불과한 것이 상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을 의도적으로 속여 놓고 그 행위를 농담 한마디 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조차없다.
성 경: [잠26:20]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 '말장이'(*, 니르간)의 문자적인 뜻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고자질장이'이다. 물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받아주는 사람도 악하다. 만일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의 입에서 남을 중상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맞장구치며 받는 사람이 없다면 문제는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도둑질한 물건을 받아주는 사람은 도둑 만큼이나 악하다'는 격언에 공감하게 된다(Clark). 한편 본절에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와 분쟁의 관계는 땔감과 불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잠언의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설득력을 더해준다.
성 경: [잠26:21]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다툼을 좋아하는 자 - 20절의 '말장이'나 22절의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성 경: [잠26:22]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별식(*, 미틀라하밈) - 문자적인 뜻은 '한입거리 맛있는 음식' 혹은 '상처'이다. 이것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을 가리키는데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말은 한입에 먹을 수 잇는 간편하고도 맛있는 음식과도 같지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70인역(LXX)도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자의 말은 부드러우나 그 말은 뱃속 깊은 곳을 치느니라.'
성 경: [잠26:23]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온유한 입술(*, 세파타임 돌레킴) - 문자적인 뜻은 '불타는 입술'로서 겉으로 애정이 넘치고 따뜻한 사랑의 말을 내놓는 입술을 가리킨다. 이런 입술을 가진 자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면 그는 위선자일 따름이다. 그런 자는 낮은 은을 입힌 곧 '은 찌끼를 입힌' 토기와도 같다. 토기에 찌끼를 입히는 것을 밝은 광채를 내게하기 위함일 뿐 그것 자체가 토기를 고가품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애정이 넘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악한 음모를 숨긴 대표적인 사례는 가룟 유다가 로마 군병을 이끌고 주님을 만났을 때의 장면이다(마 26:47-49).
성 경: [잠26:24]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앞절에 이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이니 위선자를 경계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감정에 해당하는 '시느아'(*)는 극도의 증오나 혐오를 뜻한다.
성 경: [잠26:25]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일곱 가지 가증한 것 - '일곱'은 '완전, 충만'을 상징한다. 부드럽고 매력적인 말투로 치장했더라고 악인의 마음은 가증한 것, 곧 혐오감을 주는 것으로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한편 이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마 12:45;막16:9).
성 경: [잠26:26]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다른 사람을 속이고 모함하는 일은 처음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것처럼 진행될 수 있으나 시일이 지나면 결국 그 흑막이 벗겨지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종말에 있을 심판의 때에 모든 악이 하나도 남김없이 폭로되고 드러나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요일 4:17-21).
성 경: [잠26:27]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악인들은 악한 의도를 따라 타인에게 불행을 안기기 위하여 얼마나 큰 수고를 하는지 모른다. 그 수고를 본절은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과 돌을 굴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데 전자는 덫 설치를 그리고 후자는 밑으로 굴리기 위하여 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삿 9:53;삼하 11:21). 덫을 설치하는 일이나 산 혹은 성벽꼭대기로 돌을 끌어 올리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본절은 그토록 힘들게 덫을 설치해 놓고 돌을 굴리고도 도리어 덫에 걸리고 돌에 치이듯이, 수고하여 준비한 음모에 자신이 도리어 빠지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심은 대로 거두고 마는 것이다. 대표적인 그 모범으로는 하만(에 7:10)과 다니엘의 대적들(단 6:24-28)을 들수 있다.
성 경: [잠26:28]
주제1: [지혜자가 유의해야 할 특성]
주제2: [게으른 자와 거짓된 혀]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 일반적으로 본절은 거짓말과 증오가 같은 부류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지만(Flattery is a form of hatred. LB), 다음과 같은 번역도 가능하다 : '거짓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힌 만큼 자신도 상처를 입으므로 자신을 미워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일이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앞절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이 번역도 설득력이 있다.
성 경: [잠27:1]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 본절은 미래란 불확실하므로 미래에 대한 과신은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미래를 위한 현명한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겸허하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이상은 소극적 관심에서 본 것이고 적극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 주어진 일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약 4:13-16은 이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흔히 오늘은 많은 부를 축적하고 미래에 선행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재물이 내일 어떻게 없어질지 모르므로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사실에 덧붙여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의 삶을 충실하게, 기쁘게 살아야 한다(마 6:34). 요컨대 본절은 소극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과신을 버릴 것을, 적극적으로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되 공동체 속에서 최선을 다해 덕행을 실천하며 살 것을 가르친다.
성 경: [잠27:2]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 '타인'에 해당하는 '자르'(*)는 '낯선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어떤 사람의 업적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자기 칭찬은 교만의 일종이다. 랍비들은 어떤 사람에 관한 평가를 할 때 그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는 제삼자가 주는 정보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이 진정한 칭찬이며 성도는 그 칭찬만을 사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요 12:43).
성 경: [잠27:3]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돌과 모래 덩어리는 무겁다. 이것을 운반해 본 사람이라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를 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분노는 더욱 지치게 하는데 그것은 참기 힘든 영적, 정신적 불쾌감을 타인에게 안겨주기 때문이다(McKane). 돌이나 모래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비교 차원에서 상이한 질적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은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물질적인 것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 같은 어법을 상징적 평행법이라고 한다.
성 경: [잠27:4]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원문 직역은 '노함은 잔인하고 분노는 잔혹하다. 그러나 질투 앞에 설 자가 누구겠는가?'이다. 분노도 견디어 내기 힘든 것이지만 질투는 더욱더 그러하다는 뜻이다. '노함'이나 '분노'가 성경에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질투'도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질투란 사르는 불과 같이 파괴적인 폭력성을 띤 격정의 절정 상태에 있는 감정이다(욥 38:25;사32:6;나 1:8).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무관심과 대비를 이루는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질투가 그것이다(출 20:5;슥 8:2).
성 경: [잠27:5]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원문 직역은 '공개적 꾸짖음은 숨어서 하는 사랑보다 낫다'이다. '공개적 꾸짖음'이란 솔직한 말로 직접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숨어서 하는 사랑'이란 문맥상, 잘못을 꾸짖는 방식으로는 한번도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사랑을 말한다. 즉 이는 신약의 은밀히 베푸는 선행과는 의미가 다른 사랑이다. 참사랑의 일부는 분명한 꾸짖음으로 나타난다.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무작정 잘못을 숨기려고 만들면 오히려 상대방을 더 큰 올무에 빠뜨릴 수가 있다.
성 경: [잠27:6]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 원문 직역은 '친구가 주는 상처는 신실하다'이다. 외상(外傷)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상처'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절이 의도한 것은 친구의 아주 강한 꾸지람인 것 같다. 어떤 역본은 '한번 뻗은 펀치'로 번역하고 있다(NEB). 그것이 강한 펀치와 같이 손상을 주는 것이었을지라도 친구의 꾸지람이 유익한 것은 그 꾸지람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25:12;신 17:9;욥 12:20).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 원문상 본 구절은 '원수의 키스들은 간사하다' 혹은 '원수의 키스들은 풍부하다'로 직역될 수 있는데 상반절과 효과적인 대비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 경: [잠27:7]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본절의 교훈은 깊이 연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어떤 학자들은 꿀이라는 음식외에 소유, 경험, 교육 등과 관련하여서도 이 교훈을 적용하고 있다. 적용의 범위가 넓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이 주는 교훈은 뚜렷하다. 즉 많은 필요를 느끼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사람 보다 받은 바 은혜에 대해 더 감사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쾌락에 탐닉하여 있는 사람은 웬만한 기쁨에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자기 절제적인 사람은 작은 기쁨의 소재에도 큰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Cook). 또한 이를 복음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자신의 영적 기아를 뼈저리게 느끼는 소위 심령이 가난한 자일수록 복음의 메시지를 더 큰 은혜와 감격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다(마5:6).
성 경: [잠27:8]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자기 집을 떠나 방황하는 자의 비참함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묘사는 공동체를 떠나지 말라는 경고로 볼 수도 있는데 당시 사회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은 매우 강한 것이어서 공동체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스스로 떠나는 일은 생존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도망자나 방랑자가 되는 일은 가장 혹독한 징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창 4:12,13). 그러나 가장 위험하고 절망적인 떠남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떠남이다.
성 경: [잠27:9]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친구의 충성된 권고 - 원문상의 의미가 다소 난해하기 때문에 본절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외형보다는 마음을 중시하고 있는 문맥을 고려할 때 '진실한 마음에서 되어진 권고가 주는 즐거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RV). 당시 향료, 장미, 아로마틱 나무 등을 이용하여 제조한 향은 귀한 손님이 방문하기 전 집안에 뿌려졌으며 이 향으로 인하여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있었다고 한다(W.J. Deane).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권고는 비록 그 내용이 견책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해도 듣는 자로 하여금 반발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해 준다.
성 경: [잠27:10]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본절은 모순적인 것 같이 보인다. 관습이나 고대의 예의상 가족과 같이 생각되었던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역경의 때에 형제의 집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가지 말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의 핵심은 형제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는 데에 있다. 즉 이웃의 가까운 친구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욱 긴밀히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토록 하라고 권고로 보면 될 것이다.
성 경: [잠27:11]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비방하는(*, 하라프) - 문자적인 뜻은 '경멸하다.' 이것은 부모나 교사가 거짓 교사 혹은 무책임한 부모라는 혹평을 받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교사나 부모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나 자식의 결점과 약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설사 타인의 무고한 비난이 있다 할지라도 자식이나 제자가 그 가르친 바대로 살 때에는그 부모나 교사가 기쁨을 느낄 것이다. 바울은 회심 이후 조롱과 비난과 핍박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전한 복음을 받은 자들이 듣고 바로 깨달아 자신처럼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 때 그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였다(살전 2:17-20).
성 경: [잠27:12]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슬기로운 자...어리석은 자 - 각각 '아룸'(*), '페타임'(*)으로 문자적인 뜻은 '신중한 자' 그리고 '단순한 자'이다. 그런데 이 두 부류의 사람이 함께 목격하는 내용은 '재앙'으로 번역된 '라아'(*)인데 이것은 '악'으로 번역하는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아룸'과 '페타임'은 각각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자' 그리고 '악을 분별할 수 없는 자'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우매한 자는 지혜를 가까이 함으로써 악을 분별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라 하겠다.
성 경: [잠27:13]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 이것은 나그네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증인으로 나섰을 경우 최대한 주의하라는 권고로 보여진다. 당시는 저당잡은 것이라 할지라도 옷의 경우는 해가 지기 전까지 본인에게 돌려 주어야 했다(출22: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옷을 맡아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약속을 이행치 않고 도망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Clark).
성 경: [잠27:14]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본절은 표면적으로 이른 아침에 큰 목소리로 축복하거나 혹은 인사함으로써 그 듣는 자로 하여금 오히려 성가시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멍청한 사람에 대한 묘사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침에 큰소리로 하는 축복의 말 혹은 인사를 겉으로는 요란하지만 진심은 결여된 가식적인 아첨으로 해석하고 있다(W.J.Deane, Clark, Cook). 참지혜자는 가식적인 아첨의 축복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 경: [잠27:15]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 - 이것은 여러 군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비오는 날이면 계속해서 비가 새는 지붕을 연상케 한다. 이 같은 오두막에 사는 사람의 경우 일단 비가 내리면 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결국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사는 자의 처지도 이와 같다 하겠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밖으로 겉돌게 되면 결국 가정의 평화는 바랄 수 없다. 70인역(LXX)의본절 직역은 이와 같다 : '빗방울들은 썰렁한 날 사람을 그의 집 밖으로 몰아낸다. 마찬가지로 욕을 퍼붓는 여인은 그의 남편을 그의 집 밖으로 몰아낸다.'
성 경: [잠27:16]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렇다. '누구든지 그녀를 숨기는 것은 바람 혹은 그의 오른손의 기름을 숨기는 것이다.' 15절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난해해지는 구절이다. 의미하는 바는 입심은 아내의 혀를 억제하거나 그 소리를 숨기기란 실로 어렵다는 것이다. 바람을 억제할 수 없듯이 말싸움하기 좋아하는 아내의 기질을 억제할 수 없다. 그리고 손에 묻은 기름의 냄새를 숨길 수 없듯이 아내의 목소리가 집 담을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성 경: [잠27:17]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본 구절의 해석은 분명하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그 하나는 부정적인 해석으로 한 사람의 감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역시 나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취하는 경우 얼굴이 빛난다는 것은 얼굴이 상기됨을 가리킨다. 또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해석으로 두 친구 사이의 건설적인 토론이나 인격적인 친교는 인격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경우 '얼굴'은 양쪽의 인격 혹은 지적 능력 등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두 칼이 부딪히듯이 두 사람의 인격과 지혜가 진지한 사귐과 토론이라는 장(場)을 통해 더 발전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자는 언어 사용의 부정적 측면을 주시하는 15, 16절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해석같고 후자는 본절 상반절의 철과 철이 서로 부딪히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근거로 한 해석인 것 같다. 이 두 해석 중 어느 한 해석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본절을 종교 교육적인 차원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후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참고로 탈무드는 종교 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 중의 하나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본절과 유사한 인용을 하고 있다 : '두 생도는 토라 연구 중에 서로를 예리하게 만든다.'
성 경: [잠27:18]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 영화를 얻느니라 - 무화과나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잘 자라난다. 그러나 일단 수확때가 되면 이 나무는 풍성한 소출을 낸다. 본절의 핵심적 교훈은 부지런하라는 것인데 하반절은 사람을 섬기는 일에서도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시종하는'(*, 솨마르)은 극히 세밀하고 자상한 섬김을 가리키는데 이 같은 섬김의 노력을 한 종의 경우 인정을 받지 못한다거나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보상을 바라기 이전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봉사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섬김을 나타내야할 영역은 말씀 깨달음, 복음 전파, 성도 사랑 등 허다하다. 이처럼 봉사와 섬김을 마친 후 우리는 조바심을 내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수고한 자에게 대가가 지불된다고 약속하셨으며(딤후 2:6), 결코 우리의 수고를 간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히 6:10).
성 경: [잠27:19]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 '한 사람의 마음은 한 사람에 대하여 그러하다'가 원문 직역이다. 여기 두 번 언급되고 있는 이 '한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느냐 서로 다른 인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동일 인물로 볼 경우에는, (맑은 물이 얼굴을 비추듯이) '인간의 마음이 그 사람의 진정한 성품을 나타낸다'(NIV) 혹은 '우리가 진정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면 우리의 마음 자세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A.P.Ross)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에 서로 다른 인물로 볼 경우는 인간이 자신의 성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Toy). 두해석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성 경: [잠27:20]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음부와 유명(幽冥)은 만족함이 없고 - 문자적인 뜻은 '지옥과 멸망은 가득 차지 않고'이다. '지옥'은 죽음의 세계를, '멸망'은 의인화된 파괴적인 힘인 죽음을 각각 가리키는데 이 둘은 역사 이래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민족들을 삼켜왔고 그러나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그 무엇처럼 버티고 서 있다. 지옥이나 멸망 못지 않게 만족을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눈으로 봄으로써 시작되는 인간의 욕망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끝없는 이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에게 진정한 안식이란 없다. 그러나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욕망은 누그러지며 따라서 그분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맛볼 수 있다(요 4:13, 14;빌 4:11-13).
성 경: [잠27:21]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이쉬 레피 마할랄로) - 문자적인 뜻은 '칭찬하는 말로 한 사람을'이다. 여기서 '칭찬'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좌우된다. 먼저 이를 한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는 공적인 평판으로 볼 경우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객관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 우수한 자질의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많은 사람의 평판에 의하여 다윗은 사울보다 우수한 지도자임이 입증되었다(삼상 18:7). 또 다른 한편 '칭찬'은 한 사람을 시험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칭찬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내는 시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지한 자는 칭찬을 구할 것이고 귀가 엷은 자는 칭찬에 마음이 부풀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칭찬에 담담할 것이다(Fausset). 이와같이 칭찬은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려내는 도구가 된다. 여기 '칭찬'에 비유되는 상반절의'도가니', '풀무' 등은 분명 순전한 것을 가려내는 도구이다. 이 이미지를 중시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한 해석이라 여겨진다.
성 경: [잠27:22]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절구에 ... 찧을지라도 - 껍데기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곡물을 절구에 넣고 찧는 일은 타락하는 일보다 훨씬 정교하고 힘이 든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은 그 같은 정교한 작업을 통해서도 제거되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그에게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온갖 징계, 가르침, 권면이 그에게는 무익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는 징계 중 가장 큰 징계는 내버려 두심이다. 그 어떤 징계와 가르침과 권면을 통해서도 그 완고함을 버리지 않는 자는 진정 어리석은 자로 하나님의 유기(遺棄)를 당하고 만다(롬 1:28). 그러므로 징계를 당하는 자는 아직 버림을 당한 단계는 아니니 즉각 회개해야 할 것이다(히 6:1-8).
성 경: [잠27:23]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부지런히 살피며 ... 마음을 두라 - 본절로부터 끝절까지는 반농반목(半農半牧)인 이스라엘의 생활 방편을 잘 보여 준다. 자신이 소유한 가축을 목동에게만 맡기지 말고 직접 주인인 자신이 나서서 관찰하라는 명령이다. 말하자면 가축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 보기도 하고 병든 것은 없이 잘 자라는지 그리고 각각의 종류가 어떤 비율로 증가하는지 등에 대해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성 경: [잠27:24]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 현재 부유하다고 해서 자만할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재물이란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태와 방종에 빠지지 말고 재물이나 소득을 있을 때 잘 관리하라는 권면이다.
성 경: [잠27:25]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 땅이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소산물을 내놓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여기 '풀'은 '데쉐'(*)로서 사라져 버리거나 곧 떠나버릴 물질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우리는 재물이나 지위를 누리는 자의 일시적 기쁨과 대비되는, 농부가 누릴 지속적인 기쁨을 연상케 된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산야(山野)의 형편이 달라지는 것을 관심깊게 주시하고 그 대책을 세우기만 한다면 농부는 지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성 경: [잠27:26]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 밭은 금방 소비해 버리고 말 재물과는 달리 쉽게 소비하거나 빼앗길 수 없는 재산이 되어 준다. 가축을 잘 기르는 일은 밭과 같은 부동산을 마련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성 경: [잠27:27]
주제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대한 묵상]
주제2: [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잘 기른 가축은 그 주인과 그 식구들 심지어 그 가정의 종에게까지 음식을 제공해준다. 23-27절에서 우리는 땅의 소산을 잘 관리하고 가축을 잘 길러서 안정될 뿐 아니라 번성하는 삶을 사는 평화롭고 풍성한 전원의 한 가정을 연상케 된다. 이 같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지혜이다.
성 경: [잠28:1]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악인 - 악인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서 스스로 범한 악행에 따른 죄의식이나 보복의 공포로 인하여 항상 그 마음이 눌려 있어서 누구든 두려워하고 의혹의 눈으로 살핀다(민 32:23). 반면 하나님을 알고 그 은총을 구하며 사는 의인은 비록 자범죄는 범하나 곧 회개하여 기쁨을 얻으며 사자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좌우를 살피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유를 얻고 삶의 푯대를 발견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고백하였다(빌 3:12-14).
성 경: [잠28:2]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죄(*, 페솨) - 여기서는 '반역', '모반'이라 함이 옳겠다. 통치자에 대한 반역이 있으면 왕조는 자꾸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통치자에게 분별력과 지식이 있다면 그 같은 불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통치자의 지혜는 그 나라의 질서와 안정을 가져온다. 물론 한 나라의 정치적 무질서는 그 민족의 범죄에 대한 징벌일 수도 있다. 2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북 이스라엘에서는 그 민족의 죄로 말미암아 아홉 차례나 왕조가 바뀌었다. 그러나 3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유다에서는 한 왕조가 유지되었다.
성 경: [잠28:3]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 - 여기 후자의 '가난한 자'란 '게베르 라쉬'(*)로서 그 문자적인 뜻인 개역 성경 번역과 동일하다. 그런데 어떤 주석가들은 본서 다른 곳에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가난한 자에 대한 언급은 없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악한 통치자에 관한 언급은 있으므로 '게베르 라쉬'를 '악한 통치자'로수정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못하다. 우선 원문 수정이므로 무리가 따르고 비록 본서에는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성경에는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님께서는 두 빚진 자에 대한 비유를 감명깊게 예시하신 바있다(마 18:21-35).
성 경: [잠28:4]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 여기 '율법'이란 유대인의 믿음과 삶의 기초로 간주되었던 모세 오경에 수록된 하나님의 뜻을 말하므로 '율법을 버린 자'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버린 자를 가리킨다. 악인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러한 자들은 서로를 좋게 말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양심의 아우성 소리에 귀막고 악을 행하는 일을 격려함으로써 사단의 왕국의 확장을 꾀한다. 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그 양심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들은 맹렬히 악을 대적한다. 절대 기준인 하난님의 뜻과 계시가 없는 곳에는 상대주의가 판을 치며(Kidner), 여기서 상대주의가 판을 친다는 말은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감정이나 가치를 따라 행동함을 뜻하는데 이 같은 행동이 낳은 양상들에 관해서는 롬 1:18-32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 경: [잠28:5]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공의(*, 미쉬파트) - '재판','심판' 등의 의미로 주로 쓰이나 여기서는 정치적, 도덕적인 의미의 '정의' 혹은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 '여호와를 찾는 자'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관심을 집중하는 자는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며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성 경: [잠28:6]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사곡(邪曲)히 행하는(*, 메이케쉬 데라카임) - 문자적인 뜻은 크게 둘로 이해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 길이 구부러진 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길이 이중적인 자'이다. 전자는 재산을 모으는 방법이 부정직한 자를 가리키고, 후자는 그 마음에 정함이 없어 두 주인을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약 1:8). 이중에서 전자가 본절과 더 부합된다고 보는데 그 까닭은 본장이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의 부자와 가난한 자를 계속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잠28:7]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 여기 '율법'이란 본장이 경건한 삶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감안할 때 경건한 삶의 경험을 담은 조상들의 교훈 및 명령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지혜로운 아들'이란 '벤 메빈'(*)으로 '분별력 있는 아들'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즉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아들을 가리킨다.
탐식자를 사귀는 자 - 여기 '탐식자'란 '소동을 일으키는 자', '난폭한 자'라는 뜻도 있으나 문맥상 '방탄한 자'로 보는 것이 좋겠다. 물질적, 도덕적으로 방탕한 자와 친구가 된 자는 그를 닮아가기 마련이고 그가 속한 가정에 불명예를 끼침으로써 그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방탕함'은 신앙적, 도덕적으로 각종 죄악을 유발하며 반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Greenstone).
성 경: [잠28:8]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 - '중한 변리'란 어떤 물질이나 금전을 빌려주고 엄청난 고리(高利)로 되돌려 받는 것을 가리키는데 모세 율법은 이 행위를 금할 뿐 아니라 비난하고 있다(출 22:25;레 25:36-37;신 23:20;시 15:5). 율법이 금한 이 행위는 일시적으로는 토지나 재물을 늘리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토지나 재물은 곧 선행과 구제를 베푸는 의로운 자들에게 돌아가고 만다는 것인데, 만일 그 모은 재물과 토지가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사실의 증표이다. 결국 본절은 어차피 율법이 금한 고리대금 행위를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부당하게 모은 그 재물이나 토지를 일찌감치 자선사업으로 사용하라는 권고로볼 수도 있겠다.
성 경: [잠28:9]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사람이 ...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기를 거절하는 자의 기도는 그 자체가 적절한 기도일 까닭이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욕망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의 조건으로는 용서하는 마음, 단순함, 겸손과 회개, 일치된 마음, 강력함, 확신에 찬 기대, 끊임없이 드림 등인데 이 같은 내용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견지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들이다. 기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머거리가 될 때 하나님은 그 기도자의 기도에 귀머거리처럼 되신다(Toy).
성 경: [잠28:10]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 - 이 표현은 예수님의 강한 질책을 받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생각나게 한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이 같은 악행의 동기는 다양한데 우선 고상한 행위 기준에 대한 증오(암 2:12),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만(골 2:18),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딤후 3:6)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의 목적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벧후 2:15, 18, Kidner). 악인이 이러한 동기로의인을 유혹하는 데 성공할 때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승리는 자멸적이다. 유혹자는 받아 마땅한 징벌에 직면하여 고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유혹에 끝내 넘어가지 않은 의인은 그 유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큰 영적 힘을 얻고 성숙해질 것이다(약 1:12, 13;벧전 1:6,7).
성 경: [잠28:11]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외관상 본절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비시킨다. 대비를 통하여 부자는 자기 기만적인 반면 가난한 자는 분별력을 가지고 부자를 살핀다고 가르친다. 말하자면 가난한 자는 영적 통찰력인 '분별력'을 가지고 가식 속에 숨어 있는 부자의 약점을 찾아 낸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이 부자는 절대로 지혜로울 수 없다는 극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 주위에서 부자로서 지혜로운 자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본절의 초점은 일반론적 진리인 지혜는 (1) 사회, 정치, 경제적인 지위와 관계가 없다는 것, (2) 자기 만족이 지혜로운 삶의 증표는 아니라는 것등으로 보면 무난하다(Kidner).
성 경: [잠28:12]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 여기 '득의하면'(*, 바알로츠)은 그 문자적인 뜻이 '기뻐하면'으로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경우 하반절의 동사를 주시해야 하는데 하반절의 동사는 '일어나면'으로 번역된 '베쿰'(*)으로서 그 뜻은 '권력을 잡다'란 이다. 본절은 상반되는 두 내용을 엮은 반의적 평행절인데 반의적 평행법의 경우 상.하반절의 동사들은 그 의미가 동일한 경우가 대부분인 사실을 생각할 때 상반절의 '기뻐하면'도 '권력을 잡으면'으로 번역될 수있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 권력을 잡으면 그 나라 백성은 기쁨을 누리며 산다. 솔로몬의 치세 때 그 백성을 수가 늘었을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일을 즐거워했을 정도로 평안하고 기쁜 삶을 살았다(왕상 4:20). 그러나 악인이 권력을 잡을 때 그 백성들은 몸을 숨기게 된다고 한다. '몸을 숨긴다'는 것은 히브리어 '예후파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 용어는 '엎드리다', '극도로 피로하게 되다', '유린당하다' 등의 뜻이다. 이 의미들은 결국 악인의 학정으로 말미암은 백성들의 고통을 연상케 한다.
성 경: [잠28:13]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죄를 회개하고 거기서 돌이킬 때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본절의 핵심이다. 본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주제는 시 32:1-4 그리고 요일 1:6-9에 유사하게 나타난다. 상반절의 죄를 숨긴다는 것은 죄에 탐닉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변명하거나 심지어 부인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한 비난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Henry).
성 경: [잠28:14]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항상 경외하는 자 ...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 - 목적어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경외하는 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 목적어를 '죄'로 볼 경우, 이는 '죄를 두려워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으로 볼 경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이해된다. 하지만 어떤 해석을 취하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당연히 죄악을 두려워하며 멀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죄'가 핵심인 13절과의 문맥적 연결을 중시할 때 그 목적어를 '죄'(죄악)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죄를 두려워하는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에게 일종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 학대이다. 이 같은 부작용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강할 때 나타난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단지 죄에 대해 민감하려고 애쓸 수 있을 뿐이다. 이 노력을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에게 주어지는 천상의 축복이 임한다(시 1:1). 이상의 주석을 근거로 할 때 '마음을 강퍅케 하는 자'란 죄에 대한 이해도 없을 뿐더러 죄에 대해 민감하지도 않고 그래서 결국 파멸에 이르는 자를 가리킨다 하겠다.
성 경: [잠28:15]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 - 여기 '가난한 백성'이란 경제적으로 빈한한 백성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두움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있는 백성을 가리킨다. 이런 형편에 있는 백성을 압제하는 관리란 강압적이고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자라고 볼수 있다. 한마디로 본절은 정치적 학정의 위험성과 파괴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학정은 자주 으르렁거리는 사자에 비유된다(렘 4:7;50:7;딤후 4:17).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악한 세력은 그 발이 곰의 발에, 그의 입은 사자의 입에 비유된다(계 13:2).
성 경: [잠28:16]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무지한 치리자(治理者)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 문자적인 뜻은 '이해가 부족한 왕은 큰 압제자와 같다'이다. 이해가 부족한 왕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통치에 필요한 지혜와 신중함을 결여하여 그 신하들이나 백성들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억압하는 왕을 가리킨다. 이 같은 왕의 특징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과 항상 반역과 암살당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사심(私心)이 없는 통치자는 개인적으로 장수(長壽)할 뿐 아니라 그 통치 기간도 길다. 하나님이 그를 세우시고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성 경: [잠28:17]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본절은 원문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의 폭력을 행한 자는 구덩이로 도망감
을 당한다. 아무도 그에게 머물지 마라'로 직역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피흘림을 주도했거나 방관한 자가 결국 영육간에 징벌을 당함을 뜻한다. 그리고 징벌 받기로 된 자의 곁에 머물거나 도울 뜻을 품어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도리어 해(害)만 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문맥상 이 경고는 무고한 백성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악한 왕에게 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백성의 피를 흘리고 강포를 행한 왕에 대한 경고는 예레미야가 살룸과 여호야김에게 주는 책망 속에 잘 나타나 있다(렘 22:13-19).
성 경: [잠28:18]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성실히 행하는 자(*, 흘레크 타밈) - 이 용어는 '순결한 자','흠이 없이 걷는 자' 등의 문자적인 뜻을 갖고 있지만 대비적 의미를 지닌 하반절의 '사곡히 행하는 자'가 '이중적인 길을 가는 자'를 뜻하기 때문에 '한길만 가는 자'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자이며 이 같은 삶을 사는 그는 큰 역경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곡히 행하는 자 - 문자적인 뜻은 '길들 속에서 사특한 자' 혹은 '사특한 길들로 행하는 자'이다. 문자적인 뜻에서 드러나듯 이런 사람은 상반절의 '한길만 가는 자'와는 대조적으로 참된 인생의 목표가 결핍된 삶을 사는 '이중적인 길을 가는 자'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과 재물 혹은 육신적 쾌락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로 볼 수 있다(6절주석 참조).
성 경: [잠28:19]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 ... 방탕을 좇는 자 - 문자 그대로 보면 전자는 지주(地主)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서 지주의 경우만 그 수확이 풍성하다고 말하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전자는 자기 땅을 가졌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소작인이라 할지라도 아니면 그가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도 그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자를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그에 비교되는 후자는 환락만 추구하며 매사에 게으른 자를 암시함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비록 타락한 피조 세계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는 그에 따른 대가를 얻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이른 바 일반 은총이다(마 5:45).
성 경: [잠28:20]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충성된 자 ...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 - 전자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자신의 의무에 성실한 자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는 자이다. 반면 후자는 일확 천금을 노리며 그 목적을 위해 성실히 일하기보다는 부정직한 행동을 일삼는 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얻는 데만 급급하는 자는 부정직한 계획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심각한 범죄에까지 이르므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본절은 결국 성실함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 경: [잠28:21]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한 조각의 빵을 위해서 범죄하기 때문이다' 본절은 특히 법을 집행하는 자가 귀기울여야 할 교훈에 해당한다. 그는 흔히 지연, 학연, 혈연, 이해 관계에 따라 차별 대우를 나타내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 대우는 뇌물을 받는 단계에까지 나아간다. 처음에는 그 뇌물의 큰 액수에 마음이 끌려 차별 대우를 시작하나 그것이 습관화되어 양심이 굳어지면 빵 한 조각 같은 작은 것 때문에도 차별 대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성 경: [잠28:22]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악한 ... 급하고 - 문자적인 뜻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서두르는 자는 악한 눈을 갖고 있고'이다. 여기 '악한 눈'은 23:6에 사용되었던 용어 '라 아인'(*)으로 '이기적이며 인색한 사람'을 수식하는 용어이다. 빠른 시간안에 부자가 되려는 자가 수반하는 특징은 인색하며 부정직한 수단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도리어 빈곤의 징벌이 임할 것이다.
성 경: [잠28:23]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아첨하는 혀는 잠시 자아 도취에 빠지게 만들지만 '경책'만큼 건설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내용이다. 아프더라도 진실을 듣기 원하는 자는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진리에서 떠난 자를 야단을 쳐서라도 돌이키게 해야한다(약 5:19,20).
성 경: [잠28:24]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 외에도 억지 고집과 횡포까지 부려가며 부모 재산을 자기 소유로 돌리는 악한 행위를 암시하는 듯하다(A.P.Ross). 이런 시도를 하는 자의 경우 누가 물으면 언젠가는 내 재산이 될 것이니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다. 이 같은 시도는 대체로 부모에 대해 감사치 않고 잔인하고 불순종하는 자녀에 의해 자행된다. 이 같은 자식은 살인자에 비견되는 파괴자의 친구로 불리울 수밖에 없다. 한편 성경은 부모 공경에 관해 무게있는 권면을 베풀고 있다(막 7:11-13;딤전 5:4-8).
성 경: [잠28:25]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마음이 탐하는 자(*, 레하브 네페쉬) - 문자적인 뜻은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로서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법한 자를 가리키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항상 다투며 따라서 그 마음에 평안이 없다.
풍족하게 되느니라 - 자신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물질적인 풍성함 뿐 아니라 영적인 축복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Cook).
성 경: [잠28:26]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가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마음이란 속임수로 가득하고 철저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믿는 자는 세상의 위험에서 구조를 받지 못할 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자기 영혼을 파멸에 처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지혜로운 자는 세상의 위험을 면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구원받는다. 이러한 자를 성경은 심령의 가난한 자, 겸손한 자, 어린아이와 같은 자등으로 부르기도 한다(마 5장;눅 10:21).
성 경: [잠28:27]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못본 체 하는 자 - 문자적인 뜻은 '그 눈을 숨기는 자'이다. 행여 동정심이라도 느낄까봐 혹은 구걸할까봐 가난한 자로부터 그 시선을 돌리는 자 혹은 가난한 자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자를 가리킨다(시 27:9;69:17). 이 같은 사람은 결국 예수님께 대해 무관심한 자이다(마 25:31-46).
성 경: [잠28:28]
주제1: [지혜자의 현명함과 탐심에 대한 경계]
주제2: [법과 재물에서의 교훈]
본절의 '악인'은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왕', '권력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12절11:10;29:2,16). 그가 권좌에 오르면 백성은 학정을 두려워하여 그의 통치 행위에 무관심 내지는 비협조적이 된다. 반면 의인이 권좌에 오르면 그 주변에 지혜롭고 덕망있는 인재들이 몰려들며 그 나라는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된다.
성 경: [잠29:1]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 - 이 사람은 이웃, 부모, 복음 사역자들, 하나님의 말씀 등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권고, 충고, 징책 등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뻔뻔한 얼굴, 굳은 마음, 마비된 양심을 소유한 자이다(Gill). 특히 목이 곧다는 것은 멍에를 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목을 뒤흔드는 완고한 황소로부터 따온 이미지이다.
패망을 당하고 - 히브리어 '이솨베르'(*)의 문자적인 뜻은 '부서지다', '깨뜨러지다'이다. 말하자면 쇠방망이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고 다시는 재결합될 수 없는, 사기로 만든 항아리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영원한 멸망의 징벌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징벌은 생각지 않았던 때 갑자기 임한다. 그리고 그 징벌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이 말의 원문적 뜻은 '치유되지 않는다'이다. 그처럼 전혀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의 죄는 사유(赦宥)되지 않으며 그를 그 끔찍한 징벌의 상황에서 돌이킬 그 무엇은 없다. 그는 상실된 자이며, 잃어버린바된 자이며, 버린운 자이다. 하나님은 되풀이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하였던 엘리의 아들들의 목숨을 끊어버림으로써 본절의 교훈의 실례를 보이셨다(삼상 2:25).
성 경: [잠29:2]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많아지면(*, 비르보트) - 권좌에 올라 그 세력을 강화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역본들은 '권좌에 있으면'으로 번역하기도 한다(are inauthority, KJV;thrive, NIV). 본절은 28:12,28이 언급하였던 동일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 내용은 통치자가 악하거나 의로움에 따라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하기도 하고 도탄에 빠져 신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의인이 권좌에 있을 경우 범죄들은징벌되고 억제되므로 나라에 정의와 평안이 있을 것이다. 반면 악인이 권력을 잡을 경우 공의를 시행치 않으므로 나라는 혼탁해지고 특히 신앙적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Henry).
성 경: [잠29:3]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 '사귄다'는 것은 계속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인데 창기와 계속 가까이 짝하는 자에 관해서는 1-9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특히 경제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 하나는, 당시 사회에서 부(富)를 신적 축복의 증표 중의 하나로 간주하였을 뿐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한 가정의 영예로운 위치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기를 사귀든 아니면 그외 다른 목적 때문에 부를 쓸데없이 소비하는 것은 개인적인 우매의 행위였을 뿐 아니라 한 가정과 그 가정의 가장에 대한 반역 행위이기도 하였다(Whybray). 합리적인 재정 운영을 통해 그 가정의 기쁨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요소로서 본절 상반절에서는 지혜를 꼽고 있다.
성 경: [잠29:4]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 이쉬 테루모트) - 문자적인 뜻은 '공물(뇌물)의 사람'이다. 여기서 히브리어 '테루모트'는 '뇌물'(brives, NIV) 혹은 백성이 관청이나 궁궐에 바치던 '공물'을 가리킨다. 특히 이를 후자로 볼 경우 자원하여 드리는 공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는 강요된 공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NEB) 강요된 공물은 중한 세금의 개념과 연관성이 있다. 세금정하는 것이 왕의 고유 권한임은 고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던 바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왕은 거대한 건물을 지으려는 사치스러운 야욕이나 불필요한 정복 전쟁을 수행하려는 목적 때문에 상식을 넘어선 세금을 거두려는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과도한 세금을 거두려는 어리석은 왕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다. 왕 제도를 부정적으로 여겼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왕세우기를 요청하였을 때 과도한 세금 징수를 비롯한 왕의 학정을 경고하며 왕 세우기를 거절한 바 있다(삼상 8:11-18).
성 경: [잠29:5]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아첨하는 것(*, 마할리크) - 원래 뜻은 '매끄럽게 하는 것'이다. 아첨꾼의 말은 부드럽고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리 계획된 사악한 행위를 덮기 위한 치장이요 속임수에 불과하다(McKane). 하반절의
그의 - 는 아첨을 듣는 이웃일 수 있다. 이 경우 하반절이 뜻하는 바는 아첨을 듣는 자는 아첨꾼의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 잘못 판단하여 죄를 짓거나 멸망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를 아첨꾼 자신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하반절의 뜻은 아첨 뒤에 숨긴 사악한 음모로 도리어 자신이 멸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원문상 주어가 '아첨하는 자'임을 고려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결국 본절은 아첨은 자멸을 초래한다는 경고로 보여 진다.
성 경: [잠29:6]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 원문 직역은 '악인의 범죄 가운데는 올무가 있다.' 고질적인 악의 습관에서 초래된 악인의 범죄는 결국에 가서는 그 자신을 멸망으로 이끄는 올무가 되고 만다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 상반절과의 전적인 대비를 위해 서술된 하반절은 그 양심이 범법에서 떠난, 따라서 멸망의 올무에 빠질 위험이 없는 자의 영속적인 기쁨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잠29:7]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알아 주나 ... 지식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요데아'(*), '다아트'(*)로서 같은 어근의 단어들이며 깊은 개인적 관심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예를들면 궁핍의 절정에 있는 가난한 자나 도움받을 길이 없는 고아를 구체적으로 돕는 것, 멸망 직전에 있는 자를 회복시키는 것, 법정에 나가 억울한 피고인을 위해 증언하는 것, 신체 장애자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것 등을 묘사할 때 이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욥 29:12-17). 이와같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시 41:1). 그러나 악인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 대상을 찾는 통찰력도 결여되어 있다.
성 경: [잠29:8]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 원문 직역은 '조롱하는 자는 도시를 불 위에 놓는다'이다. 여기 '조롱하는 자'란 도덕적 의무, 특히 국가가 부여하는 의무를 비웃고 동료 시민들의 저급한 감정을 부추겨서 중앙 정부를 대항하여 정치적, 종교적 쿠데타를 일으키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사 28:14, Cook, Toy). 그러나 본절에서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 곧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함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자로 봐야 할 것인데 그 이유는 '슬기로운 자'와 대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슬기로운 자'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신령한 지혜를 받은 자요 선행으로 지혜와 온유함을 나타내는 자이다. 그는 이기적 탐욕이 없으므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다툼이나 분쟁을 쉬게하고 화평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약 3:13-18).
성 경: [잠29:9]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 원문에는 '지혜로운 자'가 '그가'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의 해석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먼저 개역 성경처럼 '그'를 '지혜로운 자'로 볼 경우에는, 그가 미련한 자를 크게 경멸하든지 인자한 품성으로 대하든지 간에 결과는 동일하게 어리석은 자의 다툼과 어리석음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그'를 '미련한 자'로 볼 경우 본 구절의 의미는, 미련한 자가 논쟁의 과정에서 이유없이 웃거나 이유없이 그 상대를 비난하는 등반 미치광이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논쟁이 평화롭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Parker). 한마디로 본 절은 어리석은 자와 더불어 이성적인 논쟁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 경: [잠29:10]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원문 직역은 '피를 목말라 하는 자는 정직한 자를 미워하고 의인은 그의 영혼을 찾는다.' 본 직역의 내용의 의미가 불투명하다고 하여 NIV, RSV등이 원문을 수정 번역하였는데(Bloodthirsty men hate a man of integrity and seek to kill the upright,NIV) 개역 성경도 수정 번역을 따르고 있다. 반면 맛소라 원문을 중시하는 성경 번역가들은 원문을 직역하고 있다(The bloodthirsty hate the upright but just seek hissoul, KJV). 앞뒤 문맥이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 등을 대비시키고 있는 경향을 고려하더라도 수정 번역보다는 원문 직역이 옳다고 보여진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던 사단과 그의 모든 후손들은 정직한 자, 의로운 자를 미워하게 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아우 아벨을 피흘려 죽인 가인은 그 시조이자 표본이었다(창 4:5-8). 피를 목말라하는사단의 후손의 증오 대상인 의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악한 자들의 회심을 위하여 기도하고 애씀으로 그 버려진 영혼들을 구하려 한다. 악인의 증오에도 불구하고 의인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다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성 경: [잠29:11]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노(*, 루호) - 문자적인 뜻은 '바람', '마음' 등이나 여기서는 '격렬한 열정'에 휩싸인 '노', '분'등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하반절의 동사는 분, 노 따위를 억제하고 눌러 평정을 되찾는 것을 묘사하는 '예솨브헤나'(*)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동사는 분 혹은 폭풍 따위가 완전히 가라앉거나 잠잠해짐을 묘사하는 용어이다(시 65:7;89:9). 따라서 '억제하느니라'보다는 '잠잠하느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가깝다. 언어, 표정 등을 통하여 어리석은 자가 그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여도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평정을 계속 유지한다. 이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늘로서 임한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약 3:17).
성 경: [잠29:12]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일단 지도자가 거짓말을 듣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곧 부패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에 적응하도록 애쓰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런데 지배 계급을 향해 속임수를 쓰고 아첨의 말을 한 것이 먹혀 들어간 경우 지배층의 호의를 얻고자 하는 자들은 너도 나도 그 악행을 계속할 것이며 그 같은 경향은 공동체 전체에 파급되며 마침내 부패와 타락이 창궐하도록 만들고 말 것이다. 로마의 한 속담이 본절의 핵심을 잘 풍자하고 있다: '그 왕의 그 신하.'
성 경: [잠29:13]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포학한 자(*, 이쉬 테카킴) - '고리대금업자', '억압하는 자','속이는 자'로 번역되기도 한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 '눈에 빛을 준다'는 것은 생명, 특히 육적인 생명을 지속케 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의인에게 똑같이 빛을 비추이신다고 하였다(마 5:44,45). 악인은 가난한 자를 속이거나 압박하여 재산을 모으고 모은 재산으로는 고리대금업을 하여 더 큰 재산을 축적하며 그 같은 과정 속에서 가난한 자는 고통받고 슬퍼한다. 가난한 자와 악한 부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공존하며 그 갈등은 계속된다. 그러나 악인이든 가난한 자든 간에 그들의 생명이 지속되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본절의 핵심이며 악한 부자에 대한 평가, 징벌 따위는 본절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성 경: [잠29:14]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 문자적인 뜻은 '가난한 자를 신실하게 판단하면'으로서 가난한 자의 억울한 사정을 잘 해결해 주는 것을 가리키는데 왕이 이같이 덕치(德治)를 베풀때 만백성의 추앙을 받으며 오래도록 왕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하반절) 내용이다. 이 같은 이상적인 통치를 위해 솔로몬은 기도하였는데 사실 진정한 의미의 이 같은 왕은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의 왕권은 영원하다(시72:4,12).
성 경: [잠29:15]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임의로 하게 버려 두면(*, 메슐라흐) - 자기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 어떤 악한 습관에 깊이 빠져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떤 자녀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 방관하여 아이를 망쳐 버린 그 어머니의 무관심 죄는 그 가정의 수치 혹은 불명예라는 결과를 낳는다. 일례로 다윗의 넷째 아들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라났던 아도니야는 결국 솔로몬의 몫인 왕위를 찬탈하려다가 죽음을 당함으로써(왕상 2:24, 25) 다윗 가문의 큰 수치가 되었다.
성 경: [잠29:16]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났듯이 고대세계를 보면 인류의 수가 증가할수록 세상은 타락하고 인간은 서로를 부패시켰다. 그리고 죄가 많아질수록 파멸은 더 심각하게 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 같은 세태를 바라보면서 의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버리셨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종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악인들만 수치와 멸망에 떨어질 것을 믿으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본절은 종말론적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성 경: [잠29:17]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평안하게 하겠고 ... 기쁨을 주리라 - 훈계와 질책을 통해 잘 교육된 자녀를 둔 부모가 누리게 될 정신적 축복들을 가리킨다. 전자는 '이니헤카'(*)로서 문자적인 뜻은 '근심에서 구조되다'인데 이것은 비뚤어진 성격과 악습이 몸에 밴 자녀들로 인해 겪게 될 각종 염려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후자 '이텐 마아다님'(*)은 적극적인 의미의 기쁨, 곧 자식의 성공 따위로 얻는 만족과 평안을 가리킨다. 징계의 연단을 거치고 바르게 자란 자녀는 세상에서도 성공하여 부모의 마음에 평안을 줄 것이다.
성 경: [잠29:18]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묵시'는 '하존'(*)인데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사1:1;나 1:1). 그런데 본절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것을 암시하기보다는 계시에 대한 백성의 존중심 및 관심이 없는 상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하반절이 율법을 지키는 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것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는 두 부류에 관한 언급이다. 그리고 '방자히 행하거니와'에 해당하는 '이파라'(*)의 문자적인 뜻은 '벌거숭이가 되다', '멸망하다', '사라지다'등인데 이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해도 의미는 분명하다. 먼저 전자는 그 가진 소유물뿐 아니라 입은 의복까지 벗기움을 당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 우리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입으로 그 소유물을 빼앗기고 결박당한 채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례를 이 모습과 연결시킬 수 있다. 또한 후자는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당하고 그 주권을 빼앗겼던 사실, 그 땅거민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버렸던 사실을 연상케 한다. 익히 아는 바 대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 같은 운명에 처했던 까닭은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무관심하였기 때문이었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성 경: [잠29:19]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종이 이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는 종이란 대개 양심이나 사랑이 아니라 마지못해 눈가림으로 일을 하려 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종이 그 상전을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을 훼방하는 것이 된다고 경고했다(딤전 6:1, 2).
성 경: [잠29:20]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언어에 조급한 사람 - '조급함'의 히브리어 '아츠'(*)는 '서두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신중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다(26:12;약 3:8). 본서는 긍,부정의 측면을 막론하고 말이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6:19;10:18-21;12:6,14;14:5, 25;17:4,7:19:5, 9;20:19;21:6;28:23).
성 경: [잠29:21]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종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여 그의 어린 시절부터 멋대로 하도록 키울 경우 결국 그 종은 주인의 법적 아들의 권리, 예컨대 상속권까지도 요구하게 됨을 뜻한다. 신약 성경 시대까지만 해도 사회 구조상 노예 제도는 존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종(主從)관계가 흐트러지면 위계 질서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마련이었다. 한편 종이 주인의 몫을 가로채는 비행(非行)의 예는 므비보셋의 사환인 시바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삼하16:1-4).
성 경: [잠29:22]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노, 분 - 각각 '아프'(*), '헤마'(*)인데 이것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고질화될 성향, 기질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하반절을 이렇게 의역하기도 한다 : '성마른 기질은 많은 죄의 원인이다'(Moffatt). 특히 '헤마'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일삼는 자들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분을 품고 노를 발동하는 것이 일종의 기질이나 습관처럼 되어버린 자가 있는 공세는 항상 다툼이 있고 범죄가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다(14:17,29;15:18;16:32).
성 경: [잠29:23]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본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인간의 자랑은 그를 낮은 곳으로 데려가고 그 마음이 낮은 자는 영예를 얻는다.' 자기 자랑은 수치로 인도하고 겸손을 영예로 이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직역에서 '낮은'으로 번역된 '솨팔'(*)이 상.하반절에 각각 사용되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는 말씀도 있듯이,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교만한 자는 일반적으로 수치를 당할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큰 경멸을 당해 왔었다. 겸손이 영예로운 자리로 이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님도 말씀하신 바 있다(눅 14:11;18:14).
성 경: [잠29:24]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의인이 통치하는 나라]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直告)하지 아니하느니라 - 문자적인 뜻은 '맹세 아래 있지만 감히 증언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적의 공모자가 도적의 범죄를 밝히는 증언대에 서서 진실만을 증언할 것을 맹세한 후에도 거짓말을 늘어놓기에 전전 긍긍함을 가리킨다. 진실을 증언하지 않을 경우 율법은 모든 죄가 증언하지 않는 그에게 돌아가도록 명령하고 있다(레 5:1). 이같이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가 증언하지 않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경외심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도적에 대한 사사로운 인정(人情) 때문이다. 모든 죄의 대가를 뒤집어 쓰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미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소한 인정 중 한 길을 따라야 할 경우 성도가 택해야할 길은 명백하다(행 4:19).
성 경: [잠29:25]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교만과 겸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기 되거니와 -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권력, 명성, 힘 그리고 부 따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삶이 통제당하도록 내어 맡겨버리는 경우, 그 묘한 압박감 때문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옳은 길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게 된다. 사람의 인기를 중시하여 여론에 민감한 자의 경우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평판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 같은 성향의 결국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한편 무력을 가진 악한 무리들은 두려워한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주님을 부인하고 심한 고통을 받았다(마 26:69-75).
성 경: [잠29:26]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교만과 겸손]
은혜(*, 페네) - 이것의 문자적인 뜻은 '얼굴'이다. 이것은 어떤 결정권을가진 자의 개인적 친분, 호혜를 얻기 위하여 경쟁하듯 아첨하는 자들의 모습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참신뢰의 대상을 잊게 하는 욕심과 압박(행24:25-27) 비합리(고전 2:6, 8)와 불안정성(시 146:3,4)등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이다.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 원문 직역은 '모든 사람의 판단력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 악한 것을 바르게 교정할 판단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사회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뇌물을 주고 아첨하고 탄원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뛰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낫다.
성 경: [잠29:27]
주제1: [의인의 통치]
주제2: [교만과 겸손]
본절은 선과 악 사이의 본유적인 불일치뿐 아니라(고후 6:14-18) 여자의 후손과 사단의 후손 사이에 항상 존재해온 적대감을 암시하고 있다(창 3:15).
성 경: [잠30: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야게, 아굴, 이디엘, 우갈 - 학자들은 이들을 실존 인물로 보거나 가상 인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가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경우 아굴은 솔로몬, 야게는 다윗, 이디엘과 우갈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데 무리한 추측에 근거한 해석이라 하겠다. 본장의 형태 혹은 일부 내용들은 본장의 기자가 솔로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를 들면 2,3,8절 그리고 9절등은 솔로몬의 삶이나 그의 상황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들이다. 왕상 4:30, 31은 솔로몬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지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아마도 본장은 그들 중의 하나가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리고 개역 성경이 '말씀'으로 번역한 '하마사'(*)는 어떤 지명을 가리키는 용어라는설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본장의 저자 '아굴'은 본 용어의 음역인 '마사'라는 곳에사는 아라비아인이었던 셈이다. 마사는 아라비아의 한 동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Kidner). 그러나 '마사'라는 히브리어가 '예언', '발언'등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유 지명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
성 경: [잠30: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문자적인 뜻은 '확실히 나는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짐승과 같다'이다. 아마도 본장 저자의 주위에는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비교한 지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지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 같다. 자신만이 지혜롭다고 외쳤던 많은 이방 현자들과는 대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저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아삽을 연상케 한다(시73:22).
성 경: [잠30: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 저자는 지혜자였다(1절 주석 참조). 그러나 그가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검토해 본 결과 참 지혜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종교 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 강요, 1권 1장)고 말했다.
성 경: [잠30: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너는 아느냐'는 알지 못한다는 답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인데 저자는 이같은 표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감히 비교될 수도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이 더 상세한 욥 38-41장의 경우 화자는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이 화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본절은 2,3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의 한께 및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저자는 가시적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색을 통해 인간은 먼지처럼 낮아져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천체, 우주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처소'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다(시2:4;14:2).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때로는 지상에 몸소 내려오신다고 믿었다(창 11:7;17:22). 그리고 그들은 뚜렷한 내세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창 15:15;신 33:27) '하늘'은 더더욱 외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초월성과 아울러 낮고 천한 인생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암시한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지니신 속성 곧 그의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전능성 따위를 온전히 이해하였으면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 본절에 근거하여 아굴이 삼위(三位) 하나님 중 제 1위와 제 2위에 대하여 본절을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Clark). 그런가 하면 고대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Midrash)에서는 '아들'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이를 창조주, 로고스(the Logos) 혹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시적 평행어 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들 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 명확히 단정내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성 경: [잠30: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純全)하며 - '순전하며'에 해당하는 '체루파'(*)의 문자적인 뜻은 '정화되었으며'이다. 이 표현은 그 이미지를 불순물이 제거된 금속에서 따온 것이다. 정화된 금속은 순결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귀한 것이라는 이미지도 내포한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 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해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의 고귀함에 대한 인식이다.
성 경: [잠30: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 정결한 금속에 더러운 찌끼를 다시 섞어서는 안 되듯이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인간의 상상력이나 전승(傳承) 따위를 섞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 및 진리에 대한 사색에 있어서 곡해(曲解)의 위험성은 항상 상존해 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특히 지식의 교만에 빠진 자의 경우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이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을 드러낸 것이며 인간의 이성이 지극히 유한하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소치이다.
성 경: [잠30: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두 가지 일 - 문맥이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말하고 있으니 본 구절도 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지식의 한계성을 인식하고서 그의 소원도 그러한 인식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잠30: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 두 가지 요구의 서술 순서가 의미 심장하다. 지혜자인 저자는 인간의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허탄'은 모든 거짓된 모습, 거짓된 행복의 외양들, 헛된 기대들을 가리키며 '거짓말'은 모든 속임수, 겉치레, 지키지 못할 약속 등을 가리킨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 문자적인 뜻은 '나에게 정해진 몫의 빵을 음식으로 내게 주소서'이다. 이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라보게 한다(마 6:11).
성 경: [잠30: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에서 두 극단의 위험이 묘사되고 있다. 자칫하면 부유함은 자만과 불신앙 혹은 바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냉소주의(출 5:2)로 빠지게 하고 극심한 가난은 부정직, 거짓 맹세등으로 나아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두 극단 중 하나로 빠지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진다.
성 경: [잠30:1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 문자적인 뜻은 '종은 그 상전에게 너의 혀로 헐뜯지 말라'이다. 이것은 공개적으로든 은밀하게든 간에 어떤 종을 그 상전에게 모함하거나 고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만일 나중에 조사해 본 결과 그 종에게 잘못이 없을 경우 모함한 자는 도리어 수치와 징책을 당할 수 있고 설령 잘못이 있는 경우라도 나중에 그 고발당한 종은 고발한 자에게 원할을 품고 결국엔 그도 고발할 기회를 엿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저히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책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범죄를 상관에게 고하는 형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말라는 것이 본절의 핵심인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표명할 뿐 아니라 그 잘못을 또 다른 사람의 귀에 옮기는 것을 좋아 하는 자에게도 본절은 경종을 울려준다.
성 경: [잠30:1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원문 직역은 '그들의 아비를 저주하고 그들의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세대이니라'이다. 저자는 당대의 지혜자로서 그의 세대에 만연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들을 본절과 이어지는 세 절들에 열거하고 있는데, 십계명 중 제5계명과 관련된 폐단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이것이 당시에 매우 심각한 죄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본절은 평행법을 사용하되 독특하게 긍정문 뒤에 부정문이 연결되는 표현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아마도 묘사하려는 바는 부모를 모욕하고, 경솔히 대하고, 존경하지 않았던 당시의 세태인 것같다.
성 경: [잠30:1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원문 직역은 '그들 자신의 눈에는 정결하여 그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는 세대이니라'이다. 여기 '더러움'은 '체에트'(*)로서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불결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도덕적, 종교적 불결을 가리킨다(사 36:12;슥 3: :3,4). 당시에는 자신들이 불결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를 정결한 자로 여기는 부류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의 특징은 외면적인 의식(儀式)은 준수하지만 내적인 청결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사 1:16). 이것은 당시뿐 아니라 신약 시대 바리새인들의 특징이었기도 하다(마 23:27).
성 경: [잠30:1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은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경멸하는 교만한 자들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걸맞는 번역을 하는 역본이 있다 : '그 눈이 지극히 교만하고 남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아주 경멸적인 사람들이 있는 세대이니라'(those whose eyes are ever so haughty, whose glances are so disdainful, NIV)
성 경: [잠30:1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욕심 때문에 타인을 잔혹하게 억압하고 탈취하되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그렇게 하는 힘있는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의 탐욕과 잔혹성을 묘사하기 위해 상반절에서는 그들이 휘두르는 긴칼과 작은 칼, 그리고 하반절에서는 굶주린 갈가마귀와 무자비한 야수의 이미지가 각각 동원되었다. 본절이 그리고 있는 특성이 통치 세력의 특성이 될 때 그 나라의 운명은 절망적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을 불순종한 중요한 이유 외에 힘없고 소외된 계층을 향한 통치 세력의 억압, 탈취 및 그 가운데 드러난 잔혹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암 5:12, 13).
성 경: [잠30:1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이굴의 고백과 교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하느니라 - '거머리'에 해당하는 '알루카'(*)는 성경에서 여기 한 번만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1) 저자가 잘 알 뿐 아니라 당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던 탐욕으로 악명 높은 딸을 가진 한 여인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고(Clark) (2)아라비아 민요에 나오는 사단의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3)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생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하반절이 끝없는 욕심의 개념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할 때 계속 피를 빨아 먹고도 족한 줄 모르는 특성을 가진 거머리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이를 거머리로 볼 경우, '두딸'이란 거머리 몸에 부착되어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두 개의 흡입관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성 경: [잠30:1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족한 줄 모르는 특성을 지닌 대표적 네 가지 범례들이 나오는데 이 범례들은 인생의 삶과 피조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얻은 것들이다.
음부 - '무덤'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스올, 곧 지옥을 가리키는데 27:20에서는 이곳을 모든 것을 삼키고도 만족해 하지 않는 곳으로 묘사한 바 있다.
성 경: [잠30:1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 쪼이고 - 앞, 뒷절과는 연관성이 없지만 11절과 그 주제에 있어서 동일한 본절은 부모를 경멸한 자식이 맞을 운명을 묘사하고 있는데, 경멸의 의사(意思)가 그 눈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 눈이 뽑히우리라는 경고는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식이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무덤도 없이 죽고 말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강한 경고도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잠30:1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와 같다. '나에게 너무 경이로운 것 세 가지가 있다. 내가 모르는 네 번째 것도 있다.' 이 직역은 저자가 밝힐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는 네 가지인데 그 중의 세 가지는 한 범주에 묶을 수 있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암시할 뿐 아니라 마지막 네 번째 것은 앞의 세 가지 이야기보다 가장 오묘한 것임을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다.
성 경: [잠30:1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저자는 주로 피조 세계의 관찰을 통하여 얻은 사실들을 진술하고 있다. 특히 본절에는 자취로 번역된 '데레크'(*)가 네 차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행동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중 앞의 세 가지는 하늘, 땅위, 그리고 바다 위에서 일어난 장대하고도 신비스러운 동작(행동)을 나머지 하나는 남녀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동작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의 나는 방향 그리고 목적지 따위는 관찰자에게 숨겨져 있다.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 - 발이 없이도 부드럽고 능숙하게 갈 길을 가는 뱀 역시 그렇다.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 - 길이 없는 바다를 웅장하게 항해하는 배 역시 그렇다.
남자가 여자가 함께 한 자취 - '여자'는 '알마'(*)로서 '처녀'가 아닌 결혼하여 이미 성적인 경험이 있는 젊은 여인을 가리킨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깊은 육체적 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게 되는 모든 과정은 신비롭기만 하다. 저자가 가장 오묘하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자취는 바로 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성을 통하여 드러나는 일들이었다.
성 경: [잠30:2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음녀의 자취 - 성적 관계를 직업으로 삼는 여인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는 까닭은 바로 앞절에 합법적 결혼을 통한 성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앞절과는 달리 본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특권을 왜곡되게 사용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먹고 입을 씻는다는 이미지는 성행위의 완곡한 표현이다.
성 경: [잠30:2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의 원문 직역은 '이 세 가지 것들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고 이 세 가지 것들을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 즉 이는 22,23절에 진술된 사건은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암시한다.
성 경: [잠30:2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종이 임금된 것 - 이것은 종의 신분이었던 사람은 통치자가 될 수 없음을 암시하기보다는 전혀 그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종이었다가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경우도 있거니와 고대 근동 국가에서는 종이었던 자가 왕이 되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런 왕의 경우 왕의 자격에 맞는 훈련을 쌓고 정치를 잘하여 앞선 시대의 통치자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권력에 굶주린 자가 왕이 될 경우 영락없이 폭군, 압제자가 되기 일쑤였다. 현대적 사례로는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성 경: [잠30:2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꺼림을 받는 계집 - '매력이 없거나 밉살스러운 여인'이 그 문자적인 뜻이다. 남자는 원치 않았으나 강압적인 상황이나 조건에 의하여 시집간 여인의 경우 남편의 미움을 계속 받게 된다(창 29:31, 32).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 - 대표적인 예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그의 여종 하갈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갈이 임신하고 사라를 멸시하였을 때 아브라함의 가정의 평화는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사라는 하갈을 내쫓고 말았다(창16:15;21:10).
성 경: [잠30:24]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가장 지혜로운 것(*, 하카밈 메후카밈) - 문자적인 뜻은'지혜 중의 지혜'인데 70인역은 '지혜로운 것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번역한다. 어떤 번역을 취하든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25-28절에 나오는 생태계에서 드러나는 경이로움이 인간의 지혜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성 경: [잠30:25]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힘이 없는 종류 - 문자적인 뜻은 '강하지 않은 민족'이다. 곤충을 인간의 무리인듯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사실은 메뚜기를 이방 민족에 비유한 욜 1:6을 상기시킨다. 잘 훈련된 조직체처럼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개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들 속에 심기워진 본능의 경이로움을 보게 된다.
성 경: [잠30:26]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약한 종류 ... 사반 - 여기 '사반'은 토끼, 생쥐 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무대가 팔레스틴인 사실을 고려할 때 팔레스틴 산 너구리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너구리는 연약하고 겁이 많은 짐승으로 누구든 보면 바위 틈 사이로 숨어버리는 특징을 지녔다(시104:18).
성 경: [잠30:27]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메뚜기 - 메뚜기 떼의 이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질서와 규율이다. 이 곤충은 잘 훈련된 군대가 그러듯이 한 지역을 공격하여 삽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욜 1:6,7).
성 경: [잠30:28]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손에 잡힐만 하여도 - 원문상 '그(도마뱀) 손으로 잡으며'(taketh hole with herhands, KJV) 혹은 '(사람의) 손에 잡힐만 해도'(can be caught with the hand, NIV)등과 같이 두 가지의 번역이 가능하다. 개역 성경은 후자를 택했으며, 만일 전자를 취할 경우 본절은 '도마뱀은 가옥이나 건물의 벽 속에 굴을 뚫고 그속으로 자유 자재로 다니면서 독을 내뿜는 발로 거미나 그 외의 곤충들을 잡는 동물인데 왕궁 출입도 예외는 아니다'는 뜻이 된다.
성 경: [잠30:29]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본절 원문 직역은 '잘 가는 것들 셋이 있다. 가는 데 당당한 네 번째 것이 있다'이다. 먼저 언급된 세 가지 예는 동물 세계에서 관찰한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 예는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걷는 왕을 관찰한 것이다.
성 경: [잠30:30]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 -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짐승의 왕이라 불리우는 사자는 그 어떤 짐승이 쫓아와도 숨지 않으며 달리거나 걷는 페이스(path)를 바꾸지 않는다.
성 경: [잠30:31]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사냥개(*, 자르지르)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등장하는 용어이다. '허리에 띠를 두른 사람'이란 유사어가 있기 때문에 그 몸에 줄이 나있는 얼룩말로 보는 견해가 있고,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로 현재 이란 남부의 그 유적이 있는 페르세폴리스의 조각품들을 통해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호화스러운 장신구를 부착한 당당한 모습의 전마(戰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개역 성경처럼 '사냥개'(greyhound, KIV) 혹은 '수탉'(rooster, NIV;cock, RSV)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그 정확한 뜻을 단정하기가 힘들다.
당할 수 없는 왕 - '항거할 수 없는 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신하나 백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왕'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는데 여기서 왕이 언급되는 이유가 그 걷는 모습의 당당함 때문인 사실을 고려할 때 이 견해도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성 경: [잠30:32]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 이것은 죄를 짓고 난 후의 치욕과 뉘우침의 침묵 그리고 교만하고 사악한 생각을 말로 표출하기 전에 스스로 억제하는 자기 절제의 침묵의 표현이다(Cook).
성 경: [잠30:33]
주제1: [아굴의 잠언]
주제2: [아굴의 고백과 교훈]
저으면 ... 비틀면 ... 격동하면 - 이 단어들은 '압력'이란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본절은 압력을 가하면 좋은 결과 혹은 나쁜 결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본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본절의 의도는 분노가 시작된 마음에 압력을 가하여 더 큰 문제에로 나아가게 하지 않음으로써 평화와 조화를 이루라는 충고를 주기 위함인 것 같다.
성 경: [잠31:1]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르무엘왕 ... 그를 훈계한 잠언 - 유대 전승은 여기 르무엘을 솔로몬으로 그리고 그를 훈계하고 있는 어머니를 그가 애굽 아내의 궤계에 빠져서 아침 제사 드리기를 지연하였을 때 그를 충고하기 위하여 밧세바로부터 온 충고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솔로몬과 르무엘을 일치시키지 않고 르무엘을 이방의 왕으로 보고 있다(A.P.Ross). 그런가 하면 르무엘을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견해도 확실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는 않으며, 다만 분명한 사실은 본절을 미루어 볼 때 본 잠언은 국사(國事)를 수행 중에 있는 왕혹은 젊은 방백을 특별히 겨냥한 잠언이라는 사실이다.
성 경: [잠31:2]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본절의 원문 직역은 '나의 아들아 무엇이냐? 나의 태의 아들아 무엇이냐? 나의 서원의 아들아 무엇이냐?'이다. 여기서 '나의 아들'이란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랑의 마음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다. 여기 '서원의 아들'은 사무엘과 삼손을 생각나게 하는데 이들의 어머니들은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심의 기도, 곧 서원을 통하여 이들을 얻었다. '레무엘'(*)의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을 위하여'인데,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 드리도록 성별된 자인 것을 암시한다(Cook).
성 경: [잠31:3]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개역 성경에는 '... 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어가 두 번 나오기 때문에 마치 본절이 두개의 부정 명령문으로 구성된 절로 보이게 하는데 사실 원문에는 하나의 부정어밖에 없으며 특히 '일'로 번역된 '데라케카'(*), 곧 '너의 길들'과 '여자들'을 동격으로 볼 경우 본절은 하나의 문장인 바 다음과 같은 의미의 구절이 된다 : '왕들을 멸망시키는 너의 길들, 곧 여인들에게 너의 힘을 주지 말라.' 여기 힘을 준다는 것은 애정이나 관심을 주다가 결국에는 그 상대와 성적 관계를 갖는 자리에까지 이르는 것을 암시한다(Toy). 성경뿐 아니라 고대 근동 문학에서도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문란한 관계에 빠지는 것을 매우 위험한 일로 지적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후궁을 취하고 싶은 유혹은 왕이나 지도자급에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잠31:4]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본절이 반복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는 바는, 왕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독한 술을 마시고 만취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주를 즐겨 마시면 그 자체로서 실수를 수반하기 마련이며, 나아가 이것은 각종 향락과 쾌락 추구에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 나라의 운명을 맡은 왕에게 있어서는 각종 실정(失政)의 원인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한편 당시 독주는 보리나 꿀 혹은 대추야자 따위로 만들었다. 즉 보리나 대추야자에 꿀을 담아 발효시킨 액이 독주였다.
성 경: [잠31:5]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본절의 교훈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모든 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바이다. 왕의 권력이 막강하였던 고대 근동의 경우도 이 사실은 마찬가지였는데, 한 왕이 그의 아들에게 주는 교훈을 모아놓은 어떤 왕실 교훈집에도 공의를 집행하는 것은 왕의 의무 중의 하나임을 분명히 적고 있다 : '땅 위에 있는 동안 공정하라 ....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 부를 보고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지 말라. 너 자신을 위해서도 불의하게 재판하는 일을 금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위치는 법을 왜곡시키거나 파괴하는 유혹을 받기 쉬운 자리인데 특히 독주를 마시고 판단력이나 분별력이 흐려질 때 더욱 그러하다.
성 경: [잠31:6]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죽게 된 자 ... 마음에 근심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오베드'(*)와 '마레 나페쉬'(*)이다. 이들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가운데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데(삼상 1:10) 본절은 술이 그와 같은 형편에 있는 자들의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회복시키는 효력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슬퍼하는 자에게는 포도주 한잔을 건네 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에게 그 육체적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하여 독주를 마시게 하였던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익히 알려진 바이다(마 27:34;시 69:21).
성 경: [잠31:7]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6,7절은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 술을 주어 그 고통을 잊게 하라는 것이 그 골자이다. 그러나 이를 냉소적 의미로 보아야할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 의미로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 구절들만 떼놓고 보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4,5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보면 냉소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잠언이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잠언이 아니라 왕 혹은 그 부류에 있는 지도자들을 위한 잠언임을 중시할 때 왕의 지나친 음주를 은근히 비꼬는 구절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성 경: [잠31:8]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벙어리 - 문자 그대로의 '말 못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자'를 가리킨다. 본 구절의 의미는 9절에서 좀더 분명해진다.
성 경: [잠31:9]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왕이 지켜야 할 도리]
간곤한 자 ... 궁핍한 자 - 문자적인 뜻도 각각 '가난한 자', '딱한 자'인데 이들은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 신분적으로도 비천하여 억울한 일이나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어쩔 줄을 몰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는 억울한 사법상의 어려움을 당하고도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자를 뜻하는데 8절의 '자신을 위하여 말할 수없는 형편에 있는 자'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왕에게는 바로 이런 자들을 도울 의무가 있는데 그 같은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으로는 삼하14:4-11;왕상 3:16-28을 들 수 있다. 특히 삼하 14:1-11을 보면 왕은 가난한 과부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하여 관습상의 절차까지도 무시하는 열의를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잠31:10]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비록 새로운 표제어가 붙지는 않았지만 본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는 독립된 주제의 단락인 듯하다. 왜냐하면 원문상 10-31절까지는 각각의 절들의 첫단어 첫자음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 첫단어의 첫자음은 '알레프'(*), 11절은 '베트'(*), 마지막 절의 첫자음은 마지막 자음인 '타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학 기법을 답관체라 부른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 너무도 힘들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수사학적의 문법이다. '현숙한 여인'이란 온갖 미덕들, 영예 그리고 11절부터 진술될 일들을 감당할 능력 등을 소유한 여인을 가리킨다. 이 같은 여인은 지혜처럼 진주보다 귀하다고 한 표현이 흥미롭다. 한 파피루스 조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가사를 잘 돌보는 여인은 부와 바꿀 수 없다.'
성 경: [잠31:11]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솰랄 로 예흐사르) - 문자적인 뜻은 '약탈이 필요치 아니하겠으며'(he shall have no need of spoil, KJV). 이것은 현숙한 여인의 남편은 그 가정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남을 약탈하거나 도둑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결과는 현숙한 여인이 가산을 잘 관리하여 그 가정이 풍족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성 경: [잠31:12]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살아 있는 동안에 - 현숙한 여인은 잠시 동안이 아니라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지속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가산을 지키고 가사를 관리하는 일에 대한 신뢰감을 남편에게 심어준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가산을 가지고 있는 예비 신랑의 경우 신부 선택 기준중의 중요한 하나는 여자가 가산을 잘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성 경: [잠31:13]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 문자적인 뜻은 '그녀의 손으로 기꺼이 일하며.' 이것은 현숙한 여인은 힘든 수고도 기쁨으로 해낸다는 것을 암시한다(worketh willingly whthher hands, KJV). 본 문맥이 그리고 있는 가정(家庭)은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있는자의 가정임이 분명하다(23절). 바로 이러한 가정의 여주인이 기쁜 마음으로 일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주부들에게 경종이 되어 준다. 한편, 10절에 근거하여 10-31절이 묘사하는 현숙한 여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경우 10-31절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여인의 근면성이 사려졌던 유다 왕국 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Cook).
성 경: [잠31:14]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상고의 배 - 문자 그대로 상인의 배, 곧 무역선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다윗과 솔로몬 통치 때 국내 산업이 발전 확장된 이스라엘이 국내를 뛰어넘어 이방 나라인 페니키아 등과 교역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던 것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양식'을 가져왔다는 표현을 중시할 때 본절은 이스라엘의 무역을 강조하는 구절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현숙한 여인이 '양식', 곧 진미따위를 얻기 위하여 자기 밭이 아닌 먼 곳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밭에까지 갔던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보는 것이 좋겠다(Whybray).
성 경: [잠31:15]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타캄 베오드 랄라) - 문자적인 뜻은 '아직 밤일 때 일어나서.' 현숙한 여인의 근면성이 부각된다.
일을 정하여 맡기며 - 매일의 양식을 위해 그러하듯이 매일 매일의 임무를 식구들 혹은 하인들에게 분담시키는 것을 가리킨다(출 5:14). 현숙한 여인의 계획성 있는 가정 관리를 엿볼 수 있다.
성 경: [잠31:16]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밭을 간품하여 사며 - 문자적인 뜻은 '밭을 심사숙고하여 사며'이다. 밭과 같은 부동산의 구매는 한 가정의 중요한 일로써 대체로 가장이 맡아서 처리하였다. 그러므로 본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소 곤란해진다. 아마도 이 표현은 구매 결정은 가장이 하고 구매과정의 협상 따위를 아내가 맡아 했던 것을 뜻할 것이다. 현숙한 여인은 가산을 관리하는 일뿐 아니라 가정의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대외적인 일에도 참여한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토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만일 그 땅을 상실하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조차도 파기되는 것으로 인실될 정도였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토지 매매 행위는 금지되었으나, 본 구절의 경우는 가정 형편상 불가피한상황에서 이루어진 토지 매매로 사례로 보인다. 이 경우데도 희년(jubilee year)에는 원소유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땅을 돌려주어야 했다(레 25:28).
성 경: [잠31:17]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 '그 팔을 강하게 한다'는 하반절의 표현을 신체적 건강을 위한 운동 행위로 이해하고 본 구절도 이 하반절과 그 의미가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Clark).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허리를 강하게 조이는 것을 건강과 연결시키는 곳이 없고 문맥이 현숙한 여인의 근면성, 활동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견해를 따라 활동을 민첩하게 하기 위한 준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성 경: [잠31:18]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 이 표현은 지금도 암흑의 세력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밤새 등불을 밝히는 팔레스틴 아랍 민족의 관습을 연상시킨다. 한편 등불을 밝히는 일은 번영,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난한 자는 등불을 킬 여유가 없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욥 18:6;렘 25:10). 그러나 문맥이 현숙한 아내의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본 구절은 밤새워 일하는 모습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성 경: [잠31:19]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본절의 원문 직역은 다음과 같다 : '그녀는 물레 위에 그녀의 손을 두고 또 다른 그녀의 손은 물레 막대를 쥐고.' 이것은 현숙한 여인이 가사에 쓸 천을 짜기 위하여 물레질을 하는 모습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다. 여기의 '물레'는 물레의 둥근 부분을 '물레 막대'는 곧바른 막대 부분, 곧 손잡이 부분을 가리킨다.
성 경: [잠31:20]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 원문 직역은 '그는 가난한 자에게 그의 손바닥을 보이며'이다. 이것은 그 소유를 움키고만 있지 않고 타인에게 베푸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여기의 '손'은 바로 앞절에 있는 대로 습득한 기술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일한 손이었다. 결국 본절은 현숙한 여인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근면으로 얻은 부를 이기적인 목적에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한 여인 도르가를 연상케 하는데 아마도 그녀 또한 근면히 일했을 것이다(행 9:39).
성 경: [잠31:21]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홍색 옷 - 이에 해당하는 맛소라 본문은 '솨님'(*)으로서 '주홍'을 가리킨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현숙한 여인의 처사를 보여주는 하반절을 고려할때, 이 말은 홍색 빛을 띤 두터운 겨울 옷을 뜻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70인역(LXX)이나 벌게이트역(Vulgate)은 이를 '쉐나임'(*)이라고 하는 복수형으로 보고 '이중의(두겹의)'란 뜻으로 번역했다.
성 경: [잠31:22]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아름다운 방석(*, 마르바딤) - 문자적인 뜻은 '덮개'이다. 70인역은 문자적인 뜻을 무시하고 '줄이 쳐진 외투들'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의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하반절과 본 상반절의 동의적 평행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문자적 뜻을 중시하여 침상에서 사용하는 '(홑이불)덮개' 혹은 '베갯보'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견해가 원문적인 것 같다(coverings of tapestry,KJV;coverings, NIV, RSV). 현숙한 여인의 섬세함이 돋보이고 있다.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세마포는 그 실의 질이 좋고 값이 비싼 옷이며 자색옷의 페니키아에서 수입했고 부녀들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옷을 각각 가리킨다(아3:10;렘 10:9). 특히 자색으로 물을 들여 만든 옷을 그것을 입는 자의 부와 높은 지위를 반영한다(출 25-37장). 눅 16:19에 의하면 거지 나사로와 함께 등장하는 부자 역시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었다. 문제는 그가 값비싼 세마포와 자색옷을 입었다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자비심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본절의 주인공인 현숙한 여인은 높은 신분임을 나타내는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었지만 동시에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하였다(20절).
성 경: [잠31:23]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 그 당시 '성문'은 사법상의 의무를 맡았던 장로들의 회집 장소일 뿐 아니라 중요 재판건이 처리되던 곳이었다(룻4:1-12). 그곳에 장로들과 더불어 앉았다는 말은 그 남편 역시 그 마을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남편이 그와 같은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은 남편 스스로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근면하고 현숙한 아내의 힘 역시 작용하였음을 본 잠언은 암시하고 있다. 즉 아내가 근면하고 성실하게 가사를 돌보아서 집안 문제로 인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으므로 그 남편은 그 마을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를 얻게 되었고 결국엔 그 마을의 중요한 임무를 처리하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내의 근면하고 성실한 내조(內助)를 통한 가정의 안정은 남편으로 하여금 바깥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기틀이 된다.
성 경: [잠31:24]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베로 옷을 지어 팔며 - 현숙한 여인의 근면성은 그의 상업적 수완에서도 드러난다. 본 잠언은 아내가 정직한 상거래에 종사하는 일을 낯설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사실 잘 짠 좋은 베옷은 고대로부터 팔레스틴에서 여인들의 주요 상거래 상품이었다.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 원문 직역은 '띠들을 가나안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여기의 '띠'란 활동의 편리를 위하여 사용하던 문자 그대로의 허리띠를 말하는데 당시 이것은 대개 가죽으로 만들었으나 금이나 은실로 짜거나 보석이나 금으로 장식한 값비싼 것도 있었다(삼하 18:11;단 10:5). 또한 '가나안 사람들'이란 주로 모든 무역인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이었다. 현숙한 여인은 각종 띠를 만들어 무역상에게 팔기도 하였다는 말이다.
성 경: [잠31:25]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 그녀의 근면과 성실로 이룬 튼튼한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능력있는 자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후일을 웃으며 - 원문 직역은 '장차 올 날들을 기뻐하며'이다. 근심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확실한 기쁨의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성 경: [잠31:26]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인애의 법 - 진실한 아내의 입술에서 나오는 자비로운 말들을 가리키는데 이것들은 법(法)과 같이 그것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가게 하는 안내자 혹은 지침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성 경: [잠31:27]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대가로 얻은 양식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이는 바울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특히 바울은 이 사상을 종말을 사는 성도의 자세라는 문맥 속에서 피력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주님의 재림의 가까움을 핑계로 세상 일에 등한히 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성 경: [잠31:28]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현숙한 여인의 지혜로운 삶은 그 가족의 신망(信望)과 칭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다.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정 밖 사람들의 칭찬은 원하지만 가정내의 식구들의 평판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가정을 먼저 돌아보아 식구들의 인정을 받는 일은 타인의 인정을 받는 일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 "누그든지 자기 친족 특히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성 경: [잠31:29]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현숙한 여인은 모든 다른 여인보다 월등하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은 그 남편이 나머지 식구들에게 들려주는 칭찬의 말로 볼 수 있다.
성 경: [잠31:30]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본절은 남편의 말이라기보다는 잠언저자가 결론적으로 붙인 말인 것 같다. 어쨌든 본절을 통해 여인의 참가치는 외적 매력보다 하나님 경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있다. 본서의 마지막 장의 본 교훈은 본서 첫장의 그것과 일치한다(1:7 참조).
성 경: [잠31:31]
주제1: [르무엘의 잠언]
주제2: [현숙한 아내]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 다시 한번 성문이 언급되고 있는데 본절에서는 한 개인에 대한 평판이 조성되는 곳으로서 성문이 언급되고 있다. 현숙한 여인은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공동체 속에서도 인정을 받는다.